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35화 (3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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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이 열리다

진명은 올해로 서른다섯 살이 되는 부산의 토박이였다.

야구를 처음 본 것은 아주 어릴 때의 기억이고 자이언츠를 본격적으로 응원하기 시작한 것은 4년이 되었다.

집도 사직 구장과 가까운 양정구에 있었기에 자주 야구장에 찾아 경기를 관람하고는 했다.

김진명, 그는 시범경기 일정을 확인해 관람할 정도로 자이언츠의 열혈 팬이 된 것이다.

"어!? 뭐야? 라인업이 왜 저래? 휴고는 어디 간 거야?"

친구들과 함께 사직구장을 찾은 진명은 전광판의 라인업을 확인하고는 미간을 좁히게 된다.

외국인 야수인 휴고가 빠진 라인업에 눈을 치켜뜬다.

"정규 시즌도 아니고, 시범경기인데 뭐 그럴 수도 있지. 2군 선수들도 테스트해야 하니까 기용한 거겠지."

"아무리 그래도 백강호가 대체 뭐하는 놈인데? 외야 자원은 김민아나 김재호도 있잖아. 2군에 유성철도 있고. 갑자기 듣보잡을 첫 경기 라인업에 올린 거야?"

진명의 반문이었다.

그는 자이언츠의 선수에 대해 꽤나 아는 것이 많은 편이다.

1군 선수들은 물론이고, 일부 가능성 있는 2군 선수들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도 강호의 이름은 생소한 것이었다.

그리고 생소한 이름은 또 있었다.

"임정은 대체 뭐하는 놈인데 지타 자리에 들어가 있는 거야? 감독이 제정신인가? 왜 루키를 지타 자리에 넣는 거야? 채중석이나 김진태를 지타에 둬야지."

진명의 물음에 친구 역시 고개를 갸웃거린다.

지명타자 자리는 보통 주력이나 수비 실력이 떨어지지만, 타격과 클러치 능력을 갖춘 타자를 넣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2군에서 올라온 루키를 지타로 넣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경우였다.

"글쎄. 채중석이나 김진태가 컨디션이 안 좋은 모양이지."

진명의 친구는 그렇게 답한다.

그는 경기를 분석하기 보다는 즐기는 타입이어서 라인업에 대해서는 큰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진명은 달랐다.

그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노려본다.

"무료 관중이라 우습게 여기는 거야, 뭐야? 참나."

불평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구단에서는 시범경기 때 경기장을 무료로 개방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라인업을 짠 것인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진명으로서는 처음 관람하는 시범경기였던 것이다.

"야, 그냥 웃으면서 봐. 무슨 시범경기부터 혈압을 올리냐? 정규 시즌 들어가면 열 받을 일 많을 테니까. 지금은 맥주나 마시면서 보자."

친구의 말이었다.

그의 말로 팀에 대한 자이언츠 팬들의 인식을 대충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한 편, 경기장에 찾은 팬들이 두 명의 선수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두 사람 중 한 명인 강호는 외야 오른 편에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대체 한 감독님은 무슨 생각인 거야? 임정을 지타로 선발 출장시키다니.'

강호는 한 감독의 선수기용에 의문을 표한다.

자신을 우익수에 둔 것도 그렇지만, 임정을 지타에 선발 기용한 것은 더욱 의문이다.

비록 임정이 2군 스프링캠프 경기에서 좋은 타격을 보였다고는 하지만, 1군 무대의 지명타자로 기용할 정도는 아니었다.

강호 본인이 감독이라고 가정하고 2군에서 올라온 선수를 굳이 지타로 올려야 한다면 임정이 아닌 문표를 기용했을 것이다.

'1군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복잡한 사정이라도 있는 건가? 아니야, 됐어.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자. 어차피 이해할 수도 없는 거. 나는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면 되는 거야.'

라인업에 대한 의문을 접기로 한다.

선발 출전 명단을 정하는 것은 코칭스태프의 몫이고, 선수인 자신은 경기에서 결과로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그라운드에서 경기 외적인 고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 선발이 지터구나. 이번 시즌의 실질적인 에이스 역할을 하게 되겠지? 한 팀의 에이스는 과연 어떤 공을 던질까?'

순수한 호기심이 들었다.

어린 시절, 팬의 입장으로 야구를 관람할 때는 몰랐는데 선수로 올랐을 때 느껴지는 에이스의 무게감이라는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상대팀 타자들을 홀로 상대하면서도 위용을 잃지 않는 투수의 투구를 보고 싶었다.

강호는 마운드에 오른 지터의 초구를 향해 정신을 집중한다.

파악.

지터의 초구가 포수의 미트를 파고든다.

그 모습에서 강호는 '어?' 소리를 내며 놀라고 만다.

자신이 착각을 한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136km? 착각이 아니었구나. 패스트볼이라고 하기에는 공이 지나치게 느리다. 게다가 가벼워. 지터가 싱커나 커터를 던진다는 정보는 없었는데. 포심 구속이 이 것 밖에 안 된다는 말이야?'

강호는 지터가 던진 초구에 미간을 좁힌다.

관람석에 있는 팬들은 모를 수도 있었지만, 그라운드 위의 선수들은 모두 볼 수 있었다.

지터가 던진 구종이 변화구나 변형 패스트볼이 아닌 포심이라는 사실이 말이다.

그렇기에 선수들뿐 아니라 덕 아웃에 앉아있던 코칭스태프도 인상을 찡그리게 된다.

"역시. 시범경기가 시작되고도 달라지지를 않네요. 당분간 지터는 빼는 것이 좋겠습니다."

투수코치인 여민석 코치의 말이었다.

그는 팀의 간판이 되어야 하는 외인 투수가 가벼운 공을 던지고 있음에도 크게 위축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터는 한동현 감독이 직접 지명해서 데려온 투수이기 때문이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사도스키 스카우트가 반대하는 선수를 왜 데리고 와서는. 휴고도 그렇고 지터도 그렇고, 엉망진창이구나.'

여민석 코치는 마음속에서 지터라는 이름을 지운다.

그러나 한동현 감독의 입장은 달랐다.

그로서는 고집을 피워서 데려온 투수를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니야. 지터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어. 작년도 마이너리그에서 150이 넘는 강속구를 던지던 투수다. 아직 몸 상태가 올라오지 않아서 그렇지 컨디션만 올라온다면 족히 10승은 책임져줄 투수야. 이닝 이터로서의 역할도 기대할 수 있고 말이야.'

지터를 데려온 한 감독의 생각은 그러했다.

사도스키 스카우트가 반대하기는 했지만, 일부 스카우트들은 지터의 가능성을 높이 보기도 했었다.

지터를 데려온 것은 단지 한 감독만의 독단은 아닌 것이다.

"일단은 지켜보기로 합시다."

한 감독이 입을 연다.

그의 말에 덕 아웃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모두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코치들이 생각하는 것은 모두 비슷했다.

이어진 지터의 2구가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따악!

잘 맞은 타구였다.

시범경기의 첫 상대가 된 와이번스의 1번 타자는 힘이 있는 타자가 아니었다.

한 해 동안 홈런을 2개 정도 치는 것이 커리어 하이 시즌일 정도로 장타력이 없는 선수였다.

그런데 그런 선수가 친 타구가 외야를 향해 멀리 뻗고 있었다.

"넘어 가겠는데요?"

누군가가 말한다.

그의 말대로 타구가 담장을 넘겨버릴 듯이 뻗어나가고 있었다.

지터가 던진 2구 역시 구위가 지나치게 가벼운 까닭에 가볍게 휘두른 배트에도 장타 성 코스로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 쪽이다!'

한 편 우익수 자리에 선 강호는 타자가 타격을 하자마자 코스를 읽어냈다.

타구가 가급적 자신에게 오지 않기를 바랐는데 첫 타구부터 우익수 쪽으로 공이 날아오고 있었다.

'비교적 타구 판단이 쉬운 공이다. 펜스 쪽까지 붙어서 펜스 플레이를 하는 것이 타구를 잡을 가능성이 높겠어!'

타구 판단을 끝낸 강호는 곧장 펜스를 향해 내달린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타구에서 한 시도 떼어놓질 않았다.

외야 수비 능력이 좋지 않은 강호이지만, 타구 판단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타구가 라인드라이브 성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플라이 볼 형태로 떠서 오기 때문에 타구 위치를 못 잡을 것도 없었다.

문제는 타구가 자신의 손에 잡히느냐, 넘어가느냐 하는 것이다.

'타구가 떨어진다! 잡아야 해.'

강호는 급격한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공을 향해 점프했다.

위치로 봐서는 현 위치에서 잡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미 펜스에 등이 닿은 상태였기에 점프를 하지 않고서는 타구 도착점에 글러브가 닿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펜스에 등을 댄 채로 점프를 하게 된다.

터억.

글러브에 느껴지는 촉감과 함께 글러브를 급히 닿았다.

익숙하지 않은 외야수 글러브이지만, 최근 들어 부쩍 좋아진 악력을 이용해서라도 타구를 잡아야만 했다.

처음 날아온 공부터 놓치기는 싫었던 것이다.

"와아!"

"잡았어!"

"뭐야, 저걸 잡네. 수비가 제법인 선수네."

바닥에 착지한 강호의 귓가에 팬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외야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일부 팬들이 강호의 호수비를 칭찬하고 있었다.

강호는 바닥에 내려섬과 동시에 글러브를 열어 안에 든 공을 확인한다.

'휴~아슬아슬했다. 어려운 코스는 아니었지만, 타구 도착점이 애매했어. 펜스 플레이가 오랜만이라서 하마터면 공을 놓칠 뻔했어.'

강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잡아낸 공을 2루수에게 던진다.

수비를 하는 입장에서는 보는 것만큼 잡기 어려운 타구는 아니었다.

공이 워낙 높이 뜬 까닭에 도착점 예상하기가 어려웠을 뿐이다.

강호의 외야 수비를 처음 보게 된 코칭스태프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아~다행입니다. 강호가 우익수 수비가 오랜만이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수비하는 게 제법입니다."

"나쁘지 않네요. 저 정도면 터무니없는 실책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작전코치와 수비코치의 말에 한 감독의 얼굴이 밝아진다.

지터의 2구가 홈런 성 타구가 되는 모습에 새하얗게 변했던 그의 얼굴에 웃음이 감돈다.

"그렇죠? 강호를 우익수로 두기를 잘했지요? 타격이 되고, 주력이 좋은 타자이니까 수비만 괜찮으면 우익수 자원으로 쓰기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이번 기회에 외야수비 훈련을 집중적으로 시켜서 우익수로 기용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한 감독은 스스로의 결정에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한 감독의 말에 대답하는 것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아, 네."

그저 짧은 대답으로 동의를 표하는 김민철 수석.

자신이 아니면 감독의 말에 대답조차 없는 코칭스태프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쉰다.

'내가 어쩌다가 초보감독들의 보모가 된 거야? 이번 시즌이 끝나면 2군으로 내려달라고 해야지 원.'

김 수석은 속으로 혀를 차며 오른쪽으로 한 걸음 옮긴다.

공교롭게도 그가 걸음을 옮긴 방향은 한 감독과 반대 방향이었지만, 지터에 대한 걱정으로 그라운드에 정신을 빼앗긴 한 감독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김 수석이 다가선 곳에는 수비 코치인 박한중 코치가 자리하고 있었다.

"박 코치."

"네, 수석코치님."

김 수석의 말에 박 코치가 답한다.

그러자 곧장 물어보는 김 수석의 질문은 강호에 관한 것이었다.

"강호 녀석 외야 수비 말이야. 박 코치가 보기에는 어때? 경기 전에 수비 지도도 했었잖아. 우익수로 쓸 만한 수비인 거야?"

김 수석의 물음에 박 코치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더니 주변을 힐끗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어온다.

"사실대로 말씀드릴까요?"

"당연하지. 나한테 거짓말해서 뭐하게?"

분위기를 잡는 박 코치의 행동에 김 수석의 얼굴이 그에게로 가까워진다.

그러자 박 코치가 마치 귓속말을 하듯 김 수석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외야수로는 딱히 좋을 건 없습니다. 2군의 서학수 수비 코치에게 전화를 해보니까 유격수나 3루 수비가 좋다고 하네요. 저는 내야수로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박 코치의 말에 김 수석은 얼른 되묻게 된다.

조금 더 정확한 정보가 알고 싶었던 것이다.

"딱히 좋을 건 없는 거야? 아니면 못쓸 정도야?"

"굳이 따진다면 나쁜 쪽에 가깝습니다. 수비 범위도 좁고, 홈 송구도 부정확해요. 어깨가 약한 편은 아닌데 내야 수비를 오래 봐서인지 외야에서의 송구 거리 계산을 어려워해요. 외야 수비를 제대로 가르치려면 못해도 1년 정도는 필요할 겁니다."

박 코치는 몇 시간동안 살핀 강호의 우익수 수비를 그렇게 보고 있었다.

그의 말에 김 수석은 고개를 끄덕인다.

수비 코치인 박 코치가 이렇게 이야기 한다면 강호의 우익수 보직은 고민할 것도 없다.

'역시 우익수 자원은 유성철로 하는 게 좋겠어. 강호는 예정대로 내야로 돌린다.'

속으로 결정을 내린 김 수석이 한 감독을 향해 다시 한 발짝 돌아온다.

강호가 치열한 태도로 우익수 수비에 적응하는 동안 덕 아웃의 코칭스태프도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점심 먹기 전에 추가 편 한 편 투척하고 갑니다.^_^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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