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317화 (317/325)

# 317

외전1. 지은우. 아리 재단은 뭔가 수상해!

외전 1. 지은우, 아리 재단은 뭔가 수상해!

은우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자신이 결정한 일 중 윤 엔터로 이적한 것이 가장 훌륭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속사를 이적한 후 연기력은 부쩍 늘었고 이미지 변신에도 완벽히 성공했으며 재미있는 소속사 배우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예상보다 더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는 이 소속사는 마치 배우들에게 뭐라도 하나 더 해주기 위해 안달 난 회사 같았다.

배우들의 스케줄에는 일절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배우들의 영화에 투자하는 문제에도 전혀 거리끼지 않았으니 말이다.

항상 들어오던 배역이 또 들어와 탐탁지 않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드라마.

그곳에서 수연과 민수를 만났고.

잘생긴 후배들에게 특히 야박했던 창민에게 민수가 거침없이 대드는 것에 매료되어서 윤 엔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행운으로 다가올 줄은 그때는 정말 몰랐었다.

물론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역시 자신의 연기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거였다.

게다가 그 연기 선생님이 평소에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던 우상 조진성 선생님이었으니 은우로서는 더 이상 기꺼울 수 없었다.

심지어 아직도 조진성 선생님은 자신의 훌륭한 멘토가 되어주고 계셨으니까.

하지만 이곳 생활이 언제나 완벽했던 것은 아니었다.

자신도 사람이다 보니 가끔은 민수와 태준을 바라보며 자괴감 비슷한 기분이 들 때가 있었으니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액션 연기를 자랑하고 왠지 모르게 성숙한 느낌을 주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민수.

가끔 이상한 장난을 치기는 하지만 연기력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태준.

이 두 사람을 볼 때면 왠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자신의 화사한 외모조차 조금 빛이 바래는 기분이었다.

“쯧쯧. 이 녀석아.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보폭이 있는 거야.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느냐?

좀 느리게 가도 상관없으니 넌 너만의 걸음걸이로 걸어가면 그걸로 충분해.

어차피 목적지는 한곳으로 정해져 있고 느리든 빠르든 도착하지만 하면 되는 거니까 말이야.”

자신이 조급해할 때마다 진성 선생님은 혀를 차며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는데 이건 젊은 시절 자신만큼이나 화려한 외모를 가졌지만 큰 빛을 보지 못하다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 대단한 배우가 되었던 진성 자신의 이야기였기에 은우에게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뒤로 조급함을 극복하고 연기력을 가다듬은 은우의 실력은 당연히 일취월장했고 마음속에서 생겨나던 작은 시기심마저 모두 떨쳐낸 은우는 누가 봐도 준수한 연기를 펼치는 좋은 배우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즐거운 은우에게 요즘 작은 고민이 하나 생겼다.

물론 특별히 심각한 것은 아니었고 그저 작은, 그야말로 사소한 고민에 불과했는데 그것은 소속사에 드나드는 거칠 외모의 사람들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은우도 소속사 분위기에 바로 적응하지는 못했다.

아무리 붙임성 좋은 은우라도 처음 보는 사람들하고 바로 하하호호 할 수는 없는 일이었고 어느 정도 분위기를 읽을 시간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속사에 자주 나오거나 너무 오래 있지는 않았었고.

하지만 이제 소속사에 완전히 적응하게 되면서 이곳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 거였다.

바로 소속사를 수시로 드나드는 수상하고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은우로서는 당연히 이 거칠고 무거운 느낌을 주는 사내들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슬쩍 자신과 친해진 스케줄 팀 직원에게 물어봤는데 대충 들어보니 소속사와 같은 건물을 쓰고 있고 윤 대표의 아내인 민 여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아리 재단의 직원들이란다.

재단의 직원이라.

은우는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문득 예전에 매니저들이 뒤에서 몰래 나누던 대화가 떠올랐다.

연예 기획사 뒤에는 검은 조직이 있는 경우도 많았고, 그 조직들은 자신들의 돈세탁이나 그 외에 여러 가지 이익을 위해 소속사를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순간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은우는 그저 피식하고 웃을 뿐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조폭이 운영하는 회사라니.

솔직히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아니 이젠 너무 식상 하다고 영화에서도 나오지 않을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려나?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던 은우도 슬쩍 뒤에서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몰래 엿들어 보면 어?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하. 진짜. 오늘 우리 아지트 앞에서 열댓 놈이 모여 시비를 걸더라고.”

“뭐? 그래서 어떡했는데?”

“뭘 어떡해? 밑에 애들 불러서 다 쓸어 버렸지.

아마 당분간은 얼씬도 못 할 거야.”

“큭큭. 그래? 하긴 우리 구역에서 다른 놈들이 분탕질을 치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지.”

이런 이야기가 들려 온다든지.

“오늘 밤 10시에 다 집합이래.

3구역 쪽으로 치고 들어간다나 봐.”

“흐흐. 좋아 좋아.

이게 얼마 만이지? 간만에 피가 끓어 오르는군.”

“그래. 오랜만에 스트레스 좀 풀겠어.”

이런 왠지 위험한 듯한 이야기가 자주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뭐지? 하고 넘어갔던 은우도 계속 이런 일이 반복되자 뭐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 이 회사에 뭔가 있는 건가?

혹시 음지의 무엇?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생각을 고쳐먹을 수 밖에 없는 게.

“아이고. 어르신. 오늘도 잘 먹고 갑니다.

요즘 점심 먹는 재미로 산다니까요.”

“원. 너스레도.

다 먹었으면 쉰 소리 하지 말고 어여 꺼져. 이 녀석아!”

“하하하.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식당의 김 여사님께 타박을 들으면서도 넉살 좋게 계속 웃는 저 덩치 큰 남자라든지.

“아. 진짜 이럴 거예요?

이런 일도 제대로 못 처리하면 어떡해요?

이래서야 같이 일할 수 있겠어요?”

“죄송합니다. 이 팀장님.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주의하지 말고 제발 잘 좀 하자고요. 네?”

온몸을 단단한 근육으로 무장하고 옷 사이로 이상한 문신까지 보이는 주제에 아담한 체구의 홍보팀장 이미영에게 호되게 당하면서도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는 저 남자를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았다.

어디 그것뿐인가?

민수의 세금 문제가 불거질 때 같이 알려진 아리 재단의 기부액 규모라든지.

(조폭이 자선 사업을?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었다.)

외부에서 영입된 스타일리스트 팀의 여성들에게 쩔쩔매는 남자들의 빙구 같은 모습을 생각하면 더더욱 자신의 가정은 말이 되지 않았다.

(미모의 화류계 여성들과 항상 밀접하게 접촉하는 조폭이 평범한 여자들한테 저렇게 쩔쩔맨다고?)

그리고 만약 자신의 생각이 맞는다면 도대체 이 조직(?)의 수장은 누구란 말인가?

한국 최고의 배우로 유명했던 윤 대표?

아니면 여린 체구의 주인이자 아직도 30대 중 후반으로밖에 안 보이는 단아한 민 여사?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뭘까?

흠…..”

은우는 이것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라고 생각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투성이였으니까.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좀 찜찜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날도 은우는 평소처럼 소속사를 나섰다.

평소에 연예계 마당발로 유명한 은우를 찾는 동료 연예인들은 많았고 오늘도 언제나처럼 누군가가 은우에게 만나자고 연락을 한 것이었다.

은우는 소속사의 다른 배우들과는 달리 자주 밖으로 돌아다니는 편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매니저를 대동하여 이동하던 은우는 문득 자신의 매니저를 바라보았다.

조금 험상궂은 얼굴에 단단한 체구, 그리고 말수가 거의 없는 자신의 매니저 최성구.

그리고 보면 자신이 어디로 나설 때마다 항상 싫은 소리 한번 한 적 없고 자신이 연락하면 두말없이 자신을 데리러 오는 이 매니저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근데 성구 씨는 어떻게 이 회사에 들어오게 된 거예요?”

느닷없는 은우의 질문에 성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볍게 대답했다.

“아리 재단에서 일하다가 이곳으로 발령받았습니다.”

은우는 자신의 매니저가 재단에서 일했었다는 사실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 재단이요? 음….

그럼 혹시 재단에서는 무슨 일을 하셨는지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네? 아. 네.

별거 아니었습니다.

재단 소유의 건물에서 관리인으로 일했으니까요.”

“건물… 관리인이라…”

자신을 든든하게 지원해주는 매니저에게 이런 생각 하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은우는 성구의 외모를 생각하면 왠지 정장을 입은 채 유흥가의 클럽을 지키면서 다른 조직원(?)들의 습격을 막는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재단 소유의 건물(클럽)에서 관리인(적의 습격에서 클럽을 보호함).

왠지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아. 미치겠네.

그날 이후로 계속 이런 식이야.

하. 망상도 정도껏 이지.”

“네?”

“아. 아니에요. 성구 씨.

아직 멀었나요?”

“이제 다 와 갑니다.”

은우는 자신의 망상에 기가 막혀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오자 애써 말을 돌리면서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하지만 성구는 그런 은우의 이상한 모습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별말 없이 운전만 계속할 뿐이었다.

그런데 한번 의심이 도진 은우에게는 그런 성구의 모습조차 왠지 의심스러웠다.

자신의 행동이 이상할 법도 한데 당연히 가질법한 의문조차 가지지 않고 자기 일에만 충실하다니.

마치 정말 잘 훈련 받은 조직원 같지 않은가?

그리고 은우와 성구가 차에서 내려 약속장소로 이동하는 길에 한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잡아라! 도둑 잡아라! 누가 저놈 좀 잡아 주세요!”

길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는지 한 중년 여성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한 남자가 빠르게 은우 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은우는 여성의 외침에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남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남자가 갑자기 품에서 칼을 꺼내 들자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가지 무술을 배워왔던 은우라지만 직접 칼을 든 괴한과 마주하게 되자 모골이 송연하게 된 것.

그리고 남자가 흥분한 상태에서 갑자기 은우에게 달려들자 순간 당황해서 손발이 아득해졌다.

은우가 속으로 망했다를 외치고 있을 그때.

은우의 옆에 있던 성구가 움직였다.

남자에게 한걸음에 달려든 성구는 칼을 들고 있는 남자의 손목을 가볍게 쳐 내더니 남자의 복부에 무릎으로 강하게 쳐올리고는 그 두꺼운 팔뚝으로 그 남자의 목을 감싸 안아 주저앉힌 것이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은우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상대를 제압하는 성구의 솜씨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듯 저렇게 쉽게 칼을 든 남자를 제압하다니.

은우는 이제 정말 자신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성구는 몸놀림은 그야말로 프로(?)의 그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한껏 긴장하던 은우도 도둑맞은 아주머니가 달려와 성구에게 지갑을 돌려받는 순간에는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고. 총각 고마워. 어디 다친 데는 없어?”

“아.. 괜찮습니다.”

“아이고. 고마워서 어쩌지.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까?

우리 딸아이 등록금을 홀랑 도둑맞을 뻔했지 뭐야.”

“하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건데요.”

수선스러운 아주머니의 말에 쑥스럽다는 듯 뒤통수를 긁적이는 성구의 모습이 마냥 순박한 시골 청년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무표정하게 있을 때는 조금 험상궂어 보이던 성구가 저렇게 어리숙한 얼굴로 웃고 있다니.

성구를 조직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던 자기 생각이 부끄러울 정도로 천진난만하고 부드러운 얼굴이었다.

순간 은우는 자신이 지금까지 상대의 외모만으로 오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자신의 외모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을 마냥 여린 남자로 생각하는 것을 한탄하는 주제에 자신은 다른 사람을 외모만으로 판단하고 있었다니.

은우는 자괴감으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 뒤로 은우는 아리 재단 사람들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떨쳐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아리 재단 사람들하고 마음을 터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자 자신의 생각은 순전히 자신의 오해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쓸어버린다 쳐들어간다고 했던 건 현실의 이야기가 아니라 게임의 이야기였으니까.

아리 재단 사람들은 어떤 게임을 다 같이 즐기고 있었고 같은 길드에서 활동하고 있단다.

그리고 밤마다 길드 전을 치르고 있다나?

결국 상대 길드원을 게임에서 처단했다는, 그야말로 친구들끼리 일상적으로 하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은우는 이 일을 계기로 다시는 다른 사람들을 외모로만 판단하지 않았다.

험상궂은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지만 아리 재단의 남자들이 순수한 것처럼 그런 오해를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아리 재단의 남자들은 “지금” 떳떳하고 건전하게 살고 있는 것뿐이었지만 은우가 이런 것까지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은우도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물론 훗날에는 정확한 사정을 알게 되면서 황당해했지만 말이다.

지은우, 아리 재단은 뭔가 수상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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