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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4번 타자

강호는 뜨거운 시선으로 마운드 위에 오른 투수를 노려본다.

타격의 결과가 결정되었는데 겁날 것이 있겠는가.

상대 투수를 집어삼킬 듯이 응시한다.

'뭐야? 비쩍 마른 놈이 꼴에 4번 타자라 이건가? 체격을 봐서는 영락없는 똑딱이인데. 네가 어떤 타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던지는 공은 어쩔 수 없을 거다.'

히어로즈의 투수는 강호의 눈빛에 감정이 들끓었다.

그래서 몸 쪽 슬라이더를 요구하는 포수의 사인을 무시하기로 한다.

초구부터 전력투구로 기를 죽이려는 것이다.

휘익.

전력 투구를 위한 와인드업 이후, 공이 투수의 손에서 떠난다.

주자가 1, 2루 상황임에도 와인드업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강력한 공을 던지겠다는 의지 표명이기도 했다.

'네가 무슨 짓을 해도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다!'

강호는 자신의 기를 죽여보려는 상대팀 투수에게 속으로 비웃음을 흘린다.

그와 함께 한껏 당겼던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맞는 순간 장타인 것을 직감하게 만드는 강렬한 타격이었다.

"잘 맞았어!"

"넘어간다."

"저건 누가 봐도 넘어갔어. 홈런이야!"

자이언츠의 덕 아웃이 술렁거린다.

누구도 강호의 홈런을 기대하지는 않았었다.

통산 2군 경기의 홈런이 3개밖에 없는 타자가 홈런을 칠 것을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그래도 강호의 타격 페이스가 좋은 상태여서 안타를 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가진 이들은 많았다.

"홈런이라니!"

감독 자리에 앉아있던 손 감독이 벌떡 일어섰다.

불끈 쥔 주먹이 그의 심경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누구보다도 강호의 활약을 기대하던 손 감독.

그의 기대를 충족하는 쓰리런 홈런이 1회 말부터 터진 것이다.

다름 아닌 강호에게서였다.

"여~강호! 대박인데?"

"잘 받아쳤다. 그걸 넘겨버리네."

"잘 했다. 잘 했어. 덕분에 쉽게 한 번 가보자!"

홈을 통과한 강호에게 코칭스태프의 찬사가 쏟아진다.

강호는 그들과 일일이 손뼉을 마주치며 덕 아웃으로 들어섰다.

"잘 했다. 강호!"

손 감독은 별 다른 말없이 잘 했다라는 말만을 건넨다.

강호는 그 짧은 칭찬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숙인다.

"네!"

강호의 대답 역시 짧았다.

기나긴 말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결과로 보여줬으니 그것으로 족하다고 여긴다.

"이 녀석, 이게 다 내 덕분이야. 내가 몸에 맞는 볼로 출루를 해준 덕분에 강호 후배가 쓰리런을 친 거라고."

함께 덕 아웃으로 들어온 문표가 벤치에 앉으며 공치사를 한다.

강호는 그런 문표에게 요식행위나마 고맙다고 말하며 음료수를 건넸다.

"다들 보고 있는 거냐? 너희들도 내게 잘 하도록 해. 강호가 1군으로 올라가고 너희 중 한 명이 4번 자리에 오르게 되면 상황 봐서 서포트를 잘 해줄 테니 말이야."

문표가 루키들을 향해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강호는 문표와 루키들과는 동떨어진 자세로 눈을 감는다.

'배트에 공이 걸렸을 때의 감각에 집중하도록 하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강호는 홈런을 때려낼 때의 감각을 떠올려보려 애썼다.

너무도 완벽한 홈런이었다.

상대 투수의 강한 구위를 완전히 이겨내는 라인드라이브 성 홈런은 강호로서는 처음 때려내본 것이다.

그렇기에 그 감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아이템을 써서 때려낸 홈런이라고 해도 좋아. 그런 홈런을 칠 수 있는 감각을 내 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타격 능력을 월등히 발전시킬 수 있어!'

강호는 지금의 상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 어떤 코치의 지도보다도 실감나는 경험일 것이다.

아이템을 사용한 것이지만, 본인이 쥔 배트로 때려낸 홈런이다.

그 때의 상황과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 저절로 움직여진 몸의 회전들이 고스란히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프랑코 코치가 지도해준 타격 폼보다 월등한 배트 스윙이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완벽한 스윙이었어.'

강호는 손에 남은 감각을 되새기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이어 간다.

시스템이 선사해준 타격 감각은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3회 말에 다시 오른 타석 기회.

1사 상황에 주자가 없었기 때문에 타격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고 타격에 나선다.

상대 투수는 바뀌지 않은 채 여전히 선발 투수가 던지고 있었다.

'솔직히 인정한다. 백강호라는 타자를 지나치게 얕보고 말았어. 하지만 지금은 다를 거다. 필요하다면 볼넷을 내줄 각오로 유인구 승부를 해주겠어.'

히어로즈의 선발 투수는 생각을 정리한 채 로킹 모션에 들어섰다.

1회에 실투를 인정한 채 강호를 제대로 상대할 마음을 먹은 것이다.

'투수의 눈빛이 바뀌었다. 1회 말의 홈런 때문에 나를 경계하는 것이겠지.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구나.'

강호는 상대 투수의 눈빛에서 상황을 예측해 본다.

초구부터 유인구가 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강호의 예측은 확신이 되었다.

"볼 원."

주심이 볼을 선언했다.

투수의 공은 스트라이크 존에서 시작해 홈플레이트를 찍고 흐르는 커브볼이었다.

히어로즈의 포수도 잡지 못할 정도로 터무니없는 볼이다.

강호는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초구를 흘려보냈다.

'좋은 공을 주지 않겠다는 뜻이구나. 유인구 승부를 벌이다가 여의치 않으면 볼넷을 주겠다는 거야.'

강호는 초구에 상대 배터리의 의도를 파악했다.

그래서 일부러 배트를 느슨하게 쥐었다.

방망이를 느슨하게 걸쳐 맨 채로 2구를 지켜본다.

'이것 봐라?'

그러자 상대 투수가 인상을 찡그린다.

대놓고 볼넷을 얻어 나가겠다는 강호의 자세에서 자존심이 상한다.

'현혹되지 말고, 바깥쪽 체인지업. 말 들어라. 바깥쪽으로 빼!'

투수의 감정이 상하자 히어로즈의 포수가 얼른 오른 손으로 신호를 주며 시그널을 보냈다.

그 모습에 다시금 평정심을 찾는 히어로즈의 선발 투수.

혀를 차면서도 와인드업 자세를 취한다.

"볼 투."

주심이 연달아 볼을 선언한다.

이번 공은 속구였지만, 코스가 완전히 빠져버렸다.

타격을 했으면 파울로도 만들기 힘든 볼이었다.

'이 정도면 고의 사구나 마찬가지잖아. 좋아. 받아들이겠어.'

강호는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강호의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상대 투수가 자신에 비해 선배였다면 무표정으로 일관했겠지만, 상대 투수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신인 투수였다.

타석에서 웃는다고 해서 대놓고 따질 입장이 아닌 것이다.

'웃어?'

그런데 상대 투수는 강호의 미소에 기분이 완전히 상해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고의사구와 비슷한 코스 선택에 자존심이 상한 상태인데 상대 타자에게 무시를 당한 것 같은 느낌에 눈이 뒤집혀 버렸다.

'그래. 좋아. 계속 그렇게 허술한 타격 폼으로 서 있어 봐! 삼진을 잡아줄 테니까.'

투수는 이를 악문다.

포수의 3구 사인은 몸 쪽 떨어지는 체인지업이었다.

하지만 그 사인대로 던질 생각을 버린다.

'체인지업이라고? 그래. 체인지업을 던져 주겠어. 하지만 가운데로 꽂아주지. 구종만 사인대로 던진다면 준성 선배도 크게 뭐라 하지는 않을 거야.'

투수는 포수인 허준성의 사인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공을 던진다.

그가 던진 공은 가슴 어림에서 시작해서 스트라이크 존 한 가운데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이었다.

"스트라이크!"

주심이 이번에는 스트라이크를 선언한다.

강호가 보기에도 확실하게 들어온 스트라이크였다.

카운트가 2볼 1스트라이크가 된 상황에서 상황을 깨닫게 된다.

'기분이 상했다는 거냐? 나와 상대를 하겠다는 것이지? 좋아, 처음부터 그렇게 나왔어야지.'

강호는 상대 투수의 도발에 응하기로 한다.

느슨하게 쥐었던 배트를 다시 쥐고, 타격 폼을 갖춘다.

그런데 그의 타격 폼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타격 폼 수정을 직접 지도했던 프랑코 코치만이 발견할 수 있는 약간의 변동일 것이다.

'왜 저런 자세 변화를? 혹시 어퍼 스윙을 하겠다는 것인가? 그러고 보니 1회에 쓰리런을 칠 때도 어퍼 스윙에 가까운 풀 스윙을 했었다. 강호,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팔짱을 낀 채 경기를 지켜보던 프랑코 코치는 강호의 변화에 의문이 든다.

1회의 홈런은 너무나도 완벽한 스윙으로 만들어낸 홈런이었다.

자신이 직접 지도한 강호가 친 것이 맞나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강호가 또 다시 타격 자세에 변화를 주자 프랑코 코치도 어떠한 예감이 들게 된다.

'감이 왔구나.'

단순한 결론을 내리는 프랑코 코치.

매일 한 시간을 함께 했던 강호의 집념이라면 타석에서 느낀 즉각적인 감각에 타격폼을 수정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의 오해 속에서 강호의 타격은 이어진다.

따악!

공을 때리는 타격 음이 타석을 가득 채운다.

4구는 슬라이더였다.

우타자인 강호의 몸 쪽으로 향하다 스트라이크 존을 걸치는 백 도어 슬라이더였다.

강호는 위협적인 백 도어 슬라이더에도 아랑곳없이 빠르게 스윙을 한 것이었다.

'배트 타이밍이 늦었어!'

스윙을 하는 순간, 배트 타이밍이 늦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강호였지만 주루에 최선을 다한다.

파울 라인에 걸친 채로 뻗어져 나가는 타구가 인플레이로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 보였기 때문이다.

1루수가 몸을 날린다면 붙잡을 수도 있어 보였기에 땅볼 아웃이 예상되는 타구였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아!"

"빠졌어!"

1루를 향해 달리던 강호에게 덕 아웃에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타이밍이 늦어 그라운드 볼이 되기는 했지만, 타구의 속도가 빨라 1루수의 글러브를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가는 안타가 만들어진 것이다.

안타 코스는 1루수와 파울 라인 사이를 지나치는 페어였다.

"그라운드 인!"

1루심의 안타 시그널을 확인하는 순간 강호는 속도를 높인다.

타격이 좋지 못할 때도 수비와 주루 능력만큼은 인정받고 있던 강호다.

시스템으로 수치화된 강호의 주력은 72.

이 정도 코스라면 가뿐하게 2루까지 진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코스가 좋아. 우익수가 정위치보다 약간이나마 중견수 쪽에 가깝게 자리하고 있었다. 3루까지 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강호는 욕심을 낸다.

코스가 우익 선상이었다.

3루와는 가장 거리가 먼 외야 방향이었으니 3루까지 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갈 수 있다!'

1루 베이스를 밟고 지나가며 강호는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시선은 3루 쪽에 위치한 주루코치를 향한다.

"돌아, 돌아!"

강호의 발이 2루에 거의 도달했을 때도 주루코치는 오른팔을 크게 돌리고 있었다.

'좋아. 3루타를 만들어 보는 거야.'

2루를 밟고 지난 강호는 숨이 차는 것이 느껴졌지만, 스피드를 줄이지는 않는다.

허벅지와 장단지가 당겨온다.

이렇게 급속도로 근육에 피로가 오는 상황이라면 레그 퍼스트 슬라이딩보다는 달려가는 자세 그대로 엎어지며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 사이 공을 잡은 우익수가 곧장 2루수를 향해 공을 던진다.

"3루!"

근처에 있던 히어로즈 유격수가 3루 콜을 외쳤고, 공을 받은 2루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3루를 향해 중계플레이를 펼친다.

파악.

슬라이딩을 시작한 강호와 2루수의 손을 떠난 공이 거의 같은 타이밍에 3루로 향한다.

강호는 3루 베이스에 손이 닿는 직후에 자신의 등을 태그하는 손길을 느꼈고, 3루심의 콜을 듣기도 전에 세이프 상황임을 확신했다.

"세이프!"

3루심의 세이프 선언에 강호가 엎어져 있던 자세에서 펄쩍 뛰어 오르며 주먹을 들어 올린다.

"나이스 플레이! 아주 잘했어!"

환한 표정으로 다가온 주루코치와 주먹을 마주치며 강호는 스스로 만든 3루타에 환호한다.

스프링캠프가 시작된 이후로 강호가 자력으로 만든 첫 3루타가 기록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