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39화 (39/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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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열리다

17일 경기가 끝이 나고, 야간 훈련을 마친 선수들이 집으로 귀가한 시간에도 구단 수뇌부는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퇴근까지 미룬 코치들의 표정이 좋지 않다.

나이가 40, 50대에 이른 코치들이 두 사람의 언쟁을 만류하느라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김 수석님. 선수들을 기용하는 것은 감독의 고유 권한입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내용은 엄연히 월권이란 말입니다!"

한동현 감독의 목소리였다.

평소 짜증을 낼지언정 화를 내지는 않는 한 감독이 처음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권위가 침해받았다는 생각에 다섯 살 선배인 김 수석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태도에도 김 수석은 뜻을 굽힐 생각이 없다.

"납득하기 힘든 선수기용이 감독의 권한입니까? 부상이 우려되는 사준식을 라인업에서 빼고, 백강호를 다시 내야로 돌리는 게 그렇게 힘드냐고요?!"

김민철 수석 역시 언성을 높였다.

그 역시 팀을 이끄는 코치로서 팀 승리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식경기가 아닌 시범경기기간이다.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기 위한 한 감독의 무분별한 선수기용을 더는 참지 못할 것 같았다.

"사준식은 본인이 괜찮다지 않습니까? x-ray로 촬영해 봐도 큰 문제가 없고요. 그리고 백강호는 우익수 자리에 잘 적응하고 있는데 대체 뭐가 문제라는 말입니까?"

한 감독의 대답은 표면적으로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이는 말이었다.

어깨 통증이 있는 사준식의 x-ray결과는 정상이었고, 백강호도 우익수 자리에서의 안정감을 찾아가며 3할 대 중반의 고타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에 불과했다.

"사준식은 당장 MRI를 찍고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백강호가 어제, 오늘 이틀 동안 기록한 안타가 몇 갠지 아십니까? 하나입니다! 어제부터 페이스가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타격 폼이 무너지고 있다고요!"

김 수석의 반박이었다.

그는 사준식의 부상과 강호의 부진을 크게 염려하고 있었다.

단지 그것뿐만 아니라 두 선수를 시작으로 혹사를 당할 올 시즌의 선수단 전체를 우려하고 있다.

"이익...!"

억눌린 목소리를 토해내는 한 감독.

자신의 말에 반박하는 김 수석의 말에 한 감독이 결국 참고 있던 분노를 폭사시킨다.

작년 1년 동안 김 수석의 조언으로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한 감독이지만, 이제 더 이상 그의 조언을 따를 생각이 사라진다.

"좋습니다! 사준식을 정밀 검사하도록 합시다. 하지만 만약 사준식의 검사 결과에서 이상이 없다면 김 수석은 월권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한 감독은 그렇게 결론을 지었다.

지금 그의 태도대로라면 검사 결과 사준식의 부상이 없을 경우, 김 수석의 보직 이동이 불가피할 것 같았다.

2군이나 육성 군으로 좌천될 가능성이 높았다.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친 코치들의 낯빛이 어두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김 수석님이 2군으로 내려가신다면 선수단이 폭망하고 말 거다. 한 감독의 전횡을 막을 사람이 사라지는 셈이야.'

코치들의 한 결 같은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수석은 한 감독의 무리한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미 그도 한 감독의 전횡으로 인해 1군에서 마음이 떠나있는 상태다.

사준식을 핑계로 2군으로 내려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대신 이번 기회를 빌려 원하는 것을 모두 얻어내려고 한다.

"백강호! 강호의 포지션도 돌리셔야 합니다. 녀석을 내야 백업으로 돌려서 컨디션 회복할 시간을 줘야 합니다. 거기까지만 약속하신다면 제 발언에 책임을 지도록 하지요!"

김 수석은 좌천을 각오하고 강단 있게 맞섰다.

그 역시 1년간 참아오던 게 있었기 때문에 5년이나 후배인 한 감독에게 할 말은 다해야 했다.

"그럽시다. 후회하지 마십시오!"

결국 그렇게 결론이 내려진다.

한 감독은 그 즉시 구단 운영 팀에 전화를 걸어 사준식의 병원 행을 요청하게 된다.

그 사이 김 수석은 강호의 우익수 자리에 유성철을 올리고, 강호를 백업 유격수로 이동시키는 라인업 수정안을 작성했다.

17일의 밤.

강호의 프리마켓이 열리는 이틀 전날 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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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시간이 흘렀다.

강호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휴식일로 정해진 월요일인 관계로 사직구장 근처에 위치한 친 형의 집에 오게 되었지만, 불안한 마음에 상동의 독신자 숙소로 돌아가야만 했다.

'혹시라도 프리마켓이 열리는 순간에 형이 곁에 있게 되면 낭패를 당할 수도 있어. 오늘만큼은 혼자 있는 것이 좋겠어.'

상동으로 향하는 무인 전철 안에서의 생각이었다.

강호는 혹시라도 프리마켓이 열리는 순간을 형에게 들키게 될까봐 형과 함께 저녁을 먹자마자 상동으로 나선 것이다.

차가 없는 강호였기에 사직에서 출발하는 3호선 전철을 타고 대저 역에서 환승한 뒤 김해로 향하는 4호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정확하게 19일 되는 시점, 자정이 되는 순간, 프리마켓이 열린다. 지금 내게는 프리마켓에서의 아이템이 반드시 필요하다.'

강호는 프리마켓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아이템을 사용해버린 상황에서 타격 슬럼프가 겹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회용 아이템으로 타격감을 되살리지 않는다면, 1군 생존은커녕 2군 무대에서도 생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이템이 필요한 이유는 또 있다. '호수비'아이템을 보유하고 있으면 타구가 수비 위치로 날아오는 것을 미리 알 수가 있어. 굳이 '호수비'아이템을 사용하지 않아도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수비 시에 상당함 도움이 된다.'

강호가 프리마켓이 열리기를 간절히 바라는 주된 이유 중에 하나였다.

아이템을 모두 사용해 버린 까닭에 자신에게 날아오는 타구를 미리 알 수가 없게 된 상태다.

자신이 우익수 자리에 배치될 것을 알았더라면 절대로 하나 남은 호수비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프리마켓이 열려 호수비 아이템을 다시 사게 되면 마지막 하나만큼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아야겠어.'

강호는 프리마켓 시스템의 맹점을 이용하기로 한다.

호수비 아이템은 다른 일회용 아이템과는 다르게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그렇기에 한 개의 재고라도 아이템 창에 반드시 남겨두어야 하는 것이다.

'단지 아이템뿐만이 아니야. 스프링캠프 경기와 시범경기를 통해 벌어들인 exp도 스탯으로 전환해야 한다.'

강호는 아이템창을 열어 보유 중인 exp와 mp를 확인한다.

스프링캠프 경기를 시작으로 시범경기까지 벌어들인 exp와 mp는 상당했다.

경기 보상으로 받은 exp는 3,240. mp는 4,590을 보유하고 있다.

이중 보유하고 있는 exp를 스탯으로 전환하게 되면 3.2의 스탯 상승효과를 가져올 수가 있는 것이다.

강호는 상태창을 열어 한 번 더 자신의 스탯을 확인해 본다.

백강호(24)

포지션:RF

컨  택:70

파  워:47.9

선구안:54

주  력:72

수  비:52

송  구:41

멘  탈:75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것은 당연히 파워였다.

3,240의 exp를 파워에 모두 사용한다면 파워가 51.1로 오르게 된다.

파워 스탯이 50대로 올라서는 것은 의미가 컸다.

'이미 경험한 대로 스탯이 0.1 상승하는 것도 상당한 효과가 있어. 1이 상승하는 것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효과였다. 그런데 더욱 심한 격차는 10단위의 앞자리가 바뀌는 거야. 파워가 49.9일 때와 50.0일 때의 수치 변화는 0.1에 불과하지만 체감할 수 있는 차이는 훨씬 심해.'

강호가 한 달 간의 경험을 통해 얻은 정보였다.

프리마켓의 튜토리얼과 경기 등을 거치며 시스템이 가진 많은 맹점들을 파악하게 된 강호.

이제 그에게 필요한 것은 프리마켓이 열리는 것뿐이다.

타악.

두꺼운 철문이 굳게 닫힌다.

상동 독신자 숙소로 돌아온 강호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가장 먼저 목욕을 하기 시작한다.

사직에서의 치열했던 생존 경쟁과 고민들을 씻어내기 위해 오랜 시간 몸을 씻는다.

욕실에서 나온 뒤에는 깨끗한 옷을 입은 후 정갈한 자세로 앉아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린다.

'많이 피곤한 상태지만, 전혀 졸리지가 않아. 이제 곧 12시가 되면 프리마켓의 문이 열릴 거야.'

잠이 오지 않았다.

혹여나 프리마켓이 열리는 시간에도 잠을 자고 있을까봐 휴대폰 알람까지 맞춰둔 상태였지만, 수면욕구가 생기지 않는다.

프리마켓을 향한 집착이 피로와 수면 욕구를 이겨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1분 남았어.'

시간이 임박해오자 긴장감이 샘솟는다.

혹시라도 프리마켓이 열리지 않을까봐 걱정이 들어 수십 분 전부터 손바닥에 땀이 한가득 맺혀 있다.

'그럴 리 없겠지. 여전히 시스템의 효과가 발휘되고 있어. 프리마켓은 반드시 열릴 거야.'

1분의 짧은 시간 동안 강호는 수많은 의심과 비약들로 인해 머리가 아파온다.

갑자기 찾아온 두통은 혹시라도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가 사라지게 될까봐 염려하는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었다.

"후우, 후우."

강호는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고뇌의 시간이 지나 자정이 되었을 때 그의 심경을 옥죄어오던 두통은 씻은 듯이 사라지게 된다.

[2019프로야구 프리마켓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환한 빛 무리와 함께 세련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녀의 목소리는 한 달 전과 0.1%의 오차도 없이 같았고, 그 반가운 목소리에 강호는 미소 짓게 된다.

강호의 표정은 근 한 달 여중에서 가장 밝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미소가 잦아들 무렵, 강호는 어느새 프리마켓의 세상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사용자 백강호가 입장합니다.]

[3,240exp를 획득하였습니다.]

[4,590mp를 획득하였습니다.]

[훈련과 경기 결과로 인해 컨택이 +2.9보정됩니다.]

[훈련과 경기 결과로 인해 파워가 +7.2보정됩니다.]

[훈련과 경기 결과로 인해 선구안이 +2.1보정됩니다.]

[훈련과 경기 결과로 인해 주력이 +3.0보정됩니다.]

[훈련과 경기 결과로 인해 수비가 +8.1보정됩니다.]

[훈련과 경기 결과로 인해 송구가 +3.9보정됩니다.]

[훈련과 경기 결과로 인해 멘탈이 +5.2보정됩니다.]

[훈련과 경기 결과로 인해 보유 중인 칠 때 친다(패시브)스킬 레벨이 +1보정됩니다.]

[업적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미션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24시간 동안 프리마켓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연이어 뜨는 시스템의 메시지에 어안이 벙벙해진다.

획득한 mp와 exp는 오늘에만 수십 차례 확인한 수치와 다른 내용이 없었다.

그래서 예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없이 많은 보정 수치들을 보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훈련과 경기 결과로 스탯이 보정되었다고? 그러고 보니."

자답과 함께 강호는 한 달 전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처음 프리마켓에 방문했을 때 시스템은 그에게 시스템 적용 중에는 기량이 하락하거나 경기 중 부상을 입지 않는다고 알려주었었다.

그렇다는 것은 시스템의 보호를 받는 한 기량의 상승만이 있을 것이라는 말과도 같았다.

이제야 그 사실을 알게 된 강호는 '아'하는 탄성을 내뱉는다.

"훈련으로 스탯이 보정되는 줄 알았다면 훈련을 더 열심히 하는 거였는데 아쉽구나."

아쉬워하게 된다.

그러나 한 달 간 강호가 했었던 훈련은 이미 일반인들의 상식을 벗어나는 수준이었다.

사직 구장의 기존 선수들도 강호의 훈련 량에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욕심일 것이다.

"파워가 비약적으로 상승했어. 체중을 늘렸기 때문이겠지."

7.2나 올라간 파워 상승을 유추해 본다.

82kg까지 상승했다가 79kg로 감소하긴 했지만, 스프링캠프 초반에 비한다면 9kg의 체중 증가였다.

이로 인해서 턱없이 낮았던 파워 수치가 보정된 모양이었다.

또한 수비 스탯의 증가는 파워의 보정 효과를 능가하고 있다.

"한 감독의 엉터리 선수기용으로 덕을 본 셈이구나. 수비 수치가 상당히 상승했어."

뜻밖의 행운에 너털웃음을 짓는다.

우익수 자리에 적응하기 위해 2주 동안 뜬 공 처리와 타구 판단에 몰두한 결과가 여실히 나타나 있었다.

이 정도면 한 감독의 우익수 기용에 고마워해야할 정도였다.

"얼마나 올라간 거지?"

강호는 떨리는 심정으로 스탯창을 확인해 본다.

훈련과 경기 결과로 인한 보정 효과가 자신을 얼마나 바꾸어 놓았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백강호(24)

포지션:RF

컨  택:72.9

파  워:55.1

선구안:56.1

주  력:75

수  비:60.1

송  구:44.9

멘  탈:80.2

상당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47.9였던 파워는 55.1로 대폭 오르며 50대로 진입해 있었고, 우익수로 보직을 옮기며 52까지 떨어졌었던 수비가 60.1로 60대에 복귀해 있었다.

수비 스탯은 원래의 위치인 유격수나 3루수로 보직을 옮긴다면 70대로 오를 것이 확실해 보였다.

"멘탈이 80이 넘었어. 사직구장에서 생존경쟁을 벌였던 것이 도움이 된 건가? 한 감독에게 고마워해야할 게 한, 두 개가 아니구나."

웃을 일이 많다고 생각하며 한 번 더 피식하고 웃어 보인다.

한 감독의 무대포적인 우익수 기용으로 스트레스를 이겨내려다 보니 멘탈의 수치가 80.2로 상승해 있었다.

이 정도 멘탈이면 웬만한 상황에서는 정신력이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한 달 간의 고생이 헛되지 않은 거였어."

기분이 좋아진다.

치열한 경쟁을 거치며 힘에 부치기는 했지만, 결과물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되니 감회가 남달랐다.

한 달 간의 피로와 노곤함이 모두 사라짐을 느낀다.

그런데 프리마켓 시스템이 주는 선물은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강호가 받을 혜택은 여전히 남아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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