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6화 (16/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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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루에서 바라보다

-득점권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시야에 뜬 메시지를 바라보며 강호는 생각에 잠긴다.

상대팀이 투수를 교체하는 타이밍이라 생각할 시간은 충분했다.

'지금의 내 상태로 스스로 안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강호의 머리를 가득 채운 생각이었다.

프리마켓 시스템이 적용되기 이전에는 스스로의 타격 능력을 2할 7푼 정도로 보았다.

1군이 아닌 2군에서의 예상치였다.

'시스템이 적용되고 난 후는 조금이지만 수치가 올랐을 거야. 못해도 1푼 정도는 오르지 않았을까?'

그렇게 예상하고 있었다.

시스템의 영향으로 컨택 능력이 소폭 상승하고, 파워가 눈에 띄게 증가해서 인플레이 타구가 안타가 될 확률이 조금은 올라가게 되었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강호 스스로는 1푼의 타율 증가로 보고 있다.

'지금은 오히려 이전보다 좋지 않을 거야. 타격 폼을 수정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까. 바뀐 타격 폼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

강호는 변수를 생각해야만 했다.

아무리 예전에 사용하던 타격 폼이라지만, 신체의 밸런스가 급작스레 바뀐 상태다.

단 번에 적응하고, 타격 폼을 수용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앞으로 일주일. 그 시간 안에 반드시 바뀐 타격 폼을 내 것으로 만든다. 그러나 지금은 타격을 장담할 수 없어. 굳이 따져본다면 2할을 넘기기도 힘들 거야.'

강호는 스스로에게도 냉정한 잣대를 내세우고 있었다.

타격 폼을 수정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10개의 타석에서 운 좋게 2개의 안타를 뽑아내는 것도 힘겹다고 생각한다.

그것마저도 장타와는 거리가 먼 안타일 것이다.

'그러니 복잡한 생각을 버리고 아이템을 사용하자. 지금은 주자 1,3루 상황. 딱히 장타가 아니더라도 3루 주자 정도는 홈으로 들일 수 있다.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타격일거야.'

강호의 생각이다.

그는 일회성인 '안타'아이템을 사용해 단타를 기록할 생각이었다.

'장타 능력만이 전부가 아니지. 때로는 상황에 맞는 타격 능력도 중요한 거야.'

마음을 정한 강호의 시선이 잠시 1루 주자인 오진만에게로 향한다.

한 때는 유격수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유력한 경쟁자였지만, 손 감독의 마음에서 멀어져 버린 그에게서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오진만, 장타 능력을 갖추기 위해 밤낮으로 훈련하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장타력을 위해 정교함을 외면하다보니 기대 타율이 2할 5푼도 되지 않아. 유격수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타격이야.'

진만을 보는 강호의 시선이었다.

자이언츠는 거포 유격수를 원하지 않는다.

물론 거포 형 유격수가 팀에 있다면 상당한 장점이 생기지만, 팀 창단 이후 장타력을 갖춘 유격수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딱히 바라지도 않는 것이다.

'지금 내가 보여주는 타격이 자이언츠 코칭스탭이 바라는 타격일 거야. 비록 내 능력이 아닌, 아이템을 사용하는 거지만. 잘 봐라! 오진만. 너의 타격에는 없는 이 모습을.'

잠시 1루 주자인 진만과 시선을 맞춘 후 타격을 준비한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아이템 사용을 수락했다.

-아이템 안타(일회용)를 사용합니다.

강호가 안타 아이템을 사용한 직 후, 바뀐 투수의 연습구가 끝이 나고 투구가 시작되었다.

초구는 로케이션에 상당히 공을 들인 바깥쪽의 패스트볼이었다.

"볼."

주심은 공이 빠졌다고 보았는지 볼을 선언한다.

하지만 스트라이크를 줘도 충분히 납득되는 공이었다.

'바뀐 투수의 제구력이 좋아. 3구 안에 스트라이크 하나가 들어오겠지.'

강호의 예측은 맞아 떨어졌다.

2구 역시 아슬아슬한 바깥 쪽 코스의 패스트볼이 들어왔고, 공하나 정도가 안쪽으로 들어오자 주심은 어김없이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

"스트라이크!"

주심의 시그널에 강호는 고개를 끄덕인다.

'구속은 떨어지지만, 제구력이 좋다. 변화구는 어떨까?'

두 개의 공을 본 강호는 상대 투수에 대한 판단을 해본다.

상대 투수의 포심은 많이 쳐줘도 구속이 135km 전후로 보였다.

무브먼트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코스를 예측하고 친다면 장타로 연결할 수 있는 공이었다.

'변화구를 지켜보자.'

순서상 변화구 타이밍이라고 본 강호가 3구 역시 지켜보기로 한다.

그래도 적극적으로 타격을 하는 듯한 모션은 잊지 않았다.

공을 기다린다고 하더라도 허수아비처럼 지켜보기만 해선 안 된다.

슈욱.

타격 자세를 취한 강호의 눈에 몸에 맞을 듯이 다가오다 존으로 휘어지는 공의 움직임이 들어온다.

바뀐 투수의 3구는 백도어로 존에 걸치는 슬라이더였던 것이다.

"볼 투."

주심의 시그널은 볼이었다.

이번 역시 스트라이크를 줘도 무방한 코스였지만, 주심은 몸 쪽으로 붙었다고 본 모양이다.

'예상대로 변화구였다. 슬라이더가 각이 좋아. 노리고 치지 않는다면 정타를 만들어 낼 수 없겠어.'

상대 투수의 구종 두 가지를 확인하고는 빠르게 머리를 굴린다.

강호는 다음 공이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들어올 것이라 확신했다.

'이번 공은 커트하자. 카운트를 2스트라이크로 만드는 것이 우선이야.'

4구는 타격을 결정한다.

그러나 정타를 노리는 것이 아닌 파울 타구를 만들려는 계획이다.

타격을 준비하던 강호가 타이밍을 맞추다 말고 타임을 요청한다.

주심은 강호의 타임 요청을 받아들이고는 양손을 활짝 편다.

잠깐의 여유가 생긴 강호가 다시 타석에 들어서며 고민에 빠진다.

'커트하려는 공이 안타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게 되면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데...'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파울을 만들려던 타구가 안타가 되도 큰 문제는 아니겠지만, 강호의 의도가 사라지고 만다.

강호는 이번 기회에 아이템을 사용한 후에도 타구가 파울이 되는지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따악!

다행히도 파울을 만들려던 타구가 아슬아슬하게 라인을 벗어나고 말았다.

생각이 복잡해져 타이밍이 늦었는데 운 좋게 파울이 만들어진 것이다.

'스윙을 하더라도 정타가 아니면 반드시 안타가 되지는 않는 건가? 좋은 사실을 알았구나.'

강호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또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딱, 딱, 따악. 딱!

4구를 파울로 만든 이후 연달아 네 번의 파울 타구가 이어졌다.

배트의 로케이션은 정확했지만, 타이밍이 느리거나 빨라 타구가 파울라인을 크게 벗어나는 타구였다.

다섯 번이나 이어지는 파울 타구에 짜증이 났는지 투수의 다음 공은 지나치게 바깥쪽으로 빠지고 만다.

"볼 쓰리."

주심의 선언으로 상황은 풀카운트가 되어 있었다.

투수가 던지는 공은 이제 10구 째. 강호는 드디어 정타를 때려낼 타이밍이라고 판단을 내린다.

슈욱.

열 번째 공은 제구가 된 것인지 강호가 노리는 곳과 얼추 비슷한 코스의 패스트볼이 날아들었다.

아홉 개의 공을 보며 타이밍을 파악해 두었던 강호는 힘 있게 배트를 휘둘렀다.

그의 타격 자세는 기존의 것과 다른 새로운 타격 폼이었다.

따악!

타격과 동시에 강렬한 타격음이 내야를 뚫어 버린다.

한 편, 강호가 타석에 들어설 때부터 그를 주시하고 있던 손 감독은 강호가 연달아 세 개의 공을 흘려보내자 속으로 실소를 머금는다.

'바뀐 투수의 공을 보여주겠다는 것인가? 역시 야구 센스가 있는 녀석이야.'

손 감독은 속으로 강호를 칭찬했다.

그는 좋은 타격 능력을 갖춘 타자를 좋아하지만, 그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타석에 서서도 팀을 위한 플레이를 할 줄 아는 타자였다.

강호는 바뀐 투수의 투구 성향과 구종을 파악하기 위해 연달아 세 개의 공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운 좋게도 카운트는 투 볼 원 스트라이크 상황.

강호에게 나쁘지 않은 카운트였다.

'컨디션이 올라온 강호라면 여기에서 타격을 할 거야. 최근 두 경기에서 녀석은 초구 또는 원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모두 승부를 보았다.'

손 감독은 지금 상황에서의 타격을 예상해 보았다.

따악.

예상대로 강호는 4구째를 노려 타격했고, 타구는 아쉽게도 아슬아슬하게 파울 라인을 벗어나고 말았다.

'파울은 됐지만, 나쁘지 않았어. 인코스로 들어왔다면 충분히 안타가 되었을 거야.'

손 감독은 고개를 끄덕인다.

선수들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카운트가 존재했다.

초구에 이은 2구에서 2스트라이크로 몰린 상황은 모든 타자들이 싫어할 것이다.

자기 스윙을 하려면 스스로가 정한 룰이 존재해야 했다.

강호에게 그 룰이 존재한다는 것은 자기 스윙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스윙 동작도 좋아. 하지만 강호 녀석은 2스트라이크에 몰린 상황에서는 안타를 때린 적이 없다. 지금은 2볼, 2스트라이크 상황. 이대로 맥없이 물러날 것인가?'

손 감독은 강호의 다음 타격을 유심히 살폈다.

직전 두 경기에서 강호가 2스트라이크 이후에는 안타를 때려낸 적이 없었기에 큰 기대는 걸지 않았다.

딱, 딱, 따악. 딱!

연달아서 들리는 네 번의 타격음에 눈을 동그랗게 뜨게 된다.

삼진을 당하거나 범타 처리 될 것이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끈질긴 승부를 끌고 나갔기 때문이다.

"볼 쓰리."

이어진 아홉 번째 공은 존을 한참 벗어나는 볼이었다.

주심의 볼 판정에 덕 아웃에 있던 코치들이 단발의 손뼉을 친다.

"그렇지!"

"잘 봤어. 이제 풀카운트야. 이렇게 되면 쫓기는 것은 투수라고."

코치들이 강호를 응원하며 다음 공을 기다린다.

'처음 보는 강호의 풀카운트 승부구나. 녀석은 과연 풀카운트를 어떻게 승부할 것인가? 타격을 할 것인가? 아니면 맥없이 물러날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볼넷을 얻어낼 것인가?'

손 감독은 초조한 심정으로 투수의 투구를 기다린다.

세 개의 경우를 예상했지만, 볼넷의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었다.

9구째에 흔들리기는 모습이 있긴 해도 상대 투수의 제구력은 수위권이었다.

10구째나 승부한 타자에게 볼넷을 내줄 것 같지는 않았다.

"한 번 보여줘 봐라. 강호! 너의 진짜 모습을."

손 감독이 저도 모르게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낸다.

그만큼 그가 이 승부에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누가 말했었지. 타자의 본 모습은 풀카운트 승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과연 너는 겁을 내고 꼬리를 말 것인가? 아니면 삼진을 당하더라도 호쾌한 스윙을 보여줄 것인가? 어서 내게 보여줘 봐!'

손 감독의 성원과 함께 투수의 10구가 손을 떠난다.

이어서 들리는 호쾌한 소리에 손 감독을 포함한 코치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따악!

끈질긴 승부 끝에 강호의 타구는 내야 수비를 뚫어내고 빨랫줄처럼 뻗어져 나간다.

"그렇지!"

"안타야!"

짜릿한 적시 안타에 코치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 때 김진관 코치가 아쉬움을 가장한 목소리로 강호의 안타가 단타임을 지적한다.

"아, 타구를 봐서는 2루타 성 코스인데 지나치게 좌익수 정면으로 갔습니다. 1루 주자가 2루까지 밖에 가질 못했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조금만 우측으로 향했어도 장타가 나왔을 텐데요. 조금 아쉽네요."

김 코치의 곁에 있던 신기문 3군 수비코치가 동조한다.

그러자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손 감독이 갑작스레 목소리를 높인다.

"투수에게 공을 열 개나 던지게 하고 적시타를 만들어 냈으면 됐지. 뭘 더 바라나? 그럼 저 상황에서 홈런이라도 쳤어야 했어?!"

강호의 활약을 폄하하는 것만 같은 두 코치의 대화에 손 감독이 일갈한다.

그러자 김 코치와 신 코치가 진땀을 흘린다.

"아, 아닙니다. 코스가 아까워서 그랬습니다. 강호의 대처가 참 좋았습니다."

신 코치가 얼른 강호의 승부를 칭찬하자 김진관 코치도 별 수 없이 동조를 해야 했다.

"오른손을 몸 쪽에 붙인 판단력은 좋았습니다. 덕분에 내야수들을 완전히 뚫어냈어요. 좋은 판단입니다."

자신의 말에 손 감독의 불편한 심사가 가시는 듯하자 김 코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런데 김 코치의 생각과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손 감독은 김진관 코치의 말에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 강호 녀석이 10구 째 승부에서 타격 폼을 바꿨어. 김 코치의 말대로 오른손을 몸에 붙인 레벨 스윙을 했단 말이야.'

손 감독은 놀라고 만다.

풀카운트 상황에서 타격 폼에 변화를 줬다는 것은 확신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

제구력이 좋은 투수를 상대하면서 안타를 때려낼 확신을 가지다니.

강호의 재능은 수비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강호 녀석. 수비와 타격, 두 가지 모두에 눈을 뜬 것이구나! 그렇다면 내가 선택해야하는 것은 단 하나야.'

손 감독은 결정을 내렸다.

강호를 중심으로 한 내야수 포지션의 이동, 그것으로 촉발된 내야수들의 치열한 경쟁까지.

강호가 때려낸 단 하나의 안타가 손 감독의 결정을 이끌어낸 것이다.

'어떤 포지션이든 이제 상관하지 않겠어. 녀석을 주전 야수로 성장시킨다. 녀석이 기대대로만 성장해 준다면 자이언츠의 미래는 예전과는 다른 모습일 거야.'

손 감독은 흥분을 감추어야만 했다.

창단 년도의 원년 구단인 자이언츠 구단.

그러나 한국시리즈 우승 2회라는 초라한 기록만을 가지고 있었다.

정규 시즌 우승은 단 한 차례도 경험한 바가 없다.

그런데 강호가 때려낸 안타에서 자이언츠의 미래를 보게 되었다.

'강호 녀석 같은 타자를 유격수 포지션에서 키워낼 수 있다면, 더 이상 가을 야구에서 제외될까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어쩌면 나는 우리 팀의 미래를 보고 있는 지도 모른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단지 스프링캠프의 경기일 뿐이지만, 강호의 플레이는 가슴을 뛰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로 인해 꽤 오랜 시간동안 잊고 있던 욕심이라는 것이 조금씩 솟아오르고 있음을 느낀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말이야.'

자꾸만 되뇌며 오랫동안 꿈꾸었던 바람을 속으로 삼켜낸다.

기대를 가지기에는 아직 이른 시기.

손 감독은 강호뿐 아니라 모든 선수들을 눈에 담으며 각오를 다진다.

'이번 시즌에는 제대로 키워내겠어. 강호 녀석을 포함한 모든 선수들을 제대로 키워내고야 말겠어!'

손 감독은 마음을 먹는다.

그가 가슴 속에 피어오르는 열기를 다스리는 동안 다음 타자인 안민경이 2루타를 때려내었고, 빠르게 홈으로 파고 든 강호가 득점을 얻어냄과 함께 덕 아웃으로 천천히 뛰어오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손 감독.

나이 든 노 감독은 그라운드 근처까지 올라 덕 아웃으로 들어오는 강호를 반긴다.

타악.

두 사람의 오른손이 허공에서 맞부딪힌다.

손 감독은 아무 말 없이 강호의 오른 손을 맞잡았고, 그의 손길에서 뜨거운 기운을 느낀 강호 역시 맞잡은 손을 움켜쥐었다.

2019년 2월, 스프링캠프의 어느 날.

만년 2군 선수에 불과했던 백강호의 진짜 야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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