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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루에서 바라보다
손 감독의 선수교체가 지시되는 순간, 강호는 다음 상황을 예측해보고 있었다.
'투수를 교체할 타이밍이다. 대우가 흔들리고 있어.'
강호는 투수교체를 예상하고 있었다.
선발 투수인 대우가 실책에서 이어진 실점으로 흔들리는 상황이어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예측일 것이다.
강호는 손 감독의 수가 단지 그것뿐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의 투수 교체는 초보자도 할 수 있는 선수기용이야. 단지 그것뿐이지는 않을 거다.'
강호는 루키들에게 일장 연설에 들어간 문표의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눈을 감는다.
손 감독의 의사를 읽기 위해 집중하려는 의도였다.
'손 감독님은 나를 중심으로 한 내야수 경쟁을 촉발시키려 하고 있어. 이 상황에서 그 의도를 드러내시지는 않을까?'
신중하게 고민해 본다.
몇 달 동안 살펴 본 손 감독이라면 지금의 상황에서 권대우 하나가 아닌 더 많은 이득을 얻으려 들 것이다.
'내가 감독이라면 2루로 이동시킨 진만이를 대수비로 교체 기용할거야. 한동안 경쟁이 없어서 인태의 수비와 타격이 부진에 빠졌어. 진만이를 이동시켜 긴장시킬 필요가 있다. 게다가 진만이는 장타력을 갖추 내야수다.'
손 감독의 입장에서 바라 본 강호는 백업 2루수로 이동한 오진만의 교체기용을 먼저 생각해 보았다.
대우를 당장 내릴 것이 아니라면 꽤나 상책의 선수 기용방법이었다.
'1루수인 이인호가 실책을 하긴 했지만, 인호는 팀의 4번 타자야. 함부로 교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어진 생각이었다.
함께 실책을 범한 1루수 이인호는 교체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팀의 4번 타자를 실책 하나로 바꾸기에는 명분이 약한 것이다.
'야수를 교체한다면 투수인 대우는 그대로 마운드 위에 선다. 실책한 내야수를 교체하고는 투수교체를 단행하지는 않을 거야. 그것은 내야수 교체를 뒤엎는 어리석은 선수기용이니까.'
만약 오진만이 2루수로 들어간다면 투수인 권대우는 그대로 둘 것을 확신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결국 2루수인 황인태를 오진만으로 바꾸는 것 정도에서 선수 교체가 끝나게 된다.
강호는 스물 스물 올라오는 한 가지 가능성에 대해 고려하게 된다.
'혹시...나를?'
강호는 스스로의 교체 확률을 따져본다.
조금 전, 코치들과 의견 교환을 나누던 손 감독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멘탈 관리가 중요하다는 말이야. 야구는 팀 스포츠이기도 하면서 개인 성적까지 챙겨야 하니 개개인의 멘탈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어느새 최문표의 포크볼 강좌는 멘탈 관리에까지 진행되어 있었다.
한창 배울 시기인 루키들은 그런 문표의 말이 대단한 가르침이라도 된다는 듯이 흡수하고 있었다.
"재능 있는 자보다 노력하는 자가 앞서는 것이고, 노력하는 자보다 즐기는 자가 이기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너희도 즐기는 야구를 해라."
"알겠습니다. 선배님."
문표는 자신의 이야기에 힘차게 대답하는 루키들을 보며 웃어 보인다.
그러다 심각한 표정의 강호를 발견하고는 강호의 어깨에 턱하고 손을 올려놓는다.
"우리 강호 후배도 경기를 즐기도록 해. 한창 야구가 즐거울 나이잖아."
문표의 말에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던 강호가 고개를 들었다.
'즐긴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는 지금 경쟁 중이다. 경기를 즐기는 것은 1군 무대에 올라간 후 누려도 늦지 않아. 지금은 모든 것이 사치일 뿐이야.'
강호는 속으로 문표의 말을 부정했다.
야구를 제외한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기 위해 머리를 삭발하고 스프링캠프에 들어선 강호다.
친 형의 연락을 제외하고는 어떤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을 정도다.
아직까지는 강호에게 야구를 즐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 때, 문표의 잡담과 강호의 상념을 깨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백강호, 오진만! 대수비 출전이다. 준비해라."
목소리의 주인은 서학수 수비코치였다.
그가 야수들이 앉아있는 벤치로 다가와 교체 출전을 지시하고 있었다.
'역시!'
진만과 자신을 찾는 서 코치의 부름에 강호는 자리에서 즉시 일어선다.
강호와 문표보다 더욱 구석 자리에 앉아 있던 오진만 역시 글러브를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포지션은 어디입니까?"
진만이 물었다.
만에 하나의 경우에 1루수로 출전시킨다면 글러브를 다른 것으로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유격수와 다른 내야 포지션의 글러브 역시 다른 것을 사용해야 했다.
"진만이 너는 2루수다. 인태대신 들어가도록 해."
"2루수, 네. 알겠습니다."
진만은 들고 있던 글러브를 그대로 왼손에 끼며 수긍했다.
그가 그라운드로 나가는 것을 확인한 서 코치의 시선이 강호에게로 향한다.
"강호 너는...."
서 코치는 강호의 포지션을 말해주려다 잠시 뜸을 들인다.
그의 태도에서 자신의 자리를 직감한 강호가 대신 입을 연다.
"3루수 입니까?"
먼저 물어오는 강호의 말에 서학수 코치의 얼굴에 이채가 감돈다.
그는 약간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3루수다. 정혁이하고 교체다."
"알겠습니다."
서 코치의 말에 곧장 대답한 강호는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보관함에서 유격수 글러브 옆에 놓아둔 3루수 글러브를 챙겨든 것이다.
강호가 챙긴 3루 글러브는 유격수 글러브에 비해서 길었고, 웹도 유격수 것과는 달라보였다.
"그래. 잘 부탁한다."
서 코치는 그라운드 위로 올라서는 강호에게 당부하며 몸을 돌린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든 것인지 이미 3루로 달려가기 시작한 강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강호야. 미안하게 됐구나. 내가 조금 더 강하게 권유한다면 네가 주전 유격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텐데. 너는 유격수가 되어야 한다. 단지 2군뿐만이 아니라 1군에서도 통할 수 있는 녀석이야.'
서 코치의 생각이었다.
그는 강호가 자이언츠의 주전 유격수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수비 부담이 심한 유격수는 좋은 선수를 찾기 힘들다.
타격 능력을 갖춘 선수는 유격수 자리에서는 페이스가 빠르게 떨어졌고, 수비 능력을 갖춘 선수는 타격능력이 부족했다.
'강호는 3할이 가능한 타자다. 유격수 수비도 조금만 손본다면 리그 정상급이 될 수 있어. 그런 선수를 이 자리, 저 자리에 두고 시험해 보는 것은 낭비다. 강호를 우격수로 고정시켜 자리를 줘야만 해. 그래야만이 강호가 클 수 있어.'
수비코치인 서 코치는 강호의 수비 능력을 높이 샀다.
그는 강호를 유격수 자리에 두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네 자리는 유격수여야만 해. 내가 도울 일이 있는지 찾아보마.'
서학수 코치는 그렇게 마음을 정하며 걸음을 돌린다.
그는 강호의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간절함과 무엇이든 해내고야 말겠다는 투지와 의지, 강호에게서는 그런 것이 느껴졌다.
서 코치는 강호의 현재에서 자신의 과거를 발견하게 된다.
'마치 내 신인시절을 보는 것 같구나. 그래서 너는 유격수가 되어야 한다.'
서 코치는 강호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과거 현역시절, 서 코치의 수비 포지션 역시 유격수였기에 강호가 자신의 뒤를 이어주길 바랐다.
한 편, 마운드에 있던 대우는 기분이 더욱 불편해졌다.
'아니, 진만 선배가 2루수 자리에? 왜 하필이면 진만 선배인 거야?'
대우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야수 교체였다.
실책이 계속되는 상황에서의 야수 교체는 이해가 갔다.
그런데 그 당사자가 진만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5일 전 와이번스 경기에서 진만이 3실책을 하는 바람에 자신이 기용되지 않았던가.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지만, 하필 교체된 야수가 진만이라는 사실이 불안했다.
'응?'
그 때 대우의 눈에 그라운드 위로 달려오는 누군가의 모습이 들어온다.
진만으로 인해 불안해진 대우의 표정이 밝아진다.
'강호 선배!'
강호의 모습을 확인한 대우는 고개를 끄덕인다.
진만의 기용으로 불편해진 마음이 해소됨을 느낀다.
'강호 선배라면 이해할 수 있지. 선발 유격수에서 빠져서 오늘은 쉴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강호 선배가 3루수로 기용되는 건가?'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인 대우의 시선이 3루에 자리 잡은 강호에게로 향한다.
대우는 강호의 포지션 이동을 알고 있었다.
강호에게 호감을 가진 대우는 그와 친해지기 위해 알게 모르게 애쓰고 있었다.
포지션 이동에 낙담하는 강호에게 다가가 위로 하려 했지만, 괜히 더 기분 나빠 할까봐 망설이기도 했다.
'강호 선배의 표정이 나쁘지 않구나. 다행스러운 일이야.'
대우는 안도하며 시선을 돌리려 했다.
그런데 그의 시선이 잠시 강호와 마주친다.
'대우 녀석. 불안해하고 있구나. 하긴. 대우는 땅볼 유도 형 투수이니까 내야 실책에 민감할 수밖에 없겠지.'
자신을 향한 호감을 불안감의 표시로 잘못 이해한 강호였다.
그는 글러브를 끼고 있던 왼손으로 가슴을 치는 행동을 해 보인다.
'3루 쪽으로 오는 코스는 나만 믿어라. 유격수 때보다도 멋진 수비를 보여주마.'
속으로 대우를 응원하게 된다.
원래의 포지션인 3루수로 오게 된 강호.
그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짐을 느낀다.
'수비력이 증가되었다는 생각 때문인가? 마음이 무척 편해. 웬만한 타구는 다 막아낼 것 같은 느낌이야.'
긍정적이 기분이 든다.
상태창을 확인해보지 않아도 수비 능력이 68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송구 능력이 다소 떨어졌겠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수비 스탯이 올라간 것이 도움이 된다.
'자, 대우야. 다시 한 번 내게 보여 봐라. 네가 가진 땅볼 유도 능력을. 어지러운 5회를 병살타로 마무리해 보자.'
강호의 출장으로 마음이 안정된 대우가 세트 포지션에 들어가자 강호 역시 집중력을 극한대로 끌어 올린다.
'호수비 아이템은 사용하지 않는다. 타구가 내게 온다면 스스로 해결하고 말겠어.'
수비 상황에서의 아이템은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프리마켓에서 구매한 호수비 아이템은 두 개.
이미 와이번스 전에서 하나를 사용해 버렸으니 단 하나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지금 상황에서 사용하기 보다는 더욱 극한 순간에 사용하리라 마음을 먹는다.
'응?'
그 때, 초구를 던지는 대우와 타격에 들어간 타자의 모습이 겹쳐진다.
타자의 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공을 때려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리고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타구가 3루수 방면으로 향합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자세를 낮춘 강호의 시야에 시스템의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