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321화 (321/325)

# 321

외전2. 정민수. 애인이 너무 귀여움받아서 피곤하다!

하지만 민수도 종목이 양궁이라는 이야기에 어이가 없었다.

도무지 설아를 지키는 것과 연관 지을 수 없는 종목이었으니 말이다.

“예? 양궁이요? 대체 그걸 왜?”

“흠흠. 어쨌든 할 건가 말 건가?

그것만 말하게나.”

춘섭도 그 부분에서는 할 말이 없었는지 말을 끊어 버리고 말았다.

민수는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네.. 뭐. 좋습니다. 하죠.

어디로 가면 되나요?”

“장소는 동원이한테 말해 놓았네.

그럼 이따가 보지.”

민수는 서둘러 떠나가는 춘섭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춘섭의 태도를 보니 상대가 상당히 활을 잘 쏘는 사람이 분명해 보였다.

“양궁이라….

국궁은 좀 쏴 봤는데 말이야.”

영화 “용의 울음”을 촬영할 때 민수는 국궁을 여러 번 다루어본 경험이 있었다.

작품 속에 진은 모든 병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전투의 귀재였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국궁을 쏘아본 경험으로는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진 않았었다.

물론 양궁이 국궁과 같을 리는 없었지만 몇 번만 쏘아보면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을 거 같았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대결이 잡힌 것이니 적어도 적응할 시간은 주지 않겠는가?

좀 황당하긴 했지만 민수도 전혀 자신이 없진 않았다.

활을 쏘는 자신을 보고 민 단장이 감탄을 터트린 것도 한두 번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도착한 체육관에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민수는 하룻밤 만에 모든 것을 준비한 아리 재단의 저력에 새삼 놀라고 있었다.

갑자기 체육관을 대절하고 과녁을 설치한 후 여러 가지 준비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아리 재단 남자들은 자신들이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민수에게 능력을 과시한 셈이었다.

물론 그들은 민수가 이렇게 느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예? 국대 코치요? 전 국대 상비군….”

민수는 자신의 상대에 대하여 전해 듣고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자신의 예상보다 상대가 더 거물이었던 것.

춘섭이 은근히 자신 있어 보인다 했더니 확실히 그럴 만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계속 활을 쏜 건 아니고 지금은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에 자신이 이길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아는 거 아니겠는가?

춘섭은 생각보다 민수에게 준비할 시간을 충분히 줬다.

아마 뒷말이 나오는 걸 막고 싶어서일 것이다.

어쩌면 민수가 연습을 좀 한다고 해도 자신들이 무조건 이긴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몇 번의 연습 끝에 민수는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사실 민수는 연습을 거듭할수록 국궁을 연습할 때 보다 차라리 더 편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아무래도 실내에서 연습을 하고 있기 때문인 거 같았다.

야외에서 국궁을 쏠 때는 바람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화살이 날아가는 경우도 있었으니 말이다.

“오…. 생각보다 더 괜찮은데.”

그리고 감을 잡은 이상 자신도 그냥 무력하게 무너지지는 않을 거라는 자신이 생겼다.

그런 민수를 바라보는 아리 재단 남자들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민수가 생각보다 잘 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정작 대결을 펼칠 국가대표 양궁팀 코치이자 전 국가대표 상비군인 김평호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봐. 평호. 저거 괜찮은 건가?

생각보다 잘 쏘는데?”

춘섭이 걱정스럽게 말을 이었지만 평호는 그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햐… 정말 잘 쏘긴 하네요.

아마추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예요.

하지만 한두 발도 아니고 스무 발이나 쏘는 대결이잖아요.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계속 저렇게 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리고 한 발만 잘못 나가도 멘탈이 무너질 테고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르신.”

자신만만한 평호의 이야기에 춘섭도 적이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하긴 어떻게 아마추어가 계속 같은 자세로 같은 타이밍에 활을 쏠 수 있겠는가.

그건 끝없는 연습의 산물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들은 잊지 말아야 했다.

이곳은 체육관이고 바람이 전혀 불지 않는 곳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말은 즉, 외부 영향이 크지 않아 그만큼 경험이 변수를 만들 가능성이 별로 없고 같은 힘 같은 각도 같은 방향으로 쐈을 때 거의 같은 곳에 명중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민수의 특별한 육체는 충분히 자신의 몸을 제어해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의 불운은 결국 민수가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뿐이었다.

사람이라면 그런 방법으로 같은 곳에 활을 쏠 수 없는 게 너무나 당연했으니까.

그들은 최대한 변수를 줄여 실력 대 실력으로 붙으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지만 이런 판단이 오히려 민수를 도와주고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시합.

“10점!”

“10점!”

“10점!”

“10점!”

평호의 예상과 달리 민수는 순탄하게 10점을 연달아 쏘아대고 있었다.

평호도 당연히 10점을 계속 쏘고 있었지만 민수가 기복 없는 활 솜씨를 자랑하자 내심 많이 당황한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옆에서 보기에 민수는 완전히 같은 자세로 동일한 타이밍에 활시위를 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수의 신체 제어능력을 전혀 모르는 평호가 보기에는 적어도 10년은 활을 쏘았던 사람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이 속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 그가 지금 느끼고 있을 당혹감이 어떨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반면 민수는 솔직히 좀 신이 난 상태였다.

계속 생각하는 곳으로 화살이 날아가 박히는 모습이 그에게 묘한 쾌감을 선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모든 화살을 과녁 중간에 명중시킬 수 있을 거 같았다.

20발이 모두 발사된 후 승패가 결정되었다.

종합 스코어 197대 193으로 민수가 승리하게 된 것.

승패의 요인은 간단했다.

아마추어인 민수가 프로 이상의 기량으로 기복 없이 과녁을 맞히자 오히려 평호의 멘탈이 흔들린 것이었다.

잘 나가다가 막판에 8점을 두 번이나 쏘게 된 것이 결국 평호의 패배 요인이었다.

“….. 자네가 이겼네.”

춘섭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민수의 승리를 인정했다.

아무리 구차하게 물고 늘어지겠다고 했어도 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상대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을 순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승리를 인정하면서도 자신을 완전히 인정하지 않는 춘섭의 태도에 민수는 이젠 차라리 이 상황이 재미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춘섭이 자신에게 또 다른 승부를 제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다음에는 무슨 말을 하면서 대결하자고 할까?

왠지 은근히 기대되는 기분이었다.

민수는 침통한 재단 남자들을 남겨두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왠지 자신이 계속 거기에 있으면 더 분위기가 안 좋아질 거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어차피 장기전(?)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으니 자신은 그저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제갈량이 맹획에게 칠종칠금을 하였다고 했던가?

자신도 그런 마음으로 기다리기로 했다.

민수가 빠져나가자 체육관에서는 한탄이 계속 터져 나왔다.

“하… 저놈 저거 옛날에 양궁 했던 거 아냐?

왜 저렇게 잘 쏘는 거야?”

“허허. 뭐 저런 놈이.”

“난 놈은 난 놈이네.

난 무슨 올림픽 경기 보는 줄.”

“20발 중 17발이 10점이고 3발이 9점이네.

어이가 없군 진짜.”

춘섭은 자신만만했던 평호에게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자신보다 평호가 더 망연자실해 있자 특별히 뭐라고 타박할 수 없었다.

딱 봐도 자신보다 훨씬 충격받은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자신이 위로를 해 줘야 할 판이었다.

그 모습에 춘섭을 그저 고개를 저으며 원로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앞으로의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하… 진짜 답이 없군.”

“그러게 말이야.

솔직히 이번에는 무조건 이길 거로 생각했는데….”

“저놈이 군인 출신이라더니 활도 저렇게 잘 쏘는 건가?”

“그게 무슨 개 뼉다구 같은 소리야?

그게 그거랑 무슨 상관이냐?”

“그러고 보니 예전에 영화에서 국궁은 쏴보지 않았나?”

“그걸 왜 이제 말해?”

“아니, 그때 다 같이 영화 보러 갔다 와 놓고 이제 와서 딴소리냐?

너도 같이 봤으니 알 거 아니냐? 영화에서 말 타고 활 쏘고 야단법석을 떨었는데.”

대책은 논의하지 않고 자기네들끼리 난장판이 된 원로들의 모습에 춘섭은 그저 한숨만 쉬었다.

“그만. 지금 중요한 건 대책이지 책임 추궁이 아니야.

그리고 누가 알았겠어? 저 녀석이 저렇게 활을 잘 쏠 줄은.”

“그래. 맞아. 지금 내분을 일으킬 때가 아니지.

춘섭이 자네 설마 지금 다시 다른 종목으로 붙어 볼 생각인가?”

“안 그러면? 이제 우리한테 물러설 곳이 있나?

이렇게 된 이상 무조건 이겨야 해.

이젠 자존심 문제야.”

“끙… 그건 그렇구만.

하지만 한참을 생각해도 답이 없었다.

미친 운동능력에 싸움 실력, 게다가 활까지 잘 쏘는 걸 보니 손재주까지 좋아 보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남자 하나가 나서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러면 차라리 아예 다른 부분을 찔러 보면 어떨까요?”

“전혀 다른 부분?”

“네. 몸 쓰는 거 말고 아예 머리 쓰는 거로요.”

“머리 쓰는 거라…. 예를 들면?”

“그 얼마 전에 임 원로님 자제분이 퀴즈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시지 않았습니까?

방송에도 나왔고요.”

“옳거니! 아예 몸을 쓰지 않는 종목으로 하자는 거군.”

모든 원로들이 새로운 접근 방식을 반기고 있었지만 춘섭의 표정은 조금 좋지 않았다.

무슨 소리를 하면서 민수에게 대결을 요청할지 아득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솔직히 저번에도 억지로 몰아붙인 감이 없지 않은데 이번엔 아예 상관없는 퀴즈 대결을 하자고 청해야 하니 말이다.

“하… 다 좋은데 그럼 뭐라고 하면서 대결을 청해야 하나?

원래 명분은 작은 아가씨를 지켜줄 능력이 있는지 알아보겠다는 거였잖는가?

그걸 퀴즈랑 어떻게….”

“허허. 춘섭이. 이미 명분 따위는 의미가 없지 않나?

알아서 잘 둘러대시게.”

“그래그래. 그래도 우리 중에 입담이 제일 괜찮은 게 자네 아닌가?”

“그러고 보니 예전에 그놈들이 춘섭이를 데빌 마우스라고 불렀던가?

싸울 때도 입을 더럽게 털면서 주위를 분산시킨다고 말이야.”

“끌끌끌. 그야말로 모든 걸 다 쓰는 남자였지.

주먹, 발, 심지어 입까지 말이야.”

춘섭은 옛이야기를 꺼내며 시시덕거리는 원로들을 바라보며 한숨만 쉬었다.

처음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또다시 패배하다 보니 이젠 원로들도 아무려면 어떠냐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여서였다.

하긴 원래 처음부터 원로들도 민수 자체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건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신이 민수에게 가서 또 개소리를 늘어놓아야 한다는 건 좀 부담스러운 일이긴 했다.

자신도 사람인 이상 부끄러움을 느끼긴 했으니까.

그나마 설아를 위한다는 마음에 꾹 참고 있는 것이었다.

소속사로 돌아온 민수는 오랜만에 태준을 만날 수 있었다.

영화를 찍고 있는 태준이 집중을 한다는 이유로 소속사에 자주 들르지 않았기 때문에 요즈음에는 얼굴을 보기 힘들었는데 무슨 바람인지 오늘은 아예 회사에서 민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 요즘 바쁘다면서? 큭큭.”

“끙. 대체 이 소속사는 왜 이렇게 의사소통이 빨라?

그걸 벌써 전해 들은 거야?”

“이 친구야. 아직도 여기를 몰라?

그 정도로 시끌벅적하게 일이 벌어졌는데 소문이 안 날 리가 있나.

오늘은 뭐 양궁으로 대결을 벌였다지?

어땠어? 이겼나?

상대가 국대 상비군 출신에 현역 코치라던데.

쉽지 않았을 거 같아서 내가 친히 와 본 거야.”

왠지 태준의 태도를 보니 자신을 응원하러 왔다기보다는 졌을 때 놀리려고 온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영화를 찍다 말고 여기까지 놀리려고 오다니 역시 이 녀석은 강적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에휴. 이봐. 나 정민수라고.

당연히 내가 이겼지.

이로써 2전 2승.

이 정도면 재단에서도 날 인정해야 하지 않겠어?”

“오…. 역시 패배를 모르는 남자답구먼.

그런데 괜찮겠냐?

설아 말을 들어보니 이거 단순히 테스트하는 정도는 아닌 거 같던데.

왠지 자존심 싸움으로까지 커진 거 같던데 그냥 지는 게 낫지 않겠어?”

태준도 확실히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 보였다.

자신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하긴 했으니까.

하지만 오늘 대결하면서 느낀 것인데 그건 왠지 자신과 상대를 모두 기만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의 대결을 위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무려 국가 대표 코치까지 데려온 상대와 대충 상대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었는데 그건 아닌 거 같아서 말이야.

최선을 다해 주는 게 상대에 대한 예의 아니겠어?”

“큭큭. 너도 참 어지간하다.”

“그리고 왠지 재미있기도 하고 말이야.

다음에 어르신이 또 어떤 승부를 준비할지 이제는 좀 기대가 된 달까?”

태준은 차라리 승부를 즐기는 민수의 모습에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우락부락하고 거친 인상이라 은근히 위압감을 주는 아리 재단의 남자들도 민수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민수의 모습에 정말 설아에게 딱 어울리는 남자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재단과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 설아였으니 말이다.

하긴 보통 남자였으면 애초에 첫 번째 대결에서 떡실신을 당하거나 대결 전에 재단 사람들의 눈살 때문에 꼬리를 말았을지도?

태준도 이제 이 대결이 어떤 식으로 결말을 맞이할지 자못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마 이제 그 끝이 머지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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