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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을 준비하다
강호는 가장 먼저 스킬의 구입에 대해서는 배제시켰다.
다음 프리마켓 입장 때는 스킬 구매에 필요한 포인트를 모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미래만을 생각한 방법일 것이다.
"아이템이 많이 생겼다고 해도, 한 달 후보다는 지금에 집중하는 것이 좋아. 필요한 아이템이 있으면 지금 구입하고 남은 포인트는 가지고 있으면 되는 거야."
강호가 내린 결론이었다.
미래를 위한 투자도 좋지만, 지금 당장 성적을 내는 것이 더욱 중요한 문제다.
그렇기에 스킬 구입을 위해 포인트를 아끼는 것보다는 필요한 아이템들을 구매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mp 3,000을 사용하여 내가 심판이다(30일)를 구입합니다.
-mp 3,000을 사용하여 타석의 지배자(30일)를 구입합니다.
강호가 우선적으로 구입한 아이템은 두 개의 기간 제 아이템이었다.
가히 OP급이라고 여겨지는 아이템들은 강호의 아이템 창으로 옮겨진다.
"역시 아이템을 사자마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템 사용 시기를 정할 수 있는 것이었구나. 잘 됐다."
강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아이템을 구입하자마자 효과가 적용이 되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있었다.
홀로그램에는 아이템의 적용 효과에 대한 설명만 있었지 사용 방법이 따로 나와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두 아이템을 시범경기에서 사용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개막전이 시작되고 나서 사용하기로 하자."
두 개의 아이템을 구입하며 아이템 사용 시기를 정해두게 된다.
개막전은 4월 2일 화요일에 예정되어 있다.
두 개의 기간 제 아이템을 사용하는 시기도 개막전에 맞춰질 것이다.
아이템이 인벤토리에 들어온 것을 확인한 강호는 미련 없이 걸음을 옮긴다.
그가 발걸음을 한 곳은 처음 지나쳤었던 일회용 아이템 진열대였다.
"개막전부터 1군 엔트리에 든다고 가정했을 때 한 달 동안 26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 타석수로 계산을 한다면 100타석에서 130타석 사이가 될 거야."
강호는 타석수를 계산하며 눈빛을 빛낸다.
1군 무대에서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3할을 바라보는 타율로 그냥 괜찮은 타자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다.
4할을 바라보는 대단한 타자가 되는 것이 목표였다.
"아이템을 영리하게 사용한다면 4할 이상도 노려볼 수가 있어. 꿈의 4할 타율이 그저 바람만은 아닐 거다."
-mp 3,600을 사용하여 홈런 [3]을 구입합니다.
강호가 다음으로 구입한 아이템은 홈런이었다.
이로서 인벤토리에 보관된 홈런 아이템은 총 8개로 늘어나게 된다.
"개막전이 4월 2일부터 시작이니 벌써부터 홈런 아이템을 쓸어 담을 필요는 없어. 시범경기에서는 굳이 홈런을 가동하지 않아도 된다. 값비싼 홈런을 시범경기에서 사용할 수는 없는 일이야. 홈런 역시 개막전 이후에 사용하기로 하자."
모든 아이템들을 개막전 후가 되서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 전까지의 시범 경기에서는 안타와, 2루타 정도로도 타격능력을 검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현재까지의 시범경기 타율이 3할 5푼 1리였으니 적당히 타율 관리를 한다면 시범경기를 4할대로 마무리할 수 있다.
그런 생각으로 안타를 몇 개 더 구입한다.
-mp 800을 사용하여 안타[4]을 구입합니다.
인벤토리에 총 20개의 안타 아이템이 보관된다.
남은 mp포인트는 4,455로 줄어 있었다.
이제는 포인트를 보수적으로 사용할 시기였다.
그럼에도 강호는 망설임이 없었다.
-mp 2,000을 사용하여 호수비[10]을 구입합니다.
마지막으로 구입한 아이템은 호수비였다.
2천 포인트를 들여 10개의 호수비 아이템을 구입한 결과 총 16개의 호수비 아이템을 가지게 되었다.
많은 양이지만, 그 마저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지금 포지션이 우익수이기 때문이다.
"시범경기든 개막전 이후이든 실책을 기록하는 것은 좋지 않아. 좋은 타격도 중요하지만, 수비 상황에서 실책 없이 막아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
강호의 생각은 그러했다.
어느새 강호의 생각은 손 감독의 생각과 많이 닮아있었다.
수비가 뒷받침되지 않는 선수는 반쪽짜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손 감독의 평소 지론이었다.
그에게서 영향을 받은 강호에게는 수비 실책만큼은 최대한 피하고 싶은 것이다.
"이제 됐어."
쇼핑을 끝내기로 한다.
아직 인벤토리에는 2,455의 mp가 남아있었지만,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다음 달 프리마켓에서 사용할 포인트를 남겨두려는 것이다.
"포인트를 이 정도는 남겨두는 것이 좋겠지. 만에 하나 다음 달 프리마켓이 열릴 때까지 포인트를 많이 벌어두지 못할 가능성을 생각해야만 해."
그렇게 결론을 내린 강호는 발걸음을 돌렸다.
마켓 진열대에서 시선을 뗀 그의 걸음이 옮겨짐에 따라 주변을 환하게 채우는 빛 무리가 모여든다.
강호의 시야가 주변을 삼킨 빛에서 자유로워졌을 무렵.
어느새 그의 의식은 독신자 숙소로 돌아와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시계를 확인하니 시계 바늘은 여전히 자정에 머물러 있다.
"됐어!"
쾌재를 외친다.
확인 차원에서 상태 창을 확인해 보니 변화된 스탯이 적용된 상태 창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호는 미소띤 얼굴로 상태 창을 닫으며 방 한 구석에 놓아둔 체중계에 오른다.
디지털 체중계는 달라진 강호의 몸무게를 숫자로 표기해 주었다.
"84킬로라고?"
5kg나 늘어버린 자신의 체중에 놀라게 된다.
혹시나 옷을 입어서 그런 것인지 옷을 탈의하고 올라보지만, 수치가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
84.3kg에서 84.1kg로 줄어드는 사소한 차이였다.
"목표를 다시 정해야겠구나."
프리마켓에서 체중증가 목표를 85kg으로 잡았었다.
그런데 스탯 증가 효과로 이미 목표치에 거의 도달해 있는 상태다.
목표를 재설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다음번 프리마켓 때까지 90kg에 도전해볼 수도 있어. 아니면 체중 증가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수비훈련에만 열중해도 되는 일이고."
강호는 지난 번 경험으로 프리마켓의 스탯 보정 효과로 늘어난 체중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증가시킨 체중은 다시 줄 수도 있지만, 파워 스탯을 올리며 늘어난 체중은 고정되는 것이다.
더 이상 마른 체구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스스로의 몸 상태를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강호는 나체인 상태 그대로 욕실로 들어가 거울과 마주한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더 이상 깡마른 체구로 지적받을 일은 없을 거야."
기쁜 마음으로 거울 너머의 자신을 바라본다.
이전에는 평면에 가까웠던 가슴에 적당한 근육이 붙어 있었다.
의식해서 힘을 주자 결이 갈라진 대 흉근이 꿈틀거린다.
갈비뼈가 드러나 보기 흉했던 복부에는 어느새 식스팩이 자리하고 있었고, 허벅지에도 두툼한 대퇴근이 보기 좋게 도드라져 있다.
강호는 뿌듯한 마음으로 자신의 신체를 관찰하다가 걸음을 옮겨 샤워기를 튼다.
그러자 샤워기에서 뿌려진 미온수가 강호의 몸을 적신다.
"이제는 강하게 때린 타구가 힘없이 땅볼이 되는 일은 없을 거야. 이 정도의 근육 량이라면 정타로 때렸을 때 안타가 될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졌을 거야."
얼굴을 적시는 물줄기를 느끼며 과거를 회상한다.
마치 물줄기처럼 젖어드는 과거의 기억과 회한들.
'백강호? 걔는 안 돼. 힘이 없어서 타구가 정타가 안 나오잖아. 발이 아무리 빨라도 기본적인 타격도 안 되는 놈을 어디다 쓴다고.'
'강호는 타구에 힘을 싣지 못해. 1군은커녕 2군에서도 사용하기가 힘들어.'
'수비가 좋다고? 그래서 수비만 시킬 거야? 타자가 타격이 되어야지. 기본적인 타격이 안 되는 야수를 어디에 쓸 수가 있다고. 안 돼. 강호는 라인업에서 제외시키도록 해.'
'백강호 선수,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구단이 백강호 선수를 기다려주지 못할 것 같습니다. 부상에 대한 치료는 구단에서 책임질 겁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자신을 질타했던 많은 목소리들이 스쳐 지난다.
베어스 시절, 힘이 부족해 제대로 된 타격을 하지 못하는 자신이었다.
단 한 번도 인정받은 적이 없다.
하나같이 고개를 내저었고, 결국엔 냉정하게 내쳐졌다.
강호는 무수히 많은 기억과 냉소 중에서 가장 아픈 목소리 하나를 끄집어 낸다.
'강호야 미안하게 되었다. 네 야구는 여기까지인 것 같구나. 부디 다른 분야에서 자리 잡기를 바란다.'
강호가 떠올린 목소리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기억일 것이다.
베어스 2군에서 방출을 통보받던 날, 2군 감독이던 구형태 감독이 건넨 말이었다.
그는 강호의 야구가 끝났음을 선언했었다.
재능이 없어서 야구 선수가 되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했었다.
시간이 지나 구형태 감독은 능력을 인정받아 베어스 1군의 총사령탑이 되었고, 승승장구하는 구 감독을 보며 강호는 이를 갈아야만 했었다.
"정말입니까? 감독님, 진짜로 저는 안 되겠습니까?"
강호는 기억을 떠올리며 기억 속의 구 감독에게 묻는다.
차마 그 때는 하지 못했었던 질문.
꼭 물어보고 싶었다.
정말로 안 되는 거냐고. 정말 제 야구 인생은 끝난 거냐고.
구 감독의 멱살이라도 쥐고 물어보고 싶었다.
"아니요. 아직 안 끝났습니다. 두고 보십시오. 당신의 앞에서 당신이 선택한 투수의 공을 때려낼 겁니다."
강호는 이를 악물었다.
불끈 쥐어진 양 주먹으로 벽이라도 내려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다.
자신은 프로 선수다.
분노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의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은 아마추어나 할 짓이었다.
그렇기에 분개한 목소리로만 감정을 표출하게 된다.
"반드시 그럴 겁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그렇게 만들 겁니다!"
강호의 눈빛이 더욱 사나워진다.
프리마켓에서의 희열과 기쁨은 온데간데없다.
예전의 독기 가득했던 강호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서 절대로 달라지지 않을 거라 말하던 과거의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들에게 당당히 나서서 보여주고 싶었다.
달라진 자신이 어떤 야구를 하는지 꼭 보여주고 싶었다.
"이제부터, 다시 달리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몸을 바로 했다.
후텁지근한 물줄기를 뿜어내던 샤워기를 잠근다.
타올로 몸을 닦아내고, 욕실을 나서는 강호는 준비가 끝나 있었다.
가장 강력한 힘이 되어줄 아이템들은 인벤토리에 가득 차있었고, 84kg까지 불어난 몸은 예열을 마친 상태다.
무엇보다도 포지션 경쟁을 거치며 조금은 허술해져있던 마음을 다잡게 된다.
강호는 세상을 향해 자신을 알릴 준비를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