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2화 (2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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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씩 빠르게

손 감독은 지나칠 정도로 흥분하고 있었다.

인태와 강호가 연달아 몸에 맞는 공으로 쓰러져서 포지션 구상이 어려워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과묵한 성격이긴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선수들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자식처럼 여기는 선수들이 어이없는 이유로 다치고 상처 입는 것을 참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소리쳤다.

"오늘 경기는 끝이야! 내가 지금 당장 사단을 내버릴 거야! 이번 건은 가만있지 않겠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신네...."

"감독님."

이미 눈이 뒤집혀버린 손 감독은 상대팀 감독의 멱살을 잡아 흔들며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양쪽에서 두 명의 코치가 말리고 있었지만, 손 감독의 완력을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고령의 손감독이지만 여전히 젊은 선수들 못지않은 힘이었다.

그런 상태였기에 뒤에서 말리는 목소리에는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도리어 더 큰 목소리로 소리친다.

"모두 말릴 생각하지 말고 덕 아웃에 들어가 있어! 더 이상 경기는 없어!"

손 감독이 소리를 내지른다.

그는 그 누구도 자신을 말리지 말 것을 명령했다.

더불어서 더 이상 경기를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었다.

하지만 뒤에서 자신을 말리는 이가 내뱉은 말에 행동을 멈추게 된다.

"감독님. 저 강호입니다."

"뭐?!"

손 감독은 강호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는 붙잡고 있던 상대팀 감독의 멱살을 놓았다.

"커흠. 흠흠."

곤란에 처했던 상대팀 감독은 자리를 털고 일어선 강호에게 고맙다는 시선을 보내고는 크게 물러선다.

또 다시 손 감독이 멱살을 잡아챌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강호야. 너, 이 녀석. 괜찮으냐?"

강호를 향해 몸을 돌린 손 감독은 그제야 자신이 강호의 몸 상태도 확인하지 않은 채 화를 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강호에게 미안한 마음이 샘솟는다.

'내 정신 좀 보게. 강호가 당연히 심각한 부상을 입은 줄 알고 화부터 냈구나. 설령 강호의 부상이 크다고 해도 강호의 몸 상태부터 살피는 것이 지도자 된 도리인데. 나의 실수야.'

아차하는 마음이 들었다.

스스로에 대한 반성으로 이미 분노는 사라져버린 손 감독이었다.

그 자리를 강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화가 풀리신 건가?'

양 쪽에서 그를 말리고 있던 김대주 작전코치와 서학수 수비코치가 손 감독의 분노가 잦아들자 붙들고 있던 팔을 놓는다.

그러자 양 손이 자유로워진 손 감독이 강호의 어깨를 붙잡는다.

"부러진 것 아니냐? 얼른 병원으로 가자."

"아닙니다. 감독님. 몸에 맞은 것이 아니라 보호대에 맞은 것 같습니다. 걱정하실 상황이 아닙니다."

강호는 웃는 낯으로 볼에 맞은 왼팔을 만져 보이며 답했다.

그 모습에 손 감독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보호대에 맞았다고? 그럴 리가. 내가 야구 판에 머문 지가 40년이다. 보호대에 맞는 소리와 뼈에 맞는 소리를 분간하지 못 할리 없어. 조금 전의 소리는 분명 강호의 팔꿈치 뼈가 부러지는 소리였어.'

강호의 말이 거짓이라고 생간한 손 감독은 조심스레 강호의 팔을 향해 손을 뻗었다.

선수들이 부상을 입고도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엔트리에서 빠지지 않기 위한 의욕은 인정하는 바이지만, 골절상이라는 큰 부상을 숨겨 더 큰 부상으로 연결되는 것은 막아야 했다.

"아프지 않으냐?"

손 감독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강호의 왼쪽 팔뚝을 살짝 누르며 묻는다.

강호가 부상을 숨기는 것을 염려해 시선은 강호의 얼굴에 고정하고 있었다.

인상을 조금이라도 찡그린다면 통증이 있다는 것이고, 그렇다는 것은 강호가 부상을 숨긴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나도 안 아픕니다. 감독님. 만루 상황에서 맞았으니까 3루 주자를 불러들여야지요. 이것도 분명 타점을 낸 거지 않습니까?"

"잠시만 있어 보거라. 이렇게 해도 안 아프냐?"

손 감독은 강호의 말을 들은 채 만 채 하며 팔꿈치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준다.

그러자 강호의 미간이 좁혀진다.

"이것 봐라. 아픈 것이지? 뼈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니냐? 부러진 게 아니라면 금이 간 것이 분명해!"

손 감독이 빠르게 물었다.

미간을 찌푸리는 강호의 모습에 그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강호로서는 답답한 노릇이었다.

"감독님. 멀쩡한 사람도 이렇게 세게 쥐면 아픈 겁니다. 잠시만 기다려 보십시오."

강호는 손 감독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자 보호대를 풀고 왼쪽 팔을 덮고 있던 선수 복을 걷어 보인다.

그리고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맨살을 보여주었다.

만약 뼈가 부러졌다면 곧장 팔이 부어올랐어야 했지만, 강호의 팔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안 다쳤구나!"

"네, 감독님 그러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강호의 맨살을 확인하고 나서야 손 감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나서 자신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를 기억해내고는 몸을 돌린다.

"주심. 상대 투수가 연달아서 몸에 맞는 볼을 던졌습니다. 일부러 던졌는지 실투인지는 따지지 않겠지만, 조치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손 감독은 멱살을 잡은 상대팀 감독에게 사과를 한다거나 수습을 하지 않았다.

이미 이렇게까지 일을 벌인 거 강단 있게 대처하기로 했다.

겉잡을 수 없이 커질 것 같은 상황이 손 감독의 태도 변화로 흐름이 바뀌자 주심은 잠시 멍해진다.

"그..그렇지요. 투수 퇴장!"

주심은 즉시 라이온즈의 선발 투수를 퇴장 시켰다.

라이온즈 측에서 반발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이미 손 감독의 광분을 경험한 그들이어서인지 이 정도 선에서 일이 마무리 된 것에 납득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들로서는 야구 원로의 분노가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 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 여겼다.

"손 감독님. 어쨌든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투수부터는 이런 일이 없을 테니 노여움을 푸십시오."

상대 감독의 대처가 좋았다.

혹시라도 손 감독이 선수단을 이끌고 철수해 버린다면 이번 일이 이슈화 될 수도 있었다.

2군의 스프링캠프 경기이기는 하지만, 연습 경기에서의 선수단 철수는 그만큼 충격적인 일일 것이다.

"됐소이다. 경기는 계속 이어나가도록 할 테니 그런 줄 아십시오. 남은 이닝에서 서로 페어플레이 합시다."

상대팀 감독의 말에 손 감독은 여전히 앙금이 남은 표정으로 대꾸하고는 몸을 돌린다.

그로서는 당연한 행동이다.

강호가 괜찮다고 해도 직전 타자인 인태가 몸에 맞는 볼로 선발에서 빠져버렸다.

여전히 화를 내는 당위성이 남은 상태다.

'휴우. 그래도 다행이구나. 손 감독님이 한 입으로 두 말 하시는 성격은 아니니까 안심해도 되겠지.'

라이온즈의 감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덕 아웃으로 돌아간다.

때에 따라서는 자신의 팀 선수가 빈볼을 맞았을 때, 상대팀 주요타자나 4번 타자에게 빈볼을 던지도록 지시하는 감독도 있었다.

손 감독이 먼저 페어플레이 하자고 말했으니 그럴 염려는 없어보였다.

'본의 아니게 타점을 올리게 되었다. 이것도 크게 나쁘지 않아.'

상황이 정리되고 양 팀 코칭스태프가 덕 아웃으로 돌아가자 강호는 1루를 밟은 채로 생각을 정리한다.

상황을 정리해 본다면 1회 초 1사 만루 상황에서의 타격 기회였다.

손 감독을 포함한 다수의 코치와 선수들이 주목하고 있는 타석이었다.

이번 찬스에서는 아이템을 사용해서라도 임팩트를 주고 싶었는데, 뜻하지 않게 사구를 맞으면서 굳이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아도 1타점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손 감독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도 알게 되었고, 사용한 아이템을 상황에 따라 반환받을 수 있다는 정보도 알게 되었어.'

소득이 많았다.

몸에 공을 맞기는 했지만, 통증이 없어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강호였다.

자신이 쓰러지자 가장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손 감독이 상대 감독을 후려칠 기세로 달려들어 멱살을 잡는 것까지 보았다.

강호로서는 야구 배트를 손에 쥔 이후로 한 번도 경험한적 없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형이 아닌 누군가가 나를 그 정도로 걱정하고 위해준 적이 있었던가?'

강호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단언컨대 한 번도 없었다고.

오직 친 형만이 자신을 걱정해주고 눈물 흘리고, 분개했었다.

그런데 자신이 쓰러지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손 감독을 보게 되자 왠지 모를 감동이 몰려드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따뜻함이었다.

'단지 생존 경쟁뿐만 아니라, 손 감독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야겠어. 손 감독님은 치열한 야구 판에서 나를 유일하게 인정해주시는 감독님이다. 그 사실을 잊지말자.'

강호는 코치들과 함께 덕 아웃으로 돌아서는 손 감독의 뒷모습을 쫓았다.

그의 뒷모습이 어느 때보다 크게 느껴지는 착각이 든다.

'손 감독님. 그리고 형. 두 사람에게 보답하는 길은 최대한 빠른 시간에 1군으로 올라가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당당히 야구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두 사람의 마음에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이야.'

강호는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다.

다른 것을 주고 싶어도 줄 것이 없었다.

100만원이 간신히 넘는 월급으로 물질적인 보상을 해봐야 얼마나 할 수 있겠는가.

활약을 통해 언젠가 연봉이 올라간다고 해도 지금 당장은 해줄 것이 없었다.

그저 성실한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 최고의 결과를 보여주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한 시라도 멈춰 있으면 안 돼. 두 사람을 위해서라도, 나를 위해서라도. 나는 최고가 되어야만 한다.'

처음으로 최고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전에는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아 1군 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하고 싶다는 바람 정도가 다였다.

허나 지금은 아니었다.

강호의 마음가짐이 달라져 버렸다.

또한 보답을 하고 싶었다.

손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

매 타석마다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되리라 맹세하게 된다.

그 순간 강호 스스로는 몰랐지만, 그의 눈빛이 바뀌게 된다.

이전에도 날카롭고 강렬했던 강호의 눈빛이 이제는 바라보는 상대를 잡아먹을 듯이 강렬한 빛을 머금게 되었다.

마음가짐이 달라지면서 눈빛에서 투지를 능가하는 무언가가 타오르는 모습이었다.

'두고 보십시오. 손 감독님. 당신의 4번 타자가 되는 그 날이 올 때까지. 저는 단 하루도 멈춰있지 않을 겁니다.'

달라진 강호의 눈빛처럼, 그의 마음은 가장 순수한 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단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강호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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