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9화 (29/335)

0029 / 0335 ----------------------------------------------

새로운 4번 타자

강호의 3루타에 자이언츠 벤치가 달아오른다.

비록 1회에 강호에게 쓰리런을 맞기는 했지만, 상대 투수의 구위는 나쁘지 않았다.

긁히는 날인 것인지 제구도 칼 같았고, 변화구의 무브번트도 일품이었다.

그런 까닭에 강호가 뽑아낸 3타점 이외에는 추가 득점을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강호가 혼자 다 해먹네."

누군가의 목소리에 손 감독이 고개를 돌린다.

시선을 돌린 곳에는 한참 뒤편에 떨어져 있던 김진관 3군 타격코치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칭찬을 하는 것인지 비난을 하는 것인지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왜? 다 해먹으면 안 되나? 그러니까 다른 선수들도 활약할 수 있게 타격 코치가 부지런히 지도를 했어야할 거 아냐?"

손 감독이 따져 묻는다.

김진관 코치의 발언은 손 감독의 노여움을 사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김 코치의 행동은 한정적이었다.

"소...송구스럽습니다."

김진관 코치는 자신의 실언을 사과하며 한 발짝 더 물러선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신기문 3군 수비코치가 혀를 찬다.

'이러다 선수들이 있는 자리까지 물러나시겠네.'

신 코치는 선수들이 앉은 벤치를 흘낏 바라보며 김 코치를 걱정한다.

코치진 중에서는 나이가 어린 편이면서도 연배가 비슷한 두 사람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올해로 76년생인 김진관 코치와 80년생인 신기문 코치는 세대가 비슷했기에 통하는 점이 많았다.

'김 코치님은 왜 강호를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걸까?'

신 코치는 의문이 들었다.

3군 수비코치로서 직접 지도한 강호는 좋은 선수였다.

수비 시의 자세도 남달랐고, 기본기도 탄탄한 선수다.

좋은 자질을 가지고 있음에도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신 코치는 강호의 노력과 재능을 인정하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타격 자질이 좋지 못하다는 말도 이해되지 않는다. 저렇게 맹타를 쳐내는 녀석이 타격 자질이 안 좋다니. 김 코치님이 잘못 보신 게 분명해.'

신 코치는 김진관 코치와 나누었던 예전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 때의 김 코치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강호를 거론하며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었다.

"강호 녀석은 지나치게 고평가 되어 있어. 최근 들어 좋은 활약을 해주고는 있지만, 강호의 본 실력이 아니야. 갑작스레 페이스가 올라왔을 뿐이야. 시즌이 시작되면 원래의 타율보다 떨어질 거야."

모두의 견해와 반대대는 김 코치의 말에 신 코치는 의문을 제기했었다.

강호의 타격을 육성군에서 직접 지도한 김 코치였기에 그의 생각이 궁금하기도 했다.

"스프링캠프 경기이기는 하지만, 강호는 4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하고 있어요. 오버페이스라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타격이 성장한 것일 수도 있잖습니까? 최근 들어 체중이 증가한 것이 원인일 수도 있구요."

신 코치의 반론이었다.

그러나 김 코치는 그 자리에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 강호 녀석에게 남아있는 잠재력 같은 것은 없었어. 내가 직접 확인한 사실이야. 녀석이 무슨 수로 맹타를 휘두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계속되지는 않을 거야."

김 코치의 말이었다.

그 때의 그는 강호의 페이스가 급속도로 떨어질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나름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던 신 코치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고개를 내젓게 된다.

'김 코치님의 생각은 틀린 거야. 지금의 타격도 나쁘지 않았고, 특히 강호의 1회 때 홈런은 운으로 때려낸 것이 아니었어.'

신 코치는 강호를 평가하며 생각을 가져본다.

김 코치가 팀의 주축이 될 지도 모르는 강호를 멀리하려 한다면 자신은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할 것인가.

"이번 3루타는 타격도 좋았지만, 발로 만들어낸 장타야. 강호 녀석. 매 타석마다 기대하게 만드는구만."

그 때, 손 감독의 호탕한 목소리가 이목을 끈다.

강호의 타격에 만족하며 웃어보이는 손 감독.

신 코치는 그런 손 감독을 살피고는 결론을 내린다.

'김진관 코치와 거리를 두도록 하자. 그와 어울리다보면 나까지 손 감독님의 눈 밖에 날 수도 있겠어.'

신 코치는 선수 벤치 쪽으로 다가붙은 김 코치에게서 한 발짝 물러선다.

이제 그는 식사를 함께할 파트너로 김 코치가 아닌 다른 코치와 친해지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한 편, 신 코치가 김 코치와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있을 때 근처에 있던 양용민 코치가 입을 열고 있었다.

"그나저나 말입니다. 강호가 1회 때 홈런을 기록했잖습니까?"

"그렇지. 좋은 홈런이었지."

양 코치의 말을 받은 것은 손 감독이었다.

그는 1회 때 강호가 때린 홈런을 떠올려보며 기분 좋게 웃음 지었다.

그런 손 감독에게 양 코치가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을 잇는다.

"지금은 3루타를 때려냈으니 이제 2루타와 안타 하나만 더 기록한다면 사이클링히트입니다. 이러다가 강호 녀석이 사이클링을 기록하는 거 아닐까요?"

양 코치의 말에 손 감독이 이채를 띈다.

사이클링히트는 야구 경기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기록이었다.

한 경기 동안 한 타자가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을 모두 기록해야하기 때문이다.

한 경기에서 타자가 4안타를 때리는 것도 힘든 일인데 모든 안타를 종류별로 때려내야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나 어려운 이유는 3루타에 있었다.

'중, 장거리 타자들 대부분이 3루타의 개수보다 홈런 개수가 많은 것이 일반적이다. 홈런은 장타 능력만 있으면 기록할 수 있지만, 3루타는 발이 빨라야 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지. 그런데 강호 녀석은 이미 홈런과 3루타를 모두 기록한 상태야. 양 코치의 말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닌 거야.'

손 감독 역시 강호의 사이클링히트 가능성을 높게 보았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이내 흩어지고 만다.

따악!

5번 타순으로 나선 황인태가 강호에 이어서 장타를 때려낸 것이다.

중견수와 좌익수 사이를 가르는 안타가 펜스로 향했다.

인태의 장타력이 낮다는 점에 근거해서 전진 수비를 펼치고 있던 히어로즈 외야수들은 잡을 수 없는 코스였다.

"어! 이거 또 3루타가 나오겠는데요?"

"인태도 발이 빠른 편이니까 충분히 가능합니다. 연 타석 3루타가 터지다뇨. 대단한 타격입니다!"

코치들의 말대로 인태는 외야수들이 볼을 잡는 사이에 2루 베이스를 밟고 3루로 향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3루타를 예상했던 인태는 레그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어렵지 않게 3루에 안착할 수 있었다.

공은 한 템포 느리게 3루수에게 전달되었다.

"세이프."

인태의 3루타에 천천히 홈으로 들어오던 강호는 인태의 3루타가 확정되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덕 아웃으로 들어갔다.

"잘 했어. 강호! 주루 플레이가 좋았어."

"4번 타자가 되니까 펄펄 날아다니는데? 오늘의 MVP야."

덕 아웃으로 들어서는 강호에게 코치들이 칭찬과 격려의 말을 건넨다.

손 감독 역시 흐뭇한 표정으로 강호와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잘 했어. 오늘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교체하지 않을 테니 마음껏 때려내 봐!"

"네, 감사합니다. 감독님."

손 감독의 말에 강호는 감사를 표시했다.

강호 역시 3루타를 때려냄과 동시에 사이클링히트의 가능성을 염두 해두고 있었다.

그러나 스프링캠프 경기 특성상 백업 멤버와 교체될 수 있었기에 그 점을 걱정 중이었다.

'좋아. 감독님께서 저렇게 말씀하셨으니 오늘 경기에서 교체될 일은 없겠구나. 이로써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강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1회 때의 홈런처럼 강호의 사이클링히트는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타격 아이템 중에 1개의 2루타와 5개의 안타가 남아있는 상황이다.

한 경기에 사용가능한 일회용 아이템 사용 제한 4회 중, 2회를 사용한 상태.

아직 2개의 아이템을 쓸 수가 있는 것이다.

'처음으로 등록된 4번 타순에서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한다면 코칭스태프는 어떻게 반응을 할까? 나를 그저 임시 4번 타자로만 여길 것인가?'

강호는 스스로의 질문에 고개를 젓는다.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였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4번 자리에 서자마자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하는 타자에게 다른 타순으로 이동하자고 말할 수는 없다.

적어도 4번 타순에서 몇 번의 경기에 더 출전시킬 것은 분명한 일.

정상적인 경우라면 강호가 잔여 경기에서 4번 타순으로 기용될 가능성은 무척이나 높아졌다.

하지만 변수가 남아 있었다.

'오늘로써 스프링캠프 경기는 종료된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8일부터 시작되는 시범경기에 합류해야 할 거야.'

시범 경기는 1군 선수들이 주가 되어 펼치는 경기였다.

엔트리에 관계없이 2군에 등록된 선수들도 참여가 가능했지만, 아무래도 시즌 개막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2군 선수보다는 1군 선수들에게 시선이 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강호이지만, 1군 선수들을 제치고 시범경기의 4번 타자가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도 1군 코칭스태프에게 나를 각인시킬 수는 있을 거야. 스프링캠프의 기록은 1군 감독인 한동현 감독에게도 전달된다. 2군 경기에서 4번에 기용되어 사이클링히트를 친 타자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거야.'

생각을 정리한 강호는 마음을 먹는다.

오늘 자신의 기록을 사이클링히트로 마무리하기로 말이다.

"여어, 강호! 3루타를 치다니. 대단한데?"

벤치에 앉아있던 문표가 강호를 반긴다.

그는 강호가 발로 만든 3루타에 대해 거론하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그 상황이었으면 2루타에 만족했을 거야. 강호나 되니까 3루까지 달린 거지."

문표의 찬사에 곁에 있던 루키 하나가 입을 연다.

그는 이미 문표의 사람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문표를 칭찬하는 말로 서두를 연다.

"문표 선배님도 발이 빠르시잖습니까?"

자신을 띄워주는 루키의 말에 문표가 피식 웃으며 설명을 해준다.

"그렇긴 하지만, 발만 빠르다고 해서 3루타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냐. 상황이 되어야지. 조금 전에 강호가 만든 3루타는 2루타 상황을 자신의 발로 3루까지 얻어낸 거야."

"그런데 인태 선배도 3루타를 쳤잖습니까? 그거와는 다른 겁니까?"

"물론 다르지, 임마. 인태가 친 안타는 누가 봐도 3루타 코스였고, 강호가 진 안타는 누가 봐도 2루타잖아. 주루코치가 시그널을 주긴 했지만, 강호가 처음부터 전력질주를 했으니까 3루에 갈 수 있었던 거야. 너희들도 잘 기억해 둬. 타자는 타격을 하고 1루로 달리는 순간 주자가 된다. 남들에 비해 한 걸음이라도 더 가려고 애쓰다보면 2루타를 3루타로 만들어낼 수도 있는 거야."

"네, 명심하겠습니다."

문표의 가르침에 루키들은 눈을 빛낸다.

이번에는 강호가 듣기에도 교훈이 되는 내용이어서 강호 역시 문표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이어진 문표의 말을 듣고는 귀를 닫고 만다.

"그리고 야구 선수의 주력은 허벅지에서 비롯된다. 순간적인 가속을 발휘하려면 허벅지를 키워야 한다는 말이지. 그리고 말이야. 허벅지가 또 어디에 쓰이는지 알아?"

"어디에 쓰입니까?"

자신의 말에 곧장 물어오는 루키의 질문에 문표는 진득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의 미소는 마치 미끼를 문 물고기에게 짓는 낚시꾼의 웃음과도 같아보였다.

"밤에 쓰인다."

"밤....말입니까?"

"그래, 밤! 정력 말이야. 남자의 허벅지는 곧 정력을 의미한다. 내가 이런 말까지 안하려고 했는데 남녀 관계에서 정력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말이다...."

다시금 일장 연설을 시작하는 문표.

이번의 연설은 농도 짙은 음담패설이었기에 루키들뿐만 아니라 주변에 앉아있던 선수들도 관심을 가지고 하나둘씩 모여든다.

그들 역시 남자였던 것이다.

'하여튼 이상한 선배야.'

강호는 몰려드는 고참 선수들에게 자리를 비켜주며 벤치에서 일어선다.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지금은 오직 야구만 생각하자.'

강호의 머릿속에는 온통 야구뿐이었다.

============================ 작품 후기 ============================

두카트님이 지적대로 26편, 27편에 설정상의 착오가 있었습니다.

기존 2루수 황인태의 부상으로 6일간 오진만이 2루수를 맡았는데 황인태가 돌아왔음에도 오진만을 2루수 포지션에 넣는 착오를 범했네요.

이에 26,27회를 약간 수정했습니다.

황인태가 2루수로 들어감에 따라 6번 타순으로 배치되게 된 오진만은 지명타자가 되었습니다.

좀 더 섬세하게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7월 17일과 18일, 양 일간은 3편 연재를 할 생각입니다.

오늘을 기점으로 하루 2편, 자정 연재를 원칙으로 하며 가끔 비축분이 발생할 때마다 공지와 함께 연재 분량을 늘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독자님들의 성원이 힘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_^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