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3화 (2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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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4번 타자

1회에 자이언츠가 6득점을 하며 빅 이닝으로 이닝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경기는 쉽게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 여겨졌지만, 2회부터 시작된 투수들의 방화로 경기는 향방을 알 수 없게 된다.

5회가 끝난 상황에서 점수는 9대7.

초반의 점수 득실로 인해 간신히 2점차 리드를 가져가고 있는 자이언츠였다.

"투수 조는 오늘도 왜 이러는 거야? 구 코치. 우리팀이 이렇게 투수가 없나?"

손 감독의 질타에 2군 투수코치인 구동진이 진땀을 흘린다.

오늘처럼 양쪽 팀 타자들이 맹타를 휘두르는 날에는 반대로 투수들이 난타를 당한다는 의미가 된다.

투수코치인 구 코치 입장으로서는 곤혹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일 것이다.

'원래는 있었지요. 불펜에서 대우가 쓸 만했는데 감독님께서 선발로 돌리시지 않으셨습니까? 중간 자원에서 제일 잘하고 있는 대우를 선발로 돌리셨으니 계투가 무너지는 것은 별 수 없단 말입니다.'

구 코치는 속으로 항변을 해보지만, 입 밖으로는 꺼내지 못한다.

대신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다른 말을 뱉어낸다.

"준비된 불펜 투수가 있기는 합니다."

구 코치의 조심스런 태도에 손 감독이 즉시 말한다.

"그럼 바꿔! 뭐하고 있는 거야? 이대로 경기를 내줄 셈이야?"

준비된 투수가 있다는 말에 누구인지도 묻지 않고 곧장 지시를 내린다.

그런데 구 코치는 여전히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준비된 투수가 진성입니다. 가진성이요."

"가진성?"

구 코치가 거론한 이름에 손 감독이 멈칫하게 된다.

그리고는 곧장 묻는다.

"진성이말고 준비된 투수 없어? 사준식이나 치성이도 남아 있잖아."

"준식이는 어제 훈련 과정에서 투구를 많이 해서 제외시켰고, 치성이는 영점이 안 잡히고 있습니다."

"흐음."

구 코치의 대답에 손 감독은 신음하게 된다.

3회부터 불펜을 가동하기 시작했으니 투수운용이 막힐 만도 했다.

그런데 6회가 시작되는 시점에 던질 투수가 없다니.

'투수가 없어서 마무리인 표성태를 6회부터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것 참.'

손 감독은 혀를 찬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계투인 김치성이 준비될 때까지 다른 투수라도 올려야 했다.

마무리를 올릴 수가 없었으니 구 코치가 권한 대로 가진성을 올리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진성이는 투수로 전환시킨 지 1년도 되지 않았어. 녀석이 잘 할 수 있을까?'

의문을 품게 된다.

가진성은 올해로 25살로서 원래 보직은 투수가 아닌 포수였었다.

투수 리드와 수비력이 좋아 포수로 픽업했지만, 타격 잠재력이 터지질 않았다.

'타격 잠재력이 원래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신인 포수라지만 2군 성적이 1할 대라면 심각한 것이지.'

가진성의 초창기를 생각하면 한숨만 나올 정도였다.

한 때는 방출도 고려했었지만, 2루로 도루하는 주자를 앉은 자리에서 아웃시키는 송구 능력에 주목해 투수로 전향시킨 지가 1년이었다.

놀랍게도 가진성은 무려 150킬로미터 대의 강속구를 던지며 투수로서의 가능성을 폭발시켰다.

'하지만 투구 폼이 엉망이야. 제구는 말할 것도 없고. 아직까지는 150킬로미터 대의 똥볼을 던지는 유망주에 불과해.'

가진성에 대한 손 감독의 솔직한 평가였다.

손 감독은 투수의 구속보다는 구위와 제구력을 높이 평가하는 스타일이었다.

제구가 엉망인 투수를 구속이 빠르다고 해서 마운드 위에 올리는 타입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어진 구 코치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고민을 하게 된다.

"진성이의 제구력이 나쁜 것은 여전하지만, 얼마 전부터 가운데로 꽂아 넣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존을 분할해서 로케이션을 가져갈 수는 없지만, 스트라이크는 잡을 수 있을 겁니다."

구 코치의 목소리는 은근해서 마치 악마의 속삼임처럼 들려온다.

준비되지 않은 선수를 그라운드에 올리지 않는 손 감독이지만, 왠지 모르게 구 코치의 말을 따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구 코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진성이 특유의 투구 폼이라면 상대팀 타자들이 현혹될 겁니다. 배트 타이밍을 맞추다가 1이닝이 종료될 수도 있습니다. 진성이가 6회를 막아주는 동안 치성이를 준비시켜서 7회부터 치성이를 올리는 것이 어떨까요?"

구 코치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원래부터 투수가 아니었던 까닭인지 가진성의 투구 폼은 괴상한 면이 있었다.

이중키킹처럼 발을 두 번 차는 것은 그러려니 했지만 공을 던지는 폼 자체가 문제였다.

'어떻게 그런 투구 폼이 나오는 거지? 고쳐보려 해도 도대체가 고쳐지지를 않는단 말이야. 포수를 보던 녀석이라 그런가?'

진성이의 투구 폼을 생각할수록 인상이 찌푸려진다.

로킹모션과 세트포지션까지는 문제가 없지만, 투구모션부터 시작해서 공을 놓는 순간, 그리고 공을 놓은 후의 동작 모두가 이해 불가능의 연속이었다.

사실 손 감독은 가진성의 좋지 않은 제구력보다 투구 동작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마운드에 올리지 않았던 것이다.

"일단은 6회 초 공격은 우리 팀의 공격 차례이니 6회 말까지 치성이가 준비되지 않으면 가진성을 올리도록 해."

손 감독의 고민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구 코치는 손 감독이 마음을 바꿀까봐 얼른 대답하며 불펜으로 향한다.

'진성이는 잠재력이 엄청난 투수다. 손 감독님은 진성이의 와일드한 투구 폼 때문에 금방 부상이 올까봐 걱정하시지만, 의외로 진성이의 투구 폼은 부상 확률이 적어. 이번 기회에 눈도장을 찍는다면 좋은 투수로 성장시킬 수 있을 거야.'

구 코치는 속으로 진성이의 잠재력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자이언츠 2군의 불펜에서 재미있는 투수가 올라오기 직전의 순간이었다.

한 편, 5회 말 수비가 끝나고 6회가 시작되자 선투 타자로 타석에 오른 것은 강호였다.

강호는 아무런 부담이 없는 얼굴로 타석에 올랐다.

'1안타에 2타점까지 기록했으니 오늘 경기는 내가 할 몫은 충분히 다한 거야.'

강호는 1회 만루 상황에서 몸에 맞는 볼로 1타점을 기록했었다.

그리고 3회에 주자 2루 찬스에서 타석에 올라 우익수 앞의 안타로 1타점을 추가할 수 있었다.

일회용 아이템인 '안타'아이템을 사용한 결과였다.

'한 번은 몸에 맞는 볼이긴 하지만, 두 번의 득점권 상황 모두 타점을 기록했으니 클러치 능력을 보여준 셈이다. 지금은 주자가 없는 상황이니 아이템 사용을 하지 않고, 부담 없이 휘둘러보자.'

강호는 생각을 정리하며 배트를 짧게 쥐었다.

아무리 주자가 없고, 부담 없는 상황이라지만 풀 스윙을 할 마음이 없었다.

스스로 안타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오히려 배트를 짧게 쥐고, 단타를 만들더라도 안타를 때려내고 싶었다.

'어차피 내가 홈런 타자인 것도 아니잖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단타를 치더라도 출루를 하는 것이 팀에 도움이 된다.'

강호는 장타보다 출루에 우선할 생각이었다.

본인이 7번 타순으로 출전하긴 했지만, 지금은 팀이 2점차로 쫓기는 상황에 선투 타자로 나선 상황.

괜한 영웅 스윙으로 코칭스태프들을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강호가 배트를 짧게 쥐었는데요?"

덕 아웃에 있던 코치 중 가장 빨리 그 사실을 발견한 것은 강전호 배터리 코치였다.

그의 말에 손 감독의 시선이 누군가에게로 향한다.

"김 코치가 지시한 건가?"

"저는 아닙니다. 강호 본인이 판단을 내린 모양입니다."

손 감독의 물음에 3군 타격 코치인 김진관 코치가 즉시 손사래를 친다.

예전 손 감독의 질문에 말을 잘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던 그였기에 이번에는 정확한 사실로만 답변을 한 것이다.

"김 코치가 지시한 것이 아니라면, 강호 녀석. 이제는 팀 배팅을 하기 시작했다는 거잖아. 강호가 야구를 넓게 보기 시작했다는 거로군."

손 감독은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강호를 바라본다.

감독의 말에 다른 코치들도 그 의견에 동조한다.

'뭐야? 결국 강호를 칭찬하기 위해 물어보신 거야?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군.'

김 코치는 손 감독이 강호를 칭찬하자 속으로 혀를 빼물며 한 걸음 물러난다.

분위기를 봐서는 손 감독이 강호를 칭찬하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은데 자신은 그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속이 좁은 김 코치였다.

'이것 봐라? 배트를 짧게 쥐었네. 장타가 아니라 출루에 집중하겠다는 뜻이겠지? 좋은 생각이긴 하지만 타자의 의도가 보이면 배터리는 편한 법이야.'

강호의 변화를 알아차린 또 다른 인물이 마스크 안에서 미소 짓는다.

강호가 배트를 짧게 쥔 것을 알아차린 것은 자이언츠 덕 아웃만이 아니었다.

라이온즈의 포수인 강문찬 또한 사실을 간파했다.

'덕주야. 상대 타자가 배트를 짧게 쥐었다. 그러니까 코스는 무조건 바깥쪽이야. 우리가 바깥쪽만 공략한다는 것을 알고, 배트를 길게 잡았을 때는 이미 2스트라이크를 잡은 상태일 거다.'

문찬은 투수인 덕주에게 타자를 보라는 신호와 함께 바깥 쪽 코스의 포심 사인을 냈다.

'바깥쪽, 포심. 오케이!'

포수의 사인에 고개를 끄덕인 투수 김덕주는 곧장 로킹모션을 취한다.

6회 부터 계투로 오른 김덕주의 초구가 와인드업과 함께 뿌려진다.

'초구는 카운트를 잡으러 오는 바깥쪽 포심일 거야. 일단은 지켜본다.'

강호는 이미 상대팀 배터리의 움직임을 읽고 있었다.

배트를 짧게 쥔 것은 보기에는 실수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강호는 상대팀 포수를 현혹하기 위해 배트를 짧게 쥔 것이고, 중요한 변화는 따로 있었다.

원래도 배터 박스 뒤편에서 타격을 하긴 하지만, 이번 타석에서는 완전히 배터 박스 뒤쪽으로 붙어서 타석 자세를 취하고 있다.

상대 포수인 문찬이 짧게 쥔 배트에 집중하느라 미처 타석 위치에 변화를 주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셈이다.

'공을 조금 더 길게 보고, 오직 포심만 노린다!'

강호는 그런 생각으로 자신이 마치 변화구 타이밍을 노리는 것처럼 타격 모션을 취했다.

그로 인해 덕주의 초구는 볼이 되었음에도 강호의 배트가 딸려나가 버리는, 스윙 스트라이크가 되고 만 것이다.

"하프 스윙, 스트라이크!"

주심은 강호의 하프 스윙을 인정하며 스트라이크를 주었다.

이에 라이온즈 포수인 문찬이 웃어 보인다.

'바뀐 투수의 초구가 변화구일 것이라고 생각한 건가? 스윙 타이밍을 봐서는 체인지업이나 커브를 노린 것 같은데. 아무리 덕주가 느린 변화구를 자주 구사하는 투수라고 해도 등판하자마자 변화구부터 던지지는 않는다고. 아직 투수 분석을 할 줄 모르는 타자인 것 같군.'

문찬은 투수에게 공을 던져주며 강호에 대한 판단을 끝낸다.

경기에 들어서기 이전, 자이언츠 팀의 요주의 인물로 강호에 대해 듣기는 했었다.

하지만 첫 번째 타석에서는 몸에 맞는 볼로 출루해서 타격을 확인할 길이 없었고, 두 번째 타석에서는 초구로 안타를 치고 나가서 성향을 완전히 알지 못했다.

그런데 세 번째 타석에서의 모습을 보니 강호의 성향을 알 것 같았다.

'백강호라는 타자는 공격 성향이 강한 타자야. 웬만해서는 초구에 배트를 내고, 2스트라이크가 되기 전에 승부를 보려 할 거야. 이런 유형의 타자들은 2스트라이크 상황까지 몰리면 유인구에 딸려 올 가능성이 높아.'

판단을 내린 문찬은 확인 차원에서 2구에 몸 쪽으로 파고드는 체인지업을 요구했다.

올해 21살인 신인 투수 김덕주는 5살 선배인 강문찬 포수의 사인에 곧장 수긍하며 공을 던졌다.

틱!

강호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스윙을 했지만, 볼의 윗부분을 아슬하게 스치면서 포수 뒤로 빠지는 파울이 된다.

그 모습에 문찬은 확신을 가진다.

'노리던 게 체인지업이었나? 이거 미안하게 됐군. 카운트가 2스트라이크가 되었으니 우리가 유인구를 던질 거라 생각하겠지? 이럴 때는 역으로 노린다. 바깥 쪽 포심을 던져서 배트가 끌려나오게 만드는 거야. 분명 존과 비슷하게 오는 공을 커트하려고 하겠지만, 볼인 것을 알고 배트를 멈추려고 할 거야. 하지만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타자들은 의외로 배트 회수가 느리다. 3구 삼진을 잡아내겠어.'

강호를 삼진으로 잡을 구상을 끝낸 문찬은 곧장 사인을 냈다.

바깥쪽으로 빠지는 코스의 볼을 요구한 것이다.

덕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로킹모션에 들어간다.

'변화구면 커트한다. 오직 포심만 노리는 거야. 바깥쪽의 포심을 말이야.'

덕주가 두뇌회전으로 분주한 사이, 강호는 오히려 단순하게 생각했다.

배트를 짧게 잡은 자신에게 상대 포수가 바깥과 안쪽의 로케이션 공략을 할 것이라는 것은 쉬운 예측이다.

'바깥 쪽, 안 쪽 코스로 2스트라이크를 잡았다. 다음 공이 바깥쪽이 될 것은 분명해. 문제는 포심이냐 변화구냐인데.'

강호가 고민하는 사이 투수의 손에서 공은 떠났고, 대충의 로케이션을 가늠한 강호가 즉시 배트를 휘두른다.

'포심!'

강호는 배트를 휘두름과 동시에 자세를 수정한다.

양손의 중심을 오른 손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는 것과 동시에 허리 회전을 최소화했다.

그리고는 배트에 볼이 맞는 것과 동시에 오른 손을 놓고 왼손의 힘만으로 배트를 붙들었다.

"쳣다!"

"안타입니다!"

자이언츠 덕 아웃에서는 강호가 만들어낸 밀어치는 안타에 환호한다.

한 편에서 지켜보던 프랑코 코치는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끄덕였고, 손 감독 역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호 녀석이 일부러 바깥쪽 포심을 유도한 거야. 능구렁이 같은 녀석. 그동안 프랑코와 타격 폼 수정에만 매진하는 줄 알았더니 밀어치는 타격도 연마하고 있었구나. 역시 강호 녀석의 타격 잠재력은 보통이 아니었어. 2군에서 썩을 실력이 아닌 거야.'

손 감독은 강호의 이번 안타로 그에 대한 평가를 한 단계 더 격상시킨다.

그리고 이어진 도루에서 강호의 타순을 한 번 더 고민하기에 이른다.

'강호의 주루를 생각한다면 3번 타순도 나쁘지 않겠어. 5번으로 두기에는 강호의 빠른 발이 아까워. 어차피 5번 타순인 동근이를 뺐으니까 다음 경기에서는 문표를 5번에 두고 강호를 3번에 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강호의 타순에 대한 손 감독의 고민은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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