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313화 (313/325)

#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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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설아가 민수랑?

가만있자. 민 여사.

당신은 알고 있겠지? 설아가 민수랑 설마….. 진짜 사귀나?”

설마 그럴 리가 없다는 얼굴로 묻는 윤 대표에게 민 여사가 확인 사살을 날렸다.

“네. 사귀죠. 좀 됐어요.

그래도 역시 제 딸답네요.

역시 피는 못 속이나 봐요. 호호호.”

이런 사실을 자신만 몰랐다는 것에 묘한 배신감을 느낀 윤 대표는 허탈한 어조로 민 여사에게 따졌다.

설아의 아버지인 자신은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사실이 아닌가.

“하. 민 여사.

이런 걸 비밀로 하면 어떡하나?

내가 설아 아버지야.”

“글쎄요. 미리 안다고 뭐가 달라질까요?

방해나 안 하면 다행이지.

설아도 이미 어른이라고요.

만약 당신이 알았으면 가만히 있었겠어요?”

“하지만…. 설아는 아직 어리다고.”

“어리긴요? 당신이 아버지한테 저랑 결혼한다고 찾아왔을 때.

제가 몇 살이었는지 기억이나 하세요?

우리 윤 대표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 영….”

“큼큼. 그건….”

“혹시 또 충격받을 까봐 미리 이야기하는 건데.

지금 태준이도 수연이랑 사귀고 있거든요.

그것도 알고 계세요.”

인상을 쓰고 있던 윤 대표는 태준이 수연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말에는 화색이 되었다.

설아의 연애 소식을 못마땅해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민 여사도 어이없는 웃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오. 수연이라면 좋지.

성격도 좋고 예쁘고 싹싹하고.

그 녀석이 진짜 진국이잖나.

역시 내 아들답게 여자 보는 눈은 있군그래.”

“민수는 진국이 아니고요?”

민 여사의 일침에 윤 대표는 헛기침을 뱉으며 그녀의 시선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이중적인 잣대로 보고 있다는 걸 자신도 모르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윤 대표는 한숨이 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촌스럽게 그러지 말고 우선 지켜봐요.

그냥 연애하는 거잖아요?

나중에 결혼한다고 하면 그때 이야기하고요.

알았죠?”

윤 대표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설아가 민수랑 사귀다가 헤어지는 건 왠지 상상되지 않았다.

태준이나 설아나 마음이 가볍게 움직이는 아이들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설아가 소속사로 돌아왔다.

“헤헤. 오빠 제가 본상까지 받았어요.

그리고 노래는 잘 들었죠?

음…. 제가 처음 만든 노래라 많이 어설프긴 하지만 그래도 신경 많이 쓴 노래라고요.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요.”

민수는 방실거리는 얼굴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설아에게 차마 왜 그런 경솔한 행동을 벌였냐고 묻지는 못했다.

그저 그녀를 보듬어 안아 줄 뿐.

잠시 민수에게 안겨있던 설아는 그런 민수의 분위기를 대충 눈치챘는지 웃으며 괜찮다는 이야기부터 꺼냈다.

“에이. 표정을 보니 무슨 걱정하는지 다 알겠네요.

하지만 상관없어요.

당분간은 재단 일을 배우면서 음원만 발매할 거거든요.

어차피 제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제 목소리를 사랑하는 거니 큰 상관 없을 거예요.

문제라면 저를 예전부터 사랑해주는 팬들인데, 자 보세요.”

설아는 밝은 표정으로 핸드폰으로 자신의 팬 카페에 접속하더니 사람들의 반응을 보여주었다.

-하… 정민수라고?

웬만한 놈팽이면 짜증이 났겠지만, 민수형은 어쩔 수 없지.

-말은 바로 하랬다고 솔직히 민수형만 한 남자가 드물긴 해.

전에 소속사에 놀러 갔을 때 봤는데 생각 이상으로 괜찮은 사람이더라고.

진실해 보이고.

-확실히 뒤에서 호박씨 까는 애들이랑은 질적으로 달랐지.

-아무리 민수형이라도 우리 설아 울리면 가만히 안 있는다.

그때는 프페의 힘을 보여주겠어.

-야 솔직히 힘은 프페보다 민수네가 더 세거든.

거기 진짜 장난 아니야.

-제길. 설아야 행복해야 해.

하지만 사랑을 하면 감성이 풍부해진다고 하니 노래는 더 잘 나오겠군.

어라? 이거 은근히 이득인데.

노래가 더 좋아진다는 거잖아?

-오늘 노래도 난 좋던데.

뭔가 풋풋하면서도 좀 간질간질하다고 해야 하나?

지금까지 설아가 부른 노래는 다 좋았지만, 오늘은 좀 더 좋은 느낌이었지.

“맞죠?

저희 팬들은 원래 무슨 아이돌처럼 절 연애 상대로 보는 게 아니라니까요.

팬 카페 팬들만 제게서 돌아서지 않으면 일반인 팬들이야 뭐 어때요?

제 노래가 좋으면 듣겠고 아니면 안 듣겠죠.”

설아의 팬 카페 “프로즌 페어리”의 골수팬들은 민수를 인정하는 사람들 반, 설아의 노래에 담긴 감성이 더 풍부해질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반이었다.

하지만 설아의 연애를 반대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건 좀 특이하긴 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예전에 소속사에 찾아온 팬 카페의 임원들도 거의 30대 중반을 넘어서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거의 다 유부남들이었고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설아를 연애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웃긴 일이겠지.

게다가 당분간 조용해질 때 까지는 재단 일에 집중한다니 확실히 수연의 말대로 설아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지른 건 아닌 모양이었다.

“하… 그래. 그건 다 좋은데.

나한테도 준비할 시간을 줬어야지. 요 요망한 아가씨야.

결국 윤 대표님까지 아시게 되었잖아?”

그렇다. 문제는 큰 고비라고 할 수 있는 윤 대표였다.

딸 사랑이 지나친 윤 대표가 뭐라고 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자신이 딸 도둑놈으로 보일 것이 뻔했으니 좋은 소리가 나오진 거라는 사실이었다.

“에헴. 그럼 저 같은 예쁜 애인에게 내꺼라고 도장을 꽝 찍는 일인데 그게 쉬운 줄 알았어요?

아빠는…. 음….. 그건 민수 오빠가 알아서 잘해 보세요.

뭐 큰일이야 있겠어요? 그럼 파이팅?”

설아의 말에 민수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버렸다.

이 와중에도 설아의 예쁜 척은 쉬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설아의 말이 무책임하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차피 좀 빨라졌을 뿐이지 다 겪어야 할 일이기도 했고.

다만 고백도 거의 설아가 먼저 한 셈이었는데 공개도 설아가 해버렸으니 남자로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이유가 비록 설아를 위해서이긴 하지만 열애설을 겁내는 자신의 모습이 좀 못 미더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자신이 두려워한 것이 자신의 열애설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래. 알았어.

윤 대표님은 뭐, 내가 알아서 해야 할 문제지.

그리고 미안하다. 결국 네가 먼저 공개하게 만들어서.

내가 남자답지 못했지?”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그냥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거예요.

그리고 오빠가 절 위해서 그랬다는 건 잘 아니까요.

원래 오빠는 뭔가를 몰래 숨기고 하는 그런 성격은 못되잖아요?

결국 제가 문제인 거니 제가 움직여야죠.

전 그냥 오빠가 화내지 않고 절 생각해 주는 거 자체만으로도 좋아요.

사실 오빠가 괜한 짓 했다고 화낼까 봐 좀 조마조마했거든요?”

만나자마자 뻔뻔하게 웃으며 포옹부터 하더니 설아도 조금 걱정을 하고는 있었나 보다.

그러니 평소보다 더 밝게 웃으며 다가온 것이고.

그렇게 설아와 이야기하는 동안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바로 윤 대표에게서 호출이 온 것이었다.

“아…. 대표님이네.”

“오! 드디어? 오빠 파이팅? 오빠의 힘을 보여주세요.”

왠지 설아는 자신의 애인과 아버지가 만나는 일에 어떤 로망이 있는 거 같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내 딸은 못 줘!” 같은 상황을 기대하는 건 아닐까?

민수는 애써 쓸데없는 생각을 지우고는 심호흡을 하며 대표실로 이동했다.

꿋꿋하고 진실하게 다가갈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윤 엔터의 대표실은 지금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눈만 감고 있는 윤 대표.

윤 대표의 눈치만 보고 있는 민수.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애써 웃음을 참고 있는 민 여사.

하지만 민수를 불러놓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윤 대표 때문에 대표실은 조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윤 대표는 작게 한숨을 쉬며 민수에게 입을 열었다.

“그래… 설아랑 만나고 있다고?”

“아… 네.”

“하… 좋아.

젊은 남녀가 서로 좋아서 만나는 건데 내가 뭐라고 한다 한들 의미가 없겠지.

나도 그 시기를 거쳐 왔기 때문에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소용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어.

네가 무슨 부족한 부분이 있는 아이도 아니고.

다만…..”

그렇게 잠시 뜸을 들이던 윤 대표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직 아이는 안돼.

아이는 무조건 결혼 이후에. 알아들었나?”

드디어 무슨 말씀을 하시려나 보다 싶어 바짝 긴장하며 귀를 기울이던 민수는 뒤이어 이어지는 윤 대표의 당부에 무슨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말문이 막혔다.

아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딸의 남자친구에게 건네는 당부치고는 너무 직설적이었다.

자신에게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고 잡아 땔 수도 없고 뭐라고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그저 난감해하는 민수의 모습에 민 여사는 결국 웃음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민 여사는 지금 윤 대표가 왜 저런 이야기를 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윤 대표는 민수의 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자신의 과거를 엿본 것이 분명했다.

민수에게 속마음을 말하고 과거가 생각났는지 자괴감에 얼굴이 벌게진 윤 대표.

윤 대표의 발언에 당황해 난감한 표정으로 어떤 말도 못 하고 있는 민수.

두 남자가 모두 패닉에 빠져있자 민 여사는 웃으며 민수를 내보냈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대화도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호호. 난 민수 찬성이야.

번듯하게 잘 생겼고, 성품도 괜찮아서 부인 속 썩이지 않을 타입이지.

가끔 사고를 치긴 하지만 그게 또 나쁜 사고는 아니니까.

그리고 지금 언론에는 열애설 인정으로 기사가 나갈 거야.

설마 그냥 좋은 친구예요. 오빠 동생 사이에요.

이 딴 헛소리를 할 건 아니겠지?

“에이. 그럴 리가요.”

“좋아. 설아랑 잘 만나봐.

저이한테는 내가 알아서 잘 말할 테니. 나가 보고.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도록 하자.”

민 여사가 상황을 빠르게 정리하자 민수는 재빨리 인사를 건네고는 서둘러 밖으로 나섰다.

얼마나 동작이 재빠른지 윤 대표가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이미 사라진 후였다.

민수가 사라지자 민 여사는 어이없다는 듯이 입맛만 다시고 있는 윤 대표를 흘겨보았다.

딸의 남자친구로 민수를 불러놓고 다짜고짜 황당한 소리를 늘어놓아서였다.

물론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니지만 그게 대뜸 할 소리인가?

“당신.

느닷없이 그런 말을 하면 민수가 무슨 생각을 하겠어요?”

“하…. 나도 몰라.

그럼 갑자기 생각나는 게 그것뿐인데 어떡하나?

어차피 허락은 할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우리의 전례도 있고…..

설아는 왠지 당신이랑 너무 닮았단 말이야.”

윤 대표의 말에 민 여사도 무안으로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 무안함은 결국 분노로 표출되었다.

“윤 대표님. 그래서 저랑 결혼하신 것에 불만이라도?”

평소에는 천생 사근사근한 민 여사가 새초롬하게 이야기하자 은근히 그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아차 싶은 윤 대표도 이럴 때는 무조건 후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하하. 그럴 리가 있겠나.

그냥 걱정돼서 그런 거지. 그럼 그럼. 그냥 걱정돼서. 하하.”

대표실에서 윤 대표가 진땀을 빼는 동안 민수는 지옥에서 벗어난 기분으로 빠르게 휴게실로 돌아왔다.

당연히 휴게실에서는 설아가 민수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녀는 민수가 한숨을 쉬면서 돌아오자 무슨 대화를 하였는지 호기심에 빛나는 눈빛으로 민수를 바라보았다.

“뭐래요? 잘 해결됐어요?

내 딸은 못 준다. 뭐 이런 시츄에이션이 벌어진 건 아니겠죠?”

“아니… 뭐 잘 됐다고 해야 하나?

우선 열애는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걸로 했고…..”

“또요?”

민수는 이 말을 설아에게 해줘야 하나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자신이 말하면서도 기 승 전을 다 떼어버리고 결론만 말한 윤 대표의 이야기가 좀 황당하다고 생각했다.

“그….. 대표님이…. 아이 조심하라네?”

“아이요? 무슨 아이요? 아아…. 임신요?

푸히히. 아니 대체 아빠는….”

설아도 어이가 없었는지 한동안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아아. 그래서…. 하긴….쿡쿡….”

다만 정확한 집안 사정을 모르는 민수만 옆에서 어색하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어쨌든 설아가 공개적으로 민수와의 사이를 밝힌 그 날은 그렇게 잘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그들의 본격적인 연애는 또 다른 시작을 맞이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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