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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루에서 바라보다
복잡한 생각을 접어두고는 경기에 집중한다.
팀이 6대 2로 앞서는 상황이지만, 야수들의 실책이 겹치면서 1사 주자는 1, 2루. 투수인 대우의 제구가 흔들리는 상황이다.
'3루는 원래 내 자리다.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아도 타구 하나 막는데 문제는 없어!'
아이템 사용을 권하는 메시지를 종료하고 자세를 더욱 낮춘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3루 쪽으로 타구가 온다는 것만 알아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상황이다.
이제 곧 3루 쪽으로 향할 타구를 포구하기 위해 글러브를 앞으로 내밀었다.
따악!
타자의 풀스윙과 함께 호쾌한 타격음이 장내를 채운다.
'온다!'
미리부터 대비하고 있던 강호는 타자의 타격과 함께 좌측으로 몸을 날렸다.
라인드라이브 성 타구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타구가 강하게 바닥을 때린 후 3루 쪽 방면을 가르려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벼락같은 타격이었다.
"저, 저런!"
"좌중간으로 빠지겠는데?"
타구의 방향을 확인한 자이언츠의 덕 아웃은 표정이 좋지 못했다.
유격수가 잡기에는 지나치게 깊었고, 3루 방면에 붙어있는 강호가 잡기에도 멀었다.
그런데 그 때 서학수 수비 코치의 눈이 무언가를 확인한다.
"어?!"
당황을 담은 탄성이었다.
주자 1, 2루 상황이어서 3루 쪽으로 붙어있을 것이라 생각한 강호가 타구를 향해 다이빙캐치에 들어간 것이다.
'내야 강습 타구에 다이빙캐치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거야?'
그것이 서 코치의 생각이었다.
강호의 행동은 타구의 방향을 미리 예측하고 움직였다 생각 될 정도로 빠른 대처였다.
타악.
길게 손을 뻗은 강호의 글러브에 타구가 걸려들었다.
잘 맞은 타구에 2루와 3루로 향하던 주자들이 잠시 주춤거린다.
'우왁, 저걸 잡냐? 제기랄! 이러다 병살 나오겠네!'
3루로 향하던 주자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3루수인 강호가 다이빙 캐치를 했으니 3루에서 아웃될 가능성은 낮았다.
그러나 1루 주자의 입장은 달랐다.
'이런 망할!'
1루 주자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는다.
2루를 향해 절반도 가지 않은 상황에서 빠른 땅볼 타구를 다이빙캐치로 잡아낸 강호가 2루를 향해 송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웃!"
당연히 아웃될 수밖에 없었고, 그 모습에 자이언츠의 덕 아웃이 환호한다.
"오! 그래! 그거야!"
"1루, 1루도 잡아야지!"
손 감독을 포함한 코치들의 시선이 2루수로 바뀐 오진만에게로 옮겨진다.
'강호 선배가 호수비를 했다. 여기서 송구 실책을 하게 되면 2군 무대에도 내 자리는 없어. 최대한 정확하게 던진다!'
강호의 공을 받아 아웃카운트 하나를 올린 진만은 불안감을 떨쳐내며 1루를 향해 공을 던졌다.
그의 공이 평소의 불안한 송구와는 다르게 꽤나 정확한 각도로 1루수의 글러브로 빨려들었다.
그러자 1루심이 격한 동작으로 콜을 외친다.
"아웃!"
1루심의 콜은 1사 상황에서 이닝 종료를 알리는 시그널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투수와 덕 아웃이 환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
마운드 근처에서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대우가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사실 그는 초구를 던지고는 아차 했었다.
'실투다!'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과했는지 공이 지나치게 몰리고 만 것이다.
패스트볼을 기다리고 있던 타자의 타격이 이어졌고, 강하게 맞은 타구는 3루수와 유격수를 갈라버릴 듯이 빠르게 튀어 올랐다.
'아니!'
정해진 수비 위치로 달리려던 대우는 잠시 얼어붙고 말았다.
안타로 이어질 것이라 여겼던 타구가 어느새 몸을 날린 강호의 글러브에 빨려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5-4-3의 깔끔한 더블 플레이.
땅볼 유도형 투수인 대우가 지향해야하는 가장 바람직한 수비 플레이가 나온 것이다.
"나이스 플레이!"
격한 환호와 함게 덕 아웃으로 들어서던 강호와 글러브를 마주친다.
"잡았어!"
"어서 병살로 연결 해!"
덕 아웃에서 지켜보던 코칭스탭의 표정도 시시각각 변화했다.
강호의 환상적인 다이빙 캐치가 나왔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병살로 연결시키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고 있던 코치들의 얼굴이 환희로 물든다.
"나이스!"
"이닝 종룝니다!"
"강호가 여기서 해주는데요?"
"대우의 땅볼 유도도 좋았습니다. 흔들리던 제구를 잡은 모양입니다."
코치들의 흥분한 음성이 손 감독의 귀를 파고든다.
'대우의 땅볼 유도가 좋았다고? 아니야. 대우가 던진 공은 실투였어. 강호의 수비가 좋았던 거야.'
대우의 대처를 포장하려는 투수코치의 말에 손 감독은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다른 코치가 아닌 투수코치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수비 결과가 좋았으니 투수의 공로를 인정해달라는 의사표시였다.
평소 같았으면 대우의 공로 역시 칭찬했겠지만, 손 감독의 평가는 냉정했다.
'이번 병살은 90% 이상이 강호의 공로다. 투수인 대우는 분명 실투를 했어. 하지만 결과가 좋으니 탓을 할 수는 없겠지.'
딱히 이닝을 끝낸 대우를 탓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스스로 이닝을 결정지으면 좋겠지만, 수비수의 도움을 받는 것도 투수의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이렇게 해서 대우 녀석이 5이닝 2실점으로 막아낸 것인가? 나쁘지 않아. 선발로 키우는 것도 가능한 놈이야. 그것이 아니더라도 롱릴리프로 활용할 수도 있을 거야.'
손 감독은 대우의 활용 방안에 대해 구상해 보고 있었다.
투수코치와 연마 중인 슬라이더까지 장착한다면 1군 무대에 올려 패전 처리 정도는 맡길 수 있을 거라 판단이 된다.
이어서 다른 선수에 대한 평가를 해본다.
'이번 이닝에서 중요한 것은 대우가 아닌 강호야. 녀석의 수비는 2군에 두고 쓰기에는 아까운 면이 있다.'
손 감독의 시선이 덕 아웃으로 들어서고 있는 강호에게로 향했다.
가장 먼저 나서서 강호와 하이파이브를 한다.
"아주 좋은 수비였다. 대처가 무척 빨랐어. 타구를 예측한 거냐?"
하이파이브를 하며 강호에게 묻는다.
강호의 다이빙캐치는 예측하지 않고서는 실행이 불가능한 플레이였다.
그렇기에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이에 대한 강호의 대답은 간단했다.
"타자의 스윙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대우의 공이 몸 쪽으로 붙는 것과 타자가 당겨 치는 것을 봤습니다."
강호의 말을 있는 그대로만 해석한다면 집중하고 있었기에 수비가 가능했다는 의미다.
허나 손 감독은 보통의 인물이 아니었다.
강호의 말에 담긴 숨은 의미를 단 번에 파악했다.
'투수의 공과 타자의 스윙을 보고 타구판단을 했다는 말인가? 말은 쉽지만, 결국 타구를 예측했다는 것이다.'
손 감독의 생각이 맞는다면 보통 수비는 아닐 것이다.
우선적으로 투수의 공을 보는 선구안이 필요했고, 타자의 타격 준비동작을 분석하는 눈도 필요했다.
여기에 타자의 타격과 동시에 몸을 날리는 순발력과 수비 센스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좋았어. 강호!"
"나이스캐치다. 이 정도면 슈퍼캐치야!"
손 감독은 코치들의 칭찬 속에 벤치로 향하는 강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를 지켜보는 손 감독의 시선에는 어느새 확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강호의 수비는 진짜다. 이제는 의심할 필요가 없겠어. 녀석을 유격수에 놓든 3루수에 놓든 문제될 것은 없어. 어떤 포지션에서도 제 몫의 수비를 해낼 녀석이야.'
손 감독은 강호의 수비를 인정하기로 했다.
단지 유격수 자리에서만의 수비가 아니라 내야 전 포지션 어디에 두어도 믿을 수 있는 수비였다.
이렇게 되면 강호의 가능 포지션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녀석은 내, 외야 전 포지션이 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외야 수비능력도 지금처럼 해준다는 말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강호의 수비 능력을 어디까지 활용 가능할 것인지를 말이다.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감독인 자신의 몫이었기에 손 감독의 머리가 분주히 가동을 시작한다.
"여어, 슈퍼캐치. 너희들 잘 봤냐? 수비를 하려면 강호처럼 하는 거야. 조금 전의 수비면 2할을 치더라도 주전으로 기용할 수밖에 없다고. 역시 강호 후배야."
자신의 벤치 자리로 돌아온 강호를 반기는 것은 문표의 찬사였다.
그의 칭찬에 루키들 역시 감탄한 표정으로 강호를 반긴다.
"선배님. 나이스 수비입니다."
"대박입니다. 선배님."
"그런 수비 처음 봤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강호를 안중에 두지 않았던 루키들이 연신 찬사를 보내온다.
강호가 좋은 활약을 펼친 이유도 있었지만, 곁에서 강호와 루키들을 부드럽게 연결시켜준 문표의 공로가 컸다.
어떤 누구와도 쉽게 친해지는 그의 너스레가 강호를 향한 편견을 거둬내고 있는 것이다.
'이 녀석들이 왜 이러는 거야?'
루키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면서도 그들의 반응에 이채를 띈다.
강호는 루키들이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육성 선수로 자이언츠에 입단한 중고 신인, 좋은 수비력을 가졌지만 타격이 약해 경쟁력이 약한 선수.
그런 인식들이 있었기 때문에 최근의 활약조차 무시하는 루키들이다.
'문표 선배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문득 드는 생각에 피식 웃어 보인다.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루키들의 태도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사실이다.
무려 5년의 차이가 나는 후배들이 자신을 무시하는데 마음 편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강호 선배님,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눈앞에서 찬사를 보내는 루키들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고작 며칠만의 변화였다.
캠프 경기에서 활약한다고 해도 문표라는 연결 고리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리라.
강호는 자신에 대한 대접이 달라졌다는 것을 코치들과 루키들의 반응을 통해 실감하며 벤치에 앉았다.
따악.
강호가 문표와 루키들에게 둘러 쌓여있는 동안 자이언츠의 5회 말 공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선두 타자인 4번 타자 이인호가 앞전 수비 상황의 실책을 만회하는 안타를 치고 진루한다.
이에 5회 초 상황에서 빠진 추정혁을 대신해 7번 타자가 된 강호가 배트를 들고 준비를 시작한다.
"스윙! 배터 아웃!"
5번 타자인 지명타자 유동근이 8구까지 이어지는 승부 끝에 스윙 삼진을 당했지만, 다음 타자인 오진만이 우전 안타를 기록하며 찬스를 연결한다.
5회 말 주자 1, 3루 상황. 아웃 카운트는 1아웃이었다.
"강호. 상대 투수의 포심 제구가 몰린다."
타석에 들어서려던 강호에게 3군 타격코치인 김진관 코치가 다가와 말을 붙인다.
2군 타격코치인 프랑코가 자리하고 있었지만, 언어적인 장벽으로 인해 김진관 코치가 타자들에게 타격 주문을 하곤 했다.
"초구가 비슷하게 날아오면 그대로 휘둘러라. 제구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스트라이크를 잡으려고 몰린 포심을 던질 확률이 있어."
김 코치의 주문은 일견 타당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라운드를 바라보던 강호는 고개를 내젓는다.
"코치님. 트윈스에서 투수를 교체합니다."
"뭐?"
강호의 말에 김진관 코치의 시선이 상대팀 덕 아웃으로 향한다.
과연 트윈스의 투수코치가 주심에게서 공 하나를 받아들고 마운드로 오르고 있었다.
강호는 김 코치에게 다른 주문을 해줄 것을 요구했다.
"어떻게 할까요? 코치님."
"음..."
김 코치는 강호의 물음에 길게 신음한다.
바뀐 상대 투수가 누구인지 알 수 없으니 맞춤 타격 지시를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주심이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라는 시그널을 보내고 있었기에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어흠, 3루 쪽의 작전코치가 사인을 줄 거다. 사인을 잘 보도록 해라."
뻔한 말을 하며 김진관 코치가 물러난다.
한창 활약하고 있는 강호에게 타격 주문을 하며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던 김진관 코치.
그의 의도가 무산된 순간이다.
'작전 코치가 주는 사인을 잘 보라고? 그런 주문은 나도 하겠다.'
강호는 속내와는 다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타석으로 들어선다.
걸음을 옮기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어차피 상관없어. 조금 전의 호수비로 손 감독님이 나를 주시하고 있을 거야. 이럴 때에는 확실한 한 방이 필요하다.'
강호는 이미 아이템을 사용하기로 마음을 먹은 후였다.
그러니 딱히 타격코치의 주문은 필요하지 않았다.
'타격 아이템을 사용한 후 일부러 2스트라이크 상황까지 지켜본다.'
강호의 계획이었다.
그것을 통해 강호는 이번의 타격 기회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극대화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