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53화 (5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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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경기의 히어로

부산고와 경남고.

부산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야구를 접하게 되는 이들은 두 학교의 이름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두 학교는 부산 지역 최고의 야구 명문이자 경쟁자의 관계에 있는 학교이다.

전라도 지역 최고 야구 명문인 광주제일고등학교와 충남권 야구 명문인 천안 북일고, 경북 지역의 경북고와 대구상고, 서울경기권의 휘문고, 인천고 등.

많은 야구 명문고들과 비교해도 결코 이름값이 가볍지 않았다.

경남고를 대표하는 레전드 중에는 한 때 자이언츠의 혼이었던 故 최동원 선수를 뽑을 수가 있고, 그를 포함하여 널리 이름을 알린 많은 경남고 출신 선수들이 배출되어 영광이 시작된다.

조선의 4번 타자라는 별명으로 명성을 떨친 이대호 선수도 경남고 출신이다.

"한동현 감독이 바로 그 경남고 출신이다."

한 감독의 출신 모교를 거론하고 있는 문표.

그의 말에서 많은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안준영 주루코치 역시 경남고 출신이기 때문이다.

한 감독과 안 코치는 서로 7년 차 선, 후배 관계였다.

"그리고 코칭스태프 중 2인자라 할 수 있는 김민철 수석 코치님은 부산고 출신이시지."

이야기가 시작되고 문표가 건넨 말은 이 두 문장이 전부였다.

하지만 두 문장으로 모든 상황을 유추할 수가 있었다.

'그렇구나. 한 감독으로 대변되는 경남고 계열, 그리고 김민철 수석 코치님으로 대변되는 부산고 계열이 자이언츠의 대표적인 파벌이구나. 그렇다면 문표 선배가 말한 나머지 하나의 파벌은 분명해 진다!'

강호는 문표가 말했던 세 개의 파벌 모두를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문표가 재차 입을 열기 전에 먼저 말을 꺼낸다.

"나머지 하나의 파벌은 손성조 2군 감독님의 파벌이겠지요?"

강호가 나머지 하나의 파벌로 떠올린 이는 손 감독이었다.

기억하기로는 손성조 감독은 경남고나 부산고 출신이 아니었다.

애초부터 부산지역 출신이 아닌 것이다.

'손 감독님은 경북고와 한양대를 졸업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남고와 부산고로 대표되는 자이언츠의 파벌과는 한 발짝 떨어질 수가 있는 것이지. 그래서 선수들을 객관적인 근거로 판단할 수가 있는 것이고.'

강호는 손 감독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다른 현장 지도자들과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는 그에게서는 남다른 점이 있었다.

여유나 무관심 같은 것과는 달랐다.

손 감독의 모습을 떠올릴 때면 항상 느껴지던 이질감.

강호는 항상 그것의 정체에 대해서 궁금해 했었다.

'파벌이란 단어만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을 거야. 손 감독님은 그렇게 단순한 분이 아니니까.'

강호는 고개를 내저었다.

손 감독이 파벌 같은 것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사이 강호의 물음에 문표가 답을 한다.

"호오~거기까지 예상을 한 거야? 맞아. 나머지 하나의 파벌은 손 감독님 계의 파벌이지. 대다수의 자이언츠 고참들이 아는 부분은 바로 여기까지다."

문표는 말을 마치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재밌는 말을 하기 직전에 문표가 짓는 표정이기도 했다.

문표는 잠시 말을 멈추고 뜸을 들인다. 마치 강호가 먼저 물어봐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아 좀, 그냥 말하라고 이 변태 같은 선배 놈아.'

머릿속에 드는 생각을 여과 없이 말할 수는 없다. 선배는 선배이지 않은가.

강호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묻게 된다.

"또 다른 내용이 있는 모양입니다. 문표 선배와 일부만 아는 무언가가요."

강호가 운을 떼자 문표의 눈빛이 반짝인다.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할 수 있게 되서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는 문표였다.

"맞아. 역시 강호 후배야. 영악한 야구 실력만큼이나 영특한 머리란 말이야. 하하, 과연 이 안에는 뭐가 들었을까?"

혼자서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던 문표는 점점 주제에서 멀어진다.

강호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으며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다.

"머리 안에는 뇌가 들었겠지요. 다음 말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강호는 문표의 장난에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그의 손길을 뿌리친다.

그러자 문표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강호의 어깨에 손을 턱하고 올린다.

"표면적으로는 세 개의 파벌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아. 사실 우리 자이언츠의 파벌은 두 개야."

문표의 말에서 상황이 정리됨을 느낀다.

강호는 문표가 제공해 준 단서로 생각을 이어나간다.

'표면적으로는 세 개이지만, 실제로는 두 개라고? 그렇다면 상황이 단순해지는구나. 김민철 수석 코치님은 과거 손성조 감독님의 밑에서 지도자 수업을 시작했었다. 손 감독님과 수석 코치님은 사제지간인 거야. 결국 수석 코치님이 이끄는 부산고 파벌은 손 감독님의 파벌인 셈이 된다.’

강호는 머릿속으로 1군과 2군을 포함한 전체 코칭스태프의 얼굴을 떠올리며 퍼즐을 맞춰본다.

김민철 수석코치가 이끄는 1군의 코치들을 손 감독 계로 포함시킨다면 문제가 단순해진다.

한 감독과 손 감독의 대립. 그것이 자이언츠의 가려진 내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던 강호는 문표에게 자신이 도출한 결론을 말하려다가 이내 문표의 오묘한 표정을 보고는 입을 다물게 된다.

'아니, 아니야.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닐 거야. 그 정도에 그치는 내용이라면 문표 선배가 본인만 아는 이야기처럼 떠들지는 않았을 거야.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강호는 생각을 달리했다.

김민철 수석을 손성조 감독 계로 봤을 때, 문제는 없는가. 표면적인 문제는 없어 보인다.

손성조 감독이 자이언츠의 1군을 배후에서 움직이는 막후 실력자로 보면 되는 일이다.

그런 가정이라면 지금 1군 선수단에서 느껴지는 어색한 분위기도 어느 정도는 설명이 가능하다.

'한 감독과 손 감독님. 두 사람만 놓고 생각한다면 대결 구도가 성립되지 않아. 이미 수석코치님과 3군 총괄코치님을 포함한 대다수의 코칭스태프가 손 감독님을 따르고 있어. 한 감독에게는 손 감독님과 대립할 힘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는 것은.'

강호는 팔짱을 낀 채로 장고에 들어간다.

곁에 앉은 문표는 그런 강호를 묘한 미소를 띤 채로 바라보고만 있다.

계속해서 이어지던 대화는 강호의 생각이 길어지면서 잠시 정체된다.

'그래, 그거야! 한 감독의 배후에 누군가가 있는 거야. 그렇지 않다면 별다른 입지가 없어 보이는 한 감독이 손 감독님과 대립할 수는 없어.'

강호는 찬찬히 따져본다.

자이언츠 코칭스태프 중 한 감독과 같은 경남고 출신이 누가 있는지를 말이다.

'1군에는 박한중 수비코치, 안준영 주루코치가 있다. 2군에는 경남고 출신 코치가 없고, 3군에는 신기문 수비코치가 있지. 이렇게 보면 한 감독 계의 코치들이 많지 않지만, 중학교와 대학교까지 학연을 넓혀 나간다면 몇몇 코치들이 늘어나게 된다.'

강호는 기억 속을 헤집어 보지만, 한동현 감독의 출신 중학교가 어디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한 감독의 출신 대학은 부산 연고의 동아대이지만, 동아대 출신의 코치는 이미 거론했던 박한중 코치와 안준영 코치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코치들의 인사에 관심이 많은 강호였지만, 모든 코칭스태프의 초, 중, 고, 대학교까지의 출신 학교를 기억하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한 감독 계로 보이는 코치는 1군에서 3군까지 통틀어도 세 명 정도밖에 보이질 않아. 그런 한 감독이 손 감독님과 대립을 한다? 말이 안 되는 거야. 결국엔 배후가 있다는 뜻이다. 누굴까? 지정만 사장? 아니면 단장인 이상현? 운영 본부장이나 스카우트 총괄일까? 총 사령탑의 배후가 되려면 어느 정도 선의 권력자여야 할까?’

강호는 어느새 네 명의 배후 인사를 떠올리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을 제외하고 세 사람을 심중에 담았다.

눈을 감은 채 이런저런 계산을 해보던 강호가 불현듯 눈을 뜨며 문표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이상현 단장입니까?"

강호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문표의 입 꼬리가 올라간다.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문표는 적지 않게 놀란 눈치였다.

"맞아. 어떻게 거기까지 생각한 거야?"

문표의 질문에도 강호는 대답이 없다.

그의 머릿속은 여전히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 지정만 사장은 본사 계열사의 대표이사 임명에서 밀려나 자이언츠의 사장자리에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계열사 대표로 거론될 정도의 인물이 학벌이 가볍다고는 볼 수 없어. 수도권 연고 명문대학이나 외국계 대학을 졸업했을 거야. 한 감독과 접점이 있다고는 보기 힘들다.'

그것이 지정만 사장을 제외한 근거였다.

사장인 지정만을 제외한다면 남은 사람은 3인. 그 중에서 스카우트 총괄을 제외한 것은 그가 실질적인 권한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김석인 스카우트 총괄이 배후라면 한 감독이 손 감독님과 맞설 수는 없어.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두 명. 이상현 단장과 최치열 본부장이다.'

두 사람의 학벌은 알지 못하지만 경우의 수가 두 가지이니 그 중 직위가 높고, 조금 더 강한 권력을 가진 이상현 단장의 이름을 말해본 것이었다.

문표가 수긍을 하고 나서니 더 이상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어진다.

"이상현 단장은 경남고, 동아대, 동아 대학원 출신이야. 한동현 감독과는 경남고, 동아대 1년 선배인 셈이지. 또, 박한중 수비코치와 안준영 주루코치는 얼핏 보면 김 수석님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 감독 계 사람이야. 민수 선배가 네게 접근한 이유를 이제 알겠어?"

문표의 말에 강호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자이언츠에 그렇게 복잡한 권력투쟁이 진행되고 있다면 선수단의 입장이 난처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파벌에 따라 라인을 타기도 어려운 점이 있고,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기에는 한 감독의 전횡이 극심하다.

혹시 선수 중 누군가가 한 감독의 간자 역할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되기도 할 것이다.

'민수 선배가 내게 온 이유가 바로 그거야. 내가 혹시 안 코치와 연이 닿아 한 감독의 스파이 노릇을 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을 한 거야. 그래, 그거였구나.'

모든 상황을 파악해낸 강호는 심각한 표정을 버리고, 피식 웃음 짓는다.

이미 표면화되고 있는 선수단의 분위기조차 알지 못한 자신이 우습게 느껴진다.

'생존경쟁과 훈련에 집중하느라 다른 것을 보지 못했구나. 나도 마냥 신인은 아니니까 이런 분위기에 적응할 필요는 있어.'

강호의 미소에 그가 결론을 내린 것이라 생각한 것인지 문표가 묘한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왜 웃는 거야? 뭐, 혹시 라인이라도 타보려는 거야?"

그럴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물어보는 문표의 질문에 더욱 진한 미소를 짓는다.

강호는 웃는 얼굴을 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뇨. 절대요. 코칭스태프의 파벌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저는 야구 선수이지 정치인이 아니니까요. 야구선수가 야구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단호할 정도의 강단 있는 말이었다.

강호의 말에 문표가 마주 웃어 보인다.

"그래. 맞아. 그게 민수 선배를 포함한 고참 선수들의 생각이야. 우리는 야구 선수이지 정치인이 아니잖아. 운동만 열심히 해도 모자랄 시간에 그딴 파벌에 동조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야. 강호, 너라면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

문표는 자신과 생각이 다르지 않은 강호의 대답에 안심한 모양이었다.

양손으로 낀 팔 깍지로 뒤통수를 받치며 벤치에 눕듯이 기대앉는다.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의도처럼 보인다.

강호는 그의 바람대로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대신 문표에게서 들은 내용을 토대로 자신의 행동방침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파벌? 학연?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겠어. 우리는 실력과 결과로 말하는 운동선수야. 오직 야구만 생각해도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어. 나는 나만의 길을 간다.'

그렇게 스스로의 방침을 정한 강호. 불현듯 떠오른 손 감독의 얼굴을 마주한다.

'손 감독님. 저는 파벌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믿고 따라야 한다면 미련 없이 당신을 선택하겠습니다. 당신은 제게 신뢰를 준 첫 은사니까요.'

오랜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이었다.

강호는 스스로의 선택을 파벌이나 지연, 학연 등으로 폄하하고 싶지는 않았다.

본인의 모교는 라인을 선택할 수 있는 경남중, 부산고이다.

라인을 타려 했다면 김민철 수석 코치의 라인에 승차하여 쉽게 야구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강호는 달콤한 유혹을 거부하고, 자신의 야구를 하려 한다.

'오직 야구로 승부하겠어.'

그것이 강호가 내린 최종 결론이었다.

============================ 작품 후기 ============================

날씨가 많이 덥습니다.

무더위와 냉방병 모두 조심하시고. 즐거운 한 주 시작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점심 먹기전에 한 편 투척하고 갑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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