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324화 (324/325)

# 324

외전3. 이수연. 결혼은 그래도 내가 먼저 해야지. 언니가 좀 급해!

외전 3. 이수연, 결혼은 그래도 내가 먼저 해야지. 언니가 좀 급해!

다시 한 해가 마무리되는 시기.

올해도 윤 엔터 배우들이 거둔 수확은 풍성했다.

그리고 그 정점을 찍은 것이 바로 이를 갈며 영화를 준비했던 수연이었다.

수연이 주인공으로 열연한 “얼음 여왕 프로즈나”는 1900만 관객을 넘어서며 올해 가장 흥행한 영화가 되었고, 윤 엔터의 불패 전설을 이어나갔다.

특히 이번 영화는 단순한 히어로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화려한 CG와 웅장한 스케일은 물론이고 감성을 자극하는 서정적인 스토리와 화합을 용서를 촉구하는 교훈적인 주제 의식까지.

그야말로 정말 제대로 만들어진 영화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수연의 연기는 정말 인생 연기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거친 액션과 섬세하게 변하는 감정 표현을 누가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완벽하게 소화해 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완벽.

이번 영화에서 수연은 정말 완벽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웹툰과 소설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것과 카메오로 출연해 준 윤 엔터 배우들의 아낌없는 지원 역시 영화 흥행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마지막에 몰려오는 몬스터를 상대하는 프로즈나를 지원하는 쉐도우와 시아의 연계 플레이는 그야말로 희대의 명장면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올해 청룡 영화제 대상의 영광은 수연에게 돌아갔다.

본의 아니게 태준에게 물을 먹이게 된 수연.

하지만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태준의 영화가 국내 흥행에서 완전 참패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수연이 영화를 촬영하지 않았어도 태준에게는 답이 없었을 것이다.

태준의 영화는 계획대로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 후 영예의 남우 주연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정말 기쁘고 놀라운 일이었고 여기까지는 정말 태준의 기대대로였다.

하지만 영화의 주제가 지나치게 무거웠고, 태준의 영화가 개봉할 시기에 불행히도 할리우드의 메가톤급 블록버스터가 연달아 세 편이나 개봉하면서 관객들의 외면을 받게 된 것이다.

아마 경쟁작들이라도 좀 평범했으면 그나마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건 정말 불운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태준은 결국 시상식 날 눈물을 머금고 집에서 수연이 수상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날 민수도 같이 시상식을 시청했다는 것 정도일까?

민수가 출연한 드라마도 불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같이 출연한 배우 하나가 드라마가 방영하기 직전에 음주 운전을 하는 바람에 역풍을 맞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마 드라마가 문제없이 방영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대상을 받는 것은 무리였을 가능성이 컸다.

소희가 출연한 드라마가 워낙 시청률이 높았으니까.

결국 드라마 대상은 소희와 같이 주연으로 출연했던 남자 주연 배우 정진영에게 돌아갔다.

소희는 여우주연상을 차지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완전히 다질 수 있었고.

진룡의 진시첸 사장도 드라마의 성공으로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이래저래 악재가 겹친 진룡에게 드라마의 대성공은 그야말로 한 줄기 빛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드라마가 중국에서도 상당히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으니 말이다.

“하… 올해는 뭔가 안 풀렸네.

내 큰 그림이 이런 식으로….”

“후… 마가 끼면 이렇게 되는 거군.

지금까지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어서 내가 실감하지 못했어.”

둘은 그저 한숨을 내쉬며 내년을 기약할 뿐이었다.

하지만 인생에는 언제나 맑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오늘의 실패를 거울삼아 다음에 더 좋은 작품을 만나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그렇게 시상식이 끝나고 며칠 후.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즐거워해야 할 수연이 설아 소희와 함께 어두운 수연의 방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왠지 예전 용의 울음을 촬영할 때 즐겼던 걸즈 토크가 재현된 듯한 모습.

하지만 분위기는 조금 우울했다.

그건 한숨만 짓고 있는 수연 때문이었는데 올해 리즈를 기록했다는 사람들의 평가와는 전혀 다른 우울한 표정으로 술잔을 기울이는 수연의 모습은 왠지 짠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

“음….”

수연이 술잔을 기울이며 다시 한숨을 쉬자 설아는 재빨리 수연의 잔을 채워 넣었다.

“언니, 기운 내세요.”

“내가 말이야.

이 거지 같은 자식 진짜.

내가 예전에 분명 그랬거든?

난 서른 넘기 전에 결혼하는 게 목표였다고 말이야.

근데 지금 내 나이가 벌써 서른둘이 되네?”

“음….”

수연의 넋두리에 소희는 그저 난감한 얼굴로 경청할 뿐이었다.

평소에 수연을 잘 알고 있던 설아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이제 올해도 다 가잖아?

그래서 넌지시 떠봤어.

그랬더니 뭐라는 줄 알아?

이제 리즈에 들어간 거 같은데 너무 서두르지 말자는 거야.

리즈 시절… 한창때…. 뭐 다 좋은 말인데.

내가 결혼한다고 연기를 못하는 건 아니잖아?

결혼하고도 좋은 연기하는 선배들이 한둘이야?

이건 다 핑계라 이거지.”

수연의 근심거리는 다름 아닌 결혼 문제.

벌써 태준과 사귀기 시작한 지 4년이 넘게 지났다.

하지만 청혼을 해야 할 태준은 이제 대상을 받고 전성기에 접어들 수연과의 결혼은 너무 이르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서른 살이 넘기 전에 결혼했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수연과는 인식의 차이가 극심했다.

소희는 수연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건 정말 두 사람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누가 옳고 그르고를 따질 수 없는 문제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말을 아끼고 있는 것인데 옆에 설아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지 과감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요즘 시대에 남녀 구별이 다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냥 언니가 프러포즈하시지 그랬어요?”

“그래.

나도 물론 여자라 프러포즈에 대한 로망이 있긴 했어.

하지만 이제는 그게 꼭 남자만의 몫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어제는 내가 그냥 대놓고 결혼부터 하자고 했더니.

이놈이 아직은 아니라고 노! 해버리는 거야.

거지 같은 자식.”

“음….”

설아는 수연이 결혼하자고 이야기했음에도 거절한 태준의 행태가 못마땅해졌다.

여자가 대놓고 결혼하자고 말할 때까지 손 놓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죽어(?) 마땅한데 그 와중에 거절까지 하다니.

정말 못 쓸 오라버니다.

“언니.

그런데 지금 언니도 태준 선배도 어차피 다른 사람 찾을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이고 사이도 좋은데 굳이 결혼을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요?

결혼은 생활이라고 하잖아요.

사람들이 연애는 즐길 수 있을 때까지 즐기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상대에 대한 확신도 있으니 너무 서두르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연애는 한때이니 즐길 수 있을 때 즐겨 두는 것이 좋다는 지극히 일반적이고 타당한 소희의 지적이 있었지만, 수연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음… 그래. 그렇게들 이야기를 하더라.

하지만 난 안정적인 가정을 가지고 싶다고.”

“안정적인 가정….

하지만 지금 언니랑 태준 선배 보면 거의 부부나 진배없지 않나요?

그냥 식만 올리지 않은 거지.”

“아냐! 그건 틀리지.

가장 중요한 게 빠졌잖아.”

“??”

“아이. 아이가 없다고.

결혼을 했으면 응당 아이가 있어야지.

난 한살이라도 어릴 때 아이를 가지고 싶단 말이야.”

소희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수연은 그냥 결혼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이부터 가질 생각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야말로 전성기에 들어간 수연이 결혼 직후 바로 임신을 생각하다니.

소희는 태준이 수연과의 결혼을 미루고 있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 그런데 언니.

결혼해도 바로 아이를 가지는 건 좋지 않은 생각인 거 같은데요.

언니 활동도 생각해야 하고…”

“물론 그렇지.

하지만 그렇게 계속 미루다 보면 언제 시간이 나겠어?

어차피 낳으면 다 키울 방도가 나오는 거지.

정 안되면 내가 그냥 집에서 키우면 돼.

내 커리어도 중요하지만, 내 가정도 그만큼 소중한 거니까.”

수연은 기본적으로 좀 특별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지만, 이 부분에서는 예상외로 완고한 면이 있었다.

“언니가 집에서 키울 필요까지도 없을걸요.

아마 임신하자마자 소속사에 육아방이 먼저 생겨날 테니까요.

아빠가 다른 건 몰라도 아이에 대한 애착은 강해서요.”

설아는 왠지 부산스럽게 소속사 한쪽을 리모델링하는 윤 대표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자신도 약간은 혜택을 받지 않을까?

“어쨌거나 지금 그런 상황이야.

그래서 내가 어제 태준이랑 한판 했어.

그따위로 할 거면 꺼지라고 했으니까 아마 당분간은 얼씬도 안 하겠지.”

수연은 결국 결혼 문제로 태준과 대판 싸우고 우울해하는 것이었다.

설아는 태준과 수연의 문제를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조금 서로 간의 입장차이가 있는 듯했으니까.

수연의 커리어를 생각해 결혼을 미루자는 태준과 하루라도 빨리 안정된 가정을 가지고 싶다는 수연.

확실히 서로의 생각이 다 일리가 있었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다는 것도 분명했고.

설아는 서로의 입장이 반대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둘의 생각이 반대였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답이 없을 테니까.

“음… 언니.

그냥 이러면 어때요?”

수연은 눈을 반짝이며 설명하는 설아의 이야기에 시시각각 얼굴빛이 변해갔다.

설아의 말은 그야말로 반칙과 같은 이야기였으니까.

“그건…. 너무 심하지 않아?

그래도 될까?”

“이미 검증된 방법이거든요.

언니가 정 그렇다면…. 모든 일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긴 하죠.”

“음…..”

수연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었다.

그 옆에 있던 소희는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리고 그 시각.

태준도 민수를 붙잡고 하소연하는 중이었다.

“하… 진짜.

아깝지도 않은가?

왜 벌써부터 결혼을 생각하는 거야?”

“글쎄.

사람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 다른 법이니까.

수연 선배는 원래 예전부터 평안한 가정에 대한 로망이 있었잖아?

집안도 기본적으로 다복한 편이었고.”

민수의 말에 태준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찾아뵈었을 때 보았던 수연의 가족은 어떤 가족보다 평범하고 행복해 보였으니까.

예전에 큰일을 겪었던 가정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평온하고 안온한 분위기였다.

아마 그런 행복한 가정환경이 수연에게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를 심어준 것은 분명했다.

“어쩌면 수연 선배는 그냥 이대로 가정주부가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그건 아닐걸?

하긴… 그게 아니라도 상황에 따라서는 별로 상관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

“그래서 어쩔 셈이야?

난 차라리 결혼부터 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보는데.

우리 나이도 이제 서른인데 그렇게 느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청 빠른 건 아니지.

그리고 왠지 수연 선배라면 결혼하고 2~3년 뒤에 복귀해도 다시 연기할 수 있을 거 같기도 하고.”

“연기 자체만 보면 그런데.

지금처럼 좋은 배역을 맡기는 힘들 거잖아.

지금 한창 물이 올랐는데….”

“글쎄. 그것도 생각하기 나름 아닐까?

내가 생각하기에 수연 선배는 그런 걸 별로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니라서.

그랬으면 예전에 설아의 영화에 그런 배역으로 들어가지도 않았겠지.

그냥 연기 자체를 즐기는 사람은 수연 선배뿐이잖냐.”

“하… 이젠 그런 것도 좀 신경 써 달라고 이수연.

어쨌든 지금은 아니야.

나나 수연이나 어디 딴 데로 눈 돌릴 사람도 아니고 결혼은 좀 더 미뤄도 상관없는 거니까.”

민수는 친구와 수연의 냉전이 생각보다 오래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준이 당장은 절대 결혼할 생각이 없어 보였으니까.

하지만 민수의 예상과는 달리 수연과 태준은 그날 바로 화해할 수 있었다.

그건 수연이 한발 물러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다시 사이가 좋아진 둘을 바라보며 민수는 다행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왠지 좀 이상하기도 했다.

원래 고집이라면 수연도 만만치 않은 사람인데 결혼이라는 중요한 문제에 너무 쉽게 물러섰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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