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323화 (323/325)

# 323

외전2. 정민수. 애인이 너무 귀여움받아서 피곤하다!

다음날 민수는 비장한 얼굴로 다시 체육관을 찾았다.

그곳에는 처음 그날처럼 많은 남자들이 모여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앉아 있는 안경을 쓴 남자.

왠지 익숙한 남자였다.

“어? 어디서 본 사람인데…. 누구더라? 아!”

곰곰이 생각하던 민수는 상대가 누구인지 드디어 기억해 냈다.

그는 최근에 퀴즈 프로그램 “도전 100문”에서 우승을 한 남자였고 민수는 기사를 통해 저 남자를 본 것이었다.

퀴즈 프로그램 “도전 100문”은 도전자들을 모아놓고 100문제를 출제해 모두 맞추지 못하면 우승자 없이 상금이 다음 주로 넘어가는 특이한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문제의 난이도가 매우 높아 지금까지 몇 명의 우승자밖에 배출하지 않았다.

그리고 저 남자는 최근에 우승한 남자였고.

민수는 다시 한번 아리 재단의 능력에 혀를 내 두를 수밖에 없었다.

저 남자도 아리 재단과 선이 닿아있는 모양이었으니까.

하지만 좀 황당하기도 했다.

자신을 상대로 저런 고수(?)를 데려오다니 그야말로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 꼴이 아닌가.

그리고 시작된 대결.

민수는 온 신경을 집중해서 진행자가 내는 문제를 귀 기울여 들었다.

혹시 자신이 아는 문제가 하나라도 나올까 기대하면서 말이다.

“20:0 승자는 임문국!”

하지만 반전은 없었다.

“도전 100문”의 우승자는 그야말로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였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대단했냐 하면 민수가 문제를 다 이해하기도 전에 바로 해답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솔직히 민수도 감탄이 절로 나올만한 실력이 아닐 수 없었다.

“하하. 진짜 대단하시네요.

제가 잘 모르는 것도 있었지만 어떻게 그런 걸 다 알고 계세요?

제가 졌네요. 수고 많으셨어요.”

민수는 너무나 시원하게 진 것이 오히려 홀가분할 정도였다.

이건 변명의 여지도 없이 자신의 완패가 분명했으니까.

그리고 웃으며 저런 남자를 데려온 아리 재단의 능력을 추켜세웠다.

“진짜 아리 재단 대단하네요.

양궁 코치님도 그렇고 저분도 그렇고.

진짜 인재의 보고네요. 정말 대단합니다.”

민수가 진심으로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아리 재단의 남자들은 민수가 패배했음에도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뿐만 아니라 시합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부터 계속 그랬다.

자신들의 승리에 기뻐해야 할 그들이 저런 반응이자 패배한 민수가 오히려 이상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감돌고 있는데 춘섭이 민수에게 다가왔다.

“흠흠. 자네도 수고했네.

자네가 이번에 졌지만 그래도 우리는 자네를 인정하겠네.

앞으로 작은 아가씨를 잘 부탁하지.

그리고 윤 대표는 걱정하지 말게나.

우리가 알아서 잘 말할 테니까.”

민수는 춘섭이 윤 대표까지 달래준다는 이야기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솔직히 요즘 윤 대표를 만나는 것이 조금 꺼림칙했는데 그걸 춘섭이 알아서 무마해 주겠다는 거였으니 말이다.

자신이 꾸준히 도전을 받아 준 것에 대한 보답을 이런 식으로 받게 되나 보다.

“아. 예. 감사합니다. 어르신.”

그리고 민수가 춘섭에게 웃으며 감사 인사를 건네고 사라지니 재단 남자들 사이에 침묵이 깨어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허허. 거, 참 이기고도 뭔가 기분이 찝찝하네.”

“와. 확실히 제대로 된 놈이긴 해.

끝까지 하나라도 맞추려고 달려드는 것 봐.

남자가 그 정도 열정은 있어야지.

저 녀석도 문국이가 누군지 아는 분위기였지?”

“그렇지. 딱 처음 봤을 때 놀라더라고.

그리고 애당초 저 녀석 데리고 올 때 춘섭이가 지덕체 운운하면서 데려왔다는데?

그게 말이냐 방구냐?”

“큭큭. 진짜 나였으면 바로 욕부터 날렸을 텐데.

역시 인성 바른 놈은 뭔가 다르군.”

동료들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자 춘섭은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딴 일을 자신에게만 맡기고 손 놓고 있었던 주제에 자신을 타박하다니.

자신이 그 핑곗거리를 생각하면서 얼마나 머리를 쥐어뜯었는데.

“야이! 그걸 말이라고!”

춘섭이 짜증스럽게 소리를 질렀지만, 동료들은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졌는데 억울하지 않은가 봐.

대범하기까지 하고.

나 같았으면 더러워서 뭐라고 말이라도 했을 텐데.”

“더럽긴 더러웠지.

애당초에 양궁 코치 데려온 것부터가 반칙이었잖아.

뭐, 그러고도 결국 져버렸지만.”

“확실히 저 녀석이면 나중에 사소한 거로 아가씨를 피곤하게 할 거 같지는 않군.”

“그래. 이 정도 억지도 웃어넘기는 대범한 녀석이니….”

“이게 생각보다 중요해.

남자가 쪼잔하게 굴면 그거만큼 피곤한 게 없거든.

예전에 우리가 윤 대표한테 점수를 후하게 준 것도 그 일이 있었는데도 아가씨한테 한 번도 뭐라고 하지 않아서지 않나.”

“게다가 마지막에 져놓고도 상대를 존중하는 저 쿨한 태도도 마음에 들어.

인정 못 한다고 찌질 거라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애초에 불리한 대결에 임하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아리 재단의 억지를 그냥 대범하게 넘기는 모습이 오히려 재단 사람들에게 큰 감응을 준 것이었다.

이건 춘섭도 마찬가지였다.

민수는 자신이 설명 들었던 것보다 더 괜찮은 녀석이었으니까.

어쨌든 체면치레를 위해 물고 늘어지긴 했지만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좋아. 어쨌든 우리도 체면치레는 했어.

그럼 윤 대표한테는 춘섭이가 대표로 가서 말해라.

우리 춘섭이가 구공(口功)으로는 최고의 고수잖아.”

분명 방금 전에 자신을 폄하한 원로들이 이럴 때만 자신을 찾자 춘섭은 끙하고 한숨을 내 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에게 윤 대표가 혹할만한 이야기도 있었으니 자신이 직접 가서 이야기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자신이 앞장서서 일을 벌였으니 마무리도 자신이 하는 게 이치에 맞으리라.

“그래. 이것들아.

어쨌든 이제 민수가 작은 아가씨 배필로 확정이야.

그러니 앞으로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할지 알겠지?”

“쩝. 윤 대표랑 동급으로 대하면 된다는 거지?

아이들한테는 내가 알아서 전달할게.

넌 윤 대표나 잘 설득해.

그 양반이 작은 아가씨 문제론 어지간히 깐깐하잖아.”

“뭐… 그건 나도 생각이 있어.”

“그렇다면 됐지만 말이야.”

그리고 잠시 후.

춘섭은 그 길로 바로 윤 대표를 찾아갔다.

윤 대표는 자신만큼은 아니지만 민수도 좀 고생하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들리는 소문이 전혀 그렇지 않아 조금 실망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춘섭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 퉁명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제 예상과는 조금 다르네요.”

“허허. 그렇게 되었네.

그 녀석이 진짜 엄청 잘 싸우더라고.

그러니 어쩌겠나?”

“끙….”

윤 대표는 춘섭이 허허롭게 웃으며 이야기하자 앓는 소리를 내며 한숨을 쉬었다.

분위기를 보니 춘섭과 원로들까지 민수를 인정한 모양인데, 저렇게 쉽게 인정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자신이 예전에 고생했던 것이 조금 억울할 정도였다.

“내 두말하진 않겠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야.

지금 윤 대표의 시야가 너무 어두워져 있는 거 같으니까.”

“??”

앞뒤를 뚝 잘라먹은 춘섭의 말에 윤 대표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윤 대표의 반응을 당연히 예상했다는 듯 춘섭의 설명이 이어졌고.

윤 대표는 춘섭의 설명이 어질수록 표정이 미묘해지고 있었다.

자신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였으니까.

“자네도 작은 아가씨를 죽을 때까지 옆에 끼고 살 생각은 아니지 않나?”

“그거야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적당한 시기가 되면 결혼도 시키고 해야죠.”

“그래.

그 적당한 시기가 되면 민수 녀석보다 더 괜찮은 녀석이 나타난다고 하던가?”

“음….”

이 부분에서는 윤 대표도 할 말이 없었다.

사실 그렇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게 윤 대표일 테니 말이다.

솔직히 민수가 싫다기보다는 그냥 설아가 연애한다는 사실 자체가 싫은 것이었다.

“그리고 말이야.

정말 저 녀석보다 조건이 좋은 녀석은 드물어.

자네 경우를 생각해 봐.

자네가 우리 아가씨랑 결혼하고 나서 처가를 밥 먹듯이 드나들지 않았나?

그때 아가씨가 필사적으로 거부하지 않았으면 아마 처가에서 살림을 차리지 않았을까?”

“그거야…..

제가 사고무친인 데다가 아리가 독녀다 보니 어르신은 당연히 제가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워낙 오래 혼자 지내다 보니 누군가와 같이 사는 삶이 그립기도 했고요.

그때 아리가 신혼집은 무조건 따로 차려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잠시 분가하긴 했지만, 나중에는 결국 제가 모시고 살긴 했죠.”

“그래. 바로 그거야.

민수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그 녀석도 지금 혈혈단신이야.

지금 그 녀석이 왜 저 위에서 살고 있는 이유가 뭘까?”

“그러고 보니….”

“자. 민수가 작은 아가씨랑 결혼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고.

그럼 그 부부가 명절에는 어디로 갈 거며 큰일이 생기면 누구를 가장 의지하겠나?

어른이라고는 자네와 아가씨뿐인데.”

“…..”

“그리고 설득하기에 따라서 자네가 그랬던 것처럼 자네와 아가씨를 모시고 같이 사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지.

어차피 걸림돌이 될 친가 쪽 어른들은 아무도 없지 않나?

그렇게 되면 이게 데릴사위랑 뭐가 다른가?”

“설아를… 데리고 같이 산다라….”

“게다가 예전에 얼핏 전해 들은 이야기인데 민수랑 태준이가 나중에 큰 집에서 같이 살자고 농담처럼 이야기했다는군.

민수가 수영장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이 꿈이었다면서 말이야.

큰 정원과 수영장이 있는 집에 태준이 내외, 민수 내외 그리고 자네랑 아가씨가 같이 사는 거야.

그리고 손자와 외손녀가 정원에서 뛰어놀고….”

그렇게 춘섭의 설명이 한참 이어졌다.

윤 대표는 춘섭의 설명을 들으며 그 장면이 눈에 선한지 아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야말로 아리 재단 최고의 구공 고수라는 춘섭답게 실감 나는 묘사였다.

“이제 자네의 선택만 남았구만.

번듯한 놈 데려다가 결혼시켰더니 시댁 식구들 등쌀에 온갖 시집살이를 다 하는 작은 아가씨의 모습을 눈물로 지켜보든지 아니면 홀몸인 민수를 데려다가 아들처럼 같이 행복하게 잘 살든지 말이야.”

“하… 그렇군요. 그런 단순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니.”

“하지만 말이야.

자네가 이렇게 계속 삐딱선을 타면 나중에 민수가 자네랑 같이 살려고 하겠나?

이걸 잘 생각해 봐야 해.”

춘섭의 지적에 윤 대표도 아차 싶었다.

그리고 춘섭이 그려준 화려한 자신의 미래가 일장춘몽으로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자신이 민수에게 퉁명스럽게 대하던 기억까지 합쳐지자 훗날 민수가 설아를 데리고 분가해서 자기네들끼리만 사는 장면이 떠오르며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귀여운 외손자 외손녀와의 행복한 노년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릴지도 몰랐다.

설아와 민수를 닮은 그 아이들과 같이 살 수 없다니, 그건 정말 안될 말이었다.

“앞으로 자네가 알아서 잘하리라 믿겠네.

그럼….”

춘섭은 윤 대표가 자신만의 계산에 빠져있자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리고 그날부터 윤 대표의 행동은 180도 바뀌기 시작했다.

며칠 후.

민수는 설아와 갑자기 변한 자신의 대우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요즘 좀 이상해.”

“뭐가요?”

“뭐랄까…. 재단 사람들이랑 대표님이 날 대하는 게 좀 다르다고 해야 할까?”

민수의 설명에도 설아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아무래도 설아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나 보다.

“아니. 재단의 젊은 사람들은 나한테 고개 숙여 깍듯하게 인사하더라고.

이게 무슨 일인지…..

게다가 대표님은 오늘 환하게 웃으시면서 사위라고 부르시는데 내가 순간 움찔했다니까.”

“음… 그때 그 테스트에서 인정받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아무래도 그런 테스트였으니까요.”

“그건 그런데….

뭔가 좀 묘한 기분이네.

지금 우리 연애하는 거 맞지?

이건 완전 결혼한 것보다 더한 느낌이라….”

“어머. 그럼 나중에 나랑 결혼하지 않으려고 하셨어요?

이거 안 되겠는데요.

저랑 이따가 진지한 이야기 좀?”

자신의 말이 듣기에 안 좋았는지 조금 샐쭉해진 설아.

민수는 아차 해서 고개를 저으며 변명했다.

“아니, 그게…. 할 거긴 한데.

이거 참….”

민수는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묘한 압박감을 느꼈다.

이건 정말 이제 빼도 박도 못 할 분위기였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지내다가 설아와 헤어지기라도 한다면 아무리 자신이라도 남아 남을 수 없을 거 같았다.

분노한 남자들 수십, 어쩌면 그 이상이 자신에게 달려든다고 생각하면 눈앞에 캄캄했으니까.

“에휴. 그래 뭐.

이대로 잘 살면 되는 거 아니겠어?”

어쩐지 결혼에 대한 선택권은 완전히 사라진 기분이었지만 아무려면 어떠냐는 생각과 함께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설아와 헤어질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자신을 사위라고 부르며 인정해주는 윤 대표의 모습은 솔직히 기분 좋기도 했고.

느닷없이 시작된 테스트는 좀 귀찮긴 했지만 나름 재미있기도 했고 윤 대표에게 인정받는 생각 하지도 못한 이득을 가져다주었다.

민수가 잃은 것은 결혼에 대한 선택권이 전부.

이 정도면 상당히 괜찮은 장사를 한 것이 아닐까?

외전2. 정민수, 애인이 너무 귀여움받아서 피곤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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