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화 (2/335)

0002 / 0335 ----------------------------------------------

유망주 백강호

강호는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지고 있었다.

수비나 송구, 주루와 선구안에 대해서는 합격점을 받았지만 단 두 가지가 그의 발목을 붙잡고 말았다.

"강호 선배가 열심이네. 이러다가 1군에 내야에 자리 나면 강호 선배가 올라가는 거 아냐?"

"내야뿐이겠어? 강호 선배는 외야 수비도 된다잖아. 외야에 자리 나면 대수비로 올라갈 수도 있어."

타격 훈련에 매진하는 강호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었다.

그들은 올해 자이언츠의 육성 선수로 입단한 선수들로서 강호를 경쟁상대로 삼고 있는 야수들이었다.

"발 빠르고 수비 잘하면 뭐해? 타격이 안 되는데."

"그래도. 3툴은 되네. 주루, 송구, 선구안 되니까 3툴 플레이어네."

"타격, 파워 빠진 3툴이 무슨 소용이냐?"

"쉿, 쉿. 듣겠다."

이제 솜털이 가신 후배들이 뒤에서 흉을 볼 때도 강호는 반응하지 않았다.

고작 20살이 된 후배들과 푸닥거리를 할 시간조차 아까웠다.

강호의 간절함은 순간의 분노를 이기고 있었다.

'그렇게 떠드는 시간에 훈련하지 않으면 방출될 수도 있다. 1차 지명 받은 선수도 훈련에 전념하는데 육성 선수들이 노가리들이냐.'

강호는 힐끗 좌측으로 눈길을 준다.

그곳에는 5억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슈퍼루키가 투수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투구 폼 수정에 전념하는 모습이다.

그의 이름은 주민한. 강호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구단의 기대주였다.

'민한이 녀석은 많은 기회가 주어지겠지. 하지만 너희들이나 나는 아니야. 언제 방출되어도 이상하지 않는 것이 우리들 육성 선수란 말이다.'

강호는 후배들에게 하지 못한 말을 속으로 삼키며 배트를 힘껏 쥐었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양용민 코치가 다가온다.

양 코치는 손 감독이 강호에게 관심을 두자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강호를 대하고 있었다.

"강호. 어깨에 너무 들어갔다. 힘준다고 없는 파워가 생기는 거 아니다. 힘 빼고 타격 해."

"네, 코치님."

강호는 양 코치의 조언에 즉시 답했다.

계속되는 자체 청백전 성적이 좋지 않은 강호였다.

파워가 약해 홈런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장타가 지나치게 적었다.

3루타 하나와 2루타 하나가 그가 기록한 장타의 전부였다.

타율은 0.274.

2군들끼리의 자체 청백전 성적 치고는 저조한 성적이다.

"아무도 너한테 홈런 기대 안한다. 컨택에 초점을 맞추자. 2군에서 3할은 돼야지 대 수비로라도 기용되지 않겠어?"

대 수비라는 말에 강호는 수긍한다.

'대 수비든 대 주자든 어떻게 해서든 1군 무대에 올라서야 한다.'

다른 선수라면 양 코치의 조언에 기분 나쁠 수도 있겠지만, 강호는 달랐다.

이전 구단에서 방출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1군 무대에 올라본 적이 없는 강호로서는 어떤 역할이라도 좋으니 1군 무대에서 뛰고 싶었다.

'1군 무대에서 뛰는 모습을 형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런 바람이 있었기에 양 코치의 말을 수긍하며 자세를 바로 잡는다.

"네, 집중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야지. 그나저나 체중은 좀 늘고 있어?"

스프링캠프가 시작되자마자 양 코치는 체중 증가를 주문했었다.

5킬로그램을 올려보라는 주문이었다.

운동선수에게는 어렵지 않은 요구이지만, 그 타이밍이 스프링캠프 시작 이후라는 점이 문제였다.

생존경쟁을 펼쳐야 하는 스프링캠프에서 살을 찌우기는 힘든 일이었다.

"1킬로 정도...늘었습니다."

강호는 잠시 고민하다 사실을 말했다.

숫자 몇 개 속여 봐야 큰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1킬로? 그 정도로는 안 돼. 못해도 몸무게가 75는 돼야 1군에서 타격을 하지. 1군 투수들 공을 치려면 체격을 불려야 해. 안 그러면 배트가 공 스피드를 못 따라가요."

양 코치가 타이르듯이 충고한다.

그 역시도 알고 있었다.

강호처럼 목숨 걸고 훈련하는 선수들에게 살찌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을. 하지만 어려운 일도 주문해야하는 것이 코치의 자리였다.

주민한 선수 같은 슈퍼루키들에게는 인내할 수 있는 것이 구단의 입장이지만, 육성 선수들은 달랐다.

더 좋은 육성 선수가 나타나면 기존의 선수들이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

"더...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래. 이제 한 달밖에 안 남았으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집중하자. 그래야 손 감독님한테 권유를 해보던가 하지."

양 코치가 은근한 어조로 말한다.

지금은 2군에 속해 있는 강호였지만, 스프링캠프가 끝이 나면 다시 3군인 육성 군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양 코치가 손 감독에게 권해 1군 무대에 올려줄 것처럼 말하자 마음이 들끓는 것을 느낀다.

'침착하자. 양 코치가 그냥 하는 말이잖아. 괜히 기대했다가 크게 실망하게 된다. 립 서비스로 생각하자.'

강호는 기대로 차오르는 마음을 스스로 진정시켰다.

멘탈이 강한 그는 양 코치의 말에 동조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노력하겠습니다."

"그래. 그런 자세가 좋다. 내일 경기는 스타팅이 아니라 교체 멤버로 들어가게 될 거야. 준비해둬."

"네."

이어진 양 코치의 말에 마음이 상하기는 했지만, 티내지 않고 대답한다.

'스프링캠프가 많이 남은 시점에서 스타팅에서 뺀다는 말인가?'

강호는 속으로 생각하게 된다.

스타팅에서 빠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에 대해서 충분히 판단했거나 더는 기대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두 가지 경우가 먼저 떠오르고 있었다.

구단에서 방출 당했던 경험이 있는 강호다.

마냥 긍정적으로 생각하기에는 그의 야구 인생이 녹록치 않았다.

'빌어먹을, 피땀 흘리며 애썼는데 겨우 여기까지인가? 올해는 결국 3군에서 시작하는 건가?'

분했다.

하지만 납득이 가는 결과였다.

홈런 하나 없이 2할 대의 타율로서는 손 감독을 납득시키기가 힘들었다.

수비와 주루 능력을 보여주긴 했지만, 두 가지가 잘되는 선수들은 자신 말고도 꽤 있었다.

'방법이 필요하다. 방법이. 이대로는 2군에서 지지부진하다가 또다시 방출되고 말거야.'

지금의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강호였다.

육성 선수는 최저 연봉을 보상받지 못한다.

당연히 계약금도 없다.

100만원을 간신히 넘기는 월급을 모아서는 사직 구장 앞에 봉구비어도 차릴 수가 없을 것이다.

'이대로는 안 돼!'

강호는 배트를 내려놓고는 걸음을 옮긴다.

---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강호는 특단의 대책을 실행했었다.

육성군 타격코치인 김진관 코치가 아닌 2군 타격 코치인 프랑코 코치를 찾아간 것이다.

김진관 코치가 알면 기분이 상할 수도 있었지만, 그의 감정보다는 자신의 야구 인생이 훨씬 중요한 강호였다.

'결국 실패다.'

프랑코 코치는 근력이 약한 자신에게 배트를 몸에 붙이고, 당겨 치는 레벨 스윙을 알려주었다.

그런 타격 폼은 예전에 취해본 적이 있었다.

과거에 되지 않았던 것이 갑자기 몸에 맞을 리는 만무했고, 김진관 코치와 틀어질 것을 예상하고 단행한 모험은 실패했다.

'아무리 대단한 프랑코 코치지만, 며칠 동안 지도를 받았다고 타격이 달라질 수는 없는 거였어.'

프랑코 코치에게 지도를 받았지만, 타격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빠진 면도 있었다.

종전에는 타구가 땅볼이 되는 것이 많았다. 그런데 프랑코 코치의 지도대로 타격 폼을 수정하니 타구가 떴다.

타구는 뻗지 못하고 내야 뜬공이 되고 말았다.

'기존의 타격 폼대로는 땅볼이 많이 나오지만, 타구 속도가 빠른 땅볼들이 안타가 되는 확률이 높았어. 그런데 지금의 방법대로라면 타율이 떨어진다.'

그것이 강호가 내린 결론이었다.

아무리 명망 있는 프랑코 코치라지만, 단 기간 만에 자신의 타격을 끌어올려주지는 못했다.

"강호야. 요즘 프랑코 코치한테 지도받는 것 같더라. 스프링캠프가 기회이기도 하니까 잘 배워두도록 해라."

강호가 프랑코 코치에게 지도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 김진관 코치가 해준 말이었다.

말로는 프랑코에게 잘 배워두라고 하고 있었지만, 표정은 굳어 있었다.

만약 스프링캠프가 끝난 후 3군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김진관 코치가 패널티를 줄 것은 확실해 보였다.

김진관 코치는 후덕한 외모와는 다르게 속이 좁은 사람이었다.

'되는 게 없구나.'

한탄을 토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계속되는 불운은 노력이나 열정보다 앞서는 것 같다.

잠을 줄이고, 피를 토하며 애를 써도 좋은 결과는 남들의 몫이었다.

'항상 그래왔었다. 이제는 새삼스럽지도 않아.'

냉소를 짓게 된다.

포기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다 할 방법도 없는 상황에서 잠시 멈춰 서게 된다.

밤늦은 시간의 숙소 방에 선 채로 눈을 감는다.

띠리리리, 띠리링.

그 때 타이밍 좋게 휴대폰 벨소리가 울린다.

액정에 표시된 이름을 확인한 강호는 차마 전화를 받지 못한다.

'하필이면.'

형이었다.

못난 동생이 걱정스러웠는지 현지 훈련 시간을 피해 형이 전화를 건 것이다.

강호는 한참동안 울리는 벨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

전화는 끊어졌다.

강호는 불 꺼진 숙소 방에서 말없이 스마트폰 액정을 내려다본다.

형이 걸었던 전화가 부재중 전화가 되어 표시되었다.

"형도 걱정이 되는 거야."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대답해주는 이 없는 말을 뱉어내며 형에게 전화를 걸려 한다. 하지만 해줄 말이 없다.

이번 시즌도 2군에서 시작될 거라는 말은 차마 하고 싶지 않았다.

카톡.

강호의 갈등을 짐작한 것일까, 카톡 수신음이 울린다.

형: 강호야. 오랜만에 훈련하려니까 적응하기 힘들지? 그래도 다행인 게 군대 제대한지 얼마 안 되서 한편으론 좋지 않나? 아직 군기 빠지기 전이라 스프링캠프가 오히려 쉽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아무튼 밥 꼭 챙겨먹고. 너무 무리하지 마라. 괜히 욕심내다가 몸 상한다. 너무 급하게 하면 다칠 수도 있으니까. 동생아 서두르지 말고, 다치지 말고. 알았지?

장문의 메시지를 눈으로 읽었다.

형은 글재주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평소에 문자를 자주 보내는 편도 아니다.

그런 형이 이토록 긴 글을 써내기까지 몇 번을 지웠다 썼다를 반복했을지 눈에 선하다.

답장을 하기 위해 손을 움직이려다 멈추게 된다.

"서두르지 말고, 다치지 말고."

형이 말미에 적어 보낸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본다.

항상 형이 자신에게 해준 말이었다.

무수히 힘든 순간을 이겨내게 만드는 마술과도 같은 말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구단에서 방출되었을 때도, 혹은 그만큼이나 힘들었던 많은 순간 속에서 형은 자신을 위로해 주었었다.

"서두르지 말고, 다치지 말고."

다시 한 번 입 밖으로 꺼낸다. 그 마술 같은 문장을.

또 한 번 거짓말처럼 이겨낼 힘을 주리라 기대해보며 말하게 된다.

그리고 기적은 실제로 일어나게 된다.

[2019프로야구 프리마켓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세련된 여자의 목소리와 함께 시야가 밝아진다.

어두운 숙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 눈앞에 그려진다.

"꿈이...아니야."

처음에는 스트레스가 심해 비정상적인 꿈을 꾸는 줄 알았다.

하지만 꿈이 아니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모두가 현실이고, 자신은 그 속에 있었다.

[백강호를 사용자로 등록합니다.]

[시스템 적용 중에는 경기 중 부상을 입지 않습니다.]

[시스템 적용 중에는 기량이 하락하지 않습니다.]

[5,000exp가 주어집니다.]

[5,000mp가 주어집니다.]

귀로 들려오는 목소리와 함께 눈은 사방을 살핀다.

그것은 상식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일종의 반칙이었다.

하지만 반칙으로 주어진 기회라 할지라도 절대로 내려놓을 생각이 없다.

기회를 외면하기에는 지난 삶이 너무도 처절했기에. 그래서 지금 행운의 여신이 내민 손을 맞잡으려 한다.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삶을 위하여.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