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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열리다
자이언츠 선수단이 한 감독의 무분별한 선수기용으로 홍역을 앓고 있을 무렵, 자이언츠 팬들은 인터넷 기사 하나를 접하게 된다.
그 기사는 야구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흔히들 알고 있는 매체에서 낸 기사여서 기사를 접한 자이언츠 팬들은 기대감을 가진다.
[오썬 스포츠]
자이언츠 2군 감독 손성조가 말하다."올해의 자이언츠, 예전과는 다를 것이다"
[허일수 기자]자이언츠의 2군 감독인 손성조 감독은 잘 알려지지 않은 원로 중에 한 명이다. 프로야구 원년무대에 올랐던 스타플레이어 출신이지만, 지금의 야구팬들은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많다.
하지만 손성조 감독은 자이언츠가 작년 하반기 돌풍을 일으키게 만든 주역들을 배출시키면서 자이언츠 팬들에게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작년 5선발로 마운드에 올라 깜짝 활약한 21살의 투수 김한민을 발굴하고, 22살 포수 자원인 안민경을 키워내기도 했다.
평균 연령 30대가 넘어가는 자이언츠 선수단에 젊은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기대감을 준 이는 뜻밖에도 옆집 할아버지처럼 느껴지는 손성조 감독이었다.
손성조 감독에게 이번 시즌 자이언츠의 전망과 각오를 물어봤다.
중략...
-스프링캠프 경기에서 눈여겨 본 2군 선수나 육성군 선수가 있는가.
"올해는 자이언츠 팬들이 기대를 가져도 좋을 것이다. 투수 쪽에서는 언더핸드 권대우와 포수에서 전향한 가진성이 눈에 띤다. 2군 마무리로 기용 중인 표성태도 몸 상태가 좋다. 1차 지명으로 입단한 주민한은 제대로 키워볼 생각이기에 올해를 점치기는 힘들 것 같다. 야수 쪽에는 유성철과 한택근, 최문표와 황인태, 임정, 오진만, 그리고 백강호가 기대를 걸어볼만 하다. 특히 백강호는 스프링캠프 아홉 경기에서 5할을 때려난 강타자다. 포지션은 유격수와 3루수가 가능하고, 수비 또한 일품이다. 조만간 1군 무대에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겠지만, 특히나 눈여겨본 선수가 있다면.
"백강호다(웃음). 날씬한 몸에서는 어울리지 않은 장타력을 갖춘 교타자다. 게다가 포지션이 유격수다. 이런 유형의 타자는 선수들을 키워오면서 처음 보는 타입이 아닐까 싶다. 성실하고 꾸준하며, 겸손하다. 자기 관리를 잘 하는 어린 선수가 실력까지 갖추고 있으니 감독 입장으로서는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중략...
-이번 시즌 자이언츠를 예측해 본다면.
"2군에서 올라간 유망주들과 1군의 주축선수들이 융화되어 팬들이 간절히 바라던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것이라 본다. 한 감독의 선수기용 능력이라면, 신구 조화를 이루어 팬들이 원하시는 가을 야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 상동에서도 최선을 다하겠다."
[기사제공 오썬 스포츠]
자이언츠 팬들은 처음 접해보는 손 감독의 인터뷰 기사에 주목하게 된다.
시범경기 기간에도 야구 소식을 검색해보는 열혈 팬, 김진명.
특히 그의 반응이 뜨거웠다.
"오오, 2군에서 올라올 유망주들이 한 가득이네. 표성태는 내가 알고 있던 이름인데 권대우나 가진성은 누군지 모르겠네. 유성철이나 최문표는 누군지 알고, 다른 선수들도 이름을 외워둬야겠어."
진명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사를 캡쳐한다.
스스로를 자이언츠의 열혈 팬이라 자부하는 진명이었기에 손 감독이 거론한 유망주들을 머릿속에 담아두기 위함이다.
친구들과 야구를 관전하며 선수들의 장점과 특성을 설명하는 것이 그의 최고 낙인 것이다.
그런데 선수들의 이름을 외우고 있던 진명은 손 감독이 말한 하나의 이름에 주목하게 된다.
"응? 백강호? 이 선수가 유격수라고? 우익수 아니었어? 시범경기 때 우익수로 출전했잖아."
진명이 미간을 좁히며 자문해 본다.
혹시라도 자신의 기억이 잘못되거나 동명이인 선수인가 싶어서 시범경기 결과와 KBO선수 기록실까지 뒤져보며 '백강호'라는 이름을 찾아보았다.
꽤나 길었던 웹 서칭 결과 진명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한동현 감독 이 양반이 또 미친 짓거리를 하는 구나! 2군에서 유격수 자원으로 올린 백강호를 왜 우익수로 돌리는 거야?!"
진명은 분개하게 된다.
자이언츠 팬이라면 작년에 부임한 한 감독의 전횡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무리한 선수기용과 혹사로 팀의 선발 자원으로 성장할 수 있는 김한민이 반 시즌 만에 시즌 아웃되고 말았다.
게다가 오랜만에 타격 본능을 각성한 최문표는 무릎 통증으로 역시나 시즌 아웃되었었다.
뿐만 아니라 1군 주전 선수들의 줄 부상으로 시즌 막바지에 5위 자리를 빼앗길 뻔하지 않았던가.
"작년에 그 사단을 겪어놓고는 시범경기 때부터 이 짓을 또 하는 거야? 한 감독, 이거 미쳤구만."
진명은 거친 어조로 한 감독을 비난한다.
또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한 감독의 실책을 거침없이 성토한다.
그런데 친구인 천수의 말에 말문이 막히게 된다.
-야, 그런데 한 감독이 우익수로 올렸던 백강호 말이야. 원래는 유격수 봤다던 그 선수. 우리가 봤을 때는 우익수 수비도 잘 봤잖아. 너도 백강호가 좋은 우익수 자원이라고 칭찬했었고 말이야.
천수의 말에 입을 다물게 된다.
그의 말이 맞았다.
처음에는 듣보잡 루키인 강호의 기용에 한 감독을 욕했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아 보이는 강호의 수비와 단기간이긴 하지만 4할이 넘는 타격 능력을 보이는 백강호를 극찬했었다.
그 때 강호를 칭찬하며 했던 말이 떠오른다.
"와~손하석 이후로 저런 우익수가 자이언츠에 나와주는구나. 야야~술 좀 그만 처먹고 저 선수 좀 봐라. 좀 전에 수비하는 거 봤냐? 완전 대박이잖아. 타격도 장난 아니야. 시즌 시작되면 못해도 3할은 치겠다!"
며칠 전의 기억에 진명의 얼굴이 붉어진다.
시범경기 몇 경기를 지켜보며 우익수로 선발 출장했던 강호의 활약에 매료되었던 그였다.
"저, 눈빛 봐라. 신인 선수 눈빛이 저 정도는 되야지. 상대 투수 씹어 먹을 것 같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선수가 나왔어."
진명은 타석에 올랐던 강호의 눈빛을 기억한다.
상대팀 투수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 강렬한 눈빛.
안타를 치고 나가면서 오늘이 마지막 경기인 것처럼 전력질주하는 투지까지.
오랜만에 나온 대형 신인의 등장에 흥분해서 들고 있던 맥주잔을 엎기까지 했었다.
'그 때는 내가 알았냐? 백강호가 유격수로 올라왔다는 걸.'
회상에서 돌아온 진명은 속으로 핑계를 대본다.
자칭 야구 전문가인 진명이 보기에는 강호의 외야수 수비가 상당히 좋아 보였다.
그래서 그가 내야수 전문 야수였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었다.
"백강호 같이 타격 좋은 선수가 원래 유격수였으면 더 좋은 거 아냐?! 1군에 슬펌프나 부상 선수 나오면 외야나 내야, 가리지 말고 백강호로 기용하면 되는 거잖아. 기본 3할은 때려주는 유틸리티 백업이네!"
괜히 민망해진 진명은 목소리를 높여본다.
친구는 헛웃음을 흘리며 진명과의 전화통화를 이어간다.
손 감독의 인터뷰 기사가 실린 인터넷 뉴스가 자이언츠 팬들에게 작은 파장을 일으키는 사이, 논란의 중심에 선 강호는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허억, 헉.'
강호는 거친 숨을 삼켜야만 했다.
사직 구장에 도착하며 그가 했었던 예측 하나가 보기 좋게 빗나간 상태였다.
그리고 빗나간 예측으로 인한 결과가 그를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매 경기마다는 우익수로 기용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틀리고 말았구나. 한 감독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한 사람이었어.'
강호는 속으로 한탄하게 된다.
1군 무대에 올라가게 되면 백업 내야수로 올라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그런데 어느새 주전 우익수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주전 우익수가 될 것이라 기대하며 함께 올라온 유성철이 백업으로 전락한 것은 모두가 한 감독의 괴상한 선수기용 덕분일 것이다.
'주전으로 기용됐다고 마냥 기뻐할 일이 아니다. 이렇게 부려먹다가 시즌이 시작되면 곧장 상동으로 팽 당할 수도 있는 일이야.'
그것이 자신의 자리에 대한 강호의 생각이었다.
지금이야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기에 내쳐질 위험이 없지만, 강호는 외야 수비가 약한 편이었다.
그 부분에 대한 팬들의 질타가 시작되면 언제든지 상동으로 내쳐질 수가 있다.
우익수 백업에는 유성철을 비롯해서 김민아와 김재호 등 쟁쟁한 선수들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족한 수비 훈련에만 치중하다보니 상대적으로 타격 훈련은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야. 이미 일회용 타격 아이템을 모두 사용해 버렸으니 며칠간은 내 능력으로만 타석에 서야 한다!'
최근들어 강호의 가장 큰 걱정은 바로 그것이었다.
시범경기에서 주전으로 기용되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로 인해 타석 기회가 많아지다 보니 이미 타격 아이템을 모두 사용해버린 것이다.
아이템을 모두 사용하며 강호가 기록한 타율은 일곱 경기 출전에 0.400
30타수 12안타에 2루타 2개, 3루타 1개, 홈런 없이 8타점, 8득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출루율은 0.460이었고, ops를 따진다면 0.993의 좋은 기록이다.
'아이템을 사용하다보니 말도 안 되는 기록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템으로 인한 기록은 여기까지야. 프리마켓이 열리는 19일 전까지의 두 경기는 내 힘으로만 경기를 풀어나가야 해. 기록이 급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거야.'
강호의 불안은 바로 그 점이었다.
이제 19일 까지 남은 두 경기에서는 사용할 아이템이 없었다.
만약 두 경기에서 선발 출장하여 4타석이 주어져 모두 무안타를 기록하게 된다면 4할을 찍었던 타율은 0.316까지 급락하게 된다.
'두 경기 모두 4타석이 주어져 하나씩의 안타라도 기록한다면 3할 6푼 8리를 유지할 수 있다. 만약 두 경기 동안 하나의 안타만 기록한다면 3할 4푼 2리까지 떨어지게 된다. 무안타라면 최악의 결과이고 말이야.'
아이템의 재고가 바닥나며 예측되는 결과는 암울했다.
잠시 짬이 생겨 스스로의 기록을 휴대폰의 계산기 앱으로 계산해 보았던 강호는 하나의 결론에 도출하게 된다.
'어서 프리마켓이 열려야 한다. 아직은 타격 아이템 없이 1군 무대에서 생존할 수가 없어.'
프리마켓이 열리기만을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로인해 초조한 마음을 이겨내기가 힘들었다.
초조함을 극복하기 위해 여전히 어색하게 느껴지는 우익수 수비 훈련에 전념하고 있는 것이다.
"강호가 열심히 네요. 지나치게 열심히 하고 있어요. 저러다가 시즌 시작하고 페이스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거 아닐까요?"
한편 경기 전 사전 훈련에 진땀을 빼고 있는 강호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그는 수비코치인 박한중 코치였다.
또한 그의 곁에는 김민철 수석이 함께하고 있었다.
"나도 걱정이야. 한 감독에게 강호를 유격수로 돌리고 성철이를 우익수 자리에 둬야한다고 강력하게 권해 봤지만, 워낙 고집불통이어야지. 왜 저렇게 고집을 부리는지 모르겠어."
"굳이 외야 자원인 유성철을 두고 백강호에게 우익수 훈련을 시킬 필요가 있을까요? 저런 식으로 훈련을 시키다가는 개막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퍼져버리겠습니다."
"내 말이. 2군에서 같이 올라온 성철이는 그 덕에 하릴 없이 벤치만 지키고 있잖아. 이대로는 강호도, 성철이도 정식 경기에 쓰지 못할 염려가 커."
박한중 코치와 대화를 이어가던 김 수석이 결국 한숨을 내쉰다.
작년 시즌 2군에서 올라온 선수들과 의기투합한 선수단이 노력한 까닭에 5위라는 성적표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올라갈 수 있었다.
다른 하위권 팀들이 추락했던 운이 작용하기도 했다.
여기에 또 한 번의 운이 작용하여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준 플레이오프까지 올라갔었다.
2018시즌 자이언츠의 도약은 준 플레이오프에서 아쉽게 패하며 가을야구가 끝이 났지만, 한동현 감독의 재임이라는 결과를 남기게 된다.
2군에서 올라온 선수들을 잘 융화시켜 포스트시즌까지 올라갔다는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감독의 선수운용이 아니라 선수들의 희생으로 올라간 포스트시즌이라는 것을 알 텐데. 대체 구단에서는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 거야?'
김 수석은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차라리 이럴 거였으면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패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손성조 감독님이 총사령탑으로 오셨더라면 팀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김 수석은 잊을만하면 떠오르는 손 감독의 얼굴을 지워내며 걸음을 옮긴다.
한 감독의 실패한 실험이 될 강호를 보고 있자니 속이 쓰린 것이다.
"그만 가지."
김 수석은 박한중 코치를 이끌고 자리를 뜬다.
강호에게 수비 훈련을 시켜야 하는 박 코치이지만, 이미 강호의 우익수 안착 가능성을 접어버린 그였기에 딱히 의욕이 없었다.
그리고 시간은 지나 오늘의 경기는 승리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하지만 강호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우려하던 대로 타석에 오를 때마다 번번이 범타로 물러나며 무안타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예상된 결과다. 한 경기이기는 하지만 코칭스태프들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할 거야. 내일 경기마저 무안타로 물러난다면 한 감독도 생각을 달리할 수 있어.'
강호는 경기의 내용을 곱씹으며 밤늦게까지 훈련을 거듭한다.
한동안 소홀히 했던 타격훈련에 집중하며 타격 페이스를 끌어올리기 위함이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 강호.
샤워를 마치고 문득 체중계에 올라선다.
"아."
안타까운 탄성이 절로 내뱉어진다.
대만에서 돌아온 뒤로도 꾸준히 체격을 키우는데 집중했었던 강호.
상동에서 측정할 때만 해도 82kg에 도달했던 몸무게가 79kg까지 도로 떨어져 있었다.
사직에 온 이후로 지나칠 정도로 훈련과 경기에 매진한 결과는 체중 감소라는 좋지 못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방심했더니 귀신 같이 살이 빠지네. 프로틴 보충제는 계속 챙겨 먹었었는데."
혹시라도 식단에 문제가 있었나 고민하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식사량이나 보충제 섭취량을 줄인 적은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결국 한 가지 결과로 귀결된다.
"우익수 자리에 적응하느라 훈련 량이 지나치게 많았구나. 이렇게 살이 빠질 정도로 말이야."
스스로 판단을 내려 본다.
단 기간 안에 우익수 자리에 적응해내기 위해 무리했던 것이 사실이다.
덕분에 수비 범위가 넓어지고, 포구 위치를 파악하는 스킬이 늘어나기도 했다.
또한 머리 뒤로 넘어가는 라인드라이브 성 타구를 처리하는 방법도 어느 정도 감을 찾고 있다.
이제 한, 두 달 정도만 전념한다면 어느 정도 수준의 우익수 수비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되었다.
"외야 수비가 빠르게 느는 반면에 타격능력은 제자리걸음 중이다. 몸무게는 오히려 줄어서 조금씩 성장 중이던 장타력이나 배트 스피드도 퇴보했을 가능성이 있어."
강호는 치열하게 생각하고 생각했다.
또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몸을 움직이며 훈련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가 모르는 사이에 자이언츠 팬들에게 백강호라는 이름을 알음알음 알려나가며, 강호는 빠르게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사직 구장에서 맞이하는 강호의 3월은 대만에서의 2월보다도 치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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