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49화 (49/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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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홈런, 두 개의 도루

강호의 번트 안타에 이은 도루로 자이언츠의 덕 아웃에 활기가 돌고 있었다.

"와~ 강호 빠르네."

"그러게요. 분명 아웃 타이밍인데, 포수 송구도 좋았고요. 강호의 주력이 생각하던 것보다 더 좋은 모양입니다."

"분명 선수 데이터에는 100미터 12초 후반이던데, 다시 측정해봐야 하는 거 아냐?"

"그게 아마도 강호가 살이 찌기 전의 기록일 겁니다. 캠프 때 몸무게가 10kg이상 늘었다고 하니 순간적인 폭발력이나 주력 자체가 좋아졌을 수도 있어요."

코칭스태프의 의견이 분분하다.

그들 모두는 강호가 보여준 도루 능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령탑인 한동현 감독 역시 강호의 도루를 보았다.

그 역시 강호의 주력에 대해 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받아주던 유일한 사람은 사이가 틀어진 김 수석이었다.

"...."

입을 굳게 다문 채 힐끗 김 수석을 바라보니 코치들과 어울린 상태로 강호를 논평하기 바쁘다.

결국 김 수석과 코치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2루 베이스를 밟은 강호를 바라본다.

그 때 강호의 시선이 한 감독과 마주쳤다.

강호의 눈빛은 마치 '저는 이 정도 할 수 있는 선수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한 감독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백강호 녀석은 진짜야. 손 감독의 약속대로 녀석을 2루수로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아까 2루 수비를 하는 걸 보니 수비력도 아주 좋았고. 우익수에 두는 것과는 천지차이였어.'

6회 초 상황에 보았던 강호의 수비 역시 상당한 수준이었다.

최훈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지금 당장 2루수 자리를 맡겨도 나쁘지 않아. 하지만 손 감독과의 약속도 있고 하니 당분간은 2군에 내려야겠지. 아쉽구나. 강호 정도의 펀치력이면 중심 타선에 넣어도 손색이 없을 텐데.'

한 감독은 입맛을 다셔야만 했다.

강호의 타격 능력과 빠른 주력, 어떤 수비 위치에 가져다 놓아도 보통 수준은 넘는 수비 능력까지.

생각 같아서는 사직에 남겨 개막전부터 라인업에 올리고 싶었다.

'마음은 굴뚝같지만 참도록 하자. 손 감독님이 4월 중순까지는 강호를 만들어주신다고 했으니까. 강호에게 2루수만 맡길 것도 아니잖아.'

한 감독의 생각이었다.

사직구장에 찾아온 손 감독과의 대화. 그 속에서 한 감독은 머리를 스치는 영감을 받게 된다.

바로 손 감독의 말로 인해서였다.

"강호가 모든 위치에서 수비를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겠소이다. 4월 중순까지 말입니다. 그러니 시범경기가 끝나는 대로 강호를 상동으로 내려 주시오."

손 감독은 강호에 대해 말하며 그렇기 제안했다.

처음에는 손 감독의 말이 납득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손 감독의 설명에서 빠르게 머리를 굴려보는 한동현 감독.

휴고가 내일이면 준비된다고 한다.

그것만으로도 좋은 소식인데 시범경기 동안 부진한 지터와 허리 부상으로 고민인 최훈을 맡아준다고 한다.

대신 5선발 급 좌완 요원인 성수제를 1군으로 올리고 2군에서 경쟁 중이던 모든 2루수 가능 요원들을 올려준다고 한다.

"4월 중순이 되면 강호를 올릴 겁니다. 그 때는 한 감독께서 강호를 2루수로 기용하던 중견수로 쓰든 마음대로 하시오. 모든 수비 포지션이 가능하게 준비시킬 테니."

가능하기만 하다면 완벽한 시나리오였다.

그런데 의문이 드는 것은 제 아무리 대단한 손 감독이라지만, 고작 2주 만에 강호의 수비를 완성시킬 수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감독은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된다.

'손 감독이 다른 계획이 있는 모양이군. 좋아. 강호를 2주 동안 쓸 수 없다는 것은 아쉽지만, 어차피 약속한 기일이 오면 강호를 1군으로 올릴 것이다. 1군으로 올린 선수는 제 아무리 손 감독이라도 간섭하지 못한다. 1군 감독인 내가 아니라면 라인업에 관여할 수 없으니까.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지만, 손 감독님. 당신의 제안을 받아드리지요.'

그것이 한 감독의 생각이었다.

능구렁이 같은 손 감독이 무슨 계획을 꾸미는지는 몰라도, 자신에게 해로울 것은 없다는 판단이었다.

손 감독은 10년 가까이 자이언츠의 2군 감독으로 지내온 사람이다.

구단이나 팀에 해가 되는 일을 벌일 사람은 아니었기에 그의 계획에 대해 자세히 묻지 않기로 한다.

'만약 강호와 같은 유형의 타자가 투, 포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 수비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될까?'

한 감독은 상상해 본다.

시즌이 시작되면 많은 변수들이 일어나게 된다.

선수들의 부상과 기량 저하, 슬럼프 등. 주전 선수들의 이탈이 발생하면 대체할만한 선수를 찾아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3할 5푼을 치는 대기 멤버를 보유하고 있다면 주전 선수 이탈이 발생했을 때 얼마나 수월할 것인가.

'만약 강호를 그런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면, 내게 향하는 비난의 화살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강호야, 미안하지만 너는 내 방패가 되어줘야겠어.'

그것이 강호를 바라보는 한 감독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한 감독 본인은 자이언츠 기사에 달리는 댓글들이나 홈페이지의 비난 글들을 보지 않으려 하지만, 가족들은 그렇지 않았다.

보기 속상한 댓글이나 비난의 글이 수천 개씩 달리는 날에는 자연스레 댓글들을 눈으로 살피게 된다.

그 때의 참담한 심정이란.

이번 시즌 역시 시작부터 휴고나 지터 등, 자신이 욕먹을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으니 팬들의 시선을 어딘가 로는 돌려야만 했다.

'팬들의 시선을 강호에게로 돌린다면, 이번 시즌 초반에는 편한 마음으로 경기를 치룰 수 있을 거야.'

생각을 정리하며 2루 베이스의 강호를 바라본다.

그가 바라보는 강호의 좋은 페이스는 시즌 후반까지 유지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신인 선수들은 보통 코칭스태프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오버페이스를 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 감독은 강호 역시 그런 루키들과 다를 바 없이 치부하고 있었다.

'강호, 너의 페이스가 떨어져 2군으로 내려갈 때까지는 나의 뜻대로 움직이게 될 거다. 선수들을 기용하는 것은 결국 감독의 고유권한이니까.'

한 감독은 2루 베이스에서도 리드 폭을 넓게 벌리는 강호를 바라보며 생각을 접었다.

도루로 2루까지 진루한 강호가 상대팀 투수의 2구에 또 다시 다음 베이스를 향해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좀 전의 도루에 이어 2루에서 3루로 향하는 연속 도루 시도였다.

"앗!"

코칭스태프 사이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온다.

경악성은 덕 아웃에서뿐만 아니라 1루 응원석에서도 들려온다.

상대팀 배터리가 이전 도루로 인해 긴장감을 잔뜩 끌어올린 상태에서의 연속 도루.

그것이 성공할 것이라 여기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포수의 송구 거리가 2루 보다 훨씬 짧은 3루였기 때문에 실패확률이 높은 것이다.

촤아악!

그라운드를 스치는 소리가 모두의 이목을 이끈다.

강호의 손이 3루 베이스에 닿은 것과 포수가 던진 공을 받은 3루수의 글러브가 강호의 손등을 태그한 것은 거의 동 타이밍.

모두의 시선이 3루심에게로 향한다.

"세이프!!"

3루심이 양팔을 벌리며 콜을 외친다.

세이프 사인을 내는 3루심의 행동에 자이언츠의 덕 아웃과 1루 관중석 모두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너무나도 과감한 연속 도루에 놀라고 만 것이다.

"허헐, 3루 도루라니. 강호가 3루로 도루할 주력이 있었던 거네. 김 코치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기회가 되는 대로 강호의 주력을 다시 측정해 봐야겠어요."

"이번에도 포수의 송구는 좋았어요. 그런데 강호의 발이 조금 더 빨랐습니다. 강호 녀석이 몸을 불리면서 허벅지에 근육이 꽤나 붙은 모양입니다. 경기가 끝나면 트레이닝 코치에게 들러서 강호의 자료를 업데이트 받아야겠습니다."

강호의 3루 도루로 인해 코치들의 의견이 또 다시 분분해진다.

한 편 강호는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베이스를 밟고 일어선다.

'이것으로 됐다. 1아웃 상황에 주자인 내가 3루까지 왔어. 준비만 잘하고 있으면 땅볼 타구에도 홈으로 쇄도할 수 있어. 외야 뜬 공이 나온다면 더욱 좋고, 안타가 나와 준다면 손쉽게 득점이다.'

강호는 3루 주루코치와 주먹을 마주치며 홈을 바라본다.

3루에 있던 코치는 당연할 수도 있는 작전을 강호의 귀에 속삭인다.

"잘 했다. 혹시라도 성철이가 땅볼을 치더라도 홈으로 쇄도해라."

강호의 주력을 코앞에서 확인한 주루코치였기에 그렇게 주문을 낸다.

코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강호. 그의 생각 역시 코치와 같았다.

타자인 유성철이 어처구니없는 땅볼만 치지 않는다면 홈으로 쇄도할 생각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단지 강호와 주루코치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해설위원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두 사람 중, 캐스터인 전용제가 마이크를 가까이 대고 씨익 웃음 지으며 말한다.

"연속 도루에요. 허허, 이것 참. 백강호 선수의 주력이 대단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전파를 타고, tv 스피커로 송출되고 있다.

팬들 역시 전 캐스터가 너털웃음을 흘린 이유를 동감하고 있었다.

또한 해설위원인 이효범 위원 역시 동감을 표시한다.

"양 팀이 난타전으로 경기를 진행하다가 백강호 선수의 쓰리런 이후로 소강상태가 진행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의 연속 도루로 분위기가 자이언츠 쪽으로 넘어왔어요. 저 정도의 주력이면 유성철 선수가 내야 땅볼만 치더라도 홈으로 들어올 수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성철 선수는 타격에 최선을 다해야 겠습니다."

이효범 위원의 해설을 전 캐스터가 정리를 해서 말을 받는다.

만약 사석에서 나누는 이야기였다면 더욱 직설적인 내용으로 이야기 했겠지만, 지금은 전국으로 방송되는 tv중계 중이다.

강호의 공로를 높이는 말을 하더라도 다른 선수를 폄하하는 말을 함부로 할 수는 없다.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맞습니다. 전용제 캐스터가 말을 아주 잘 해주었습니다. 타자는 타석에 들어서면 타격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투수는 투구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요. 그런 면에서 보면 백강호 선수의 연속 도루는 아주 좋은 모범이 된 것 같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까?"

"네, 누가 봐도 최선을 다해서 달리더군요."

"그런 플레이를 해주니까 팀이 쉽게 득점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이번 찬스에서 자이언츠가 득점을 하면 백강호 선수의 공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이효범 위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유성철이 상대 투수의 공을 받아친다.

딱.

강하게 맞은 공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강호는 홈을 향해 스타트를 끊었고, 땅볼 타구를 잡은 2루수는 홈을 향해 던지는 모션을 취하다가 이내 포기하고는 1루로 송구 방향을 튼다.

"아웃!"

타자 주자인 유성철은 1루에서 아웃되었지만, 덕분에 강호는 아무런 저지 없이 홈 플레이트를 밟을 수 있었다.

강호의 빠른 발이 1득점을 만든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 본 이효범 위원이 논평한다.

"지금 1점은 큽니다. 지금이 5회 정도면 크지 않을 수도 있지만, 8회거든요. 쇄기점이 될 수도 있는 점수예요."

이 위원의 말을 받은 전 캐스터가 한 쪽 모니터 화면에 갱신된 기록을 읽었다.

"오늘 전까지 백강호 선수의 타율이 3할 5푼 1리였습니다만, 오늘 경기에서 홈런과 내야 안타로 3할 8푼 5리까지 타율이 올라갑니다. 다음 경기에서 4할 타율을 노려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다면 말이지요."

두 사람의 해설과 중계는 거기에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팬들은 여전히 강호가 발로 만든 1점의 여운을 즐기고 있었다.

특히나 거제시장의 한편에서 친구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던 동철의 반응은 대단했다.

이미 동철은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취해 있다.

소주에서 시작한 반주가 어느새 폭탄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강호의 플레이를 지켜보던 그의 눈동자만큼은 또렷한 상태다.

"올려야지! 당연히 올려야지! 백강호가 아니면 누구를 올려? 3할 8푼이라며? 3할 8푼! 백강호를 안올리면 한동현 감독 이놈이 팔푼이인 거지. 안 그래?"

동철은 이미 인사불성이 되어 쓰러진 친구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른다.

쓰러진 친구들에게 전하는 동철의 목소리는 그 뒤로도 한참동안 계속된다.

이 날의 경기는 강호가 때린 쓰리런이 결승타가 되어 자이언츠의 승리로 끝이 난다.

경기는 끝났지만, 강호가 팬들에게 남긴 여운은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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