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2화 (12/335)
  • 0012 / 0335 ----------------------------------------------

    내야 경쟁

    자이언츠의 3군 수비코치인 신기문은 의외라는 듯이 묻고 있었다.

    "뭐? 뭘 하고 싶다고?"

    "펑고 말입니다. 포구 훈련을 하고 싶습니다."

    상대의 대답에 신기문은 '그러니까 펑고를 네가?'라는 질문을 하려다가 이내 입을 다문다.

    '진만이가 정신을 차렸구나!'

    신 코치는 핀잔대신 반색한다.

    타격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진만이지만, 그동안 수비 훈련에는 집중하지 못했었다.

    스스로의 수비 능력에 만족하는 까닭이다.

    신 코치로서는 어이가 없는 부분이다.

    '고작 23살짜리 루키 유격수가 스스로의 수비에 자신감을 표출하다니. 제 정신인가?'

    그것이 이전부터 가져온 신 코치의 생각이었다.

    야수들 중에서 가장 수비력이 좋아야 하는 것이 유격수라는 자리였다.

    그런데 아직 1군 데뷔도 하지 못한 루키가 수비를 자신하다니. 신 코치가 보기에는 진만의 수비는 이제 초보티를 갓 벗은 수준에 불과했다.

    '와이번스 전에서 이미 증명되지 않았던가. 3실책으로 말이야.'

    진만의 와이번스 전 3실책은 신 코치로서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신 코치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지 못한 수비력을 보여준 진만이었다.

    당연히 진만의 수비를 바로 잡으려고 했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진만 스스로가 수비 훈련에 의욕이 없었어. 타격 훈련에만 열중할 뿐.'

    신 코치의 생각대로 진만은 수비 훈련에 전념하지 않았다.

    호쾌한 타격을 꿈꾸는 진만이었기에 수비보다는 공격력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

    '그런 진만이가 이제 정신을 차린 거야.'

    신 코치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며칠 사이에 진만에게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가능성 있는 선수가 스스로 변화를 모색하려는데 코치된 입장으로 당연히 도울 생각이다.

    "그래, 잘 생각했다. 진만이 너 정도 타격되는 내야수가 수비력을 갖추면 1군 진입은 큰 문제가 아니야. 펑고를 하고 싶다고 했지? 지금 당장 시작하자."

    "네!"

    반색하는 신 코치의 말에 힘차게 대답하는 진만.

    그가 생각을 전환하며 강호의 유격수 자리는 3자 경쟁 구도가 시작되고 있었다.

    한 편 같은 시각, 그들의 자리를 결정하는 인물이 고심 중에 있었다.

    "올해는 내야 포지션 경쟁이 제법이야."

    고민스럽게 말하고는 있었지만, 손 감독은 내심 흐뭇했다.

    2군을 총괄하는 손성조 퓨처스 감독.

    그는 그라운드 위에서 훈련에 매진하는 선수들과 손에 들고 있는 자료를 대입해보며 미소 짓는다.

    "기분이 좋으신가 봅니다. 감독님."

    그런 손 감독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이는 양용민 3군 총괄코치였다.

    야구계의 원로와 다름없는 손 감독에게 편하게 말을 걸 수 있는 인물은 팀 내에서도 많지 않았다.

    스프링캠프장 내에서는 66년생인 구동진 2군 투수코치와 68년생인 강전호 2군 배터리코치, 그리고 말을 걸고 있는 양용민 3군 총괄코치 정도가 전부였다.

    양용민 총괄코치는 67년생이다.

    "훈련장에서 딱히 기분 좋을 일이 있겠는가?"

    손 감독은 부정의 말로 되묻는다.

    그러면서도 입가의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내야수 녀석들이 제법이야. 작년에는 1군에 올릴 내야수들이 없어서 고민이었는데 후보가 너무 많아서 고민이란 말이지."

    손 감독의 말에 양 코치가 긍정을 표한다.

    "2루수 자리인 황인태를 제외하고는 내야 전 포지션에 경쟁이 치열합니다. 1루에는 문표부터 인호, 동근이가 있고, 3루에는 추정혁과 임정이 잘해주고 있지요. 그리고 유격수는..."

    유격수 경쟁자들에 대해 말하려던 양 코치의 표정이 일변한다.

    자이언츠의 2군 유격수 자리에 강력한 후보로 떠오른 인물 때문이다.

    "그런데 감독님. 혹시 강호를 유격수 자리에 쓰실 생각이십니까?"

    양 코치가 조심스레 물었다.

    양용민 코치의 위치는 육성군을 책임지는 총괄 코치의 자리에 있다.

    강호를 육성군으로 들였을 때는 3루수로 키워내려는 생각을 가졌었다.

    '강호는 수비력도 좋고, 송구 능력 역시 좋아.'

    강호의 수비력은 양 코치도 인정하는 바였다.

    양 코치가 처음 강호의 수비력을 확인 했을 때 유격수보다는 3루수에 적합하다고 판단했었다.

    강호의 포구 능력이나 타구 판단보다는 정확한 송구 능력이 더 큰 장점이라 여긴 것이다.

    '강호는 어깨가 강한 편은 아니지만, 송구가 정확하다. 체중을 늘리고 어깨를 단련시킨다면 좋은 3루수로 키울 수 있을 거야.'

    그것이 양 코치의 생각이었다.

    강호를 3루수로 키울 생각에 당사자인 강호에게 5킬로그램의 체중 증가를 주문한 셈이다.

    "강호가 유격수 자리에 제격이 아닌가? 두 경기뿐이지만, 타구 판단이나 포구 실력이 아주 좋아. 더블 플레이로 연결하는 과정도 매끄럽고. 그런 선수를 유격수 자리에 두지 않으면 어디 둔다는 말이야?"

    손 감독은 오히려 되묻고 있었다.

    강호가 내, 외야 전 포지션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그의 유격수 수비를 실감한 손 감독이기에 다른 자리로 돌릴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강호 놈은 유격수 자리에 적격이야. 암, 지금부터 공을 들여 키워낸다면 가을야구가 시작되기 전에 1군 백업 정도로는 키울 수가 있을 거야.'

    손 감독이 생각하는 강호의 자리는 1군 백업 유격수다.

    강호 본인보다는 1군으로 올라가는 시기를 늦게 보고 있기도 했다.

    "강호는 원래 3루 포지션이었습니다. 송구가 정확해서 3루수로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이미 보셨듯이 라인드라이브로 빠져나가는 공도 귀신같이 잡아내지 않습니까?"

    양 코치의 조언에 손 감독이 생각에 잠긴다.

    왼손잡이에 비해 오른손잡이가 많은 것이 당연한 상식이다.

    야구 선수도 오른손 타자가 월등히 많았다.

    타자가 자기 스윙을 한다는 것은 결국 당겨 치는 스윙을 한다는 뜻이었고, 우타자가 당겨 치는 타구는 3루 쪽으로 향한다.

    자기 스윙을 한 타자들의 타구가 라인드라이브 성으로 3루로 향하는 것은 상식적인 일, 3루를 일컬어 괜히 핫 코너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땅볼 수비가 많은 유격수와는 수비의 본질이 조금은 달랐다.

    '강호를 3루수에? 3루에는 추정혁과 임정이 잘해주고 있다. 두 사람 다 수비능력이 괜찮아. 추정혁은 타격이 부족한 편이지만 수비가 탄탄하고, 임정은 타격에 재능이 있지만, 수비 능력이 정혁이보다는 아직 모자라다. 여기에 강호를 집어넣는다?'

    손 감독은 몇 경기 지켜본 강호의 모습을 두 사람 사이에 대입해 보았다.

    '강호의 수비는 임정 보다는 낫다. 하지만 정혁이보다 좋을 것인지는 의문이야. 그리고 타격은 추정혁이 보다는 강호가 나을 거야. 그런데 타격 능력은 세 사람 중에 임정의 잠재력이 으뜸이다.'

    손 감독은 강호의 타격 능력을 임정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잠재력 면에서 본다면 한국 나이로 25살인 강호에 비해 21살인 임정의 잠재력이 월등하다 판단한다.

    '그래도 와이번스 전에서 넘어가는 2루타 성 코스를 낚아채던 강호의 수비 능력만큼은 진짜였어. 1군에 3루수 공백이 올 것을 대비한다면 3루 자리에 강호 녀석을 넣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이리저리 장단점을 따져보던 손 감독은 결정을 내리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양 코치의 말이 설득력이 있어. 몇 경기 시험에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강호를 내일 경기에서 3루 교체 멤버로 기용해보지."

    손 감독은 내일 있을 트윈스와의 스프링캠프 경기에서 강호를 3루 교체멤버로 기용할 뜻을 밝혔다.

    3루수 자리는 주전인 추정혁이 있었기에 강호를 바로 선발로 내세울 수는 없었던 것이다.

    손 감독은 강호를 3루로 이동하며 비워버린 유격수 자리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유격수 자리에는 임정을 이동시킨다."

    임정을 유격수로 이동시킨다는 말에 양 코치는 고개를 끄덕인다.

    '정이는 2,3루와 유격수를 모두 볼 수 있는 내야 유틸리티 플레이어다. 유격수 교체멤버로 이동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결정이야. 유격수 자리에 혼자 남을 진만이와 경쟁시킨다면 시너지가 있을 거야.'

    양 코치는 머리를 굴려본다.

    임정을 오진만의 유격수 자리와 경쟁시키는 구도.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손 감독은 그 이상을 생각하고 있었다.

    "내일 유격수 선발은 임정이다."

    "네?"

    당연히 오진만을 선발 출장시킬 것이라 생각했던 양 코치는 놀라고 만다.

    임정이 아무리 유격수 수비가 가능하다고 해도 주전인 오진만을 벤치에 앉히고 임정을 선발 출장시키는 기용이라니.

    상식적이지 않은 구도가 분명하다.

    "감독님. 하지만 유격수에는 진만이가 있습니다."

    양 코치가 딱히 진만의 편을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상식적이지 않은 선수기용을 우려했다.

    자칫 잘못하면 오진만의 상심이 커서 성적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와이번스 전에서 못 봤어?! 흔한 땅볼도 흘리는 놈이 무슨 유격수야?"

    손 감독은 진만을 거론하며 불편한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수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손 감독이었기에 실책을 연발하는 오진만이 경쟁 구도에서 멀어진 느낌이었다.

    '아, 진만이가 이렇게 낙오하는구나. 여러모로 괜찮은 녀석인데. 거포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고 말이야.'

    양 코치는 안타까워했다.

    수비에서 의욕을 보이지 않는 진만이지만, 장타능력에서 만큼은 발군의 잠재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타율이 조금 떨어진다는 단점은 있지만, 5번 타자로 기용해 클러치 타자로 사용한다면

    나쁘지만은 않은 타율일 것이다.

    '진만이에게 어떻게 설명을 하나?'

    양 코치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가능성 있는 선수를 경쟁에서 밀어내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마음이 약한 양 코치는 진만이 절망할 것이 두려웠다.

    그런데 손 감독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진만이는 2루수로 이동시킬 거야."

    "네?"

    양 코치는 잘못 들었나 싶어서 되묻고 만다.

    그러자 손 감독이 성미에 맞지 않게 풀어서 설명을 해준다.

    "진만이 녀석은 송구가 부정확해. 부족한 송구 때문에 포구를 서두르다보니 실책이 연발되는 거야. 상대적으로 송구 부담이 덜한 2루수 자리라면 녀석도 실책을 줄일 수 있을 거야."

    양 코치는 손 감독의 혜안에 속으로 박수를 친다.

    '그렇지! 진만이가 아마추어 야구 때는 2루수를 본 적도 있다. 진만이를 2루로 이동시키게 되면 인태 밖에 없는 2루 자리도 경쟁 구도가 된다. 참으로 좋은 방법이다.'

    생각을 정리한 양 코치가 표정을 밝게 바꾼다.

    "옳은 결정이십니다. 그렇게 되면 내야 경쟁구도가 정리되는군요."

    "그래. 2군 선수들에게 경쟁이 없다는 것만큼 좋지 못한 것이 없어. 아무리 잠재력이 있는 아이들이라 하지만, 경쟁이 없으면 쉽게 매너리즘에 빠지고 말아. 우리 코칭스탭들은 선수들의 육체적인 능력뿐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도 성장시켜줘야 한다, 이 말이지."

    손 감독은 양 코치에게 그렇게 말하며 들고 있던 자료를 양 코치의 가슴에 탁하고 내민다.

    "내가 말한 대로 내일 경기 선발 선수들을 정리해 주게. 지금부터는 투수 쪽 녀석들을 살펴봐야겠어."

    손 감독은 그렇게 말하며 발을 뗀다.

    야구는 내야수만 가지고 하는 경기가 아니었다.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이라해도 과언이 아닌 투수들을 살피는 것도 감독의 업무였다.

    "네, 알겠습니다. 오후 중으로 끝내 놓겠습니다."

    "그래, 양 총괄 덕분에 일이 많이 수월해졌어. 수고해 줘."

    손 감독은 양 코치에게 당부하며 걸음을 옮긴다.

    자이언츠 2군 스프링캠프의 두 거장은 그렇게 각자 다른 곳을 향해 걸어 나간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