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319화 (319/325)

# 319

외전2. 정민수. 애인이 너무 귀여움받아서 피곤하다!

“사실 우리 아버지는 저이를 그냥 보내려고 했다더구나.

19살짜리를 건드리는 녀석은 상대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셨나 봐.

일을 내막을 정확히 몰라서 그랬을 거야.

내가 설명할 틈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우리 그이가 끝까지 매달리면서 기회를 달라고 조르자 이놈 봐라 하고 생각에 시험을 해봐야겠다고 마음을 바꿔 먹으신 거지.

아니 어쩌면 그냥 혼쭐을 내려고 그러셨을 수도 있고.

그때 아버지가 “좋아. 그럼 네가 원하는 대로 기회를 주지. 처자식을 지키려면 최소한의 기개와 의지는 있어야겠지?” 이러시면서 우리 조직의 에이, 아니 아니, 직원들 17명을 부르셨어.

저 직원들을 다 물리치면 생각해 보겠다고 말이야.”

민수는 중간에 묘한 단어가 들어간 것에 살짝 움찔했지만, 그냥 모른 척하기로 했다.

그리고 17명이라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터트렸다.

그야말로 17 대 1,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보기와는 달리 윤 대표가 제법 실력이 있었나 보다.

결국 싸워서 민 여사를 쟁취하다니.

“대표님도 정말 대단하시네요. 17명과 싸워서 이기시다니.”

민 여사는 민수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얘는… 그럴 리가 있겠니?

우리 자기가 무슨 최배달이나 시라소니도 아니고 어떻게 17명을 이겨?

그냥 얻어터지기만 했어. 시원~하게.

난 솔직히 비 오는 날에 먼지가 나도록 얻어터진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그때 처음으로 알겠더라고.

그날 우리 자기가 진짜 비 오는 날 먼지가 나도록 두들겨 맞았지.

아마 내가 말리지 않았으면 송장을 치웠을지도?”

“하….”

“그래도 우리 자기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어.

우리 아버지도 그 점을 높게 샀는지 표정이 좀 풀리시더라고.

물론 그이는 그 뒤로 몇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지긴 했지만 말이야.

나도 그이한테 엄청 미안했단다.

결국 내가 거짓말을 해서 일이 그렇게 된 면도 있었으니까.

그 일이 내가 그이한테 껌뻑 죽는 이유 중 하나지.”

하긴 윤 대표가 무슨 전설의 파이터도 아니고 17명을 이겼을 리가.

자신이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하지만 민 여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충 흘러가는 분위기를 짐작할 만했다.

아마 박춘섭 어르신은 설아의 보호자 자격으로 자신을 시험해 보려는 모양이었다.

설아를 손녀처럼 생각하고 아끼는 춘섭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그때 그 17명 중 한 명이 춘섭 삼촌이었어.

내 생각에 춘섭 삼촌은 그때 그 테스트를 재현하려는 거 같아.”

민 여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 보였다.

민수는 이해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억울하기도 하고 그랬다.

윤 대표는 죄(?)가 있었지만, 자신은 죄가 없지 않은가.

민수가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자 민 여사는 웃으면서 이야기를 이었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

그때야 솔직히 우리 그이한테 울분이 폭발해서 직원들이 손을 심하게 쓴 거지.

그렇게 터무니없지는 않을 거야.

그래서 그이도 그렇게 하라고 허락한 걸 테고 말이야.

그리고 나나 설아 정도 되는 여자인데 그 정도 노력할 가치는 있지 않겠니?”

민 여사의 말이 틀리지 않을 거 같았다.

분명 민 여사가 아리 재단의 첫 번째 마스코트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아끼던 민 여사가 19살에 임신을 했으면 직원들의 분노가 장난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울분이 당연히 윤 대표에게 쏠렸던 것이고.

반면 자신은 그냥 설아의 애인일 뿐이고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니 그렇게 감정적으로 나올 리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자신에게 그 정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여자라고 말하는 민 여사의 모습이 왠지 설아랑 겹쳐 보였다.

설아도 그런 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곤 했으니까.

이래서 어른들이 피는 못 속인다고 그렇게 말하나 보다.

민 여사의 이야기를 듣고 대충 흘러가는 분위기를 알게 된 민수는 인사를 하고 이사장실을 나섰다.

“그래. 우리 사위. 힘내?”

왠지 설아가 생각나는 민 여사의 마지막 말을 전해 들으면서 이런 것까지 왠지 설아와 비슷한 민 여사의 모습에 헛웃음을 지으면서 말이다.

이사장실을 나선 민수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윤 대표와 민 여사가 뭔가 영화 같은 파란만장한 과정을 통해 결혼을 하게 되었구나 라는 생각에서였다.

비 오는 날에 먼지가 되도록 얻어터진 윤 대표라니.

지금 근엄하게 무게 잡는 윤 대표의 모습을 생각하면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음… 처자식을 지킬 정도가 되어야 한다라….

솔직히 지금 상황에서는 시대착오적인 이야기긴 하지만.

적어도 춘섭 어르신이 민 여사님이나 설아한테 생각보다 중요한 사람이 맞긴 한가 보네.

설아가 알고 있는 걸 보니 설아도 은근히 동의, 그게 자발적인지 어쩔 수 없이 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의는 한 거 같고.”

민수는 설아와 자신을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자신은 일가친척조차 없는 혈혈단신.

믿을 거라고는 자신의 몸뚱이뿐이었다.

연애란 것은 결국 결혼이 종착역이니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결혼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민수는 결혼이란 것이 단순히 개인과 개인의 결합이라기보다는 가족과 가족의 결합, 크게는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라는 조금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그런 민수가 생각하기에 일가친척이 전혀 없는 자신은 사윗감으로 좀 부족한 면이 있었다.

물론 자신이 그렇게 꿀리는 남자는 아니었다.

우선 돈도 많았고, 외모도 준수했으면 전도유망한 배우였으니까.

하지만 설아를 생각해 보면 자신이 번 돈은 아니지만, 나중에 물려받을 재단이 민수의 재산보다 많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외모는 설아도 민수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더 나은 면이 있다고 하는 게 정확하리라.

그렇다고 능력이 떨어지나?

아마 연기만 잘하는 자신보다 다재다능할 것이 분명했다.

거기다 부모가 윤 대표와 민 여사. 그리고 설아를 아끼는 삼촌 같은 직원들이 수십 명, 수십 명이 뭔가? 어쩌면 수백일 지도 모른다.

거기다 오빠는 윤태준이고.

솔직히 자신이 좀 꿀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민수는 민 여사가 마지막에 했던 말이 생각보다 와닿았다.

그때 그 일로 민 여사가 윤 대표에게 껌뻑 죽기 시작했다는 그 이야기가.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우위에 있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이 일로 설아에게 마음이 빚이 생긴다면?

그건 그거대로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어쨌든 인정받는 건 중요한 거지.

설아에게 할아버지 같은 춘섭 어르신이면 더 그렇고.

설아를 아끼는 아리 재단의 오빠들이니까 인정받는 게 확실히 의미가 있긴 해.

까짓것 17대 1이라고?

그래, 한번 해 보지 뭐.”

민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훌륭하게 잘 해결하고 나중에 설아에게 공치사하면서 이런저런 서비스(?)를 받을 생각이었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받을 건 받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왠지 자신이라면 17 대 1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자신은 기본 스펙 자체가 윤 대표와는 전혀 달랐으니까 말이다.

시간이 지나 다음날

아리 재단 2층 체육관에는 이미 춘섭의 지시로 남자들이 모여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별로 긴장한 남자들은 없었다.

겨우 한 명을 상대로 17명이나 모였다는 것이 차라리 부끄러울 지경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중에 혼자 심각한 남자가 있었다.

그건 바로 예전에 민수와 잠깐이나마 손속을 겨루어 본 적이 있는 7 멍청이 중 한 명인 일명 막내라고 불리는 남자였다.

“어이 막내. 왜 그렇게 긴장하고 있어?

그냥 가볍게 움직이면 될 거 같은데.

민수 씨가 괜찮은 액션 배우긴 하지만 연기랑 실제는 완전히 다르다고.”

“하… 그게 그렇지 않을 거 같아서요.

예전에 7명이 달려들었다가 농락당한 기억이 떠오르거든요.

몽둥이를 휘두르는데 그냥 다 피하더라고요.”

“하하. 네가 술을 너무 많이 먹었나 보지.

너 그때 술 먹었다고 했잖아.”

“그랬으면 좋겠는데….”

남자는 그냥 웃으며 막내의 걱정을 흘려 넘겼다.

하지만 막내의 얼굴은 전혀 밝아지지 않았다.

왠지 불안한 기분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입구에서 민수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민수는 굳은 결의를 다지면서 2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예상대로 운동복에 보호구를 착용한 17명의 건장한 남성들이 민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민 여사의 예상대로 자신에게 억하심정이 있는 건 아닌지 보호구를 준비한 모습이었다.

예전에 윤 대표는 그냥 뚜드려 맞았는데 말이다.

“흠흠. 그래 왔군.

난 자네가 우리 아가씨의 배필이 된다는 것에 큰 유감은 없네.

솔직히 자네만한 사람이 드문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사나이라면 자신의 처자식 정도는 지킬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나?

그래서 난 자네가 우리에게 그런 용기와 의지가 있다는 걸 보여줬으면 좋겠네.”

민수는 예전에 민 여사의 아버지가 했다는 말과 거의 비슷하게 말하는 춘섭의 모습이 재미있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이럴 때는 자신이 배우라는 것에 감사할 지경이었다.

“룰을 간단하네.

자네가 저 보호구를 입고 우리 직원들 17명과 겨루면 되는 거야.

특별히 결과는 신경 쓰지 않겠네.

회장님도 예전에 그러셨으니까 말이야.

적어도 우리에게 근성과 의지를 보여주게나.”

“좋습니다. 어르신.

제가 설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제 결의를 보여 드리죠.”

민수는 무척이나 단호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춘섭에게 말했다.

어쨌든 지금은 최대한 비위를 맞춰주고 점수를 따는 것이 중요했으니 말이다.

민수의 말에 춘섭과 남자들도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민수가 남자들의 위용찬 모습에도 전혀 겁먹지 않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걸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민수가 말을 마치자 17명의 남자들은 천천히 민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날렵해 보이는 남자 하나가 가운데로 나섰다.

아마 자신들도 아마추어(?)인 민수를 상대로 우르르 달려들고 싶진 않은 모양이었다.

민수는 이 상황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상대의 여유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숫자를 한둘이라도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춘섭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겠지만 민수는 그냥 얌전히 맞아줄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

적어도 자신도 만만한 놈이 아니라는 걸 알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핫!!”

남자가 날렵한 몸놀림으로 민수에게 달려들었다.

첫 타는 가장 정석적인 잽 공격!

민수는 상대가 견제의 의미로 던진 잽을 슬쩍 피하며 몸쪽으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상대가 방심한 틈을 타 숫자를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한 것이었다.

남자는 생각보다 너무나도 빠른 민수의 스텝에 허를 찔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민수의 주먹에 복부를 강타당하고는 뒤쪽으로 두 발이나 밀려났고.

적(?)이 뒤로 물러났지만, 이 기회를 그냥 놓칠 민수가 아니었다.

계속 이어지는 민수의 로우 킥 공격.

그리고 피니쉬 엘보우까지 그림같이 들어갔다.

“미…미친…”

민수의 연속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사내가 쓰러졌다.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완벽한 연계.

남자들은 이 장면에서 터져 나오는 감탄을 참을 수가 없었다.

“뭣들 하는 거야!?

지금 여기 놀러 왔어!?”

뒤에서 춘섭이 노성을 터트리자 남자들도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다시 민수에게 접근했다.

방금 장면으로 민수의 기량을 대충 파악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혼자서는 쉽지 않겠다는 사실을 말이다.

춘섭의 말대로 지금 자신들이 놀러 온 것은 아니었고 여기가 1대 1로 겨루는 격투장은 더더욱 아니었다.

민수는 남자들이 한꺼번에 접근하자 상대가 생각보다 빨리 정신을 차렸다는 사실에 조금 안타까웠다.

차라리 간을 보면서 숫자를 줄였어야 했나 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자신을 찾기도 했다.

액션 연기를 할 때 느꼈던 그 감각이 실제 싸움에서도 그래도 적용됐으니 말이다.

“아씨. 왠지 이렇게 될 거 같더라.”

그리고 달려드는 남자들 중에는 그때 그 막내도 끼어 있었다.

안타깝지만 막내의 걱정이 현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한 싸움판.

서로 치고 빠지고 달려들고 하는 공방이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아무리 민수라도 사방에서 날아오는 상대의 공격을 다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자신에 세 대를 때리면 한 대는 고스란히 얻어맞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전투(?)는 장장 30분이나 이어졌고 서로 때리는 와중에 17 용사들이 한 명씩 다운돼서 밖으로 끌려나갔다.

30분의 혈투 끝에 최후의 승자는 결국 민수.

민수는 하도 많이 맞아서 여기저기 울긋불긋하고 숨을 몰아쉬고 있긴 했지만 비교적 건재했다.

춘섭과 아리 재단의 원로들은 그런 민수를 질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말이다.

사실 이 전투의 승패를 가른 것은 결국 내구력과 회복력이었다.

같은 타격이 들어가도 민수의 우월한 육체는 바로바로 충격에서 회복되었으니 민수가 더 유리할 수 밖에.

상대의 숫자가 많다고 반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17명이라는 숫자보다 민수의 몸 자체가 더 반칙이었다.

춘섭은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지만 지금 당장은 민수의 승리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가 바로 눈앞에 보였으니 말이다.

“하… 대단하군. 우선 자네가 이겼네.

결과는 내 다음에 말해주지.”

그나마 바로 민수를 인정하는 발언을 하지 않은 것이 춘섭으로서는 최선이었다.

민수는 춘섭이 자신의 승리를 선언하자 아리 재단의 원로들에게 허리를 꾸벅 숙이고는 우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아무리 민수라도 17명과 대결을 벌인 것은 정말 힘든 일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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