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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홈런, 두 개의 도루
강호의 시범경기 첫 홈런은 누가봐도 감탄을 하게 만드는 그림같은 홈런이었다.
상대팀 투수가 잘 던진 공을 완벽하게 받아쳐서 만들어낸 대형 홈런이다.
게다가 팀이 끌려가고 있는 상황에서 때려낸 쓰리런 홈런이었다.
이글스에게 끌려가던 분위기를 한 방에 가지고 온 홈런이었기에 그 가치는 더욱 컸다.
"강호! 잘 했어! 홈런도 칠 줄 알았던 거야?"
"공 하나 만에 해결했어! 잘 했다. 백강호! 역시 우리 팀의 슈퍼 루키야!"
1,3루 주자와 함께 덕 아웃으로 들어선 강호에게 코칭스태프의 찬사가 쏟아진다.
그들의 칭찬에 반응하는 강호는 무표정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비록 아이템으로 만들어낸 홈런이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구나. 스프링캠프 때도 느낀 거지만 아이템으로 때려낸 홈런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
강호는 스스로가 때려낸 홈런에 감탄하고 있었다.
만약 좀 전의 홈런이 자신의 힘으로 때려낸 것이었다면 쾌재를 부르며 베이스를 돌았을 것이다.
그만큼이나 아름다운 궤적으로 수놓아진 완벽한 홈런인 것이다.
"잘했다!"
한 감독의 목소리였다.
그는 강호에게 주먹을 마주치며 강호가 때린 홈런을 치하했다.
김 수석과의 논쟁으로 인해 강호를 라인업에서 배제한 그였지만, 고타율을 유지하는 강호를 쓰고 싶은 마음이 컸던 모양이었다.
대타로 나선 강호가 홈런을 때려내자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뻐하는 모습이다.
강호는 한 감독의 치하에 고개를 숙여 답례하며 자신의 자리로 걸어갔다.
"여, 여, 여! 우리 강호 후배. 한 방으로 경기를 뒤집어 놓네. 딱 봐도 노리고 친 거였는데, 정 코치님이 알려주신 거야? 초구를 노리라고?"
벤치에서 반겨주는 목소리는 문표의 것이었다.
그는 강호가 쓰고 있는 헬멧을 거세게 두들기며 축하의 의사를 전한다.
"바뀐 투수의 싱커가 좋기에 초구를 노리고 들어간 겁니다. 운이 좋았어요."
강호가 대답한다.
타격코치인 정호종에게 들었던 조언은 볼넷을 노리고 출루를 하라던 것이다.
초구를 노리고 타격하라는 조언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기에 강호는 적당한 말로 문표의 질문에 둘러댄다.
"히야~여하튼 대단해. 이렇게 되면 6회 초 수비 상황에서도 경기에 투입될 것 같은데? 대타로 홈런을 친 타자를 바로 빼지는 않을 거 아냐? 아무리 우리 팀 감독이 한 감독이지만,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겠지."
강호를 칭찬하던 문표의 말이 어느새 한 감독에 대한 성토로 이어지고 있었다.
곁에 앉아 목소리를 낮추며 한 감독에 대한 비판의 말을 쏟아내는 문표.
강호는 그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며 조금 전의 홈런 상황을 떠올려 본다.
'프리마켓에서 구입한 홈런은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 안타 같은 아이템 역시 마찬가지야. 정확한 타격으로 만들어내는 안타야. 조금 전의 어퍼 스윙을 만들어내는 허리의 회전과 하체의 움직임, 그리고 타격 후의 마무리 동작을 연마하게 된다면 자력으로 홈런을 때려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야.'
생각을 정리한 강호는 정신을 집중한다.
조금 전 상황에서 자신이 어떤 자세로 홈런을 때렸는지를 떠올리려고 애쓴다.
그 때, 강호의 어깨를 붙잡는 손길이 느껴진다.
"강호야. 저기 박 코치님이 부르신다."
곁에 앉은 문표의 목소리였다.
그가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긴 곳에는 박한중 수비코치가 자신을 향해 손짓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네!"
강호는 대답과 함께 몸을 일으켜 한 코치에게 다가간다.
걸음을 옮기는 중에 그라운드를 살펴보니 2아웃이었던 5회 말 공격은 끝이 나고, 6회 초 자이언츠의 수비 상황으로 전환되고 있다.
"강호야. 글러브 챙겨서 2루 자리로 가라. 진만이가 빠진 자리에 네가 들어가게 될 거야. 2루수 글러브 가지고 있니?"
박 코치의 말이었다.
강호가 대타로 들어섰을 때 타순에서 빠지게 된 진만이를 대신하게 될 거라고.
오늘 2루수 선발 출전은 허리가 좋지 못한 최훈을 대신하여 오진만이 출장한 상태였다.
그의 타순에서 강호가 대타로 타석에 나섰으니 자연스레 진만은 2루수에서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를 대신할 2루수가 필요한 상황에서 강호가 선택된 것이다.
"없다면 이걸 써라. 여분으로 있는 거라 손에 맞지는 않겠지만, 크게 나쁘지는 않을 거다."
박 코치가 글러브 하나를 내밀었다.
상표를 확인하니 그리 나쁜 브랜드는 아니었지만, 새것은 아니어서 꽤나 낡아있다.
강호는 박 코치가 내민 글러브를 받아 든다.
'실전에서 쓰기에는 낡은 글러브가 오히려 유리할 때가 많아. 그나저나 2루수 출장이라니. 올해 들어 2루수 출장은 처음이다.'
강호는 낯선 2루수 글러브를 받아들고 그라운드 위로 올랐다.
문득 어제 맥도날드에서 손 감독이 해준 말이 오버랩 되어 스쳐간다.
"너는 2군으로 내려와서 2루수 자리에 서게 될 거다. 내가 한 감독과 했던 마지막 거래는 바로 그것이니까."
손 감독이 건넨 말 중에 하나였다.
오늘 경기에서 그의 말은 마치 예언처럼 작용되고 있다.
'2군으로 내려가 2루수 수업을 하기로 했다지만, 올해 2루수를 본 적도 없는 나를 교체 출장시키다니. 과연 한 감독답구나.'
강호는 덕 아웃에서 팔짱을 낀 채 서있는 한 감독을 흘낏 바라본다.
고집 있게 다문 입술이 인상적이다.
시범경기에서 처음 선발 우익수로 출장할 때와 다르지 않은 기분이 든다.
'자신은 있다. 몇 년 만에 해봤었던 우익수 수비와 비교한다면 2루 수비는 꿀이지.'
강호가 자이언츠에 입단하기 전에 준비했었던 수비 포지션이 바로 2루수였다.
자이언츠에 입단한 이후로는 3루수와 유격수 수비로 옮겨지기는 했지만, 충분히 익숙한 포지션이었다.
혹시나 해서 확인해본 시스템의 상태창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백강호(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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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수 자리에 있을 때보다 수비와 송구 능력이 오히려 올라가있다.
72.4였던 수비가 4.5증가하여 76.9가 되어있고, 60.7이었던 송구는 4.9증가하여 65.6으로 올라있다.
수비 능력이 전반적으로 상승한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 정도라면 호수비 아이템을 쓰지 않더라도 실책을 기록하지는 않겠구나.'
굳이 호수비 아이템을 사용할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호수비 아이템을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에게 향하는 타구를 알 수가 있으니 이 정도 수비능력이라면 충분히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아! 강호 선배님이 2루수로 교체되었구나. 다행이다!'
마침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강호와 친분이 있는 권대우 투수였다.
그는 2루수에 자리 잡은 강호에게 눈빛으로 인사를 하며 아는 체를 한다.
'대우, 이 녀석. 이번에도 나에게만 타구를 보내지는 않겠지?'
강호 역시 대우에게 눈인사를 건네며 생각하게 된다.
이상하게도 대우가 마운드에 오르면 자신을 향한 타구가 많았다.
유격수를 볼 때도 그랬고, 잠시 3루수에 있을 때도 그랬었다.
물론 모든 데이터가 2군 스프링캠프 때의 기억이지만, 왠지 오늘의 경기에서도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대우가 와인드업에 들어가고, 마치 노리고 있었다는 듯한 이글스 타자의 타격 동작이 이어진다.
그리고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타구가 2루수 방면으로 향합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시스템의 메시지가 떠오른다.
대우가 던진 초구가 상대 타자의 배트를 맞고 우측 내야를 관통하고 지나갈 것을 예언하는 메시지였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느려진 공간에서 홀로 빠른 사고를 하게 된 강호.
입술을 비틀며 몸을 움직인다.
'아니, 사용하지 않겠어.'
강호는 호수비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대우가 던진 초구의 로케이션과 상대 타자의 배트 컨트롤 방향. 그것을 근거로 해서 타구가 어디로 향할지를 예측한 것이다.
이런 예측 플레이는 프리마켓 시스템의 맹점을 이용한 것이었다.
경기 중에 시스템 메시지가 표기될 때는 주변의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으로 변화하게 된다.
강호 역시 몸이 느려지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생각의 속도만큼은 그대로였다.
다른 이들의 사고가 월등히 느려지는 가운데 강호 혼자서만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따악!
슬로우 모션이 끝이 나고 배트가 공을 때리는 타격음이 내야를 가득 채운다.
타자의 동작을 예리하게 살피던 강호의 몸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왼 쪽!'
타구를 판단한 강호가 좌측을 향해 빠르게 몸을 날린다.
잘 맞은 타구는 1루수와 2루수 사이를 빠르게 관통하고 지나가는 우익선상의 코스였다.
타구 방향이 정직해서 외야로 뻗어나가도 1루타에 그치겠지만, 선두 타자를 내보낸다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 타구가 안타가 된다면 다시 이글스에게 분위기가 넘어가게 된다. 무조건 막아야 해!'
강호는 이를 악물었다.
타구를 예측하고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타구가 지나치게 빨랐던 것이다.
하지만 안타를 내어줄 생각은 없다.
"이익!"
억눌린 기합과 함께 강호의 몸이 떠오른다.
지면과 수평하게 보일 정도로 몸을 날린 강호의 글러브가 길게 뻗어졌다.
익숙하지 않은 글러브이지만, 길이 잘 들어있어서 원하는 만큼 글러브가 펼쳐진다.
터억.
글러브 속 손바닥을 때리는 촉감이 느껴진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촉으로 타구를 잡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강호는 곧장 몸을 일으켰다.
타구는 라인드라이브가 아닌 빠른 땅볼 타구.
쓰러진 자세가 좋지가 않았기에 송구를 늦게 하면 발 빠른 타자 주자가 1루에서 살 수도 있는 타이밍이다.
강호는 반쯤 몸을 일으킨 부정확한 상태에서 곧장 1루로 공을 뿌린다. 다른 선수 같았으면 허벅지나 옆구리 쪽에 부상이 올 수도 있는 위험한 동작.
그러나 부상의 염려가 없는 강호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송구였다.
타악.
1루수 김상훈의 미트에 공이 빨려든다.
그리고 타자 주자의 발이 한 템포 느리게 베이스를 밟았다.
"아웃!"
1루심이 호쾌한 목소리로 아웃을 선언한다.
"와아~저거 백강호 아니야? 백강호가 2루수 수비도 볼 줄 아는 거야?"
"백강호! 짱이다!"
"백강호, 나이스 플레이!"
1루심의 아웃판정과 함께 1루 응원석에서 팬들의 함성이 귀를 때린다.
아직 시범경기이기는 했지만, 1루 석을 채운 홈 팬들의 성원은 뜨거웠다.
팬들 역시 알고 있었다.
지금의 타구가 안타가 됐더라면 다시 이글스에게 분위기가 넘어갔을 거라는 것을.
특히나 강호는 앞선 타석에서 역전 쓰리런을 때려낸 선수였다.
팬들의 환호가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강호 선배님. 파인 플레이!"
야수들에게 공을 돌려받은 대우가 어느새 강호를 향해 글러브를 치켜든다.
강호는 몸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대우의 칭찬에 화답했다.
탁, 탁.
자신을 바라보는 대우와 눈을 맞춘 채 글러브로 자신의 가슴을 때린다.
그 동작은 대만 스프링캠프 때도 여러 번 보여준 적이 있는 동작이었다.
'나를 믿고 마음껏 던져라. 내 쪽으로 오는 타구는 모두 막아줄 테니까.'
대우는 마치 강호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했다.
강호의 동작이 대우의 마음을 다잡아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 강호 선배는 항상 최선을 다해 수비를 해주는 사람이야. 대만에서도 그랬고, 상동에서도 그랬다. 그리고 훈련을 할 때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대우는 경기 전의 기억을 떠올린다.
최근 들어 강호와 시작한 선구안 훈련을 통해 강호가 어떤 선수인지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에 전념하는 사람. 강호 선배는 그런 사람이다.'
대우는 강호의 태도를 본받고 싶었다.
실내 연습장에서 자신이 던진 공을 노려보던 날카로운 눈동자, 탄산음료나 술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자기 관리, 그리고 상대팀 타자가 때려낸 타구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내는 끈질김까지.
강호가 보여준 야구에 대한 태도는 대우의 마음을 크게 울리고 있었다.
'나라고 그러지 못하리라는 보장은 없어. 강호 선배가 하는 것처럼, 나도 나만의 야구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마음을 다 잡은 대우는 타석 위에 오른 다음 타자를 바라본다.
그리고 시선이 옮겨져 포수의 사인을 응시한다.
고개를 끄덕인 대우가 와인드업 동작을 취한다.
'내 야구를 만든다. 지금 이 순간부터!'
공을 던지는 대우의 눈빛은 예전보다 강해져 있었고, 그가 던지는 공이 이전에는 없던 궤적을 그리며 포수 미트를 향해 휘어진다.
"스트라이크!!"
오랫동안 2군 무대에서 연마한 대우의 슬라이더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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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의 응원에 감사한 마음을 가집니다.
오늘도 점심 먹기 전에 한 편 올립니다.^_^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