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0화 (1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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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프링캠프 경기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의 칭찬을 받으면서도 강호는 그리 기쁘지 않았다.

    '어차피 스스로의 힘으로 만든 타점이 아니잖아. 아이템을 사용했을 뿐이야.'

    그 생각이 강호를 무표정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야, 우리 백강호 선수 아주 멘탈이 갑이야 갑! 2타점을 치고도 포커페이스라니. 조만간 2군에서 볼 수 없겠어."

    목소리의 주인공은 34살의 노망주, 최문표였다.

    근처로 다가와 강호를 극찬하는 그의 말이 의미하는 바는 컸다.

    '2군에서 볼 수 없다니. 지금 상황에서 방출을 말하는 것은 아닐 테고. 문표 선배는 내가 곧 1군에 올라갈 것처럼 말하는구나.'

    생각을 마친 강호가 문표를 향해 고개를 든다.

    한 타석에서의 활약이 1군을 향한 도약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을 잘 아는 강호였지만, 10살 차이가 나는 대선배에게 생각나는 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지고 있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결승타를 때린다면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팀이 지고 있는 상황으로 자신의 무표정을 설명해 본다.

    그런데 문표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결승타까지 때린다고? 호오, 열의마저 대단해. 좋아. 강호 네가 결승타를 때린다면 이 몸께서 친히 사인볼을 하사하겠다."

    뜬금없는 문표의 말에 강호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당신의 사인볼 따위를 받아서 어디다 쓴다고.'

    이번의 생각 역시 겉으로 표를 낼 수는 없었다.

    "감...사 합니다.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감사의 말로 대화를 마무리 한다.

    불편한 자리였다.

    강호는 2번 타자인 택근이 제발 빨리 아웃되기를 빌었다.

    따악.

    그러나 택근은 우익수 방면의 안타로 진루하게 되고, 문표와의 불편한 자리가 이어졌다.

    "그나저나 강호 너 군대를 현역으로 다녀왔다면서? 왜 경찰청이나 상무로 가지 않고?"

    문표의 질문에 강호가 표정을 바꾼다.

    방출에 이은 군 입대 문제는 강호에게 예민한 문제였다.

    '모르고 묻는 건가?'

    문표의 의도에 의문이 생긴다.

    2군이긴 하지만 서른네 살이나 되는 베테랑 선수가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온 선수의 사정을 완전히 모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때 근처에 있던 2루수 황인태가 글러브를 챙겨들며 재촉한다.

    "선배님. 타자 아웃 됐습니다. 수비하러 가시죠."

    공교로운 타이밍에 대화가 끊기게 되었다.

    강호는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하며 그라운드로 향한다.

    "강호 동생. 그럼 군대 사연은 나중에 알려 줘! 수비 잘 하고 와."

    등 뒤에서 외치는 문표의 얼굴을 되돌아본다.

    천진한 표정을 보니 딱히 악의가 없는 모습이다.

    '내가 방출되었다는 사실은 몰랐던 모양이구나.'

    문표에 대한 오해를 풀며 유격수 자리로 향한다.

    한 편, 덕 아웃에 남은 문표에게 신인 선수 한 명이 다가간다.

    "뭐야?"

    그는 문표에게 말을 할까 말까를 망설이다가 문표의 재촉에 입을 연다.

    "저...기, 선배님. 그게 말입니다.

    "그게 뭔데?

    "강호 선배 말입니다. 이전 구단에서 방출됐습니다. 그래서 상무하고 경찰청에서 안 받아줬답니다."

    "뭐?"

    까마득한 후배의 설명에 문표의 표정이 아득해진다.

    '아, 내가 강호에게 말실수를 했구나. 이 일을 어떻게 풀지?'

    미안한 마음이 솟아난다.

    문표는 사실을 말해준 후배에게 고맙다고 등을 두드려준 뒤 그라운드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미안하다. 강호야. 너도 사연이 있는 놈이었구나.'

    속으로 사과를 표시하는 문표.

    그는 혹시라도 오해했을 강호에게 어떻게 사과를 전할까 고민하게 된다.

    문표가 강호에 대한 미안함으로 속을 끓고 있는 시점에 그와는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이가 마운드에 올랐다.

    '기회가 왔다. 강호 선배를 포함한 모두에게 내 진짜 투구를 보여줄 기회가!'

    당찬 각오로 연습 투구를 하는 권대우였다.

    원래 멘탈로 돌아온 대우는 길어진 팀 공격 기회 내내 연습 투구를 하며 구위를 끌어올린 상태였다.

    140킬로 대의 투심은 기묘한 무브먼트를 보였고, 그의 특기인 싱커가 타자의 타이밍을 완전히 앗아갔다.

    "앗싸!"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대우가 환호한다.

    6회 초 수비는 3자 범퇴.

    5회에서 이어지는 깔끔한 수비였다.

    '보셨습니까? 강호 선배님. 저 원래 이렇게 던지는 투수입니다.'

    대우는 기쁜 표정으로 강호를 기다린다.

    말로는 자랑하지 못하고, 강호를 기다렸다가 글러브를 마주치는 대우.

    6회 수비 때도 하나의 타구를 막아낸 강호이기에 고마움을 표한 것이다.

    '귀여운 녀석.'

    표정에 생각이 훤히 보이는 대우의 얼굴에 강호는 피식 웃음 짓는다.

    문표로 인해 어지러웠던 생각들이 날아가는 기분이다.

    그러나 그런 기분은 덕 아웃으로 돌아와서 깨어지고 만다.

    '어떻게 사과하지?'

    벤치에 앉은 강호의 곁에 바짝 당겨 앉은 문표의 생각이었다.

    아무 말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곁에 앉은 문표로 인해 강호 역시 생각이 복잡해진다.

    '아, 정말 불편한 선배네.'

    오해하지 않으려 했던 문표에 대한 오해가 깊어지는 순간이었다.

    경기가 대역전승으로 끝나고 나서야 오해가 풀리긴 했지만, 경기 동안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시간이 지나 치열했던 경기는 끝이 났다.

    강호의 결승타로 인해 10대 9. 자이언츠가 역전승을 일궈낸 것이다.

    '이번 경기의 주인공은 나였다. 비록 팬들은 알아줄 리 없는 스프링캠프의 경기이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경기다.'

    경기를 끝낸 강호는 기뻐했다.

    9대 9동점 상황에서 맞은 9회말 1아웃의 득점권 상황.

    아웃카운트가 남았다는 생각에 강호는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타격했다.

    '이 상황에서 투수가 또 바뀌는구나. 초구는 스트라이크를 잡으려 가운데로 몰릴 가성이 크다!'

    강호는 바뀐 투수의 초구를 노리라는 정석대로 공을 결대로 밀어 쳤다.

    결과는 깨끗한 우전 안타.

    그 사이 2루 주자가 홈으로 파고들어 역전이 만들어진 것이다.

    결승타점에 강호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아이템의 도움이 아닌 스스로가 만들어낸 결과였기 때문이다.

    '정확한 타격 아이템의 효과가 유효했으니 100% 내 능력이라고 보기에는 어폐가 있겠지. 그래도 80%이상은 내가 만든 안타가 아닌가? 기뻐할 이유는 충분해.'

    컨택 1이 상승하는 효과이기는 했지만, 시스템의 도움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는 강호였다.

    정식 1군 경기였다면, 물세례를 받았을 짜릿한 역전승이지만 세리모니는 따로 없었다.

    이곳이 2군 스프링캠프 경기장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동료들과 코칭스태프의 극찬이 있었다.

    "강호 이 녀석. 육성 군에 너 같은 보배가 숨어 있었어? 오늘 경기, 너의 경기였다."

    손 감독의 말이었다.

    그는 이번 경기에서 적지 않은 감동을 받은 것인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곁에 있던 코칭스태프들이 낯설게 느낄 정도로 손 감독의 칭찬은 이례적인 것이었다.

    "내일부터도 기대하도록 하마. 잘 했다."

    손 감독의 칭찬을 겸손히 수용하며 강호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를 표시하는 강호. 그를 지켜보는 이는 손 감독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완전히 지는 경기라고 생각했는데. 강호의 수비와 타격이 완전히 흐름을 바꿔버렸어. 2군 스프링캠프 경기에서 이런 걸 볼 줄이야.'

    서학수 코치는 강호를 하찮게 보던 마음을 고쳐먹는다.

    오늘이 지난 이후에 강호를 2군 유격수 자리에 올릴 구상을 하게 된다.

    한 경기에 지나지 않았기에 확신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것이다.

    '허, 이런 경기를 가져오다니. 우리 팀의 2군도 만만한 팀은 아니구나. 이번 육성 군 루키들은 심상치가 않겠어. 강호도 그렇고, 권대우도 그렇고 말이야.'

    한 편에 서 있던 신기문 수비코치 역시 강호를 다시 보게 되었다.

    자신이 수비 지도를 하던 강호가 이토록 큰 활약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말을 안 하기를 잘했네. 5회 말 상황에서 괜한 소리를 했으면 선수 보는 눈도 없는 코치가 될 뻔 했어.'

    신기문 코치의 곁에 있던 김진관 육성 군 타격코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발언 정정의 기회를 포기한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만큼 강호의 활약은 눈부셨다.

    강호를 까 내리는 이야기를 꺼냈으면 손 감독에게 힐난을 들을 뻔 했다.

    '강호에 대해서는 조금 더 긍정적으로 지켜보기로 하자.'

    김관진 코치는 강호에 대한 억하심정을 잊기로 한다.

    며칠 전 강호가 타격 지도를 받기 위해 프랑코 2군 코치를 찾은 사실을 마음에 담아두었던 그였다.

    그런데 이제 그 뒤틀린 심사를 정리하기로 한다.

    '이것으로 첫 단추를 잘 꿴 셈이다. 손 감독님의 눈에 들었으니 앞으로의 경기도 집중할 필요가 있어.'

    오늘 경기의 주인공인 강호는 새롭게 각오를 다진다.

    이번 경기는 끝이 아닌 시작이었기에 더욱 치열한 경쟁이 진행될 것이다.

    그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불안했다.

    '결국 남은 스프링캠프 경기 동안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아이템을 사용하는지가 중요하다.'

    강호는 눈앞에 표기되는 메시지를 확인한다.

    -경기 결과에 따른 보상이 정산됩니다.

    정식 경기가 아니므로 보상이 50% 감산됩니다.

    보상: 290exp, 200mp, 경기 결과로 인해 상태가 보정됩니다.(다음 프리마켓 방문 시 보정결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스킬 경험치가 증가합니다.

    경기에 대한 보상이 입금되었다.

    정식 경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보상이었다.

    지금 당장은 포인트를 사용할 수 없지만, 한 달 후에 열릴 프리마켓에서 사용이 가능했다.

    '됐다. 보상도 나쁘지 않아. 한 달 동안 포인트를 긁어모은다면 시즌이 시작된 이후에 사용할 아이템을 필요한 만큼 살 수 있겠어.'

    강호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우연히 찾아온 기연이 자신의 미래를 얼마나 바꾸어 놓을지 기대되었다.

    그동안의 강호가 암울한 하루하루를 걸어왔다면 이제는 다르다.

    더는 불안한 미래에 고개를 떨 굴 필요가 없었다.

    '오늘은 형에게 전화를 해야겠어. 나를 믿어주는 형에게도 기쁜 소식을 전해야지.'

    강호는 형을 떠올린다.

    항상 자신을 응원해주는 형. 그에게 오랜만에 기쁜 소식을 전할 생각에 마음이 부푼다.

    그런 강호의 기분에 찬물을 들이붓는 인물이 다가왔다.

    "저기, 강호야. 아까 말한 사인볼 말이다. 여기 가져 왔다."

    최문표였다.

    강호에게 사과할 방법을 궁리하던 그가 정말로 자신의 사인볼을 가지고 다가온 것이다.

    '이 선배. 뭐하자는 거지?'

    의문스런 표정으로 문표를 마주보는 강호였다.

    "저기 말이다. 네 사인볼도 하나 줬으면 좋겠다. 우리 이참에 사인볼을 교환하는 거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이 문표가 밝은 표정을 짓는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모든 것이 오해였다는 것을 알게 된 강호는 흔쾌히 사인볼을 건넨다.

    그가 프로 무대에서 누군가에게 해준 첫 번째 사인볼이었다.

    '친해지는 방법이 요란한 선배네. 다행히도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

    문표에 대한 생각을 바꾸며 길었던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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