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36화 (36/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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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이 열리다

경기는 2회 초를 지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덕 아웃으로 향하는 강호의 숨소리가 거칠어져 있었다.

'벌써 지친다.'

강호는 거칠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써야 했다.

지친 기색을 내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2군에서 올라온 루키가 2회부터 체력적인 문제를 드러낼 수는 없는 일이다.

'외야로 오는 뜬 공이 지나치게 많은 편이다. 이래도 되는 건가?'

강호는 2회 동안의 수비 상황을 떠올려 본다.

구위가 지나칠 정도로 가벼운 지터의 공에 와이번스 타자들이 배트를 거칠게 돌렸다.

어퍼 스윙으로 무장한 와이번스 타자들의 공은 죄다 외야 쪽을 향해 뻗어져 나갔고, 덕분에 자이언츠의 외야 진들이 바빠졌다.

특히나 좌, 우익으로 벗어나는 파울 타구를 잡기 위해 좌익수인 김중호와 우익수인 강호의 체력 소모는 극심한 상태다.

"오늘 왜 이렇게 힘드냐? 아, 2회에 타석에 안서는 게 다행일 정도다."

그 때 비슷한 속도로 덕 아웃에 들어서던 중견수 전준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역시 거친 숨을 내쉬며 덕 아웃 복귀를 위해 함께 뛰고 있는 김중호에게 말을 건다.

"말 걸지 마십쇼. 죽을 지경입니다."

좌익수인 김중호는 준오에 비해 훨씬 힘들어 보였다.

그의 대답에 준오가 픽하고 웃어 보인다.

"그래, 너랑 2군 루키는 죽어 나가겠더라. 어이! 이름이 백강호지?"

중호와 대화를 하던 준오가 불현듯 강호의 이름을 부른다.

86년생인 전준오는 문표와 동갑인 34살이기에 강호에게는 9년이나 선배가 된다.

강호가 지친 상태이긴 하지만, 그의 부름을 무시할 수는 없다.

"네, 선배님. 백강호 맞습니다."

"그래. 강호야. 너도 시범경기 첫 날부터 고생이 많네. 힘들지 않냐?"

인간적으로 물어오는 준오의 말에 하마터면 '네, 힘듭니다.'라고 대답할 뻔 했던 강호는 진심을 속으로 삼킨다.

자신은 신인이었다.

신인은 신인다운 패기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괜찮습니다. 선배님. 오랜만에 우익수를 보는 거라서 재밌습니다."

"괜찮기는 뭐가 괜찮냐? 너 2회 동안 못해도 3킬로미터는 넘게 뛰었을 거다. 오른쪽으로 향했던 파울만 벌써 몇 개째인지 모르겠네."

준오는 격려 차원에서 곁으로 다가온 강호의 어깨를 한 차례 두들겨 준다.

그러다 강호의 말에서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는지 곧장 되물었다.

"그런데 우익수를 오랜만에 본다는 게 무슨 말이야? 상동에서는 우익수가 아니었나보네. 원래 보직은 어딘데. 중견수? 아니면 좌익수였어?"

강호에게 물어오는 준오의 물음에 곁에 있던 중호의 관심 또한 높아진다.

김중호는 10년의 2군 생활을 딛고 몇 년 부터에 포텐을 터뜨리기 시작한 타자였기에 포지션 경쟁에 민감한 편이었다.

혹시라도 강호의 포지션이 자신과 겹친다면 얼굴 정도는 알아놓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강호의 대답에 뜨악한 표정을 짓고 만다.

"스프링캠프 때는 유격수 자리에 있었습니다. 3루수도 가끔 보고 말입니다."

"뭐? 유격수?! 유격수를 보던 놈이 어쩌다가 우익수 자리까지 온 거야? 손 감독님이 선수 추천을 그런 식으로 할 분이 아닌데..."

강호가 유격수라는 사실에 놀란 준오는 덕 아웃이 가까워짐에 따라 점차 목소리를 줄인다.

코칭스태프가 있는 자리에서는 민감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모양이었다.

'물론 손 감독님이 추천한 자리는 아니지요. 1군에서 결정한 일을 제가 무슨 수로 알겠습니까?'

강호는 속으로 말을 삼키며 딱 한 마디로 대답한다.

"손 감독님은 아닐 겁니다."

"뭐?"

준오가 알아듣지 못하고 되묻자 강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그의 이어진 말에 준오와 중호의 눈동자가 심상치 않게 변했다.

"손 감독님은 저를 유격수에 두려고 하셨습니다. 손 감독님이 우익수로 추천하시지는 않았을 겁니다."

"흐음..."

강호의 확언에 중호와 준오의 표정이 가라앉는다.

세 사람은 어느새 덕 아웃 안으로 들어와 있었기에 더는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외야수들 고생 많았다. 잘 했어."

코치들 중 한명이 요식 행위로나마 격려를 해준다.

그러나 강호는 그의 격려를 들으면서도 전혀 힘이 나질 않았다.

2회 초가 지났을 뿐인데 팀이 벌써 6실점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3회에는 투수가 바뀌겠지? 2이닝 동안 3홈런을 얻어맞은 선발을 3회까지 올리지는 않을 거야.'

강호는 3회에는 투수가 바뀌기를 기대했다.

자이언츠의 선발로 오른 지터는 2이닝 동안 5안타에 3홈런, 2볼넷을 내주며 6실점을 한 상태다.

거의 배팅볼 수준의 공을 던졌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기록일 것이다.

"강호도 수고했다. 우익수 수비도 나쁘지는 않네."

박한중 코치의 말이었다.

그는 뜬공을 쫓아다니느라 수고한 외야수들을 치하하며 강호에게도 격려를 건넨다.

박 코치의 어조에서 무언가를 느낀 강호는 고개를 숙여 답례하며 선수들이 앉은 벤치 쪽으로 향한다.

'박 코치님이 보기에는 불합격인 모양이구나. 당연한 결과야. 고작 몇 시간 남짓한 수비 훈련 후에 우익수 수비를 보라니. 사회인 야구도 그런 식으로 운영되지는 않을 거다.'

강호는 스스로의 외야 수비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우익수로 고정되어 몇 달간 훈련을 쌓는다면 더욱 나아질 자신은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2이닝 동안 자신이 기록한 실책이 없다는 사실로서도 충분히 만족해야하는 수비실력인 것이다.

'내가 보여줘야 할 것은 외야 수비가 아니라 타격이야. 한 감독이 나를 무리한 포지션으로 기용한 것은 결국 대만 스프링캠프에서 5할 대를 기록한 나의 타격을 확인하기 위함이겠지.'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5할이 넘는 타율과 10할이 넘는 장타율.

아무리 아홉 경기에 국한된 기록이지만, 이 정도 맹타를 휘두른 선수를 외면하는 것은 코칭스태프의 입장으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한 감독은 김 수석을 비롯한 다른 코치들의 반대에도 강호의 우익수 기용을 강행하였고, 강호는 타격 찬스에서 한 감독의 기대를 충족시켜야하는 입장이 되어 버렸다.

'외야든 내야든 상관하지 않겠어. 어떠한 포지션이든 시범경기 기간 동안의 활약으로 1군 무대에 오르는 것이 중요해. 4월 달이 되어서도 사직에 남아있을 수 있다면 어떠한 포지션이든 가리지 않겠어.'

각오를 다지며 벤치에 앉았다.

그의 곁에는 이미 문표가 자리하고 있었고, 그가 강호에게 여러 가지 잡담을 건넸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강호 후배, 고생 많았어. 그나저나 너랑 임정은 첫 날부터 이게 무슨 고생이야? 너는 익숙하지도 않은 우익수 자리에서 개고생이고, 정이는 괜히 지타 자리에 앉아서 고참 선수들 눈칫밥이나 먹고 말이야."

또 다시 시작된 문표의 일장연설에 강호는 '네, 네.'라고 추임새를 넣으며 다른 것에 집중한다.

강호의 정신은 타석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들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다.

'스탯 1을 올려주는 정교한 타격이나 파워풀 스윙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지금은 확실한 안타가 필요한 시점이야.'

강호는 경기 동안 스탯 1을 상승시켜 주는 아이템은 배제하기로 했다.

지금은 타격 능력의 소폭 상승보다는 확실한 안타 하나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안타가 5개, 2루타가 1개, 3루타 1개가 남아 있어. 오늘 경기에서 활약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숫자다.'

총 7개의 아이템을 확인하며 계산에 들어간다.

보통의 경우 타자가 한 경기에 들어서는 타석 찬스는 4번에서 5번 정도.

보유 중인 아이템을 매 타석마다 사용하게 된다면 2경기 동안은 맹타를 때려낼 수 있는 개수였다.

'다음 프리마켓이 열리기까지는 아직 10일이 남아있어. 오늘과 내일 경기에서 타격 아이템을 모두 사용해 버린다면 남은 경기에서 실망스러운 타율을 기록하게 될 거야.'

강호가 고민하는 부분은 그 점이었다.

며칠 동안 맹타를 휘둘러서 코칭스태프의 눈도장을 찍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뒤로 타격이 부진하게 되면 코칭스태프의 관심은 빠르게 멀어지게 될 것이다.

자신은 1군에서의 자리가 확고한 주전 선수가 아니라 2군 유망주이지 않은가.

며칠 뜨겁고 마는 기복 있는 타격보다는 하루에 하나의 안타를 기록하더라도 꾸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내지 말고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자. 하루에 하나의 안타. 그것을 목표로 한다면 적어도 다음 프리마켓이 열릴 때까지는 시범 경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려둘 수 있을 거야.'

강호는 스스로의 계획을 정한다.

프리마켓이 열리는 날짜는 19일이었다.

두 차례의 월요일 휴식 일을 고려한다면 아홉 번의 경기를 치러야만 한다.

7개의 아이템으로 9경기를 무사히 치르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여러 가지 고민 끝에 자신의 행동 방침을 정하게 된다.

'나를 매 경기마다 선발 우익수로 출전시키지는 않을 거야. 7개의 타격 아이템으로 충분히 버틸 수 있다. 시범경기 라인업에 꾸준히 이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자!'

그렇게 마음먹은 강호는 이번 경기에서의 아이템 사용 기점을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그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2회 말에 찾아온 공격 기회에서 득점권 상황이 주어지게 된 것이다.

"하나 때려봐라!"

"강호야! 한 점 따라잡자!"

코칭스태프와 문표의 목소리가 타석에 선 강호에게 들려오고 있다.

그들의 목소리에 오히려 긴장감이 솟아날 무렵, 강호의 시야에 시스템이 전하는 메시지가 표기되고 있었다.

메시지를 확인한 강호는 들끓었던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낀다.

-득점권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처음으로 서게 된 사직구장에서의 타석이다.

9번 타순인 자신의 앞에 주자 1, 2루의 득점권 상황이 놓여졌다.

아웃카운트는 원 아웃인 관계로 벤치에서 번트 사인이 나올 상황도 아니다.

'사용하겠어. 첫 타석에서 타점을 기록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사직 구장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내 타격을 가져가는 모습을 보여줘야만 해.'

결정을 내린 강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신중한 자세로 타석에 선 강호.

그가 이제 고민해야할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언제 안타를 때릴 것인가.

초구를 노릴 것인가, 아니면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2스트라이크 상황까지 기다릴 것인가.

"스트라이크!"

이미 '안타' 아이템을 사용했기에 스트라이크가 된 초구를 바라보는 강호의 표정은 침착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안타를 치도록 하자.'

강호는 생각을 정한다.

대만 스프링캠프 기간 동안 타격 아이템에 대해 파악해둔 것이 있었다.

만약 몸에 맞는 공이나 볼 쓰리 상황에서 와일드 피칭이 나온다면 사용했던 타격 아이템은 반환받게 된다.

그리고 '안타'나 '홈런' 아이템을 사용하더라도 일부러 타격 타이밍을 늦추거나 타격 포인트를 틀린다면 파울이 발생하게 된다.

이때에 파울 타구가 아웃이 되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는다.

이미 안타나 홈런이 될 것이 정해졌기 때문에 범타가 되지는 않는 것이다.

'잘만 활용한다면 타격 아이템을 사용한 상태에서 투수를 괴롭히는 무한 커트도 가능할 거야. 물론 파울을 만들려다가 운 없이 정타가 나와 버린다면 안타로 기록되겠지만 말이야.'

그것이 강호가 타격 아이템에 대해서 파악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내용도 있었다.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투수가 던진 볼이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면 몸이 자동으로 타격을 했었어. 마치 누군가가 내 몸을 리모컨으로 조정하듯이 말이야.'

강호는 지난날의 기억 하나를 떠올리고는 속으로 헛웃음을 삼켰다.

스프링캠프 경기에서 안타 아이템 하나를 사용하며 일부러 삼진 상황을 만들어보기도 했었다.

프리마켓 시스템이 안타 아이템 사용 상황에서의 고의 삼진을 어떻게 판단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결과적으로 말한다면 아이템 사용 시의 삼진은 없었다.

강호의 몸이 가장 이상적인 스윙 동작으로 안타를 때려내었다.

스스로가 의도한 적 없는 움직임으로 몸이 저절로 반응했던 것이다.

'몸에 맞는 공이나 투수 와일드 피칭이 아니라면 이미 사용한 안타나 홈런 아이템을 무르는 방법은 없다. 내가 아이템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이 타석은 이미 안타로 기록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거야.'

강호는 생각을 정리하며 눈을 빛낸다.

상대 투수가 초구에 이어 2구까지 스트라이크 존으로 밀어 넣은 후, 3구째의 공도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공을 던져 넣었기 때문이다.

2군에서 갓 올라온 이름 없는 신인을 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강호는 그 생각을 바로 잡아주기로 한다.

따악!

깔끔한 안타가 외야 그라운드 위로 떨어진다.

좌익수와 중견수 사이에 떨어진 안타는 타격의 정석이라고 할 정도로 깨끗한 안타였고, 미리 준비하고 있던 2루 주자는 이미 홈을 지난 상태였다.

"세이프!"

발 빠른 1루 주자, 임정은 3루에서 세이프 선언을 받는다.

"호오, 타격 폼이 깔끔합니다. 스트라이크 존 아래로 걸치고 들어오는 낮은 공을 잘 받아쳤어요."

덕 아웃에서 강호의 타격을 살피던 코치들 중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타격코치인 정호종 코치였다.

그의 발언에 한 감독의 시선이 옮겨진다.

"어떻습니까? 실제로 본 강호의 타격이요. 1군에서도 먹힐 수 있는 타격입니까?"

잔뜩 기대하는 한 감독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정 코치가 고개를 끄덕인다.

"좋습니다. 컨택 능력이 뛰어 납니다. 카운트가 몰렸는데도 자기 스윙을 가져가는 것을 봐서는 강단도 있는 녀석 같습니다. 아직 첫 타석이라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좋은 타자인 것 같네요. 남은 타석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어요."

정호종 코치의 말에 한 감독은 크게 만족한다.

그리고는 다른 코치들과는 조금 다른 방향의 생각을 가지게 된다.

'강호가 3할만 때려준다면 우익수 수비의 결점은 충분히 메워질 수 있을 거야. 강호 녀석을 유성철과 함께 우익수로 기용한다면 휴고의 부재가 크게 부각되지는 않을 거야.'

한 감독은 모두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강호의 우익수 자리를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로 인해 강호는 뜻하지 않은 외야수비 훈련에 진땀을 흘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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