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45화 (4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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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감독의 방문

팬들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강호는 그 날 경기에서 벤치를 벗어날 수 없었다.

대수비이든, 대타이든 한 감독이 그를 어떤 자리에도 기용하지 않은 것이다.

"이거 좀 심각한데?"

경기가 종료되고, 저녁 식사를 위해 이동하던 문표가 심각한 어조로 말한다.

식사 후에 야간 훈련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식당으로 향하는 것이다.

"뭐가 말입니까?"

형식적으로나마 물어보게 된다.

이미 문표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짐작하고 있는 강호였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문표가 자신을 걱정해주는 것은 좋았지만, 지나친 걱정은 사양하고 싶었다.

"오늘처럼 대패하는 경기에서 너를 대타로 쓰지 않았잖아. 왠지 한 감독의 생각이 읽어지지 않아?"

문표의 말이었다.

그는 대타로라도 타석에 들어서지 못한 강호를 걱정해주고 있었다.

"그건 선배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벌써 2주째 벤치에만 앉아 계시잖아요."

강호의 응수에 문표가 움찔한다.

그러나 연륜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인지 아무렇지 않게 답한다.

"1루를 보고 있는 상훈이가 나쁘지 않으니까. 지타로 돌릴 타자들도 많고 말이야."

문표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는 강호의 말대로 시범경기 동안 단 한 차례도 그라운드에 나서질 못했다.

한 경기에서 제외된 강호와는 달리 그는 시범경기 모두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이다.

'문표 선배가 한 감독하고 사이가 좋지 못하다는 소문이 진짜였어.'

속으로 문표와 한 감독 사이의 관계를 가늠해 보던 강호는 시선을 돌린다.

벤치에 앉아있을 때 문표가 했었던 위로가 떠오른 것이다.

"그런데 벤치에 있을 때만해도 우울해하지 말라고 위로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위기감을 조성시키는 겁니까? 한 가지 입장만 택하세요."

강호는 불과 몇 시간 전에 문표가 했었던 말을 떠올리며 타박한다.

그러자 문표가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하는 표정으로 기억을 더듬어보더니 이내 파안대소를 터뜨린다.

"푸하하, 내가 그랬었나? 그때는 강호 후배가 우울해 할까봐 그런 거지. 하지만 지금은 다른 생각이야."

문표는 한 차례 웃어보이고는 표정을 바로 한다.

나름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그의 얼굴이 오히려 희극적으로 보인다.

"어쩌면 한 감독이 강호 후배에 대한 생각을 바꾼 걸지도 몰라. 정확하게 무슨 말이냐 하면...."

진지한 표정으로 서두를 꺼내던 문표.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다가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고는 놀란 표정이 된다.

"어?! 감독님? 사직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놀란 목소리와 함께 인사를 위해 고개를 숙여 보이는 문표였다.

그가 발견한 인물은 다름 아닌 손성조 2군 감독이었다.

강호 역시 손 감독을 발견하고는 공손히 고개를 숙인다.

"안녕하십니까? 감독님."

"그래. 문표, 강호. 2주 만이구나."

손 감독은 두 사람의 인사를 받았다.

그런 후 곧장 본론을 꺼낸다.

"강호야. 많이 바쁘냐? 잠시만 시간을 내줬으면 좋겠구나."

"아, 네."

시간을 내달라는 손 감독의 말에 강호는 얼떨결에 대답하게 된다.

문표에게 일별한 후 먼저 앞장서서 걸어가는 손 감독의 뒤를 따른다.

"감독님!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등 뒤에서 문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의 인사말에 손 감독이 피식 웃음 짓더니 고개를 돌려 말한다.

"문표, 이 얼빠진 놈아. 나를 다시 보려면 2군으로 내려와야 하는데, 그 새를 못 참고 2군으로 내려올 생각인 거냐? 이번 시즌은 1군에 남아 있거라."

"네?"

웃음기 띤 손 감독의 호통에 문표는 정말로 얼빠진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 모습이 웃겨서 하마터면 크게 웃을 뻔한 강호가 간신히 웃음을 참아낸다.

그것이 10분 전의 일이었다.

장소가 옮겨져 손 감독과 강호, 두 사람은 사직 구장 밖에 위치한 맥도날드 2층에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평일 오후시간이긴 하지만, 주변에 사람은 많지 않았다.

손 감독과 강호는 창밖을 바라보는 바에 나란히 앉아 사직구장을 바라보고 있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손 감독이었다.

"오늘 라인업에서 빠졌더구나."

손 감독의 첫 마디에 강호의 인상이 굳어진다.

그저 하는 말 같지는 않았고, 왠지 중요한 이야기가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기는 준비도 되지 않은 너를 갑자기 우익수 자리에 넣은 것은 한 감독의 실수다. 우익수 자리에는 성철이가 더 어울려."

손 감독의 말에 강호 역시 동감한다.

자신이 프리마켓을 이용해서 고타율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딱히 우익수 자리가 어울린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

어차피 타석에서는 수비 포지션과 상관없이 아이템을 사용한 타격을 하고 있었다.

수비 포지션이 어디라 해도 지금의 타율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강호는 간략히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 사이 자신의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삼킨 손 감독이 다시 입을 연다.

"만약 나였다면 유격수 자리에 너를 넣고 오진택을 2루수 위치로 이동시켰을 것이다."

이어진 손 감독의 발언에 강호는 놀라게 된다.

2군 감독인 손성조가 이런 발언을 했다는 것은 1군 감독인 한동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발언과도 같았다.

또한 라인업에서 2루수 최훈을 배제시키려는 의도를 내보인 것이다.

'최훈 선배는 좋은 2루수다. 통산 타율이 2할 7푼 대이긴 하지만, 언제든 3할을 노려볼 수 있는 타자야. 그런데 왜 최훈 선배를 배제시키려는 것일까?'

강호는 손 감독의 의중이 궁금했다.

하지만 감히 묻지 못한 채 손 감독이 스스로 말하기를 기다린다.

"팀의 시범경기를 챙겨보고 있다. 최훈이 요즘 타석에서 스윙을 하고 나서 허리에 손을 얹는 경우가 잦아졌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느냐?"

손 감독의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강호는 스스로의 생존에 몰두하느라 최훈이 타석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는 사이 손 감독의 말이 이어진다.

"훈이에게는 고질적인 허리 부상이 있다. 허리디스크 말이다. 훈이처럼 스윙 폼이 큰 타자에게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부상이지. 녀석은 허리에 통증이 심해질 때마다 허리에 손을 얹는 버릇이 있어."

손 감독의 말에 강호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 보니 덕 아웃에서도 가끔 최훈이 인상을 쓰며 허리를 푸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

그 이유가 허리디스크로 인한 것이라면 가벼운 문제는 아닐 것이다.

"시범경기가 끝나고, 개막전에 들어가게 되면 엔트리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네가 예상했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내용일 거야."

손 감독은 창밖으로 보이는 사직구장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의 어조가 더욱 무거워지자 강호는 손 감독의 말에 더욱 집중한다.

"강호, 너는 2군으로 내려오게 될 거야."

갑작스러운 손 감독의 말에 강호의 눈동자가 커진다.

개막전이 시작되고 자신이 2군으로 내려오게 되다니. 이게 무슨 소리일까.

손 감독의 말을 일방적으로 듣고 있던 강호가 입을 열게 된다.

"무슨 말씀인지 자세히 들을 수 있겠습니까?"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시범경기 동안 3할 5푼 대의 고타율과 나쁘지 않은 수비를 보여준 자신이다.

그런데 2군으로 내려가게 될 거라니.

그것을 말한 당사자가 손 감독이라서 더욱 의문이 들었다.

'손 감독님은 나를 인정하시는 것이 아니었었나? 아직은 내가 부족해 보인다는 뜻일까?'

오만가지 생각이 강호의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그런데 이어진 손 감독의 말에서 상황을 파악하게 된다.

"시범경기 엔트리에서 빠졌었던 휴고가 다시 시범경기에 등록될 거다. 2주 동안 휴고는 프랑코 코치에게 집중 훈련을 받고 있었다."

휴고가 시범경기 라인업에 들어갈 거라는 말. 전혀 예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타격페이스가 바닥을 치던 휴고가 벌써 페이스가 올라오다니. 그게 가능한 일일까?

"한 감독의 요청이 있었다. 휴고의 페이스를 끌어올려 달라고 말이야. 그래서 프랑코 코치와 함께 살다시피 하면서 휴고의 타격감을 어느 정도 끌어올려 두었단다. 아마도 내일부터는 휴고가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게 될 게야."

손 감독의 말에 강호는 머리를 굴려본다.

'휴고가 올라오게 되면 한 감독은 당연히 그를 주전 우익수로 기용하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성철 선배는 다시 우익수 백업이 된다. 나 또한 우익수 자리로는 선발로 나설 수 없어.'

만약을 가정해 본다.

휴고가 타격 페이스를 되찾은 채 사직으로 오게 되면 한 감독은 그를 선발기용 할 수밖에 없다.

본인이 직접 고른 외인 선수이기 때문이다.

휴고가 제대로 된 활약을 해주어야 만이 한 감독에게도 면목이 생기는 것이다.

그로 인해 잠시 동안 우익수 자리에 있었던 강호의 포지션이 이동하게 될 것은 분명해진다.

'손 감독님의 아까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유격수로 이동하고, 오진택 선배가 2루 자리로 이동할 수도 있어. 최훈 선배의 허리디스크가 심각하다면 말이야. 그런데 왜 감독님께서는 내가 2군으로 내쳐질 거라고 말씀하시는 거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로 한다.

"휴고가 올라온다 하더라도 제가 2군으로 내려갈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혹시 다른 이유가 있는 겁니까?"

해답을 찾는 강호의 물음에 손 감독이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대답했다.

"강호야, 오해하지 말고 잘 듣도록 해라."

무슨 말을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손 감독은 강호가 오해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강호는 그러겠다고 답하며 손 감독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충격적이었다.

"한 감독에게 내가 요청을 한 것이다. 너를 2군으로 내려달라고 말이야."

"네?"

강호는 깜짝 놀라고 만다.

손 감독이 직접 요청을 했다니. 대체 무슨 이유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의문은 하나였다.

'아직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신가? 그런 겁니까?'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생각에 표정을 관리하기 어렵다.

울분이 차올라 표정 관리가 어려웠지만, 쉽사리 말을 꺼내지는 않는다.

서두에 오해하지 말라는 손 감독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표정 변화를 지켜보고 있던 손 감독은 의외로 침착한 강호의 반응에 피식 하고 웃어 보인다.

"역시나. 짧은 시범경기 동안 더욱 단단해졌구나. 과연 너를 선택한 보람이 있어."

손 감독은 그렇게 말했다.

자신이 강호를 선택한 것이라고.

그리고 이어진 손 감독의 말은 방금 전 자신의 말을 증명하는 내용이었다.

"너의 1군 콜 업은 4월 중순이 될 게야. 개막전에는 빠지게 되겠지만, 4월 중순부터는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게 될 거다."

그것이 손 감독이 해준 말이었다.

강호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아직 상황을 모두 파악하기에는 강호의 연륜이 짧았다.

강호는 손 감독이 자세한 설명을 해주기를 기다린다.

"조금 전 너를 만나기 전에 한 감독과 자리를 했었다. 그 자리에서 한 감독과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물론 너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말이야."

손 감독이 한 감독과 사전 교감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파악하고 있다.

강호 자신의 보직을 놓고 무언가 이야기가 오고간 것 같았다.

강호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 본다.

'그렇다면 나를 시범경기 때까지 지켜보다 3월 말부터 시작되는 2군 경기부터는 상동으로 내리겠다는 뜻이구나. 그리고 4월 중순이 되면 1군으로 올리게 되는 거고. 대체 무엇을 위해서 복잡한 방법을 거치는 것일까?'

고민을 할수록 의문은 늘어난다.

결국 해답은 손 감독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강호의 시선이 어느새 손 감독에게로 향한다.

"나는 이번 시즌을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항상 5위권 턱걸이 경쟁을 펼치던 우리 자이언츠가 강팀으로 탈바꿈하는 분기점 말이야."

말을 하는 손 감독의 눈빛이 깊어진다.

어떤 지도자가 그런 바람이 없겠는가.

소속팀을 강팀으로 만들어 우승으로 이끄는 것은 모든 감독과 코치들의 바람일 것이다.

그런데 손 감독은 단지 바람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강호가 바라본 손 감독의 눈빛에서 그가 가진 비전이 느껴진다.

"우리 자이언츠가 우승권을 놓고 다투는 강팀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키 플레이어가 필요하다. 나는 말이다."

진지하게 말을 이어가는 손 감독.

사직구장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어느새 강호의 눈을 마주한다.

강호 역시 손 감독의 눈빛을 피하지 않는다.

"그 키 플레이어를 강호, 너로 정했다."

손 감독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강호는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손 감독의 눈빛은 진심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구 원로라 할 수 있는 노장의 신뢰에 침음을 삼키게 된다.

'손 감독님은 대체 저의 무엇을 보신 겁니까?'

대놓고 물어볼 수 없는 궁금증이었다.

자신은 프리마켓에서 얻은 아이템을 써서 생존경쟁을 펼치고 있다.

치트키를 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종의 반칙인 셈이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손 감독이기에 강호의 의문은 더욱 커진다.

"그래서 너를 2군으로 내리려고 하는 것이다. 이제 내 말을 들어볼 준비가 되었느냐?"

손 감독은 말한다.

강호 자신을 키 플레이어로 키우기 위해 2군으로 내려야 한다고.

다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손 감독의 말이 모두 진심이라는 것은 알게 된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왜 자신을 그렇게까지 높이 평가하느냐는 것이다.

궁금증을 담은 강호의 시선이 다시 손 감독에게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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