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5화 (25/335)

0025 / 0335 ----------------------------------------------

새로운 4번 타자

강호는 각오가 남달랐다.

오늘로서 4번 타자로 타석에 서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가 설 수 있는 대만 스프링캠프의 마지막 경기이기 때문이다.

날짜는 3월 2일. 총 13게임을 치룬 대만 스프링캠프 경기의 마지막 경기를 치루는 날이었다.

대만에 전지 훈련장을 차린 모든 2군 팀들은 내일이 되는 대로 짐을 싼 후 3월 8일에 있을 시범 경기 일정에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다.

"오오, 인태! 라인업에 올라가 있는 거 봤어. 몸은 괜찮은 거냐?"

강호는 근처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그곳에는 부상에서 회복되어 선발 라인업에 포함된 2루수 황인태의 모습과 그에게 말을 거는 최문표의 모습이 함께하고 있었다.

2루수 황인태는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허벅지 쪽의 부상을 입고 6일 동안 출전 명단에서 제외되었었다.

다행히도 빠르게 몸을 수습해서 마지막 경기에 합류할 수 있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강호는 인태의 합류에 기뻐했다.

그 날 같은 투수에게 몸에 맞는 볼을 기록하기도 했고, 오늘 강호의 포지션이 변동되며 유격수 자리로 이동한 까닭도 있었다.

아무래도 최근 2루수 자리에 옮겨진 진만이보다는 호흡을 함께 맞췄었던 인태가 편한 면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강호가 유격수잖아? 과거의 키스톤콤비가 뭉쳤구만. 잘들 부탁한다."

문표가 강호에게도 손짓을 하며 대화에 합류할 것을 종용했다.

그가 이렇게 두 사람에게 친근하게 구는 이유.

오늘 문표도 수비 포지션에 나서기 때문이었다.

그의 수비 포지션은 서학수 수비코치와 함께 훈련을 하던 1루수자리였다.

지명타자로 뛰기 전에 문표가 자리했던 포지션이기도 했다.

"송구할 때 웬만하면 땅볼로 깔지 말고 글러브로 직행해 주기를 바란다. 오랜만에 1루수를 보는 거라서 말이야. 둘 다 알겠지. 그러고 보니 정혁이 한테도 부탁을 해놔야 하는데. 정혁이 아직 안 나왔나?"

두 사람에게 당부하던 문표는 3루 선발로 이름을 올린 추정혁을 찾아서 자리를 뜬다.

강호는 그런 문표를 어이없이 바라보았다.

'하여튼 이상한 선배라니까. 대체 손 감독님은 무슨 생각으로 문표 선배를 야수로 기용하시는 거야? 아무리 1군으로 올릴 준비를 하더라도 지명타자로 올리면 안되는 건가? 문표 선배의 장타 능력이면 지타로도 1군에 올라갈 수 있을 텐데.'

강호는 문표에게서 시선을 뗀 후 생각을 접는다.

손 감독의 생각에 의혹을 품어보지만, 당사자가 아닌 이상 알 수 없는 일이다.

괜한 일에 신경을 쓰기에는 오늘의 경기가 의미하는 바가 컸다.

'스프링캠프 성적을 마무리하는 경기다. 거기에 4번 타순에 배치된 것도 모자라 유격수 포지션으로 이동까지 했다. 보통의 선수라면 부담감에 실수를 연발할 수도 있겠지.'

강호는 자신의 장비를 챙겨 경기 전 훈련을 위해 그라운드로 나선다.

이미 몇몇 선수들이 코치들과 함께 훈련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강호는 그들의 사이로 이동해서 수비 훈련을 자처한다.

"강호야. 오늘은 타격 훈련을 하는 게 좋지 않겠어? 너 4번 타순으로 기용됐잖아. 너는 수비가 견고한 편이니까 배트를 잡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수비 훈련을 하려는 강호에게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 있는 것은 의외로 수비코치인 서학수였다.

그는 강호에게 수비 훈련보다는 오늘만큼은 타격 훈련에 집중하기를 당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호의 생각은 달랐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서 코치님. 오늘은 남아있는 아이템을 제대로 활용할 생각이니까요.'

강호는 속으로 떠오른 생각을 삼키며 서 코치를 바라본다.

타석에서 사용할 수 있는 8개의 아이템이 남아 있었다.

정교한 타격이나 파워풀 스윙 같은 스탯 보정 아이템은 사용하지 않고 전부 남아있는 상태였다.

'아이템은 많이 남아 있어. 시범경기까지는 6일이라는 여유 기간이 남아있고 말이야. 프리마켓이 다시 열리는 19일까지 사용할 아이템은 충분해.'

강호는 경기에 앞서 이미 남아있는 아이템 목록을 샅샅이 확인한 상태였다.

남아있는 아이템의 개수는 모두 열다섯 개.

아이템 사용을 최소화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호의 스프링캠프 타율은 4할을 훌쩍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스프링캠프 경기 동안 2루타나 3루타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한 번도 홈런을 기록한 적은 없어. 오늘 경기에서 홈런 아이템을 사용한다!'

강호는 많은 찬스 상황에서도 아껴오던 홈런 아이템을 사용하려 한다.

비록 2군이긴 하지만, 4번 타순에 오르는 영광스러운 순간에 사용하기 위해 아껴두고 있었다.

오늘을 끝으로 대만 일정은 종료되니 미련 없이 사용할 생각을 먹는다.

"아닙니다. 코치님. 며칠간 3루수 자리에 있었더니 유격수 감이 떨어진 것 같습니다. 수비 감각을 올려야할 것 같습니다."

강호는 마주한 서 코치에게 대답했다.

당사자인 강호가 이렇게까지 이야기하자 서 코치로서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의 전담 분야는 타격이 아닌 수비였다.

선수가 수비의 불안함을 말하며 훈련을 원하는데 계속해서 타격 훈련을 강제할 수는 없다.

"괜찮은 거냐? 너에게는 중요한 기회잖아."

그래도 한 번은 확인을 거친다.

혹시라도 강호가 경기 전 훈련에서 수비에만 집중하다 타격을 망쳤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다시 물어도 강호의 뜻은 확고했다.

"네. 타격에 대해서는 이미 구상한 게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신에 수비 자세를 잡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강호의 대답에 서 코치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더는 권할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펑고부터 시작하도록 하자. 펑고는 간단하게 하고, 2루수와의 호흡을 맞추는 게 좋겠다. 인태도 오늘 복귀해서 감을 끌어올려야 하니까."

강호는 서 코치의 말에 힘 있게 대답하고는 유격수 위치로 이동해 자세를 잡는다.

인태 역시 2루 수비 위치로 이동해 훈련에 동참했다.

"역시 강호란 말이야. 녀석은 무엇이 중요한지를 아는 녀석이야."

한 편,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바로본 손 감독은 미소를 짓는다.

평소보다 일찍 경기장에 나와 본 손 감독은 수비 훈련을 자처하는 강호를 보고는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암, 그래야지. 4번 타자가 되었다고 타격 훈련만 주구장창 하다가는 정작 중요한 수비 상황에서 실책을 범할 수도 있는 거야. 걱정을 했었는데 내가 괜한 걱정을 한 셈이야."

손 감독이 일찍 경기장에 찾은 이유는 바로 강호에게 있었다.

강호의 타순 변경을 지시한 손 감독 역시 강호가 프로생활 처음으로 4번 타순에 배치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강호가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거나 경직되지는 않았나, 확인을 해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것이다.

괜한 걱정을 했다고 여기며 발걸음을 돌린다.

"아, 감독님. 여기 계셨습니까? 전화를 안 받으셔서 한참 찾았습니다."

마침 양용민 코치가 덕 아웃으로 들어서며 손 감독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는 손 감독에게 부탁을 받은 상대팀 자료를 양손에 든 채였다.

"여기 말씀하신 자료를 가져왔습니다. 불펜 투수 중에는 명길관이라는 투수를 조심해야한답니다. 좌완 투수인데 구속이 140대 후반이 나오는 투심을 던지는 투수입니다. 그리고 또...."

양 코치가 자료를 요약해 말하려는 것을 손 감독이 막아 세웠다.

그는 설명을 거절하고는 양 코치를 양해 손을 내밀었다.

"이리 주게. 내가 읽어볼 테니."

"네, 여기 있습니다."

양 코치가 건넨 자료를 받아든 손 감독은 자료를 읽는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읽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강호에게 상대팀 투수의 공략 방법을 알려주려 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손 감독은 자료를 훑어보다 접고는 옆구리에 낀 채로 걸음을 옮긴다.

"우리는 식사나 하러 가지."

"네? 감독님. 아직 11시 밖에 안 됐습니다. 아침 식사는 하시지 않았습니까?"

갑작스레 식사를 하러 가자는 손 감독의 말에 양 코치가 당황한다.

손 감독과 아침 식사를 함께 한 것이 양 코치였다.

아침을 먹자는 것은 아닐 테니 점심을 먹자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그래? 아직 그것 밖에 안 됐어? 오늘따라 유난히 시장하네. 대만에는 어떤 음식이 유명한가. 잠시 나가서 식사나 하고 들어올까?"

"네? 시내에 나가시려고요?"

"시내는 무슨. 경기장 밖으로만 나가면 지천에 식당인데. 샤오롱 바오였나? 그 만두 비슷했던 음식이 괜찮았던 것 같은데. 양 코치. 함께 가지."

"아, 네. 알겠습니다. 외투를 좀 챙겨오겠습니다."

손 감독의 권유에 별 수 없이 양 코치가 합류한다.

그가 외투를 챙기기 위해 시야에서 사라지자 손 감독이 잠시 걸음을 멈춘다.

고개를 돌린 그의 시선은 펑고를 시작한 강호에게로 향했다.

'백강호. 원래는 기대하지 않으려 했었다. 그런데 네가 알아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기대가 드는구나. 오늘 너의 활약을 기대해보마.'

수비 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강호를 시선으로 일별한 손 감독은 경기장 밖으로 걸음을 옮긴다.

시간이 지나고 히어로즈 팀이 경기장에 들어선다.

선수들 중 친분이 있는 선수들은 서로 왕래하기도 하고, 모르는 이들도 선배 선수에게는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이제 곧 시작되겠구나.'

강호는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린다.

서 코치와의 수비적응 훈련은 순조롭게 끝낸 상태였다.

6일 만에 복귀한 인태와의 호흡도 잘 맞았고, 타구를 판단하는 감각도 그대로였다.

'수비 상황에서 큰 실수를 하지는 않을 거야. 3루에서는 라인드라이브 성 타구도 곧잘 막아 냈었으니까. 변칙 바운드 볼만 조심하면 수비상의 어려움은 없어.'

강호는 스스로의 수비를 평가하며 글러브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다.

필요한 훈련은 모두 끝난 상태.

시간을 채우기 위한 스트레칭으로 경기 전 훈련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구나. 경기가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강호는 경기 시작을 기다렸다.

비록 스스로의 힘으로만 활약할 자신은 없었지만, 오늘 경기에서 이전에는 보여주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손 감독님이 내게 보여준 믿음. 그것에 대한 보답을 보여줄 차례야.'

강호는 마음가짐을 바로하며 다가올 경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스프링캠프 마지막 경기의 막이 오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