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5
본편 -完-
태준은 시상식 시작과 동시에 “Lord of Trick”팀의 자리로 이동했다.
그가 대상 후보에 오른 영화가 그 영화였으니 당연하리라.
물론 마지막에 한껏 멋있는 척 한마디를 남기면서 말이다.
“이제 난 가봐야겠군.
오늘은 적으로 만나고 말았으니 말이야.
후훗. 나중에 보자고. 친구.”
민수는 윙크까지 날리고 사라지는 태준의 뒷모습에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저 녀석 왜 저래? 뭘 잘 못 먹은 거 아냐?
하여간 어지간하다니까.”
“인상적인 윙크네요.
우린 친구지만 오늘은 적이다. 뭐 이런 뜻 아닐까요?”
“아마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일걸요.
원래 그런 오라버니잖아요.”
옆에 있던 은우와 설아도 웃으며 한마디씩 거들고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도 태준의 모습이 퍽 재미있었던 모양이었다.
시상식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특별할 거 없이 그렇게 진행되었다.
중간중간 아이돌들의 축하 공연도 제법 볼만했고 말이다.
하지만 민수는 왠지 공연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상하게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계속 신경을 자극하고 있었으니까.
“이거… 왠지 엄청 긴장되네.
대상 후보로 거론된다는 거 때문인가?
아니면 내가 나도 모르게 엄청 기대하고 있는 건가?
이거야 원….”
자신은 이런 명리 문제에 제법 초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 또 그런 것만은 아니었나 보다.
아마 전생에서는 이런 경험이 전혀 없어서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긴장되는 게 당연하죠.
대상 후보잖아요. 그것도 유력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세요.”
설아가 옆에서 손을 꼭 잡아 주지 않았으면 지금보다 더 떨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민수는 자신을 옆에서 보듬어 주는 설아를 웃으며 바라보았다.
“에…. 민수형. 아무리 공개 연애라지만 너무 티 내시는 거 아니에요?
조금 전에도 카메라가 저희를 훑고 지나갔는데요.
두 분이 자신만의 세계에 들어간 걸 온 국민들이 다 봤을 거라고요.”
옆에 있던 리온은 민수와 설아가 서로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자 어쩔 수 없이 한마디 하고 말았다.
바퀴 커플은 신경 쓰면 지는 거라 자신도 그냥 내버려 두고 신경 쓰지 않고 싶었지만 그래도 시상식 중에 저러고 있으니 조금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두세요.
원래 가끔 저러거든요.
시간 지나만 알아서 돌아오니까요.”
소희는 리온에게 그냥 내버려 두라고 이야기했다.
어차피 이미 다 공개된 마당에 굳이 숨길 필요도 없었으니까.
어쩌면 저런 사이 좋은 모습을 계속 보이는 것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평소에 외모와는 달리 거친 남자의 이미지가 강한 민수에게 자상한 이미지를 추가 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쉐도우 팀에서 가장 먼저 시상식장에 불려 올라간 건 다름 아닌 소희였다.
그녀가 여주 조연상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아쉽게도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한 리온은 신인상을 놓치고 말았는데 제법 임팩트가 있는 배역이긴 했지만, 출연 시간이 길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던 것 같았다.
사실 상대가 너무 좋지 않은 것도 있었다.
이번에 또 다른 대상 후보인 지성철과 같은 영화에 출연한 신인 배우 최승진이 거의 주연급 배역이었으니 신인상은 그에게 돌아가는 것이 사리에 맞는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
리온이 신인상을 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가운데 소희가 상을 받으러 단상 위로 올라갔다.
소희는 담담하게 윤 엔터 식구들에게 감사하고 하늘에 계신 어머니에게 자신이 상을 받았음을 자랑했다.
그런 그녀의 담담한 말투 속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깊은 그리움이 느껴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갑자기 상황이 안 좋아져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소희의 과거를 어느 정도 알고 있던 민수는 그녀의 모습에서 깊은 공감이 느껴져 눈시울이 조금 촉촉해 졌다.
분명 소희의 어머니도 하늘에서 그녀의 수상을 기뻐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시상식이 계속 이어지는 동안 수상자들이 순차적으로 발표되고 점점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최우수연기상과 주연상, 그리고 대상만을 남겼을 때 쉐도우 팀이 받은 상은 작품상, 그리고 여주 조연상 두 가지.
사실 남은 세 가지 중 한 가지는 민수가 받을 것이 확실한 상황이었으니 총 세 가지 부분에서 수상한 것이었다.
흥행 성적에 비하면 상이 적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그만큼 좋은 성적을 기록한 영화가 많았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또 다른 주연 배우인 스티븐 로우가 시상식에 참여하지 않은 것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많은 부분에서 상을 받았다고 할 수 있었다.
다음 차례는 최우수연기상.
최우수연기상에 지성철이 호명되고 나자 민수는 순간 진득한 긴장감을 느끼며 손에 살짝 맺힌 식은땀을 닦아 냈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주변에서 드문드문 들려오던 이야기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남우 주연상. “Lord of Trick!” 윤태준.”
남우 주연상으로 태준이 확정되자 민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정말 태준이 주연상이라고?
그럼… 진짜 내가 대상인가?
설마? 정말이라고?
그렇게 의심하는 사이 바로 대상이 발표되었다.
“영예의 대상은…..”Shadow Awaken, Shadow retrunS” 정민수!”
정말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주위에 배우들은 민수를 축복해 주고 있었고.
민수는 멍한 기분으로 주위를 살펴보았다.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등을 두드려주는 배우 동료들 사이로 주연상을 받고 내려와 환하게 웃으며 자신에게 손뼉을 쳐주는 태준의 모습도 보였다.
누가 대상을 받더라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자더니 태준은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누구보다 민수의 대상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것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민수는 천천히 단상으로 올라갔다.
대상을 거머쥔 민수는 잠시 트로피를 살펴보고 천천히 수상소감을 발표하기 위해 마이크 앞에 섰다.
수많은 배우와 관객들이 민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묘한 전율이 민수의 전신을 자극했고 민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애써 차분해지려고 노력했지만 그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우선… 영화를 사랑해 주신 많은 관객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분들이 없었으면 저 역시 이런 큰 상을 받지는 못했을 테니까요.”
민수는 수상 소감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눈시울이 자꾸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목소리까지 조금씩 떨려오는 것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최대한 덤덤하게 행동하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그게 잘 안되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윤 엔터 식구들, 자신의 팬클럽 “민수네”, 자신을 아들처럼 생각하고 항상 관심을 기울여 주신 조윤희와 이모님, 그리고 같이 영화를 찍었던 수많은 스태프들.
그리고 자신의 피앙세인 설아까지.
거기까지 이야기한 민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를 하늘에서 응원해 주시는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언제나 저를 자랑스러운 아들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게….
그렇게 당당하게 살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 주십시오. 사랑합니다.”
애써 참아 왔던 민수는 결국 마지막에 가서 눈물을 조금 흘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전생에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지 못했던 기억까지 떠올라 북받쳐 올라오는 감정을 참기 힘들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수상 소감을 발표한 민수는 수많은 사람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대상을 거머쥐고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그곳에는 윤 엔터 식구들이 민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캬. 정 배우 결국 이렇게 됐네.
이 윤태준이가 결국 또 콩이 되고 말았어.
이게 내 운명이란 말인가?!”
민수는 태준의 콩 타령에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태준의 모습에 민수는 가슴이 절로 따듯해졌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진실한 친구 셋만 사귈 수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했던가?
민수는 최소한 자신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리라.
물론 가끔 짓궂은 장난과 속임수가 난무하는 친구이긴 했지만 그건 뭐 어떤가?
악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게 태준의 매력인데.
“하지만 다 끝난 게 아니지.
후후. 지금 내가 드라마에서 대상을, 정 배우가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으니.
다음에는 누가 더 빨리 대상을 받는지 한번 겨뤄보자고.
난 영화제 대상을, 정 배우는 드라마 대상을 말이야.
내기 품목은….. 음. 그래.
집은 어때?
정 배우가 전에 마당이 넓고 수영장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고 했지?
지는 사람이 그 집을 짓는 거야.
괜찮지 않아?”
태준의 내기 제안에 민수는 그저 어이가 없었다.
물론 태준의 말대로 우리의 연기 인생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새로운 목표로 다시 정진하기에 내기는 충분히 동기 부여가 되겠지만 저 제안에는 왠지 음흉한 속내가 숨어 있는 거 같았으니까.
“야. 내가 지금 열애설 터져서 로맨스 대본은 안 들어오거든.
드라마에서 로맨스가 빠지면 시청률이 나오겠냐?
이거이거. 윤 배우 진짜.
심심하면 은근슬쩍 함정카드를…..”
“거거, 천하의 정민수가 왜 이렇게 혀가 길어?
내가 전에 말했지? 쫄리면 뒈지시라고.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민수는 비열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태준에게 웃음을 터트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함부로 죽는 게 아니라고 들었다.
그런데 어찌 태준과의 내기를 피하겠는가.
“하. 좋아. 두고 보자고.
내가 로맨스 없는 드라마에 패배하는 신박한 경험을 하게 만들어 줄 테니.
우리 윤 배우는 영화 대본이나 잘 챙기시란 말이지.”
“큭큭. 그래. 그래야 정 배우답지.
저기 설아가 기다리네.
어서 가 보세요.
지금 째려보는 거 보니까 널 계속 잡고 있다가는 내가 집에서 살아남지 못할 거 같아.”
민수는 너스레를 떠는 태준을 뒤로하고 설아에게 다가갔다.
태준의 말과는 달리 설아는 아주 활짝 웃으며 민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헤헤. 결국 오빠가 받았네요.
적어도 올해에는 오빠가 최고의 배우였다는 거예요.
기분이 어떠세요?”
“좋아. 정말 좋네.
솔직히,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어.”
“호. 그래요? 평소처럼 덤덤하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내려오실 줄 알았는데 의외였어요.
아무리 오빠라도 대상은 좀 다른가 보죠?”
“그러게.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이게 참 생각대로 안 되더라고.
그리고 네 말대로 한 해 동안은 내가 최고의 배우였다는 거잖아?
느낌이 많이 다르더라.”
설아는 자신의 상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항상 자신을 생각해 주고 위해주는 설아.
민수는 그녀가 노래하든 연기를 하든, 아니면 재단을 이어받든 상관없이 그냥 좋았다.
설아 자체가 그냥 좋은 거였으니까.
정말 앞으로 일생을 같이하고 싶을 만큼 말이다.
“그리고 뒤에서 살짝 들었는데요.
우리 오라버니가 또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럼 차라리 다음 작품은 저랑 같이해요.
실제 연인의 진짜 연인 같은 달달한 연기.
사람들이 좋아할 거 같은데요.
끌리지 않으세요?”
물론 가끔 이렇게 발칙하고 엉뚱한 계획을 세우긴 하지만 말이다.
민수는 설아가 필승을 다짐하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자신에게 이야기하자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하하. 그럴까?
우리가 같이 태준이한테서 집을 뜯어내는 거야?
수영장이 딸린 집이라.
태준이가 등골이 휘겠는데. 큭큭.”
민수는 웃으며 다시 자신이 받은 대상을 바라보았다.
이제 앞으로 어떤 연기 인생이 자신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물론 항상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인생은 항상 굴곡이 뒤따르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 있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었다.
윤 대표와 민 여사.
윤 엔터 직원들과 아리 재단의 직원들.
자신의 팬클럽 회장인 수정과 매니저 동원, 항상 자신을 응원해 주는 “민수네”
가장 친한 친구이자 라이벌 태준과 항상 유쾌한 수연.
좋은 배우 동료인 은우와 소희, 그리고 소희의 매니저 형우.
자신의 어머니 격인 조윤희 여사님과 그 가족들.
마지막으로 사랑스러운 설아까지.
자신의 주변의 주변에는 자신을 위해주는 소속사 식구들과 마음씨 따듯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었으니까.
“그래. 행복하게 잘 살아야지.
행복하게 말이야. 언제나 지금처럼.”
그렇게 혼자 다짐하는 민수의 손에서 반짝이는 트로피가 민수의 밝은 앞날을 알려주는 거 같았다.
너의 앞날은 이제 이렇게 계속 빛날 거라고 그렇게 말이다.
-흔한 배우 정민수. 본편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