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32화 (3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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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 구장으로

대만 스프링캠프 경기 후 며칠의 휴식 기간.

일부 선수들에게는 휴가 같을 수도 있는 이 기간에도 손 감독은 여전히 바빴다.

단지 손 감독뿐만이 아니었다.

2군 전지훈련에 참여했던 모든 코치들 역시 상동으로 모여든 상태다.

"성철이는 괜찮습니다. 택근이도요. 박철은 지타로 돌렸을 때 타율이 3푼 정도 상승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지타로 돌렸을 때 철이의 타율이 3할 7푼 대라는 말이야?"

"네. 처음에는 수비 상황에 벤치에 있는 다는 게 적응되지 않은 모양입니다만, 지금은 잘 이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민성이는 어때?"

"민성이는....이번 시범경기 일정에서는 제외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딱히 1군에서 보여줄 만한 것이 없어요."

2군 작전코치인 김대주가 손 감독의 질문 공세에 대답하고 있었다.

그를 시작으로 각자의 파트에서 선수를 평가하는 코치들의 질문과 답변이 오고간다.

"투수 쪽에서는 대우와 성태가 좋습니다. 두 사람은 포함시켜야 합니다."

"고작 두 명 밖에 없다는 것은 아니겠지? 민한이는 어때? 민한이 녀석도 시범경기에 내보내 보는 것이?"

"민한이는....민한이보다는 가진성을 올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가진성? 진성이 녀석이 벌써 1군 가능성을 점치기에는 부족함이 있어. 녀석은 포심 빼고는 제구도 안 되는 녀석이잖아."

"그래도 포심 하나는 일품입니다. 구속이 조금 더 올랐으니 지금 익히고 있는 체인지업과 함께 쓰면 1이닝 정도는 막아줄 겁니다."

"구속이 더 올랐다고? 얼마나?"

"2킬로 정도가 더 올랐습니다."

"흐음...."

손 감독은 고민하게 된다.

투수코치인 구동진과의 문답을 통해 시범경기동안 사직으로 보낼 투수를 찾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투수 조에 쓸 만한 선수가 보이질 않는다.

"그럼 진성이도 한 번 확인해보도록 하고. 치성이는 상태가 어떤 거야? 아직도 구속이 안 나와?"

"아무래도 정밀 검사를 받아야할 것 같습니다. 본인은 아프지 않다는데 구속이 더 떨어졌습니다. 캠프 전보다 구속이 5킬로가 더 줄었어요."

"그럼 운영 팀에 요청해서 정밀검사 받게 해. 치성이가 부상을 무시하고 써야할 정도의 포지션도 아닌데 억지로 올릴 필요는 없어."

"네, 알겠습니다. 운영 팀에 공문 발송하겠습니다."

"그리고 투수 조에 선수가 너무 없어. 구색은 맞춰야 하니까 성수제와 이청기, 사준식도 시범 경기에 올려야 되겠어."

"네...알겠습니다. 함께 포함시키겠습니다."

투수 조에 선수가 없다는 손 감독의 말에 면목이 없는지 구동진 투수코치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똑똑똑.

그 때 구 코치를 살려주는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손 감독은 회의 중이라 알렸음에도 회의실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시선을 돌린다.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구장 상주 직원이었다.

"감독님. 인터뷰 예약된 기자가 찾아왔습니다."

"뭐? 인터뷰 예약? 내가 언제 인터뷰 같은 걸 했다고 그래? 누가 잡은 거야?"

직원의 말에 손 감독이 미간을 좁혀 보인다.

그의 좋지 못한 표정에 직원은 당황하게 된다.

직원은 선임 급 선배가 시켜서 온 것이어서 자세한 상황은 알지 못했다.

'아...입사한지 2달 밖에 안 된 나한테 자꾸 어려운 일만 시켜.'

직원은 이제 갓 입사한 막내였다.

상동에서 오래 일한 고참 사원들은 손 감독과 대화하는 것을 불편해 했다.

선수들에게는 자애로운 편인 손 감독이지만, 구단 직원들에게는 무척 까칠한 편이었다.

특히나 일처리를 미숙하게 하는 구단 직원들에게는 호통부터 치고 보는 성격이라 선임급 이상 직원들도 손 감독과 대면하기를 꺼려한다.

"그게...이학기 선임이 본사의 요청을 받아서 잡은 인터뷰라서...말입니다."

"이학기?"

직원이 거론한 이름에 손 감독이 머리를 굴려본다.

그런 직원이 2군 지원팀에 있었나하고 떠올려 본다.

하지만 생각나지 않는다.

선수들 이름은 모두 기억하는 손 감독이지만, 상동에서 5년 가까이 일한 지원팀 선임 사원 이름은 관심이 없었다.

'이학기가 뭐하는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들을 지금 당장...!'

손 감독은 당장 지원팀 사무실로 쳐들어가 요절을 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마음을 달리하게 된다.

그가 오랫동안 고민해오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인터뷰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뷰, 내 그까짓 거 한 번 해보지. 인터뷰를 해본 지가 3년은 족히 지난 것 같은데 말이야.'

손 감독은 기억을 거슬러보며 웃음 짓는다.

그의 미소에 말단 직원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직원은 잘 몰랐지만, 손 감독은 업계에서도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유명한 감독이었다.

그가 1군 감독직을 거절하는 이유가 인터뷰를 하기 싫어서라는 풍문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 인터뷰 요청을 이학기 선임이 잡은 이유는 따로 있었지만, 손 감독은 트집을 잡지 않고 응해주기로 결정을 내린다.

"어디야, 인터뷰 장소가?"

손 감독의 물음이 회의의 중단을 알린다.

진행 중이던 회의는 잠시 구동진 투수코치에게 주관이 넘겨지고, 손 감독은 말단 직원을 따라 회의실에서 나선다.

시간은 다시 흘러 3월 6일이 밝아 있었다.

시범경기 일정으로 사직으로 이동해야하는 하루 전인 것이다.

짧은 휴식 일을 끝으로 상동으로 모여든 선수들은 시범경기에 합류하게 될 선수 명단을 확인하고는 갖가지 표정을 짓게 된다.

"나는 명단에 없어.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어떻게 되긴. 상동에 남아서 2군 훈련을 하는 거지 뭐. 사실 말이 2군 훈련이지 거의 육성 군이라고 보면 돼. 시범경기 기간 동안 상동에 남는 선수들이 워낙 적어야 말이지."

"뭐야? 그럼 거의 자율 훈련이겠네? 감독님과 코치님들도 시범경기 기간 동안 사직으로 가시는 건가?"

"그건 아니지. 2군 코칭스태프는 모두 상동에 남아 있어. 이 기간 동안 상동에 남는 사람들은 조금 부담스러울 거야. 선수들은 적은데 코치님들은 많아서 코치들과 거의 1대 1 전담 훈련을 하게 되거든."

"윽! 완전 부담스럽네. 나도 사직에 데려가면 안 되나? 아 놔."

명단에 제외되어 불평을 토로하는 것은 대부분 나이 어린 루키들이었다.

그들은 시범 경기에 나서기에는 기량이 충분하지 못해 3월에도 상동에서 훈련을 해야만 했다.

강호와 문표를 포함한 대부분의 선수들은 사직 행 티켓을 받아 들었다.

"호오, 이것 봐라. 대우하고 진성이 같은 루키 투수들도 포함이 되었네. 재밌는 건 주민한이 빠졌다는 거야. 5억 짜리 루키는 시범경기 명단에서 제외하고, 값싼 루키는 참가를 시키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과잉보호 같은 건가?"

문표는 재밌는 것을 발견했다는 표정으로 강호의 귀에 속삭인다.

강호는 입김이 동반된 귓속말에 몸을 한 차례 떨어보이고는 짧게 답한다.

"결정은 감독님이 하시는 거죠."

강호의 대답에 문표가 '호오'하는 탄성을 내뱉는다.

"너는 손 감독님의 총애를 받는 황태자라 이거냐? 지나치게 감독님 입장에서 말하는 것 같은데?"

문표의 말에 강호가 그건 또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러자 문표가 강호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한다.

"나한테까지 모른 척 할 필요 없어. 임마. 손 감독님처럼 무뚝뚝한 양반이 너를 대할 때는 간디보다 자상한 양반이 되는데 모를 사람이 있겠어? 다들 말은 안 해도 눈치는 채고 있다고."

문표는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끝내고는 강호의 어깨에 어깨동무를 한다.

강호는 그런 문표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좋겠어. 자이언츠 구단 실세의 눈에 들었다니 말이야. 1군 콜업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우리 강호 후배님."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알아들을 수가 없네요."

문표의 말에 강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묻는다.

두 사람은 명단 발표가 있은 후 자율 훈련을 위해 짐(GYM)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현재 강호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체중을 늘리는 것이었기에 요 며칠 근력 운동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오늘 날짜로 상동에 복귀한 문표는 강호의 훈련 일정에 함께하려는 생각이었다.

"설마 모른다는 거야? 구단이 계속해서 초보 감독을 1군 사령탑으로 임명하는 이유 말이야."

문표의 물음에 강호가 혹시 하는 표정을 지으며 답한다.

"손 감독님 때문이라는 말입니까? 그게 가능한 소리입니까?"

"허허, 강호 후배가 야구 정치를 잘 모르시네. 구단에서 벌써 몇 번이나 손 감독님을 총 사령탑으로 앉히려고 했는데? 본인이 고사를 하시니까 자꾸만 초보 감독을 단기 계약으로 영입하는 거야. 손 감독님이 2군 감독으로 계시는 동안 자이언츠 1군에서 몇 명의 감독이 교체되었는지 알아?"

강호는 문표의 물음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문표의 말로 인해 생각이 많아진 까닭이다.

'문표 선배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 손 감독님이 자이언츠 2군 감독으로 계시는 동안 1군 감독은 다섯 번이나 물갈이가 있었다. 보통 1군 성적이 좋지 않으면 1군뿐 아니라 2군과 3군 코칭스태프에도 변화를 주는데 손 감독님과 2군 코칭스태프는 한 번도 교체된 적이 없어. 1, 3군 자리만 계속해서 교체될 뿐.'

문표의 이어지는 말에 건성으로 대꾸하며 생각을 이어나간다.

코칭스태프의 자리 역시 선수들과 다를 바 없는 계약직이었다.

팀 성적이나 여러 문제로 쉽게 교체되는 자리이다.

팀의 총 사령탑이 다섯 번이나 교체되는 시기에도 2군 감독인 손 감독은 계속해서 자리를 지켰다.

이것이 우연일까.

"이건 소문이지만, 구단 수뇌부에서는 손 감독님이 총 사령탑으로 앉으시기 전까지는 연륜 있는 감독을 1군 감독 자리에 앉히지 않을 생각인가 봐."

문표의 말에 강호는 다물고 있던 입을 열게 된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손 감독님의 팀 운용능력은 인정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손 감독님은 구단 운영부와 사이가 좋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강호가 바라보는 손 감독은 그러했다.

상동의 지원팀뿐 아니라 가끔 마주치는 구단 운영 팀과도 으르렁거리기 일수였다.

대다수의 경우는 손 감독이 운영 팀에게 일방적으로 면박을 주거나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였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은 손 감독이 구단의 편이 아니라 선수들의 편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손 감독이 무뚝뚝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였다.

"그게 바로 손 감독님의 정치능력이란 말이야. 선수들은 손 감독님을 우리 편이라고 여기지만, 구단의 생각은 다른 것이지. 구단은 손 감독님을 자신들의 사람으로 보고 있어. 그리고 재밌는 게 뭔지 알아?"

문표의 설명에 호감이 동한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게 된다.

문표는 강호의 표정에 살짝 웃어 보이며 말을 잇는다.

"손 감독님은 철저히 중립이라는 거야. 선수들의 편도, 구단의 편도 들지 않아. 그 분이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건 따로 있으니까 말이야."

문표의 말에 강호는 곧장 물어보려다 이내 입을 다물고 만다.

자신이 너무 문표의 페이스에 말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너무 궁금하다. 문표 선배의 페이스에 말리면 대화가 끝없이 이어지는데...하지만 그 다음 내용을 꼭 알아야겠어. 손 감독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그게 대체 뭡니까?'

강호는 결국 문표의 미끼를 물고 만다.

"그게...뭡니까?"

문표는 강호가 자신의 미끼를 물자, 씨익 하고 진한 미소를 짓는다.

그가 일장연설을 시작할 때 표정이라는 것을 알고 강호가 긴장할 무렵, 의외로 문표는 짧은 말로 대답한다.

그리고 그의 말은 강호에게 강한 여운을 남긴다.

"자이언츠의 우승. 우리 팀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시키는 게 그분의 유일한 목적이자 목표다. 그 외의 것에는 사실 관심이 없으신 분이라고 봐도 좋아."

문표는 그렇게 말을 마치며 운동 기구에 앉았다.

더는 말할 것이 없다는 태도로 운동에 집중하는 문표.

강호는 문표에게서 의외의 모습을 본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선배님은 어떻게 잘 아시는 겁니까?"

결국 물어보게 된다.

손 감독은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어서 문표가 손 감독의 속내를 알고 있다는 것에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되돌아온 답변은 강호가 궁금하던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나도 감독님과 같아. 나도 팀을 우승시키는 것이 유일한 목표야. 정규 시즌 우승은 바라지도 않아. 내 목표는 5위로 올라가서라도 한국 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것. 그 전까지는 절대 은퇴하지 않을 생각이야."

문표는 뜨거운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운동을 시작한 상태였기에 더는 말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사실을 말하자면 문표에게서 느껴지는 낯선 느낌 때문에 말을 걸기가 망설여진다.

'문표 선배는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구나.'

강호는 문표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다는 생각을 가진다.

마냥 허술할 것 같았던 문표는 보이는 것보다는 많은 사연을 가진 사람이었다.

1, 2군을 오가며 이렇다 할 기록을 남기지도 못한 채 34살이나 되어버린 그였다.

구단에서 은퇴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손 감독님도 그래. 모두가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야구를 대하고 있는 거야. 나뿐만이 아니었어.

강호는 생각하게 된다.

야구가 주는 시련이 자신에만 국한된 줄만 알았다.

자신만큼 사연이 많은 야구인이 다시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두가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그라운드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승. 우승이라. 그러고 보면 한 번도 팀의 우승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구나. 나 하나 생존하기에도 바쁜 삶이었다.'

강호는 프로 야구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우승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담아본다.

이제 생존보다 더 원대한 목표를 가슴에 품을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모든 프로 선수들은 팀이 최정상에 서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동안의 나는 너무 개인적인 것에만 열중했는지도 몰라.'

강호는 이번 기회에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오랜 생각과 고뇌 속에 앞으로의 방향을 잡은 강호는 문표의 곁에 앉아 운동 기구를 든다.

"후우, 후, 후."

두 사람이 흘리는 땀방울과 열기가 넓은 짐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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