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7화 (27/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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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4번 타자

만약 강호가 손 감독의 생각을 알았다면. 오해라고, 모두가 착각이라고 손사레를 쳤을 것이다.

왜냐하면 조금 전의 파인 플레이는 강호의 실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하나 남은 호수비를 사용해 버렸어. 이제는 내 본연의 수비 실력으로 막아야 해.'

강호는 3루수가 연습 송구한 공을 받으며 공을 투수에게 던진다.

그러자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주민한이 글러브로 공을 받는 것과 동시에 감사를 표시한다.

'누가 봐도 안타였어. 느린 타구도 아니었는데 전진 수비로 맨손 캐치를 해내다니. 송구도 너무 깔끔했다. 강호 선배의 수비는 2군 수준이 아니야. 아니 국내 수준이 아니야. 메이저리그에서나 볼 수 있는 수비였어.'

강호가 던진 공을 받은 주민한의 생각이었다.

그는 공을 받은 글러브를 강호에게 뻗으며 호수비에 대한 찬사를 보낸다.

'그렇게 고마워할 필요 없어. 내 실력이 아니야. 아이템을 썼을 뿐이니까.'

강호는 속내와는 다르게 민한의 감사를 받아들인다.

야수들은 마운드에 오른 투수를 편하게 해줄 의무가 있었다.

상대팀 타자 아홉 명을 홀로 상대해야하는 투수의 편을 들어주는 것은 같은 팀 야수들이어야 했다.

그 중 유격수인 강호의 역할은 컸다.

'역시 강호 선배라고 해야 하나? 수비 실력만큼은 대단해. 솔직히 인정한다. 내 수비 실력이 강호 선배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한 편, 벤치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던 오진만이 눈을 부릅뜬다.

처음 강호에게 유격수 자리를 뺏겼을 때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실망했고, 분노했고, 인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강호라는 선수를 인정하게 된다.

'강호 선배는 손 감독님이 4번 타순에 둘 정도로 타격 능력을 인정받았어. 하지만 말이야. 내게는 강호 선배가 가지지 못한 장타 능력이 있어. 강호 선배는 스프링캠프 경기 동안 하나의 홈런도 기록하지 못했다.'

투수인 주민한이 두 번째 타자를 맞아 투구를 준비하자 진만은 상념을 흘려버리고 민한의 투구에 집중한다.

야수로 출전하지 않은 그였기에 수비 상황에서는 지켜보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다.

진만은 오늘 지명타자로서 5번 타순에 배치된 상태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안 되는 것은 포기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겠어. 나는 강호 선배가 가지지 못한 장타력을 가졌으니까. 내가 가진 장점을 발휘하면 되는 거야.'

진만은 생각을 고쳐먹는다.

강호를 향한 억눌린 질투심은 이제 스스로를 향한 자각으로 이어졌다.

오진만의 야구가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따악.

두 번째 타자에게 던진 초구가 타격으로 이어진다.

우타자가 밀어친 타구는 빠르게 날아갔지만, 반응이 빨랐던 2루수 황인태의 글러브에 빨려든다.

"아웃!"

초구를 노려 친 상대 타자의 노림수가 악수로 끝난 것이다.

연이은 호수비로 아웃카운트를 잡은 민한의 표정이 달라진다.

조금은 긴장했었던 경직된 얼굴에 여유가 감돌기 시작한다.

'우리 팀의 내야 수비는 강하구나. 고등학교 시절과는 딴판이다.'

민한은 생각한다.

고교 시절, 청룡기 대회나 전국 대회에서 번번이 좌절했던 이유.

야수들의 수비 지원을 받지 못했기에 완투를 하고도 패배하던 경기가 많았었다.

그로 인해 야수들의 수비에 대한 신뢰를 가지지 못해 삼진을 잡아야 한다는 트라우마가 자리 잡게 되었다.

덕분에 삼진이 눈에 띄게 늘기는 했지만, 고교 막바지에는 소화 이닝 수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단점이 생겨나고 말았다.

구동진 투수코치가 걱정하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민한이가 야수들의 수비에 안정감을 찾고 있다. 얼굴에 감돌던 긴장감이 사라졌어.'

덕 아웃에서 민한의 표정 변화를 확인한 구 코치가 안도한다.

항상 걱정이었던 민한의 최대 단점이 내야수들의 호수비로 가려지고 있었다.

상대팀 테이블 세터들을 범타로 처리하며 던진 공은 겨우 4개.

투구 수에 비해 지나치게 적은 소화 이닝 수가 문제로 지적받던 민한에게는 기대하지 못한 장면이었다.

'손 감독님은 이런 것까지 예상을 하셨을까?'

문득 구 코치의 시선이 팔짱을 낀 채로 경기를 지켜보는 손 감독에게로 향한다.

그러나 짐작할 수 없다.

감독의 자리가 모든 것을 예측해야하는 자리이기는 하지만, 감독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고 여겨진다.

'내가 알기로 민한이의 최대 장점은 삼진을 잡아내는 능력이야. 한 번 보여줘 봐라. 상대 타자를 압도하는 모습을.'

강호는 세 번째 타자를 응시하는 민한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민한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삼진을 잡아내는 능력이 뛰어나는 것은 잘 안다.

'빠른 포심으로 카운트를 잡고, 결정구로 포크볼을 쓴다고 했었지. 가끔은 포심으로만 아웃카운트를 잡기도 하고 말이야. 저 정도 구속과 구위라면 불가능도 아니야.'

강호는 민한의 삼진을 기대했다.

민한이 지나치게 정면승부만 고집하지 않는다면 포크볼로 삼진을 잡는 시나리오는 쉽게 예측 가능했다.

안정감을 찾은 민한은 실제로 그것을 가능케 만들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3번 째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민한은 당당하게 덕 아웃으로 걸어 들어간다.

강호는 그런 민한을 지나쳐 덕 아웃으로 뛰어들었다.

타순이 4번으로 변경되었으니 1회 부터 타격 준비를 해야만 했다.

"강호 후배. 이 몸이 너한테까지 기회를 연결시켜 줄테니 잘 준비해두도록 해."

"네?"

강호는 자신의 헬멧과 배트를 챙기다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문표였다.

그가 또 무슨 소리를 할 지 의문인 표정으로 바라본다.

"강호 후배가 4번 타순에 자리 잡은 첫 날인데 이 선배님께서 그냥 지나칠 수가 있나? 내가 너를 위해서 득점권 찬스를 만들어주마."

문표는 대단한 인심을 쓴다는 표정으로 강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배트를 어깨에 걸쳐 멘 자세 하나만큼은 강타자의 풍모를 느끼게 한다.

"1, 2번이 출루를 못하면 선배님께서 2루타라도 치시겠다는 말입니까?"

강호가 문표의 말을 받아 물었다.

3번 타순인 문표가 강호에게 득점권 찬스를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2루에 주자가 있어야 한다.

만약 1, 2번 타자가 출루를 하지 못한다면 문표는 2루타를 쳐야 만이 강호에게 득점 찬스가 주어지는 것이다.

"택근이는 모르겠지만, 성철이가 타격감이 좋으니 출루를 해주겠지. 그렇게 되면 내가 안타를 치든 볼넷으로 걸어 나가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철이를 2루로 진루시켜보마."

문표의 말에 강호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결국 1번 타자인 유성철에게 기대해야 한다는 것 아닌가.

"강호 후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어. 하지만 내가 장타 욕심을 버리고 강호 후배를 위해서 단타를 노리고 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볼넷으로 걸어 나갈 마음도 있고 말이야. 아~ 이 최문표가 볼넷으로 걸어 나갈 생각을 하다니. 강호 후배는 선배 잘 둔지 알라고."

문표의 마지막 말에 강호는 결국 웃음을 짓게 된다.

본인의 말대로 문표는 공을 끝까지 보는 타자는 아니었다.

선구안이 좋은 편이긴 하지만, 굳이 볼넷으로 걸어 나가는 유형의 타자는 아닌 것이다.

'문표 선배의 장점은 컨택과 장타력 모두에 있다. 선구안도 좋지만 볼넷으로 걸어 나가는 성격은 아니야. 그런데 내게 기회를 주기 위해 본인의 타율을 양보하겠다는 말이구나.'

문표의 의도를 파악한 강호가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문표를 바라본다.

그러자 쑥스러워진 것인지 문표는 배트를 들고 대기 타석으로 먼저 이동했다.

따악.

안타가 나왔다.

1번 타자인 유성철이 깔끔한 좌전 안타를 기록하며 1루로 출루한 것이다.

'요즘 들어 성철 선배의 타격에 물이 올랐구나. 1군에 올라간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많이 경직되어 있더니. 이제는 플레이에 거침이 없어.'

강호는 배트를 휘둘러보며 힐끗 1루에 시선을 둔다.

성철은 확실한 1군행을 위해 고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독한 의지가 다른 이들에게 보여 질 정도였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2번 타순으로 들어선 택근이 루킹 삼진을 당하고 만다.

며칠 만에 들어선 타석이라 적응이 어려웠던 모양이다.

상대팀 투수의 5구째에 삼진을 당하고 말았다.

이제는 3번 타자인 문표의 차례, 그는 타석에 들어서기 전 대기 타석에 있는 강호에게 윙크를 해온다.

마치 '잘 지켜봐. 약속한 건 지킬 테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는 행동이 경박한 면이 있지만, 문표 선배는 좋은 사람인 것 같다.'

강호는 문표의 됨됨이를 인정하며 그의 타석을 지켜본다.

상대팀 투수의 투구에 배팅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서는 강호 역시 지금의 타석을 관찰해야만 했다.

터억.

초구는 볼이었다.

문표는 신중한 자세로 끝까지 볼을 지켜본다.

이어진 2구도 신중한 자세로 지켜본 결과 투 볼의 상황.

볼넷으로라도 걸어 나가겠다는 말을 지키려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의 의도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뻐억.

상대팀 투수가 던진 3구가 문표의 엉덩이를 강타한 것이다.

"아이고! 노친네 잡을 일 있나? 엄청 아프네!"

문표는 엉덩이를 감싸 쥐고 신음한다.

"괜찮아?"

만약을 대비해 달려 나온 주심의 목소리에 괜찮다고 대답해준 뒤 문표는 1루로 걸음을 뗀다.

그가 의도한 대로 볼넷이나 안타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출루에 성공해 1루 주자를 2루로 진루시키는 모습이다.

문표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1루로 뛰어나가다 타석에 들어서던 강호와 잠시 시선이 마주친다.

‘봤냐? 맞아서 나가는 거지만 약속은 지켰다고!’

문표는 볼에 맞은 엉덩이의 통증이 심한 와중에도 한쪽 눈을 찡긋하며 목표를 완수했음을 알린다.

그의 표정이 유쾌하게 느껴진다.

‘하여튼 이상한 선배라니까.’

강호는 속으로 피식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득점권 찬스가 만들어 졌으니 문표로 인해 느슨해진 마음을 다 잡아야 했다.

그렇기에 눈빛을 달리하고, 정신을 집중한다.

'찬스가 왔다. 그것도 1회 부터 말이야.'

강호는 배트를 휘둘러보며 타석에 들어섰다.

문표의 말대로 찬스가 주어졌다.

이제는 자신이 보여줄 차례였다.

'길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4번 타자로서 오른 첫 타석이다. 그리고 득점권 기회가 주어졌어. 평소에 바라던 상황이잖아.'

강호는 생각을 멈춘다.

그리고는 시야에 뜬 시스템의 메시지에 초점을 맞춘다.

-득점권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강호는 곧장 결정을 내렸다.

1번 타자인 성철이 안타를 쳐내기는 했지만, 상대팀 선발의 구위는 보통이 아니었다.

정상적인 타격을 해도 안타를 만들어내기는 어려운 상황.

득점권 찬스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이템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오늘 경기에서 두 번째 아이템 사용이구나. 1회부터 절반을 쏟아 붓는 셈이야.'

속으로 계산을 해본다.

이번 경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잔여 아이템 개수를 생각해 본다.

한 경기에서 사용 가능한 일회용 아이템의 개수는 총 4개.

이번 타석 찬스에서 하나를 사용하게 되면 이제 남은 이닝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개수는 2개로 줄어든다.

‘그래도 써야겠지. 손 감독님이 기대하시는 4번 타자로서의 모습을 이번 타석에서 보여 드리도록 하자.’

강호는 이번 타석에서 사용할 아이템을 결정하고는 시스템에게 신호를 보낸다.

-아이템 홈런(일회용)을 사용합니다.

시스템은 강호의 결정이 접수됨을 알렸다.

강호의 타격이 홈런으로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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