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2
외전2. 정민수. 애인이 너무 귀여움받아서 피곤하다!
“자자. 내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자네 영화 이야기나 좀 해봐.
잘되고 있는 거야?
흥행보다 작품성 보고 들어간 영화잖아?”
지금 태준이 찍고 있는 영화는 민수의 말대로 대중성보다 작품성에 치중된 작품이었다.
게다가 태준이 연기하는 배역이 평소에는 아주 평범하게 잘 살다가도 어느 순간만 되면 주체할 수 없는 폭력성이 분출돼 범죄를 저지르는 이중적인 남성이라고 하니 확실히 평범한 배역은 아니었다.
“아. 그건 그렇지.
자본이 많이 들어간 영화도 아니고.
뭐 그럭저럭? 액션에서는 너한테 좀 안되지만 그래도 내가 윤태준이라고.
이런 연기는 또 내 전문 아니겠어?”
“오호.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데. 예술 영화로 대상 겨냥이라.
이거 되겠냐?
예술성 인정받아도 관객 수는 무시 못 하는 거잖아?”
“글쎄. 한 방이 터져 준다면?
정윤숙 선생님이 “Mama”의 관객 수 때문에 대상을 받으신 건 아니니 말이야.”
태준의 이야기에 민수는 그저 웃음만 나왔다.
아마 이 친구가 지금 예술영화로 국제 영화제의 입상을 노리고 있는 모양이었으니까.
물론 어려운 일이긴 했지만 절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영화제 입상과 흥행은 또 다른 문제였다.
사실 “Mama”가 그럭저럭 흥행 괜찮은 흥행 기록을 낸 것은 그 당시 특별한 영화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으니 솔직히 운이 좀 좋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만약 영화제에 입상한다고 해도 흥행 기록이 전혀 아니올시다가 되어 버리면 별로 재미를 못 보는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민수는 이런 자신의 생각을 굳이 태준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태준이 이런 흐름을 모를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감정에만 집중한 태준의 연기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기도 했다.
최근 두 편의 영화에서는 액션만을 주로 선보였는데 그간에 어떤 발전이 있었을지 기대가 되긴 했으니까.
아직 자신들은 한창 연기력이 늘 시기가 아닌가.
“그래. 기대할게.
그런데 그것보다 수연 선배가 더 심각한 거 아냐?
언제 촬영한다고 했지?
나랑 설아, 그리고 소희 씨까지 카메오로 들어가야 하니.”
“아아. 수연이?
흠…. 그러게.
생각보다 너무 진지해서 내가 놀라고 있어.
할 땐 하는 여자긴 하지만 지금 완전 목숨을 거는 분위기라니까.
요즘은 아예 접근 금지 명령을 받은 상황이야.
영화가 개봉하기 전까지는 다 적이라나?
이건 뭔 소리인지….”
민수는 항상 수연의 분발을 요구하던 태준이 뚱한 표정으로 이야기하자 지금 수연이 생각보다 더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어로 물을 찍는 것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나?
원래 마음에 안 드는 일에는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수연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조금 신기하긴 했다.
저렇게 태준이가 못마땅해할 정도로 집중하고 있다니.
“야. 넌 네가 맨날 수연 선배한테 집중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 또 다른 소리야?”
“하… 이거 봐. 우리 배우들이 참 중용을 몰라요.
적당히란 말도 모르시나 우리 정 배우는?
난 우리 수연이가 이상한 히어로에 몰입해서 나한테 얼음을 날리는 꼴은 사양하고 싶은데.
네가 진짜 얼음 덩어리로 한 대 맞아 봐야 “와~ 이게 진짜 프로즈나의 필살기구나” 싶을 거야.
그게 제대로 아프거든.”
“풋. 뭐? 얼음으로 얻어맞았어?
와… 히어로 물에도 그렇게 몰입을 할 수 있긴 하구나.
이거 진짜 수연 선배 인생 연기 나오는 거 아냐?”
얼음으로 얻어맞은 듯한 태준의 말에 민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왠지 수연답다고 해야 할까?
사실 이번 영화는 단순한 히어로 물은 아닌 게 기억과 감정을 상실한 주인공 프로즈나가 인간의 마음을 찾아가는 과정이 제법 애틋하게 표현된 영화였기 때문이었다.
그건 남자 주인공 릭(은우)이 장렬히 전사할 때 보여줄 폭풍 같은 감정 씬을 포함해서 수연의 연기력이 두드려질 만한 장면도 충분히 있다는 의미였다.
민수는 점점 이 영화가 얼마나 잘 나올지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자신의 돈도 제법 많이 들어간 영화였으니 잘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물론 있었지만 말이다.
“영화 잘 되겠네.
수연 선배가 그렇게 집중하고 있다니.
그리고 지금 준수가 출간 중인 소설이나 연재 중인 웹툰 자체의 인기도 제법이라면서?”
“아무래도.
영화 때문에 호기심에 본 사람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좋데.
그 녀석이 확실히 글재주가 있긴 한가 봐.
이제 원작의 인기가 늘어가면 앞으로 개봉할 영화에 탄력이 받긴 하겠지.
그리고 소설에서 프로즈나 편의 인기도 생각보다 괜찮다고 하네.
의외로 이 시리즈 중에서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편이 프로즈나 편이래.
음… 뭐랄까. 프로즈나 편에는 뭔가 심금을 울리는 것이 있다?”
“하긴 스토리가 좀 그런 면이 있지.
사람들을 통해 감정과 사랑을 배워나가는 스토리인데다가.
막판에 주인공까지 죽으면서 감정 폭발.
그리고 마지막에 무쌍하면서 간지도 폭발하잖아?
그거 때문에 수연 선배가 미친 듯이 액션 연기를 연습한 거고.”
“끙… 이젠 수연이가 나보다 더 와이어를 잘 탈 거야.
프로즈나의 기본 패시브가 비행이라나?
하여간 나중에 영화 나오면 볼만은 하겠어.”
어쨌든 수연의 영화도 많이 기대가 되었다.
처음에 민수도 대본을 보고 이게 히어로 물이야? 하고 물을 정도로 서정적인 분위기의 영화였으니 말이다.
사실 막판에 다시 등장해 몰려오는 괴물들과 싸우는 장면이 없었다면 그냥 감성 영화라고 해도 과정이 아닐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정 배우는 다른 배우들 영화보다 자신이 들어갈 드라마부터 신경 써야 하는 거 아냐?
너 아직도 작품 못 정했다던데.
하긴 이번에 소희가 사고를 쳐 버렸으니 작품 선택이 쉽지 않겠어. 큭큭.”
“하… 그랬지.
벌써 시청률 30% 넘어갔으니까.
아무래도 올해는 내가 내기에서 이길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이네.”
잘된다 잘된다 했던 소희의 드라마는 결국 이번 주에 시청률 30%를 넘어 버렸다.
가장 인기가 올라온 시기에 드라마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 새로운 위업을 달성하고 싶은 마음도 적지 않았던 민수에게는 조금 애석한 소식이었다.
물론 소희가 잘 되는 건 너무나도 좋은 일이었지만 말이다.
지금 태준이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이었다.
소희의 드라마가 좋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으니 내기에서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일종의 과시라고 할까?
“후. 윤 배우도 조심해.
식구들에게 태클 걸리는 거 나만의 일이 아닐걸.
네가 방금 말했다시피 수연 선배가 날카로운 검을 휘두르기 일보 직전이야.”
“끙.”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민수는 솔직히 내기만을 생각한다면 태준이 더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태준의 연기력을 못 믿는 건 아니었지만 태준의 생각에는 변수가 너무 많았으니까.
지금 태준이 그리는 큰 그림은 너무나 제구가 좋지 않은 변화구나 마찬가지였다.
정말 어디로 들어갈지 알 수 없다는 것.
내기에서 승리할 가능성만을 따지면 차라리 아직 작품을 선택하지 않은 자신이 더 클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저쪽에서 춘섭이 걸어왔다.
민수와 태준의 시선이 순간 춘섭 쪽으로 완전히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춘섭이 분위기가 생각보다 더 굳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르신 잘 지내셨나요?”
“잘 못 지냈네. 그보다 내가 지금 민수 군이랑 잠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자리를 좀 비켜줄 수 있겠나?”
“아… 예. 그럼.”
반갑게 인사하는 태준에게 면박을 준 춘섭은 목표는 오직 민수라는 듯 민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태준이 자리를 비키자 뜸을 들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민수는 순간 이번에는 어떤 핑계로 다음 대결을 추진하자고 할지 자못 궁금해졌다.
이건 대결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흠흠. 자네.
사람을 볼 때 지.덕.체를 모두 본다고 하더군.
자네의 덕은 물론 볼 것도 없겠지.
수십억을 들여 아이들에게 새 생명을 준 자네의 심성은 우리도 솔직히 인정하는 사실이니까.
그리고 자네가 얼마나 용맹한지 두 번의 대결로 확인할 수 있었고.
하지만 우린 자네의 얼마나 지혜로운지는 알지 못한다네.”
생각보다 서설이 길었다.
하지만 왠지 이야기하는 분위기를 보니 지식에 대한 테스트인가 보다.
“그러니 이번 테스트는 지식 테스트네.
내일 다시 어제 왔던 곳으로 오게나.
그리고 이번엔 정말 마지막 시험이 될 것이니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고.”
“예. 뭐… 그러겠습니다. 어르신.
내일 뵙죠.”
민수가 두말없이 승낙하자 춘섭은 조금 풀어진 얼굴로 휴게실을 나섰다.
민수는 그런 춘섭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고.
하지만 춘섭이 완전히 사라지자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들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던 춘섭이 저 말을 끼어 맞추기 위해 얼마나 신경을 썼을지 눈에 선했기 때문이었다.
“하하. 재미있네. 그나저나 지식 테스트라….
이건 답이 없는데.
누가 생각했는지 정말 정확히 급소를 찌른 느낌이야.
누가 나오던지 나보다는 뛰어난 사람이 나올 테니까.”
민수가 헛웃음을 짓고 있는데 잠시 자리를 피해있던 태준이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호기심에 반짝이는 눈으로 민수를 바라보았다.
“야. 뭐래? 다음은 뭐로 붙기로 한 거야?”
“아. 퀴즈라고 하시네.”
“헤… 퀴즈…. 이젠 하다 하다 별걸 다 하네 큭큭.
이거, 재단 사람들이 진짜 신경 많이 쓴 게 느껴지는데.
널 정말 이기고 싶었나 보다.”
“뭐…. 그런가?
하긴 두 번이나 졌으니 어쩌면 자존심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
야, 근데 너도 민 여사님 아들인데 왜 설아랑 너랑 대우가 이렇게 틀려?
설아한테는 작은 아가씨라고 하면서 엄청 싹싹하시잖아?
그럼 너한테도 도련님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냐?”
민수는 방금 춘섭이 태준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 못내 의문이었다.
하지만 태준은 익숙한지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원래 예전부터 그렇게 대우해 왔던 모양이었다.
“아. 그게 좀 다른데.
원래 처음부터 재단은 모계 쪽 느낌이라 은연중에 설아가 이어가는 분위기였거든.
난 처음부터 재단에는 뜻이 전혀 없었으니까.
설아가 연기한다고 설칠 때도 재단 사람들은 설아가 언젠가는 재단을 이을 거라고 믿고 있었고 말이야.
어쨌든 난 원로 어른들한테 그냥 친구 아들 같은 입장이라고 해야 하나?
그 사람들이 우대하는 건 설아랑 어머니뿐이야.
안으로 파고들면 좀 더 복잡하지만 뭐 그 정도만 알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
태준의 대답에 민수도 작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뭐…. 그래.
모계라고?
음… 그럼 나중에 내가 설아랑 결혼해서 만약 딸을 낳으면 그 아이가 재단을 이어받는 건가?
그건 그거대로 참 신기한 일인데.”
“그거야 지나 봐야 아는 거지.
그 아이가 원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
누구든 원하는 사람이 이어받으면 되지 않겠어?
그건 그거고 갑자기 말이 샜는데, 그래서 자신은 있나 정 배우?”
태준의 말에 민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있을 리가.
두 번이나 패배한 아리 재단이 이번에 녹록한 사람을 데려다 놓고 대결을 펼칠 것 같지도 않으니 자신은 답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야. 말이 되냐?
당연히 졌지.
양궁하자고 국대 코치 데리고 오는 재단이야.
내가 쉽게 상대할 만한 상대를 데리고 올 리가 없잖아?
이번엔 무슨 퀴즈 명인이라든지 하는 사람이 튀어나오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민수가 웃자고 이야기했지만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퀴즈 명인이란 게 정말 존재한다면 아리 재단에 왠지 한 명은 있을 거 같은 기분이었으니 말이다.
“헤…. 드디어 정민수의 1패인가?”
“음… 뭐 할 수 없지.
그래도 두 번이나 이겼는데 이번에 진다고 인정 못 한다고 하진 않으시겠지?
하하. 설아랑 연애 한번 하기 정말 힘드네.”
“큭큭. 그러게 말이야.
어쨌든 수고해. 친구.
나중에 결과 말해 주고.”
말을 마친 태준은 시간이 되었는지 다시 촬영장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민수도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이미 늦었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상식은 알고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최소한 한 문제는 맞혀야 하지 않겠는가?
민수는 그렇게 이런저런 상식을 찾아다니면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