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309화 (309/325)

# 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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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우가 구속되고 화재 사고에 대한 일말을 찝찝함 마저 모두 해소하게 된 민수와 배우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Shadow returnS”가 개봉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같이 하고 있었다.

겨우 영화 한 편이 개봉하는 일을 역사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특정 배우의 영화가 스크린의 70% 이상을 차지한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에 사상 초유의 이 사건을 감히 역사적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으리라.

현행법상 한 영화가 60% 이상의 스크린을 차지하는 것을 규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두 편의 영화가 동시에 올라가야 가능한 일이었으니 아마 앞으로도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래 봤자 “Shadow Awaken”이 스크린에서 내려가기 전 겨우 3일 정도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그게 어디인가.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사건에 배우들이 적지 않은 감동을 느끼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 온종일 영화에 대한 소식만 줄기차게 찾아본 배우들의 대화는 당연히 영화의 흥행과 최근에 관계를 개선해 나가기 시작한 진룡 그리고 앞으로의 활동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영화는… 더 이상 잘 될 수가 없는 상황이네.

이거 위태로운데? 난 솔직히 이 정도까지라고 생각하진 못했거든.

내가 적의 등에 날개를 달아 준 거 같은 기분이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우리 윤태준 배우님. 올해도 대상은 물 건너가셨네요?

어쩔 수 없죠. 인생이 다 그런 거잖아요.”

구속 소식에 즐거워하던 태준도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이 조금 미묘해졌다.

지금 “Shadow Awaken”의 국내 관객 수는 3주 차에 접어들어 1900만 정도.

이미 태준이 주연했던 “Lord of Trick”의 관객 수를 살짝 넘어선 상황이었다.

앞으로 며칠만 있으면 영화가 내려가게 되겠지만 “Shadow retrunS”가 개봉한 상황에서 막판에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었으니 어쩌면 정말 2천만 관객을 넘어설 수도 있었다.

둘 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지만 자신이 조연으로 출연한 영화가 더 흥행하는 건 배우로서 조금 오묘한 기분이 들 수밖에.

게다가 수연이 옆에서 깐죽대는 것처럼 큰 변수가 없으면 이번 영화제 시상식에서는 태준이 대상으로 유력한 상황이었는데 큰 변수가 튀어나와 버렸으니 태준 입장에서는 조금 애석한 일이기도 했다.

단순히 한국에서의 흥행성적만 봐도 그런데 해외로 나가면 그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중국 일본은 당연히 이미 열풍이 일고 있었고 심지어 미국에서도 기대한 것 이상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으니까.

원래 흥행을 전혀 점칠 수 없어 겨우 첫 편만, 그것도 마지못해 계약했던 배급사가 지금 두 번째 편을 계약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는 이야기도 간간이 들려왔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영화를 가져다가 풀기만 하면 돈이 되는 상황이었으니 배급사에서 몸이 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러나저러나 어쨌든 흥행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어떤 영화도 “Shadow Awaken”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그나마 영화제의 대상이 흥행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뭐라고 예측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오호. 대상이라. 그거참 탐나는데.

윤 배우 어때? 이번 대상은 나에게 양보하는 것이.”

수연의 말을 받아 민수가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하지만 경력상 자신이 대상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장난이기도 했다.

게다가 민수는 태준이 자신의 영화에서도 거의 주연급의 활약을 해주고 있으니 더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윽. 안돼. 그럴 순 없어!

이번에도… 이번에도 라고?

내가…내가…. 또 콩이라니!!”

무슨 생각인지 태준도 혼자 괴로워하는 일인극을 선보이고 있었다.

진지하게 괴로워하는 모습과 우스꽝스러운 대사가 잘 버무려져 지켜보는 배우들도 순간 웃음이 터져버렸고 민수도 허탈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장난스럽게 반응하는 태준의 속마음이 어떨지는 민수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역시 상은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막판 변수의 등장으로 상에 대한 기대를 접은 건지.

배우들도 그 점이 궁금했지만, 매너 없이 끝까지 캐묻지는 못했다.

“그나저나. 진짜 이번 편은 소희 분위기가 장난 아니네.

반응의 반 이상의 소희에 대한 거야.

캐릭터도 멋진 데다가 소희 자체도 너무 예쁘게 나왔다고.”

수연의 지적대로였다.

소희의 외모 자체도 화려하고 도도한 고양이상의 미인인 데다 쭉쭉 뻗은 모델 체형이었는데 약간 부족했던 볼륨감도 도구(?)의 도움으로 완벽해진 상황.

그렇게 완성된 것이 붉은 차파오를 차려입은 고혹적인 시아였다.

착 달라붙어 매혹적인 몸 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허리와 엉덩이 그리고 붉은 치마 사이로 언뜻언뜻 내비치는 뽀얗고 탄력 넘치는 허벅지와 미끈한 각선미는 정말 사람을 홀리는 마력 같은 무엇이 있었다.

게다가 배역이 주는 매력 또한 만만치 않았는데 책임감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한 단체의 수장이 선두에서 적을 격퇴하며 화려한 액션까지 보여주고 있었으니 인기가 없을 수가 없었다.

특히 전투 모드에 들어가면 시아의 트레이드마크인 여우 귀와 흐드러진 9개의 꼬리가 화려한 그래픽으로 완벽하게 표현되고 있었으니 그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고 몽환적이기까지 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수연의 말대로 오늘 올라온 감상평의 절반 정도의 지분을 소희가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미친 외모에 미친 액션, 끝장나는 CG라고 했던가?

여우 꼬리를 휘날리며 날아다니면서 적들에게 마력탄을 쏘아대는 시아를 화려한 액션 연기에 대한 관객들의 평가는 대충 이런 식이었다.

이러니 오늘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이 1편의 주인공이 쉐도우와 샌디였다면 2편의 주인공은 쿤과 시아라고 말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그녀가 거저 얻은 것은 아니었다.

평소에 설아의 지시대로 강도 높은 트레이닝에 충실했고 드라마를 찍는 와중에도 계속 나와 액션 연기를 배우며 많은 고생을 했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피나는 노력 끝에 달콤한 보상을 받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러고 보니 소희가 다음 작품을 진룡 쪽 드라마로 정했다지?

이번에는 진룡이 소희한테 업혀 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배우들도 진룡쪽의 수뇌부가 완전히 물갈이되었고 윤 엔터에 손을 내밀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바로 실감하지는 못했는데 소희가 그쪽 드라마에 주연으로 캐스팅된다는 직접적인 이야기가 들려오자 비로소 조금씩 실감할 수 있었다.

“배역이 마음에 들어서요.

그리고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제안이 온 거잖아요.

그 점도 마음에 들고요.

솔직히 진룡이 싫다기보다는 그때 양아치 짓을 했던 그 사장 놈이 싫은 거였는데 위쪽이 완전히 물갈이됐다고 하니 이제 특별한 감정이 없네요.”

소희의 쿨한 태도에 배우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들도 대부분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쪽에서 윤 엔터 배우들에게 이상하게 날을 세웠던 거지 배우들 입장에서는 제작사나 투자자에 대하여 특별히 유감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자신들의 앞길을 막으려고 했던 진룡의 사장은 자신의 앞길이 막혀 해임되었고 직접 피해를 주려고 했던 박철우라는 사람은 구속이 되었으니 계속 대립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건 민수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맨날 얻어맞기만 하다가 막판에 추정 손실 200억 정도를 진룡에 안겨줬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들은 일의 내막을 전혀 몰라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그 일을 계기로 사장단이 물갈이된 것이니 이 정도면 정말 만족스러운 복수였다.

이제 진룡과의 묵은 원한도 다 정리하고 새로운 관계를 정립했으니 윤 엔터 배우들을 성가시게 했던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사라진 것만은 분명했다.

적어도 자신들을 악의적으로 대하는 자들은 이제 없었으니까.

그로부터 또 며칠이 지났다.

1900만을 기록하던 “Shadow Awaken”은 후속편의 등장으로 추진력을 얻어 결국 2070만을 기록하며 한국 영화 흥행사에 새로운 기록을 새겨 넣었다.

2000만 관객을 넘은 선 첫 번째 영화로 기록된 것이었다.

사람들은 당연히 난리가 났고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는 것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배우들의 기쁨도 말할 나위가 없었다.

게다가 이 영화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첫 편이 2000만 관객을 넘어선 것으로 또 다른 추진력을 얻은 후속편이 쾌속 질주를 계속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 “Shadow retrunS”의 관객 추이는 전편보다 빠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두 편 모두 2000만을 넘기는 진 기록을 기록하게 될지도 몰랐다.

아니, 언론은 이미 거의 확정적이라고 보고 있었다.

하지만 언론이 떠들어 대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점점 연말 시상식이 다가오자 이번 영화제의 대상 후보로 윤태준 정민수의 양강 구도를 언급하면서 과도하게 저울질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언론의 보도를 바라보는 팬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서로 자신이 응원하는 배우가 대상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언급하며 아옹다옹하기 시작한 것.

그야말로 언론에서 원하는 대로 반응하고 있는 셈이었다.

예상외로 지나치게 과열되고 있긴 했지만 다행히도 두 배우의 팬들이 서로를 격하게 비난하는 일은 없었다.

팬들이 두 배우의 친분을 의식해서였는데 아이돌 팬덤이 서로를 비난하다가 상대 아이돌의 안티로 돌변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리라.

하지만 지금까지 백호 가요제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아이돌 가수가 수상해야 한다고 팬덤끼리 충돌할 경우를 제외하고 시상식 대상에 대해서 이렇게 옥신각신한 적은 처음이었으니 여러모로 특별한 일이긴 했다.

연일 호황을 맞고 있는 윤 엔터도 연말이 다가오자 삼엄한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언론에서 하도 떠들어 대자 회사 차원에서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어서였다.

둘 중 누가 타더라도 회사 차원에서는 나쁠 게 없었지만 사람 일이란 게 그렇게 단순한 것도 아니고 혹시 두 배우 중 한 명이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윤 엔터의 휴게실.

탁자를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앉은 민수와 태준은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그 주제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정 배우. 정말이래야겠어?

다른 방법은 없는 거야?

우리 이런 사이 아니잖아?”

“하. 나도 이러고 싶진 않았어.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현실을 받아들여. 미안하지만… 더 이상 다른 방도가 없어.”

“하. 대체 왜 내게 이런 일이…..

하늘도 무심하시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대화하고 있는 두 배우.

마치 일생일대의 큰 위기를 앞둔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엄숙한 분위기를 깨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밥을 먹을 겸 회사에 놀러 온 수연이었다.

수연은 두 배우가 하는 꼴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한심하다는 듯이 한마디를 툭 던지고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놀고들 있네. 진짜.

니들 팬은 지금 니들이 그러고 있는 거 아냐?

아후.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이야?

괜히 왔다가 눈만 버렸네.”

수연의 한마디에 분위기가 완전히 깨지면서 민수도 웃음이 터져버렸다.

태준이 갑자기 분위기를 잡아 자신도 동조한 것뿐이었는데 솔직히 수연의 말대로 놀고 있는 건 맞았다.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주제는 다름 아닌 팬 사인회 복장이었으니까.

어쨌든 2000만 관객을 넘어버려서 공약대로 팬 사인회를 개최해야 했다.

하지만 태준 입장에서는 그 인형 옷을 다시 입고 싶을 리가 없었고 민수에게 자신이 그 옷을 입지 않을 묘책을 내 달라고 조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민수가 그럴 리가 없었다.

오히려 태준이 그 옷을 입는 것을 가장 바라는 사람 중 하나가 민수였으니까.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그 옷을 입지 않을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미 인터넷상에서는 예전에 비키니처럼 이번에도 반드시 공약을 지킬 거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었다.

사람들이 가장 기대하는 게 차파오를 입은 소희와 샌디처럼 꾸민 설아, 그리고 인형 옷의 태준이었으니 태준이 빠져나갈 구멍은 전혀 없어 보였다.

“야. 솔직히 답이 없어.

지금 인터넷상에서 네 인형 옷 얘기도 계속 나오고 있잖아.

사람들이 잊었다면 모를까 아직도 버젓이 기억하고 있는데 뭐 별수 있나.”

“아. 미치겠네. 진짜. 으으…..”

태준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신음을 내뱉었다.

태준은 처음 영화가 2000만을 찍은 날 넌지시 제작진 쪽에 연락해서 그 인형 옷을 아직 가지고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공약을 내건 직후에 확인하지 않고 시간이 지난 후에 확인한 것은 혹시라도 그 옷을 제작진이 처분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하지만 소금보다 더 짜다는 찬진의 제작팀이 그런 소품을 함부로 다룰 리가 없었고 당연하게도 얌전히 잘 보관하고 있었다.

특히 앞으로도 쓸 일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깨끗하게 세탁까지 해서 보관하고 있다는 소품 팀의 말은 태준을 절망하게 했다.

시간을 끌어도 아무 소용없다는 의미였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왜 그런 흉물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요즘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니 그걸 보관하고 있어야 할 이유가 있어 보이긴 했다.

물론 이유를 알고 나니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자신에게 좋은 일은 아니었다.

덕분에 무조건 그 옷을 입을 위기에 처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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