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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훈련
3일 동안은 자이언츠 2군의 경기가 잡혀 있지 않았다.
선수들은 3일의 시간동안 훈련에 스퍼트를 올리며 기량을 끌어 올렸다.
"아이고, 무슨 놈의 훈련이 이러냐?"
문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글러브를 벗어던진다.
시야가 어지러워 자세가 무너진 상태에서 날아온 타구에 맞고만 것이다.
"엄살부리지마라. 문표! 살살 쳤다."
그런 문표를 향해 질책의 목소리가 전달된다.
상대는 2군 수비코치인 서학수 코치.
문표의 1루수 포구 훈련을 위해 그가 배트를 잡은 것이다.
"아니, 코치님. 이게 말이 되는 훈련입니까? 코끼리 코를 돈 다음에 타구를 잡으라니요. 세상에 어떤 팀이 이런 펑고를 합니까?"
문표는 지친 몸을 바닥에 기대고는 불평을 토로한다.
지금 하고 있는 훈련은 그의 말대로 난해한 면이 있다.
코끼리 코 일곱 바퀴를 돈 후 서 코치가 치는 땅볼 타구를 잡아내는 훈련이었다.
나름 2군 베테랑이라 자부하는 문표였기에 서 코치의 훈련 방법을 따르지 않으려 했지만, 그의 제안이 결국 글러브를 들게 만들었다.
"네가 연달아 다섯 개를 잡아내면 감독님께 1루수 보직을 건의하도록 할게."
서 코치의 제안이었다.
문표는 단순해 보이는 제안에 흥미를 보였다.
"1루수요? 저를 1군에 올리실 생각입니까?"
문표는 서 코치가 던진 미끼를 물었다.
그러자 서 코치가 영문 모를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당연하지. 너 정도 기량의 베테랑을 언제까지 2군에 박아둬야겠냐? 1군의 상훈이나 중석이가 페이스 떨어지면 네가 올라가야지 않겠어?"
서 코치의 확언에 문표는 잠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서 코치가 피식 웃으며 묻는다.
"왜? 한동현 감독과의 일이 마음에 걸리는 거야?"
아픈 곳을 찌르는 서 코치의 질문에 문표는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작년 1군 무대에서 크게 활약했었던 문표.
팬들은 전성기 때의 기량을 되찾은 문표에게 성원을 보냈었다.
하지만 한동현 감독과의 불화와 함께 무릎 부상이 도지며, 문표의 야구는 가을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한간에는 문표가 한 감독에게 항명을 했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한동현 감독님과의 일이라니요? 한 감독님하고 사이 괜찮습니다. 나쁘지 않아요."
문표는 발뺌을 한다.
화재를 전환하기 위해 서 코치의 이상한 펑고를 응하며 글러브를 들었던 것이다.
"이런 펑고는 모든 팀에서 하는 거야. 수비 약한 '루키'들은 꼭 거치는 훈련이란 말이다. 문표 너에게 완전 제격이지 않냐?"
서 코치는 들고 있던 배트를 놓고는 훈련 시작 30분 만에 퍼져버린 문표에게 다가선다.
그의 말대로 코끼리 코 펑고는 수비 시에 야수의 본능적인 감각을 올려주는 훈련 방법이었다.
모든 야수가 이런 방법으로 수비력을 끌어올리는 것은 아니지만, 수비력 증진이 필요한 신인 급 선수들에게 스프링캠프에 한정해서 하고는 했다.
"아이고, 더는 못하겠습니다. 코치님. 지금은 오전시간입니다. 다른 선수들은 웨이트를 하고 있는데 왜 저만 펑고를 해야 합니까?"
문표는 불평하며 양손으로 경기장을 가리킨다.
그의 말대로 경기장에는 서 코치와 문표를 제외한 사람이 없었다.
아직 이른 오전시간이었기에 선수들은 웨이트 훈련 중에 있었다.
일정이 빡빡한 스프링캠프 기간이지만, 선수들의 체력 증진과 체격 성장을 위해 오전 시간은 웨이트 훈련으로 대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상훈이가 자리 잡은 1루수 자리에 들어가려면 수비 능력이 필수 아니겠냐? 그럼 너 정도 타격으로 지명타자를 하려고 했어?"
따져 묻는 서 코치의 물음에 문표는 고개를 끄덕인다.
김상훈은 1군의 주전 1루수를 말하는 것이었다.
"네. 그러려고 했는데요. 저 정도 타격이면 지타로 뛰어도 되지 않습니까? 저 작년에 1군에서 15홈런을 때린 몸입니다."
"타율은 2할 8푼이었지. 이 팔푼이 놈아. 지타 자리에는 3할, 20홈런의 중석이가 있다. 네가 지타 자리에 껴들려면 3할 5푼은 쳐야 되는 거야. 그러니 잔말 말고 글러브를 들어라."
"아이고."
입담이 센 문표였지만 정확한 기록을 근거로 이야기하는 서 코치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는 별 수 없이 조금만 쉬게 해달라고 통사정을 한 다음에 훈련을 이어나간다.
그런 문표를 걱정하는 인물이 경기장과는 조금 떨어진 짐(GYM)에서 오전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문표 선배는 고생이겠습니다. 그 나이에 코끼리 펑고하려면 토 나올 텐데 말입니다.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하고 있는 이는 택근이었다.
그는 강호의 룸메이트로 자이언츠 2군의 주전 좌익수를 맡고 있다.
"너도 문표 선배 나이에 그런 훈련 안하려면 잡담할 시간에 근육 1그람이라도 더 만들어 놔."
강호가 답했다.
운동에 집중하고 있는데 자꾸만 말을 거는 택근을 질타하게 된다.
"아니, 선배님. 선배님이 저한테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되지 말입니다. 제 몸은 이미 짱짱합니다."
택근은 항변한다.
그의 말대로 택근의 몸은 근육으로 가득 차 있었다.
184센티미터의 키에 91킬로그램의 체중 대부분이 근육이었다.
강호로서는 부러울 수밖에 없는 택근의 신체조건이다.
'좋겠다. 아주 좋겠어. 몸 좋아서.'
강호는 당기고 있던 랫 풀 다운의 바를 손에서 놓고는 택근의 몸을 흘겨본다.
그리고는 자신의 앙상한 몸을 한 번 비교해본 후 한숨을 내쉰다.
"그러니까 내가 운동하는 거 방해하지 말고 저리가라. 너랑 잡담할 시간에 근육 1그람이라도 더 만들어야지 문표 선배 나이에 고생을 안 하지."
"방해라뇨. 제가 옆에서 보조해 드리는 겁니다. 자자, 일곱, 여덟, 아홉. 이번 세트는 스무 개까지 하겠습니다."
택근의 너스레에 입을 다물고 운동에 집중하는 강호였다.
'택근이 녀석. 문표 선배랑 친하게 지내더니 너스레가 부쩍 늘었네. 이놈이랑 말을 섞다가는 잡담이 길어지겠어.'
택근의 말에 답하지 않기로 한다.
체격을 키우는 웨이트는 강호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훈련이기 때문이다.
'양용민 코치와의 약속을 지키려면 부지런히 해둬야 해. 아마 내일이나 모레 쯤에는 약속한 5킬로를 달성할 수 있겠는데.'
강호의 생각이었다.
그는 체중을 늘리기 위해 구단에서 제공하는 3끼의 식사와 1끼의 야식을 포함해 또 다른 특식을 섭취하고 있었다.
보디빌더들이 체중을 늘리기 위해 필수적으로 먹는다고 알려진 프로틴이었다.
'맛은 없다.'
프로틴을 먹기 시작한 강호의 솔직한 평가였다.
요즘 프로틴 분말은 먹기 편하게 초코 향이나 딸기 향을 첨가해 나오고는 있지만, 강호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물에 단백질 분말을 타먹는데 무슨 맛이 있겠는가.
체중을 늘리기 위해 억지로 복용할 뿐이다.
'하루에 다섯 번이나 프로틴을 마시려니 죽을 지경이야. 문표 선배가 아니라 내가 토가 나온다.'
생각은 그렇지만, 하루 다섯 번의 프로틴 섭취를 거르지 않았다.
그런 결과 강호의 체중은 목표했던 75킬로그램에 도달해 있었다.
"어? 코치님. 안녕하십니까? 일찍 나오셨네요."
그 때 누군가의 음성이 강호의 상념을 깬다.
웨이트 훈련을 하는 짐에도 코치들은 존재한다.
선수들의 체격과 체력을 관리하는 이른바 트레이닝코치들이었다. 또한 컨디셔닝 코치들도 존재한다.
'트레이너들에게 저렇게 인사하지는 않을 텐데. 누가 온 거지?'
강호는 관심을 갖고 고개를 돌린다.
"다들 고생이 많다. 시원한 음료들 마시면서 운동하도록 해."
양 손에 음료수 박스를 들고 나타난 인물은 3군 총괄코치인 양용민 코치였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그가 선수들을 위해 이온음료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양 코치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등장한 양 코치에게 선수들이 인사를 건넨다.
운동선수들이어서 그런지 인사에 관해서는 철저한 면이 있었다.
"그래그래. 다들 훈련 중인데 그렇게 인사 안 해도 돼. 여기 시원한 거 마시면서들 해."
"넵!"
양 코치의 말에 막내들이 나서서 음료수를 들고 나른다.
강호는 택근과 함께 걸음을 옮겨 자기 몫의 음료수를 챙기려 했다.
그런 그에게 누군가가 음료수를 전해 준다.
"선배님. 여기 있습니다."
그는 권대우였다.
강호덕분에 두 차례 좋은 투구를 보여준 신인투수다.
강호는 대우가 건넨 음료를 받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고맙다. 너 이틀 전에 선발로 뛰었잖아. 벌써 훈련 참가해도 되는 거야?"
강호가 걱정스레 묻는다.
대우는 2일 전, 트윈스와의 경기에 선발 출장하여 5이닝을 던졌었다.
아무래도 스프링캠프 경기인지라 5이닝을 잘 막아낸 대우라 할지라도 6이닝까지 던지게 두지는 않았다.
손 감독이 대우에게서 확인하고자 한 것은 5이닝 동안 모두 확인한 것이다.
"어제 푹 쉬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회복이 빠른 편이라서 지나치게 몸을 사리면 오히려 몸이 결립니다. 이렇게 나와서 움직이는 게 회복하는데 도움도 되고 말입니다."
대우의 대답에 피식 웃음 짓는다.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있나? 아직 어린 녀석이 각오가 대단하네.'
강호는 대우의 말을 믿지 않았다.
제대로 된 휴식 없이 몸을 움직여서 회복한다는 것은 거짓일 것이다.
피로가 쌓인 몸을 움직여 새로 쌓이는 피로를 적응한다는 것인데, 그런 방법으로는 제대로 된 회복이 될 리 없었다.
"네가 알아서 하겠지만, 프로는 자기 몸은 알아서 관리하는 거야. 눈치 볼 필요 없이 휴식이 필요하면 쉬도록 해."
"네...말씀 감사합니다. 선배님."
특별한 말을 한 것도 아닌데 대우는 감동받은 표정을 짓는다.
그 표정 그대로 재차 입을 여는 대우.
"저기..."
무언가 강호에게 말을 건네려고 할 때, 대화에 끼어드는 인물로 인해 대우는 입을 닫고 만다.
"오, 강호도 있었구나. 운동은 잘 하고 있는 거야?"
양용민 코치는 강호에게 다가오며 인사를 건넨다.
강호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양 코치의 물음에 답했다.
"네, 이전에 지시하신 대로 체중 증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잘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까 몸이 좀 분 것 같은데. 체중은 늘어난 거야?"
강호는 억양이 강한 양 코치의 충청도 사투리에 고개를 숙이며 답한다.
"아직 목표치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조금은 늘었습니다."
"그래? 예전에 물었을 때는 71킬로라고 했지? 지금은 얼마나 늘린 거야? 잠깐, 여기 헬스장에도 체중계가 있지 않아?"
양 코치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웨이트를 하는 짐을 헬스장이라고 말하는 양 코치.
그를 대신해서 택근이 입을 연다.
"코치님. 체중계는 저 쪽 체질량 측정실에 있습니다."
"그래? 잘 됐다. 강호야 체중 한 번 측정해보자. 택근이 네가 측정실로 앞장서고."
"넵, 코치님."
강호가 승락을 하기도 전에 양 코치와 택근이 앞장서서 걸음을 옮긴다.
어쩔 수 없이 양 코치의 뒤를 따르며 강호는 생각한다.
'요 며칠 체중 측정을 하지 않았다. 몇 킬로나 늘었을까? 체중이 다시 줄어든 것은 아니겠지?'
괜한 걱정이 들었다.
프리마켓에 다녀온 이후로 체중이 늘었던 것이 혹시 원래대로 돌아가지는 않았을까하는 우려가 되었다.
강호의 걱정이 계속되는 가운데 세 사람은 측정실로 들어섰다.
"자, 올라가 봐라."
양 코치가 손짓한다.
강호는 잠시 망설이다 신발을 벗고는 체중계 위로 올라섰다.
입고 있는 운동복이 가볍기 때문에 옷 무게가 더해지는 것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75.3킬로? 오옷~강호야. 그 짧은 기간 만에 4킬로나 늘린 거냐? 잘 했다. 아주 잘했어. 이런 추세라면 캠프가 끝날 때까지 80킬로를 만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어!"
체중계를 확인한 양 코치가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기뻐한다.
강호 역시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체중이 가벼워 배트에 힘을 싣지 못하는 것이 그의 콤플렉스였다.
5킬로그램의 체중 증가는 강호에게 있어서는 상당한 변화인 셈이다.
한 편 두 사람의 행태를 보고 있던 택근은 의아해한다.
'고작 5킬로 늘린 것이 그렇게 큰일인가? 5킬로가 늘어서 고작 75킬로인 거잖아. 못해도 90킬로는 되어야 홈런이나 장타를 때리는 것 아닌가?'
건장한 체구의 택근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잘 됐어. 네 신체 변화를 선수차트에 기록하도록 하겠다. 손 감독님께도 보고를 드릴 테니 조금 더 분발해보도록 해라."
양 코치는 어려운 일을 해낸 강호의 어깨를 연신 두들기며 짐에서 물러난다.
그런 양 코치를 짐 입구까지 배웅한 강호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됐다! 목표한 것을 달성해 냈어. 양 코치가 감독님께 보고를 한다고 하니 긍정적인 변수가 생겨나게 될 거야.'
강호는 기뻐한다.
예전에 양 코치는 말했었다.
자신이 체중을 증가시킬 수만 있다면 팀의 주전 선수로 건의하겠다는 것을.
연이은 활약으로 굳이 양 코치의 건의는 필요 없게 되었지만, 손 감독에게 보고를 올린다면 추가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생길 것이다.
'손 감독님께 내 이름이 자주 거론될수록 나를 위한 기회는 많아지게 된다. 모든 기회를 살려서 1군 무대에 오르는 거야!'
강호는 그려본다.
당당한 체격을 갖춘 채 1군 데뷔무대에 오르는 그 날을.
3남매를 위해 희생한 형에게 바치는 홈런을 쏘아 올리는 영광스러운 날을.
'1군 무대에서 첫 안타를 치게 되면, 그 공을 형에게 바치겠어.'
강호는 생각한다.
단지 첫 안타뿐 아니라 첫 홈런볼도 형에게 바칠 생각이었다.
그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다시 움직일 시간이다.
"택근아. 뭐하고 있냐? 그만 쉬고 어서 운동해야지."
"네? 네. 알겠습니다. 선배님. 같이 가요."
곁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 택근을 채근하며 짐으로 들어선다.
다시 운동기구 앞에 서게 된 두 사람.
기구의 무게를 한 단계 더 올린 후 힘 있게 랫 풀 바를 끌어당긴다.
'온다. 그 날은 반드시 온다!'
형에게 홈런볼을 전해줄 그 날을 그려보며 강호는 더욱 땀을 흘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