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1화 (11/335)

0011 / 0335 ----------------------------------------------

내야 경쟁

시간은 지나 4일이 흘러 있었다.

강호는 뒤이은 트윈스와의 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8번 타순에서 4타수 2안타 3타점이라는 빼어난 활약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 두 경기 동안 강호가 얻은 성적은 6타수 4안타 6타점.

강호의 과거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로서는 믿을 수 없는 성적이었다.

"고작 두 경기일 뿐이야. 며칠이 지나면 귀신같이 과거의 페이스로 떨어질게 분명해. 오버페이스라고."

"맞아. 오버페이스가 맞는 것 같아. 두고 봐. 며칠 안에 타율이 곤두박질 칠거야."

강호의 맹활약을 시기한 경쟁 선수들은 강호가 오버페이스라고 흠을 잡았다.

대다수의 선수들이 그에 동조했고, 많은 이들이 강호의 타격페이스가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물론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선수도 있었다.

"강호 선배가 오버페이스라고? 멍청한 소리. 나는 그런 자기위안은 믿지 않겠어."

대다수의 의견을 거부하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1인. 그는 오진만이었다.

2군의 주전 유격수였지만, 와이번스 전 3실책으로 주전에서 밀려버린 바로 그였다.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 그런 수비와 타격 능력이 잠시잠깐의 오버페이스라는 건 헛소리야. 강호 선배가 감을 잡은 거라고."

강호의 활약을 가장 인정하기 싫어해야할 진만은 오히려 반론에 목소리를 높인다.

'모두들 질투에 눈이 멀어 사실을 외면하고 있어. 와이번스 전 5회 때 강호 선배가 때려낸 2루타는 진짜배기였어.'

강호의 최대 경쟁자 중 한명인 진만은 강호를 냉정한 시선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강호가 자이언츠에 육성 선수로 합류했을 때부터 그를 주시하고 있던 진만이었다.

진만은 2군 주전 유격수이긴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2루 수비 역시 가능하다.

여러모로 강호와 포지션 경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강호 선배의 타격이 포텐이 터지기 시작한 거야. 넋 놓고 있다가는 경쟁에 지고 만다.'

결론을 내린 진만은 가만히 앉아만 있을 생각이 없다.

모든 2군 선수가 그러하듯 진만 역시 1군 승격이 목표였다.

그렇지 않아도 백업 3루수인 임정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이때에 강호의 위협까지 받게 되니 1군 무대가 더욱 멀게 느껴진다.

"방법이 필요하다. 강호 선배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이대로는 안 돼."

방법을 강구하던 오진만은 곧장 몸을 움직였다.

한 편 유격수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또 다른 경쟁자 한 명이 타격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따악, 딱!

잘 맞은 타구가 연이어 외야를 향해 빠르게 뻗는다.

"이여, 우리 정이. 오늘 타격이 장난 아닌데?"

친근하게 말을 붙이며 다가서는 인물은 유망주들의 최고참 최문표였다.

그가 말을 붙이고 있는 대상은 3루 백업 선수인 임정이었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최문표에게 잠시 고개를 숙인 임정은 다시금 타격 훈련에 집중한다.

따악, 딱!

임정의 타격을 곁에서 지켜보던 문표는 피식 웃어 보이며 양손을 들었다.

"항복이다. 항복. 네 타격에는 못 당하겠네. 야, 동생아, 너무 그렇게 열심히 하지마. 그렇지 않아도 1루수 경쟁에서 뒤쳐진 이 형님의 지명타자 자리도 뺏어야겠냐?"

대 선배의 너스레에 웃음이 새어나온 임정의 타격 자세가 흐트러진다.

문표의 말대로 그는 무릎 통증으로 인해 빠지는 경기가 종종 있다 보니 1루수 경쟁에서 뒤쳐져 버렸고, 그나마 지명타자 자리도 1루 백업 유동근과 3루 백업 임정에게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문표 선배님은 멘탈이 강하신 건가? 아니면 경쟁을 포기하신 건가?'

임정은 무너졌던 자세를 바로하며 의문 가득한 얼굴로 문표를 바라본다.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도 본인은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여유로운 최문표.

고작 21살의 루키인 임정이 이해하기에는 힘든 미스터리한 인물이었다.

"야, 문표! 너 왜 타격 훈련 잘 하는 정이를 방해하고 그러는 거야? 너 내가 시킨 타격 훈련 끝내놓고 놀고 있는 거야?"

그 때 추상같은 불호령이 두 사람의 대화를 단절시킨다.

호통과 함께 다가오는 인물은 3군 타격코치인 김진관이었다.

"응? 이놈아. 네 훈련 다 해놓고 정이 훈련 방해하는 거냐고?"

빠르게 다가와 문표의 귓불을 잡아끄는 김 코치.

일견 고참 선수에게 과한 추궁 같았지만 두 사람이 꽤나 친한 사이였기에 가능한 그림이었다.

76년생인 김진관 코치는 올해로 44살, 86년생인 최문표는 34살이었다.

21살인 임정 선수보다 김진관 코치와의 나이가 더 가깝게 느껴지는 문표일 것이다.

"아, 아! 코치 님. 이것 좀 놓으세요. 지시하신 훈련은 진즉에 끝내놓고 잠시 쉬는 겁니다."

"뻥치지마. 임마. 내가 아까부터 네가 훈련장 돌아다니면서 후배들 훈련 방해하는 거 지켜보고 있었어!"

"훈련 방해라뇨? 요즘에 새로운 타격 방법이 있는지 후배들한테 타격을 배우고 있습니다. 노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아랫사람을 보고도 배울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유연한 사고관, 모르십니까?"

갑작스레 고사를 논하는 문표의 행태에 기가 막힌 김 코치가 붙잡고 있던 귓불을 놓았다.

"갑자기 야구장에서 왠 노자 타령이야. 그리고 기억하려면 제대로 하던가. 아랫사람은 그 윗사람을 보고 배운다가 맞는 거잖아."

문표의 잘못된 고사를 정정해주는 김진관 코치.

그의 발언에 문표는 물론 임정의 표정마저 일변한다.

"오올~코치님. 대단하십니다. 노자 말씀까지 아십니까? 역시 모르는 게 없으셔."

"너스레 그만 떨고 이제 훈련하라고. 너 같은 선배 보고 후배들이 뭘 배우겠냐? 후배들이 네 너스레 배워서 능구렁이가 될까봐 겁난다."

"하하하. 그럴 리가요.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아, 갑니다. 갈게요. 말로 합시다. 진관이 형."

또 다시 유연하게 대꾸하려던 문표는 김 코치가 들고 있던 결제판을 들어올리자 항복을 표시하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한동안 문표가 걸어간 방향으로 장난스레 힐난하던 김 코치가 마음을 진정시키며 몸을 돌린다.

"으흠, 너는 문표같은 선수가 되면 안 된다."

"아...네. 그래야할 것 같습니다."

임정은 두 사람의 행태를 넋 놓고 보고 있다가 자신을 향한 김 코치의 말에 진심으로 답하고 말았다.

"뭐? 파하하. 그래, 문표처럼 너스레 배울 시간에 타격에 집중해야지. 그래야 내 후배답지."

임정의 솔직한 대답에 웃어 보인 김 코치가 그에게 한 발짝 다가선다.

김진관 코치는 주변을 한 차례 살핀 후 목소리를 조금 낮춰서 임정에게 말을 붙인다.

"정아. 동문회장님이 네 걱정이 많은 것 같더라. 올해에는 1군 무대에 나가서 tv로 아버지께 야구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지."

친근하게 말하는 김진관 코치. 임정은 그런 김 코치를 아무 말 없이 또렷한 눈동자로 마주 본다.

동문회장이란 김진관 코치의 모교이자 임정의 모교인 대구상고의 동문회장을 말하고 있었다.

대구상고의 총동문회장은 다름 아닌 임정의 부친이다.

"내가 너를 챙기는 것을 기분나빠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는 일언반구의 말도 들은 적 없다. 그리고 네 성적이 나쁘면 나도 이렇게 챙기려들지도 않았을 거다."

김진관 코치의 말이었다.

그는 딱히 임정의 부친에게 뇌물을 받거나 언질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속이 좁은 김 코치이지만, 프로 팀 코치로서 최소한의 자부심은 있는 사람이었다.

'정이를 우리 팀 주전 내야수로 키워내면 동문회장님께도 체면이 서고, 구단에서 내 입지도 올라가게 된다. 그야말로 일거양득이지.'

김 코치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한 당사자인 임정이 불편해하니 김 코치 입장에서는 답답한 노릇이다.

"코치님께서 챙겨주시는 것은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임정은 김 코치의 눈빛에 마지못해 꾸벅 고개를 숙이며 답례한 후 다시 타격 훈련에 들어간다.

따악, 땅.

다시금 호쾌한 타격 소리가 울려 퍼진다.

반면에 타격을 하는 임정의 심사는 타격 소리만큼 경쾌하진 못했다.

'누구도 나를 챙겨줄 수 없어. 나는 내 능력만으로도 경쟁을 이겨낼 수 있어. 결국 실력이 모든 것을 증명하는 거야!'

올해로 21살이 되는 고졸 루키 임정.

그의 눈빛은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빛나고 있었다.

같은 시간, 임정과는 반대되는 생각으로 훈련에 임하는 이가 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이용 가능한 것은 모두 동원할 수 있어야 해.'

생존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한 사람. 그는 바로 강호였다.

강호는 조금 전 한택근으로부터 한 가지 이야기를 전해들은 상태였다.

택근은 한참 타격 훈련에 매진하는 강호에게 다가와 하나의 소문을 이야기하고 갔다.

"선배님. 그거 아십니까? 3루수 임정이 유격수로 보직을 옮긴다는 소식을요."

택근의 말에 강호는 미동조차하지 않는다.

이미 공공연히 알려진 포지션 이동이기에 놀랄 이유는 없다.

"임정이야 원래 내야 유틸리티 수비가 가능하다. 딱히 놀랄 소식도 아니야."

고저 없는 목소리로 답하며 타격 훈련에 집중한다.

타 팀 2군과의 스프링캠프 경기가 없는 날이었기에 강호는 타격 폼 수정에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그가 타격 폼을 수정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파워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올라가 버렸다. 타격 폼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투수의 공에 타이밍 잡기가 힘들게 됐어.'

두 번째 경기에서 강호는 자신의 타격에 변동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첫 번째 경기부터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프리마켓에서 급작스레 파워를 올리면서 배트 스피드가 빨라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배트스피드가 빨라지니 기존의 타격 폼과 맞지 않게 되었어. 프랑코 코치에게 지도받은 타격 폼으로 수정하는 것이 옳아.'

빨라진 배트 스피드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타격 폼 수정이 불가피했다.

풀스윙을 하면 자꾸만 자세가 무너지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프랑코 코치에게 며칠간 사사 받았던 타격 폼으로의 수정이었다.

'다행히도 과거에 연습했었던 타격 폼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적응하는데 긴 시간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강호는 확신했다.

타격 폼 수정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지금과 같은 경쟁 상황에서 타격 폼 수정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면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며칠이면 끝나.'

다소 무리한 계획이었지만, 자신이 있었다.

타격 폼 수정 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하기 위해 밤낮으로 매진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택근의 이어진 말이 강호의 훈련을 멈추게 만든다.

"김진관 코치가 임정을 유격수 자리에 밀고 있답니다."

택근의 말에 강호의 시선이 그를 향한다.

강호가 자신의 말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택근은 주변을 한 번 살핀 후 은밀하게 입을 열었다.

이어진 택근의 말은 충분히 납득이 가는 내용이었고, 일찍부터 김진관 코치와 임정이 동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강호는 미간을 좁히게 된다.

'그렇게 움직이겠다 이 말이지?'

강호는 배트를 내려놓으며 칭찬을 바라는 택근을 지그시 바라본다.

나름 가까워지기 힘든 성격의 강호와 친해지게 위해 다가온 택근.

강호는 그런 택근을 위해 한 가지 조언을 해주고 싶었다.

"택근아."

"네, 선배님."

"네가 알아야할 것이 있다."

"뭡니까?"

"네가 김 코치와 임정의 밀착 관계를 내게 알려줌으로 인해 너도 이 일에 관여되는 거다. 임정과 나, 두 사람 사이의 일에 네가 끼어든 셈이야."

"....."

강호의 말에 택근은 잠시 입을 다문다.

그의 기묘한 시선은 여전히 강호를 향하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네 이야기는 못들은 것으로 하겠다. 우리는 육성 선수야. 경쟁을 위해 훈련에 전념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괜한 협잡에 발을 담그기 보다는 너 자신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강호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해주었다.

택근이 모르고 한 일이라도 결국 자신을 위해 소문을 알려준 것이다.

비난을 하거나 윽박지르기보다는 조언을 통해 택근의 생각을 고쳐주려 했다.

택근에게 들은 소문은 머릿속에 기억하되 그 출처가 택근이라는 사실을 함구하려는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 택근이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그 정도도 모르고 입을 열었겠습니까? 다 알고 있습니다."

의외의 반응이었다.

알고서도 소문을 전파했다는 말에 배트로 향하던 강호의 시선이 다시 택근을 향한다.

시선을 받은 택근은 피식 웃음 지으며 진심을 꺼내었다.

"저는 우리 팀의 주전 유격수 자리는 선배님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임정같은 금수저에게는 정이 가야 말이지요."

그렇게 말한 택근은 어렵게 지낸 자신의 과거를 간략하게 말해주었다.

대꾸 없이 듣기만 하던 강호는 택근의 말을 끊고 입을 연다.

"유격수 자리에는 오진만도 있다. 진만이에게도 말을 한 거냐?"

"아뇨. 진만 선배하고는 별로 안 친합니다."

택근의 말에 강호는 작게 미소 짓는다.

그의 미소는 악의 없는 순수한 미소였다.

"그럼 나하고는 친하고?"

강호는 절반의 진심을 담아 물었다.

같은 방을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스프링캠프 기간 만이었다.

짧은 기간 동안 택근과 친해졌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다른 선수들과 친분을 쌓기에는 강호의 스프링캠프는 지나치게 치열했다.

"친해지고 싶습니다. 선배님하고요."

"뭐라고?"

갑작스런 고백에 강호의 표정이 무너진다.

그러나 이어진 택근의 말에 더는 웃을 수 없었다.

"별 거 아닙니다. 선배님은 어릴 때 죽어버린 제 형을 닮았거든요."

택근은 그렇게까지만 말하며 몸을 돌렸다.

훈련을 방해해서 죄송하다는 사과는 잊지 않았다.

'내가 죽은 형을 닮았다고?'

그런 말에 답할 말은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래서 입을 다물 수 밖에.

'진심인가?'

진심인지 수작을 부리는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마지막 말을 전하는 택근의 눈빛은 절대 거짓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택근이 덕분에 좋은 소식을 알게 되었다.'

강호는 택근이 전한 소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임정이 김진관 3군 타격코치의 라인을 탄다는 말.

평소에 보았던 임정은 불의를 꾸미는 성격의 선수는 아니었다.

'임정도 절박한 것인가? 그럴 만도 하지. 타격 능력에 비해 지나치게 경쟁에서 뒤쳐져 있다. 손 감독이 임정을 중용하지 않으니 불안해질 만도 하다. 그래도 김진관 코치라니. 선택이 좋지 않아.'

생각을 정리하는 강호였지만, 한 편으로 불안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한다.

사실은 임정이 김진관 코치의 라인을 탔다는 소문은 오해였지만, 이미 그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강호에게는 위협이 될 만한 소식이었다.

'임정. 그렇게까지 라도 올라가 보겠다는 거냐? 그런 식의 경쟁이라면 나도 거절하지 않겠다.'

머릿속으로 임정의 모습을 그리며 바닥에 떨어진 야구공 하나를 집어 들었다.

따악!

그가 때린 볼이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가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