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8
외전2. 정민수. 애인이 너무 귀여움받아서 피곤하다!
외전 2. 정민수, 애인이 너무 귀여움받아서 피곤하다!
때는 시상식이 끝난 뒤 얼마 후.
민수가 대상, 태준이 주연상, 게다가 소희까지 조연상을 차지하게 되자 윤 엔터는 연일 축제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유일하게 조금 우울한 곳이 있었으니 그곳은 윤 엔터의 수장, 윤 대표가 머무는 대표실이었다.
아무래도 아직까지 설아의 연애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았는데 덕분에 대표실을 드나드는 직원들 모두 몸을 사리고 있었다.
괜히 대표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게 알아서 조심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며칠이나 가라앉아 있던 대표실의 분위기가 오늘은 웬일인지 화사했다.
윤 대표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밝은 얼굴로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동안 윤 대표를 지켜보기만 했던 민 여사도 오늘은 윤 대표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극적으로 윤 대표의 행동이 변했던 적은 드물었으니 말이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 보이는 윤 대표님.
혹시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후후후. 별일 아니야.
오늘 박춘섭 어르신이 나를 찾아왔더군.
민수를 하루 빌려도 되냐고 말이야.”
“네? 삼촌이요? 무슨 일로…. 아아…설마…
그렇군요.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가 했더니…..”
민 여사는 윤 대표를 새초롬한 눈으로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딸을 빼앗긴(?) 딸바보의 원한이 이 정도로 깊단 말인가?
자신의 배우(?)에게 큰 위기가 닥쳐왔음에도 저렇게 즐거워하는 윤 대표가 오늘은 왠지 좀 한심해 보였다.
그런 민 여사의 시선을 느껴져서일까 윤 대표는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항변했다.
“어허.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니 그걸 내가 막을 수도 없는 일이잖소?”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뭘 어떻게 해?
민수가 내일은 스케줄이 없으니 내일 빌려 가라고 말씀드렸지.”
“에휴. 그래서 막지도 않고 냉큼 그러라고 했다고요?”
“그럼. 설아처럼 예쁘고 착하고 능력 있고 야무진 아이를 채어 가는 일인데.
민수도 그 정도의 결의는 보여야 하지 않겠어?
너무 그렇게 보지마.
나도 이 일을 잘 넘기면 민수를 인정할 테니까.
장인어른도 그랬으니 나도 그래야겠지.
물론 이 일을 잘 넘겼을 때만 그렇게 하겠다는 거야.
아니면 당연히 국물도 없고!”
민 여사는 왠지 기대하는 듯한 윤 대표의 말투에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남편에게 저렇게 유치한 면이 있었다니.
하긴 자신의 아버지가 윤 대표에게 했던 것에 비하면 이것도 약과라고 할 수 있지만.
하지만 민 여사도 조금 궁금하긴 했다.
과연 민수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지금까지 항상 자신의 예상과는 좀 다른 모습을 보여준 민수였으니 이번에도 예상과 조금 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그리고 만약 민수가 자신을 찾아온다면 자신이 도울 수 있는 만큼은 도와줄 생각이었다.
장인어른이 될 윤 대표가 저 모양(?)이니 사위 사랑은 장모라고 자신은 민수를 도와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보면 자신의 어머니도 살아생전에는 윤 대표를 많이 귀여워했었다.
대상을 받은 후 민수는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는 기분이었다.
자신의 열애설도 대상 수상에 은근슬쩍 묻혀가는 분위기였고 자신에게 많은 작품 섭외가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다 잘 풀려가고 있었다.
소희가 출연한 드라마는 시청률 고공행진을 기록하고 있었고 쉐도우의 다음 시리즈에 들어가는 수연과 은우의 준비도 철저하게 진행 중.
게다가 태준도 다음 영화가 결정되어서 이제 곧 촬영에 들어간다니 하니 이제 자신만 마음에 드는 작품을 선택해 좋은 연기를 보여주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즐거운 가운데 잠시 산책을 다녀오는 민수를 붙잡는 손길이 있었으니 바로 아리 재단의 수문장 박춘섭 어르신이었다.
“자네. 잠시 나 좀 보세.”
민수는 자신을 불러 세운 춘섭을 바라보며 의아하다는 얼굴이었다.
하긴 그간 여러 번 마주치긴 했지만 이렇게 자신을 직접 불러 세운 일은 처음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춘섭의 이야기를 듣고는 더욱더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듣기론 자네 내일 특별한 스케줄이 없다고 하더군.
그러니 내일 아침 9시에 아리 재단 2층으로 내려오게.”
“네? 무슨 일이신지….”
하지만 춘섭은 무슨 일이냐는 민수의 의문을 전혀 풀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별다른 대답 없이 그냥 와보면 안다고 말하더니 민수가 알았다고 하자 바로 사라져 버렸으니까.
민수는 왠지 적대적인 춘섭의 모습에 계속 묻지 못하고 그냥 알았다고 말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좀 이상했다.
“이상하네. 무슨 일이지?
게다가 무슨 일인지 말해 주시지도 않고.
그리고 2층이라…. 거기는…”
게다가 아리 재단 2층은 아리 재단 인원들이 체력을 단련하는 체육관이 아니던가.
민수는 이 일이 예삿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일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설아를 찾아가 자문하게 되었는데.
“음… 네. 전 대충 들어서 알고는 있어요.
하지만 제가 이야기하기에 좀 그런 내용이라서요.
차라리 엄마를 찾아가 보시는 게 어떨까요?”
“… 민 여사님을? 음….”
설아는 곤란함과 미안함이 가득 담긴 얼굴로 민수에게 민 여사를 찾아가 볼 것을 권할 뿐이었다.
민수도 설아의 표정을 보니 더 이상 무슨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 같지는 않아서 민 여사를 찾아 나섰다.
연애 승낙을 받을 때 이후로는 왠지 좀 만나기 부담스러워 피하고 있던 민 여사와 윤 대표였지만 일이 이렇게 되니 어쩔 수 있나.
“흠… 오빠 파이팅?”
저런 반응을 보이는 설아의 태도가 조금 의심스럽긴 했지만 말이다.
생각해 보면 윤 대표에게 불려갈 때도 설아가 저런 말을 하지 않았나?
오랜만에 찾아온 아리 재단의 이사장실.
민 여사는 웃으며 민수를 맞이해 주었다.
“오. 사위 왔니?”
“하하. 여사님 잘 지내셨어요?”
“여사님이라니. 장모님이라고 부르렴.”
“네? 그래도 그건 좀.”
장모님이라고 부르라는 민 여사의 말에 너무 이른 거 같아 민수가 난색을 보이자 민 여사는 입을 삐쭉하게 내밀고는 퉁명스럽게 이야기했다.
“우리 사위가 나한테 궁금한 게 있어서 왔을 텐데.
그렇게 나오면 재미없지 않겠니?”
“윽….”
자신이 왜 찾아왔는지 뻔히 알고 있어 보이는 민 여사가 자신의 빈틈을 찔러오자 민수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끔 민수는 민 여사를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왠지 설아도 나중에 저런 식으로 행동할까 봐 조금 두렵기까지 했다.
사실상 설아가 민 여사와 판박이처럼 닮았다는 걸 모르는 민수만이 할 수 있는 착각이었지만 말이다.
“아…네. 장모님.”
“호호. 그래.
우리 사위가 날 찾아온 게 아마도 춘섭 삼촌 때문이겠구나?
그래. 무슨 일인지 궁금하긴 하겠지.”
민수가 결국 장모님이라고 부르자 민 여사는 방실거리며 가볍게 이야기를 꺼냈다.
“네. 아무래도 좀 그래요.
게다가 2층이라니… 거긴 체육관이잖아요?
갑자기 절 그곳으로 부른다는 게 이상하긴 하죠.
사실 특별히 문제 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왜 절 불렀는지 정도는 알고 싶어서요.
혹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민수가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자 민 여사는 잠시 쓴웃음을 짓다가 느닷없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설명을 해줘야 할 민 여사가 자신을 앞에 두고 혼자서 저러고 있으니 민수로서는 좀 황당한 상황이었다.
“아. 미안해. 갑자기 예전 생각이 나서 그만.
그래… 설명은 해줘야겠구나.
음… 이야기가 좀 길어질 수도 있겠는데 말이야.
이건 내가 결혼할 때쯤 이야기란다.”
민 여사는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민 여사의 이야기에 따르면 윤 대표가 민 여사와 결혼하겠다고 허락을 맡으려 찾아왔을 때 민 여사 집안의 분위기가 많이 살벌했었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지.
그때 내 나이가 겨우 19살이었거든.”
“네? 19살이요? 그때 윤 대표님은…”
“우리 그이는 26살이었나?”
19살짜리에게 청혼을 하러 찾아온 26살의 윤 대표.
민수가 생각해도 난리가 날만 상황이었다.
자신이라도 윤 대표를 가만히 두지 않을 거 같았으니 말이다.
솔직히 26살이 19살짜리를 연애 대상으로 삼았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민수는 자신이 평소에 윤 대표에게 가지던 존경심이 조금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심지어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하기 그럴 만도 했어.
그냥 결혼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임신해서 결혼해야 한다는 거였으니까.”
점입가경이었다.
“하…. 이…임신이요? 19…살짜리를 임신 시키…. 와. 대표님 진짜 그렇게 안 봤는데….”
민수가 황당해하며 말을 더듬자 민 여사는 아차 싶어 부연 설명을 해줬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의 남편이 사위에게 인간쓰레기 취급을 받을 거 같아서였다.
그래도 장인어른인데 사위에게 존경받으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할 일은 또 아니었지.
왜냐하면 그때 우리 자기는 나를 24살이라고 알고 있었거든.
연애를 민증까고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24살이라고 우겼으니 남편은 날 그렇게 알 수밖에 없었지.
그이도 내가 19살인지는 우리 집에 와서 알았어.”
“네? 5살이나요? 그게 가능한가요?”
“안될 건 또 뭐니.
설아를 생각해 보렴.
걔가 20살 때 화장하고 나가면 누가 20살로 보겠니?
나도 그랬다고 생각하면 된단다.
지금은 이렇게 동안이지만 그때는 설아처럼 성숙했었거든.
게다가 사정이 있어서 학교도 안 다녔으니 그냥 아가씨라고 생각했겠지.
대낮에 버젓이 돌아다니는 고등학생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거야.”
“아….”
민수도 설아를 예로 들자 조금 수긍할 수 있었다.
민수가 설아를 처음 만났을 때가 20살 때.
생각해 보면 그때의 설아도 화장을 조금만 짙게 해도 20대 중반으로 보였다.
그래서 K-G와 그런 농염한 뮤비도 찍을 수 있었던 거고.
결국 그때나 지금이나 설아는 별로 변한 게 없다는 것.
지금도 민 여사와 설아는 많이 닮아 있었다.
예전에 자신이 민 여사를 처음 봤을 때 설아의 언니냐고 물었던 건 자신의 시력이 안 좋아서 그랬던 건 아니었으니까.
아마 민 여사도 설아처럼 조금만 꾸며 놓아도 성숙해 보이는 타입이었을 것이다.
만약 자신이 설아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20살의 설아가 다가와 자신의 나이가 24살이라고 한다면 자신도 그냥 그렇게 알고 넘어갈 가능성이 컸다.
“…. 그 혹시 집에 인사하러 가시기 전까지 윤 대표님한테 비밀로 하신 건 아니죠?”
“호호. 그때는 내가 너무 심하긴 했어.
사실 나도 내 나이를 듣고 그이가 무슨 말을 할지 조금 무서웠으니까.
일은 벌어졌는데 그이가 혹시 도망가기라도 하면 곤란하잖니?
그래서 우선 집으로 데려간 거지.”
“아….”
민수는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설마 아니겠지 하는 생각으로 물었는데 역시 민 여사는 자신의 생각을 뛰어넘는 사람이었다.
민수는 문득 민 여사가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결혼 승낙을 받으러 갔다가 그녀의 나이가 19살이라는 사실을 전해 들은 윤 대표가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궁금했다.
아마 당황함에 아무런 말도 못 하지 않았을까?
여기까지 오자 민수는 왠지 윤 대표가 측은해졌다.
윤 대표의 잘못이 있다면 자신과 연애하는 여자의 나이를 전혀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민 여사의 말대로 대낮에 학교도 안 가는 고등학생이 있을 거라고 쉽게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학교를 안 다니니 당연히 20살은 넘었으려니 생각했을 테고.
그리고 처음에 말했던 데로 우연히 만나 연애를 시작할 때 바로 주민등록증을 공개하고 연애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니 말이다.
물론 임신은 좀 다른 문제이긴 했지만.
“…. 윤 대표님도 속으신 거네요.
어? 그러고 보니….”
민수는 처음 설아의 연애 소식을 전해 들은 윤 대표가 자신에게 느닷없이 아이를 조심하라는 소리를 왜 했는지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윤 대표 자신이 그런 과정으로 결혼했다 보니 염려가 되었나 보다.
하지만 그건 윤 대표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했다.
철저하게 관리(?)했으면 그렇게 예상치 못하게 임신할 리도 없었으니까.
자신은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으니 그럴 일이 절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민수는 윤 대표가 자신 이상으로 철저하게 관리했지만 전혀 소용없었다는 건 절대 알 수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모르는 것이 좋을 것이고.
민 여사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어쨌든 그렇게 찾아온 우리 남편을 아빠가 가만히 둘 리가 있었겠니?
19살짜리를 임신시킨 후 결혼하겠다고 온 거였으니까.
하지만 우리 남편도 절대 물러나지 않았어.
그이가 생각보다 뚝심이 있더라고.
하긴 제대로 된 남자라면 어떤 상황에서라도 자기 아이를 가진 여자를 포기할 수는 없는 거지.”
민수는 윤 대표가 왠지 측은하다는 생각과 함께 긴장감이 몰려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뒤의 이야기가 궁금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