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4화 (2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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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4번 타자

오늘 경기에서 강호의 기록은 3타석 2타수 2안타 2타점 2득점 3출루를 기록하면서 끝이 났다.

9대 7로 쫓기는 상황에서 강호의 출루를 시작으로 한 빅 이닝이 경기를 결정지었기 때문이다.

강호는 백업 3루수로 밀려난 추정혁과 교체되며 남은 이닝 휴식을 보장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15대 7로 이기고 있는 7회 말의 상황.

경기는 아직 계속되고 있었다.

"아, 우리 강호 후배. 오늘 활약이 장난이 아니야. 아주 만점이야. 만점. 덕분에 이기게 생겼는데?"

벤치에 앉게 된 강호에게 문표가 다가가며 미소 띤 얼굴로 말한다.

문표는 선발 출장이기는 하지만, 지명 타자인 관계로 수비 상황에서는 벤치를 지킨다.

바쁘게 공수를 오가는 활약을 펼친 강호는 오늘 경기가 시작된 이후로는 문표와 첫마디를 나누고 있었다.

"아직 3이닝이나 남아 있습니다. 경기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에요."

강호가 답한다.

그의 말대로 지금은 7회 말 수비 상황이었다.

점수 차가 8점차로 벌어지긴 했지만, 경기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문표는 생각이 다른 듯 했다.

"진성이 녀석이 공 던지는 걸 봐라. 누가 저런 공을 칠 수 있겠냐? 하는 것을 봐서는 8회까지 막아줄 기세인데 우리 팀이 이기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니겠어?"

문표의 말이었다.

그의 말에 강호의 시선이 마운드 위로 향한다.

'가진성이라고 했던가? 자이언츠에 저런 유형의 투수가 있었을 줄이야. 비슷한 유형의 국내 투수를 떠올리기 힘들 정도의 독특한 투구를 한다. 거기다가 속구 구속도 빨라. 진성이의 정보가 없는 라이온즈 구단으로서는 문표 선배의 말대로 득점을 하기 힘든 상황이 맞아.'

강호는 투구를 하는 가진성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엄청난 피지컬을 가진 선수였다.

190에 육박하는 신장에 100킬로그램이 넘는 몸무게, 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150킬로미터 대의 강속구는 가운데로 몰리고 있음에도 정타를 때려내는 라이온즈 타자가 없었다.

그만큼이나 구위가 강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구위도 수준급이지만, 문제는 진성이의 투구모션이다. 저런 투구 폼으로 던지는 투수의 강속구를 무슨 수로 치겠어?'

강호는 이어지는 진성의 2구에서 그의 투구모션을 자세히 살핀다.

점잖지 못한 키킹 동작에 이은 점프 모션. 점프를 하는 착각이 드는 투구가 아니라 정말로 점프를 한다.

그 후에는 상체가 왼쪽으로 기울고 왼발이 허공에 머물고 있다.

고개를 지면으로 향한 채 평행 점프를 하는 것 같은 괴이한 투구 폼이었다.

이 현란한 투구 폼에 상대 타자들은 타격 타이밍 맞추기를 포기한 상태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주심이 힘차게 외친다.

6회 말에 이어 7회의 선두 타자 역시 삼진으로 돌려보내는 가진성이었다.

'투구 수도 효율 적이야. 4명의 타자를 잡아내면서 던진 공이 고작 열세 개. 손 감독님은 그동안 왜 저런 유형의 투수를 마운드에 올리지 않으신 걸까? 포심 하나만으로도 1군 무대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진성에 대한 강호의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진성의 나이가 올해로 25살. 강호와 같은 나이이기에 적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상무를 다녀오며 군 문제를 해결했다는 메리트가 존재했다.

'25살의 군필 불펜 자원. 전신의 힘을 끌어 모아서 투구하는 스타일이라 선발은 뛸 수 없겠지만, 한 두 이닝은 막고도 남는다.'

강호는 가진성을 강속구를 가진 불펜 요원으로 정리하며 고개를 돌린다.

그의 시선에 묘한 표정으로 투구를 살피는 손 감독의 얼굴이 들어온다.

'손 감독님도 몰랐던 모양이구나. 진성이 마운드에 오르면 어떤 투구를 펼칠지 말이야. 기대를 안하신 건가?'

강호도 손 감독을 완전히 파악한 것은 아니었다.

야수의 기용에 대해서는 대략적으로 손 감독의 스타일을 간파했지만, 그의 투수 기용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가진성을 바라보는 손 감독의 기묘한 시선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시는 게 있으시겠지. 그래도 선수는 결과로 말하는 것. 저런 공을 뿌릴 수 있는 투수라면 쓰지 않을 수는 없어.'

강호는 새로운 유형의 투수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반겼다.

가진성처럼 투구 타이밍이 빠른 투수가 마운드에 오르게 되면 상대적으로 야수들의 수비 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수비 시간이 짧아진다는 이점이 생기는 것이다.

특히나 강호처럼 유격수와 3루수를 오고가며 체력 부담이 심한 포지션에서는 더욱 반길 일이다.

"그나저나 아까 1회 상황에서는 미안하게 됐다. 괜히 내가 홈런을 쳐서는 너까지 타선이 연결되어 버렸어. 이닝이 빨리 끝났다면 너나 인태가 공을 맞는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야. 내가 괜히 홈런을 친 것 같다."

문표의 뜬금 없는 말에 그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그의 말은 1회 때 사구를 맞은 자신을 걱정하며 사과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은 자신이 친 홈런을 자랑하는 내용이었다.

강호가 미처 반박하기 전에 주변에 모여 앉은 루키들이 치고 들어온다.

"선배님. 그게 어떻게 사과할 일입니까? 선배님이 홈런 친 건 잘하신 거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사과를 해야 한다면 상대팀 선발이 해야지요."

"강호 선배님. 너무 언짢아하지 마십시오. 문표 선배님이 사과까지 하시는데 말입니다."

문표의 거짓 사과에 낚여 쿵짝이 맞아버린 루키들을 바라본다.

강호의 얼굴에는 어이가 상실된 표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녀석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문표 선배에게 언짢아할 일이 어딨다고. 이 단순한 놈들.'

강호는 문표의 수족이 되어 움직이는 루키들에게 훈계를 하기 위해 생각을 정리해본다.

그런데 그 틈을 약삭빠른 문표가 파고들었다.

"아냐, 아냐. 억지로 사과를 받아줄 필요는 없어. 사구를 맞은 것은 강호니까 말이야. 내가 오랜만의 출전으로 흥분한 나머지 홈런을 쳐버렸네. 냉정하게 타석에 들어섰어야 하는데 말이야. 다음번에는 홈런 말고 2루타 정도로 끝내도록 할게."

"선배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냐. 내가 강호에게 미안해서 안 되겠어. 나는 말이야.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상당히 민감한 것이라고 생각하거든.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 말이야....."

또 다시 루키들에게 일장 연설을 시작하는 문표.

그의 행태에 강호는 몸을 돌려 자리를 빠져 나온다.

사과의 대상인 강호가 빠졌음에도 누구하나 만류하지 않는 것을 보니 문표가 장난을 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문표 선배의 세치 혀에 놀아나는 저 불쌍한 중생들을 어찌하면 좋을까?'

잠시잠깐 고민해 보았지만, 강호는 자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라 여기고 걸음을 뗀다.

이 날의 경기는 새로 등판한 가진성이 무실점으로 2이닝을 막아냈지만, 9회에 오른 김치성이 3점을 내주었다.

그럼에도 타선이 폭발하면서 경기를 17대 10의 승리로 끝낼 수 있었다.

"나쁘지 않았어."

경기가 끝이 나고, 덕 아웃에서 물러나던 손 감독이 라이온즈 전의 경기를 평가하며 남긴 말이었다.

양 팀 모두가 투수진이 초토화되는 난타전을 펼쳤음에도 손 감독은 나름대로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었다.

"가진성이가 쓸 만한 모습을 보여주었어. 앞으로 몇 번 더 마운드 위에 올려서 지켜보도록 하지."

새롭게 등장한 가진성의 가능성을 인정한 것이다.

선발과 롱릴리프가 가능한 권대우에 이어 셋업 멤버로 활용 가능한 가진성이라는 자원을 얻었기에 경기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손 감독이었다.

그 후로 시간이 흘러 벌써 6일의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강호의 2월은 빠르게 지나가 버렸고, 어느새 3월이 되었다.

'몸무게가 또 늘었어!'

체중계에 오른 강호는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일주일 동안 바빴던 이유로 체중을 측정하지 못했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체중계를 외면한 면도 있었다.

지나치게 체중 증가에 신경쓰다보면 오히려 스트레스로 살이 빠질까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77.2킬로그램. 이제 80킬로까지 얼마 남지 않았어.'

강호는 스스로의 목표에 임박했다는 사실에 기뻤다.

개막전인 4월 2일이 되기 전까지 80킬로그램을 만든다는 목표를 어려움 없이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벌컥.

그 때 닫혀 있던 숙소의 문이 열린다.

노크 없이 들어왔다는 것은 룸메이트인 택근이라는 것을 의미했기에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오, 선배님. 체중 측정하시는 겁니까? 어떻습니까?"

택근이 체중계에 오른 강호에게 관심을 보이며 다가온다.

그는 디지털 체중계가 가리키는 숫자를 확인하고는 눈썹을 치켜뜬다.

"잉? 아직 77킬로 밖에 안 되는 겁니까? 너무 더딘데요? 먹는 거에 비해서 살이 너무 안 찌시는 것 같습니다."

택근이 말한다.

강호가 먹는 것에 비해서 덜 찌는 것 같다고.

맞는 말이었다.

하루에 총 4끼니와 함께 단백질 보충제를 5회나 복용하는 강호다.

살을 찌우기 위해 다른 선수들에 비해 식사량을 늘리기까지 했다.

택근이 보기에는 노력에 비해 강호의 살찌는 속도가 느리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많이 찐 거다. 내 걱정 말고 네 일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 그렇게 실책을 연발하다가는 중견수 자리에서 쫓겨날 것 같은데."

강호는 체중계에서 내려서며 택근을 나무란다.

그러자 택근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항변했다.

"제 잘못이 아닙니다. 성철 선배가 우익수 자리로 가시더니 수비 범위가 좁아져서 제가 고생을 하는 거라고요. 성철 선배가 잡아야 하는 공을 중견수인 제가 잡아야 하니 실책이 나올 수밖에요."

택근의 항변이었다.

택근은 중견수 자리로 옮기면서 치룬 4번의 경기에서 3번의 실책을 기록하고 말았다.

그가 말한 것처럼 우익수 자리로 이동한 유성철의 잘못이 있었기에 억울한 부분도 없지 않았다.

'택근이 말이 맞아. 우익수 자리로 옮긴 성철 선배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어. 1군 무대에 올라갈 수도 있다는 사실에 긴장한 탓이겠지.'

유성철에 대한 강호의 판단이었다.

외야 포지션이 변경되고, 우익수 자원을 시험하기 위한 손 감독의 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 상황에서 1군 우익수 자리가 공석이 될 것 같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단이 발생한 것이다.

'내가 1군으로 올라간다고? 그렇다면 실수를 할 수는 없지. 택근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수비 범위를 좁혀서라도 실책 없이 플레이 하도록 하자.'

소문을 접한 성철은 수비 범위를 좁게 가져가기로 결정한다.

그의 이기적인 플레이에 피해를 보는 것은 택근이었고, 수비코치의 질타도 그에게로 향했다.

"이건 성철 선배가 너무 한 겁니다. 수비 코치님도 은연중에 알고 계시겠지만, 겉으로는 묵과하시는 것 같고요. 제 탓이 아니란 말입니다."

택근의 마지막 항변에 강호는 고개를 끄덕여 준다.

더 이상 비판한다면 택근이 억울함에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사내의 눈물은 딱 질색이야. 더 이상 건들지 말자.'

강호는 택근과의 대화를 중단하고, 세면을 하기 위해 수건과 세면도구를 챙겨 든다.

그런 강호의 등 뒤로 택근이 흘리듯이 말을 한다.

"오늘 경기 타순 말입니다. 4번 자리에 변경이 있다던데 말입니다."

택근의 말에 강호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현재 자이언츠 2군의 4번은 1루수인 이인호가 맡고 있다.

강호가 예상하기로는 최근 뜨거운 장타력을 터뜨리는 문표를 4번으로 옮기리라 생각이 되었다.

그런데 이어진 택근의 말에 강호의 발걸음이 멈춰진다.

"선배님이 4번으로 이동할 거라던데 말입니다."

"뭐?!"

강호는 세면도구를 내려놓은 채 몸을 돌린다.

그의 얼굴이 무척이나 경직되어 있었다.

강호는 라이온즈 전 이후의 경기에 5번 타순과 3번 타순에 2번 씩 기용되며 중심타선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었다.

스프링캠프 경기 중 총 8경기에 출전해서 타율 0.458에 17타점을 쓸어 담으며 맹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단기간의 활약이었기에 4번이 될 것이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정말이야?"

강호의 짧은 물음에 택근이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양용민 코치님이 하시는 말씀을 지나가다가 들었습니다. 양 코치님이 출전 명단을 짜시지 않습니까?"

택근의 말에 강호는 표정 관리를 해야 했다.

'양 코치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확실한 거다. 포지션은 손 감독님이 정하시지만, 출전 명단을 작성하는 것은 3군 총괄인 양 코치님이 하신다. 그럼 내가 4번 자리로 옮겨진다는 것은 뜬소문이 아닌 거야.'

강호는 주먹을 불끈 쥔다.

언제고 활약을 이어나가다 보면 4번 타석에 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파워가 약한 자신에게 4번 자리를 주지는 않을 것이라 여기며 괜한 기대감을 가지지 않았다.

'됐다!'

강호는 눈을 감았다.

비록 2군 무대, 그것도 스프링캠프의 경기에 불과했지만 팀의 4번 타자로 나선다는 것은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

강호는 몇 주의 시간 만에 격상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조용히 숙소를 나선다.

"어? 선배님. 씻으러 가시다가 어디 가시는 겁니까? 선배님!"

택근의 부름을 뒤로하고, 숙소 방을 나선 강호.

그는 귀에 들리는 것처럼 요동치는 심장 소리를 느끼며 걸음을 옮긴다.

'러닝이라도 뛰자. 그렇지 않으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

강호는 달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감정을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그리고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오히려 트랙 위를 달리며 땀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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