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51화 (5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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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경기의 히어로

토요일 아침이 밝았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난 강호는 진만의 데스크를 향해 다가간다.

데스크 위에 놓여있는 진만의 VR기를 찾기 위해 손을 더듬거린다.

혹시라도 잠이 든 진만이 잠에서 깨어 날까봐 불을 켜지는 않는다.

'진만이 녀석이 일어나서 VR기를 쓴다고 한다면 별 수 없이 줘야겠지. 이건 진만이 녀석 물건이니까. 진만이가 일어날 때까지만 사용하도록 하자.'

강호는 잠들어 있는 진만을 힐끗 살피고는 근처에 놓인 진만의 태블릿을 집어 들었다.

의자에 조용히 앉아 선구안 훈련 어플을 켜고 VR기를 착용한다.

후배의 물건을 눈치껏 사용해야 하는 게 마음 상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강호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없으면 없는 대로 방법을 만들고, 있으면 최대한 활용을 하는 것이 강호의 생활 태도이다.

몰래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어젯밤 잠이 들기 전에 물건의 주인인 진만에게 허락도 받아두었다.

'진만이 녀석. 안 한다고 할 때는 언제고, 어제는 자기 혼자 신나서 선구안 훈련을 해댔었지.'

어제의 기억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 짓는다.

무려 99달러의 비용을 지불하고 구입한 어플은 진만의 관심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금방 넘겨주겠다는 약속과는 다르게 본인이 3시간 동안 VR기를 쓴 채 선구안 훈련을 한 것이다.

그동안 강호는 별 수 없이 악력기 등의 기구로 근력 강화 운동을 해야만 했다.

끼기긱.

어제 사용한 악력기가 여전히 강호의 손에 들려 있다.

선구안 훈련과 악력 강화 운동을 병행하려는 것이다.

'홈구장에서의 경기라면 좋겠지만, 원정 중에는 이런 식으로라도 선구안 훈련을 이어나가야 해. 프리마켓의 혜택이 있어도, 스스로 실력을 키우지 않는다면 결국 좋은 선수로 성장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강호의 생각이었다.

프리마켓 시스템이 언제까지 적용된다는 확신도 없고, 설명도 듣지 못했다.

혹시라도 원하지 않는 시점에 시스템의 혜택이 사라질 것을 대비해야만 한다.

젊은 나이에 바닥을 경험한 강호였기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그의 노력은 경기가 시작되고 나서 곧장 증명되고 있었다.

따악!

경쾌한 타겸음이 고척돔에 울려 퍼진다.

1회 초, 1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서 2번 타자로 들어선 강호가 좌중간을 꿰뚫는 안타를 때려낸 것이다.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고 만들어낸 깨끗한 안타였기에 강호의 기쁨은 컸다.

'타구 위치가 꽤나 깊어. 2루를 노릴 수도 있는 위치야!'

타구의 방향과 좌익수의 위치를 확인한 강호의 눈빛이 빛난다.

기억하기로는 상대팀인 히어로즈 좌익수의 어깨가 강한 편이 아니라고 알고 있다.

이대로 1루 베이스를 밟은 상태에서 속도를 더욱 높인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 보였다.

'이왕 내 힘으로 안타를 만들어 냈으니 발로 장타를 만들어 보자.'

속으로 판단을 내린 강호는 속도를 더욱 높인다.

박차를 가하면서도 하루 전, 주루코치인 안준영과 함께 했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강호야, 많이 바쁘냐?"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강호의 방에 안준영 코치가 찾아왔었다.

강호는 별다른 접점이 없는 안 코치의 방문에 의아해 하면서도 질문에는 답을 한다.

"조금 있다가 웨이트를 하려고 몸을 풀고 있었습니다. 딱히 바쁜 것은 아닙니다."

강호의 대답에 안 코치가 고개를 끄덕인다.

본인 스스로 몸 관리를 하는 강호가 대견했는지 웃음을 짓는다.

"일찍부터 열심히 구나. 다른 게 아니라 사직에 있는 트레이닝 코치에게 너에 관한 신체사항을 업데이트 받았다. 그런데 체크할 부분이 몇 개 있더구나. 바쁘지 않으면 로비에서 시간 좀 내줄 수 있겠니?"

안 코치는 부드러운 어조로 강호에게 요청한다.

평소의 그 다운 젠틀한 태도였다.

안 코치가 부드럽게 요청했다고 해서 강호가 그것을 거절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말로 청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개 2군 선수가 어떻게 코치의 요청을 거절할 수가 있겠는가.

강호는 입고 있던 트레이닝 복 그대로 숙소 방을 나서 안 코치의 뒤를 따른다.

두 사람이 이동한 곳은 숙소로 사용하는 호텔의 로비. 이미 테이블에는 여러 장의 서류가 놓여 있었다.

'뭐 때문이지? 키가 큰 것 때문인가? 아니면 체중 증가 때문일까? 안 코치가 주루코치니까 도루 때문에 그러는 건가?'

강호는 의자에 앉으면서도 여러 가지 가정을 해본다.

그런데 짚이는 것이 너무 많다보니 뚜렷하게 무엇 때문인지를 가늠하기가 힘들다.

결국 단도직입적으로 묻게 된다.

"혹시 제가 잘못한 것이 있는 겁니까?"

강호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묻게 된다.

코치들이 특정 선수에게 독대를 요청할 때는 잘못한 부분이나 실수를 지적할 때인 경우가 종종 있다.

다른 선수들이 보는 앞에서 지적하기 애매하거나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 논할 때 조용히 선수를 불러내고는 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어.'

자신의 허울을 묻고는 있었지만, 강호는 당당했다.

술을 마시지도 않고, 담배도 하지 않는 자신이다. 여자와 연락을 한다거나 유흥을 즐기지도 않는다.

야구 이외에는 어떠한 취미생활도 없는 자신이지 않은가.

안 코치에게 추궁당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에 당당하게 어깨를 편다.

"하하, 잘못해서 부른 게 아니야. 변동 사항을 확인하기 위해서 부른 거야. 걱정하지 마라."

강호의 생각을 짐작한 안 코치가 증명하는 말로 대답해 준다.

그는 강호를 안심시키기 위해 밝게 웃어 보이며 들고 있던 서류를 건넨다.

강호는 안 코치가 건넨 서류를 받아 든다.

'이건?'

강호가 받아든 것은 사직에서 측정한 인 바디 프로그램의 신체지수였다.

신장과 몸무게, 체질량과 체지방 등을 나타내는 지표인 것이다.

"키가 약간 자랐더구나. 네 나이에 흔한 경우는 아닌데. 축하할 일이야."

안 코치의 말에 강호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한다.

그의 말대로 25살의 나이에 키가 자라는 것은 드문 경우는 아니었기에 그것 때문에 부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어진 안 코치의 말에서 키 때문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키 때문에 부른 건 아니고, 확인하고 싶은 것은 너의 체중 변화에 관한 거야."

안 코치의 말에 강호는 납득하게 된다.

스프링캠프에 들어가기 전, 정확히는 자이언츠 입단 때의 체중은 69.7kg이었다.

입고 있던 옷의 무게 등을 합하여 70kg로 기록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불과 몇달 만에 15kg의 체중 증가가 발생한 상태다.

강호가 지독히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코치들이 주목하는 부분이었다.

"얼마 전에 구단에서 있었던 도핑 검사도 있었고 하니 약물을 의심하는 건 아니야. 김 수석님께서 알아보라고 하신 것은 너의 100미터 주력이거든."

안 코치의 이어진 말에 어느 정도 의문이 풀린다.

몇 주 전에 있었던 도핑 검사 결과가 구단에 통보되었을 테니 자신이 스테로이드 등의 약물투여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완전히 배제하고 있을 것이다.

도핑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는 강호였다.

강호가 안 코치의 말에서 주목한 것은 김 수석을 거론한 그의 말에서였다.

'1군 코칭스태프의 실세라 할 수 있는 수석 코치님도 나를 주목하고 있었구나.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 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그런 기록을 올리고 있으니까.'

강호는 속으로 납득을 하게 된다.

김 수석이 강호의 주력을 측정하기 위해 안 코치에게 업무 부여를 한 것이다.

안 코치의 보직이 주력코치이기 때문이다.

한 편으로 김 수석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진다.

또 그게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시범경기이기는 하지만 나는 4할 대를 기록하고 있는 타자다. 코칭스태프가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벌써 도루도 아홉 개나 기록하고 있으니 정확한 주력을 파악하고 싶은 거겠지.'

김 수석의 의도를 유추해 보며 자신의 기록을 떠올려 본다.

현재까지 12경기에 출장해 56타석 46타수 20안타, 0.435의 타율이었다.

4할 3푼 5리라는 타율은 단 기간에 달성한 기록이긴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대단한 활약이었다.

여기에 더불어 0.509의 출루율과 0.633의 장타율을 더해 1.142의 ops를 기록하고 있었다.

기록만 놓고 본다면 거포 형 타자의 전형을 보여주는 상당한 기록이다.

여기에 득점권 타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었다.

"100미터 말입니까? 구단 입단 당시의 기록이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12초 87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강호는 일단 자신이 알고 있는 기록을 말한다.

안 코치가 자신을 찾은 목적을 밝혔으니 어떤 답변이라도 해야 했다.

그러자 안 코치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재측정이 필요해. 체중이 15kg가 늘었는데 강호 너의 인 바디 데이터를 보니 체지방이 5%밖에 되질 않아. 늘어난 체중 대부분이 근육이라는 이야기야. 주력이 증가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측정을 해볼 필요가 있어."

안 코치의 설명에 납득을 하게 된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강호는 그 문제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했다.

"여기서 말입니까? 여기는 고척인데 말입니다. 100미터 트랙이 없을 텐데, 고척 구장 안에서 측정하실 생각입니까?"

강호의 물음에 안 코치가 어색하게 웃어 보인다.

자주 접할 일이 없어서 알지 못했는데 안 코치가 웃음이 많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안 코치가 입을 열었다.

"아니, 히어로즈에 구장 사용을 요청하려면 며칠 전에 했어야 해. 미리 공문을 날리지 못했으니 구장 안에서는 할 수 없어. 대신 섭외한 장소가 있지."

안 코치의 안내로 따라 나선 장소.

그곳은 8차선 도로 가에 위치한 사람이 다니는 인도였다.

안 코치가 가리킨 곳은 인도 옆에 조성된 자전거 도로다.

"여기가 직선거리로 정확히 60미터다. 100미터는 안되겠지만, 60미터 스퍼트로 100미터 주력을 대략적으로 산출할 수 있을 거야. 사직에 돌아가면 정확한 기록을 다시 재겠지만, 김 수석님이 지금 당장 자료를 원하시니 한 번 재보도록 하자."

안 코치는 스톱워치를 들어 올리며 그렇게 말했었다.

강호는 별 수 없이 안 코치의 요구대로 60미터 거리를 전력질주 했었고, 그 결과가 지금 김 수석의 손에 들려 있을 것이다.

스타트와 거리, 순간 가속 등을 계산하여 안 코치가 계산한 강호의 100미터 주력 결과는 놀라웠다.

'11초 6. 100미터 주력이 1초 이상이나 줄어들었어. 그 정도 주력이라면 이런 코스에서 2루타를 만들지 못할 것도 없어!'

강호는 과거의 회상을 지워내고 2루를 향한 질주에 온 힘을 쏟는다.

"뭐야? 타자가 2루까지 뛰는데?"

"왜 저 안타에 2루까지 가는 거야? 아악, 아웃되겠네!"

"2루는 오버야! 1루로 돌아가!"

3루 쪽 응원석에 자리 잡은 자이언츠의 팬들이 강호의 무모해 보이는 질주에 비명을 질러댄다.

그러나 강호는 그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를 높인다.

타악.

좌익수가 송구한 공이 원바운드로 그라운드를 튕기고는 2루수의 글러브에 빨려든다.

그와 동시에 해드 퍼스트 슬라이딩에 들어간 강호의 오른 손이 2루 베이스로 뻗어진다.

촤아악.

바닥을 스치는 소리와 함께 강호의 손과 2루수의 글러브가 동시에 닿는다.

강호의 시선과 2루수의 시선, 그리고 모든 팬들의 시선과 양 팀 덕 아웃의 시선 역시 한 곳으로 향한다.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2루심이 양 팔을 넓게 펼친다.

"세이프!!"

2루심이 큰 소리로 세이프를 선언한다.

이에 잔뜩 긴장한 채로 지켜보던 3루 관중석의 팬들이 일제히 함성을 외친다.

"와아!!"

"잘했다. 백강호!"

"완전 멋있다! 백강호!!"

홈 팬들에 비해 숫자는 적었지만, 강호의 이름을 외치는 자이언츠 팬들의 함성은 결코 인원수에 비례하지 않았다.

팬들의 힘찬 함성이 고척돔을 가득 채운다.

강호 스스로 만들어낸 또 하나의 안타가 2루타로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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