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307화 (307/325)

#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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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얘네 너무 조용하다 했는데…. 이렇게 되네요.”

기사의 내용은 간단했다.

“에이전트 K”가 이번 주를 끝으로 스크린에서 내려간다는 기사였으니까.

“어? 벌써 내려가? 왜 이렇게 됐지?

첫날은 그럭저럭 괜찮았잖아?”

“에? 오빠 전혀 안 찾아보셨어요?

와. 또 이런 식으로 그 무심함이….”

“쩝. 그런 건 아닌데. 하하.”

민수는 설아가 자신을 질렸다는 듯이 바라보자 멋쩍은 웃음을 지으면서 슬쩍 시선을 돌렸다.

설아의 말대로 “에이전트 K”에 대한 기사를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이 무심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한번 신경 쓰기 시작하면 계속 신경 쓰일 거 같아서 그냥 마음을 비운 거였으니까.

민수가 기억하는 건 첫날 관객이 그럭저럭 괜찮게 들어왔다는 소식 정도였다.

그런데 그 뒤로 전혀 특별한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아무리 자신이 한동안 스케줄로 바빴다지만 이상할 정도였다.

“첫날은 평론가 평이 좋아서 사람들이 제법 기대했었나 봐요.

그런데 관객들이 관람한 이후에는 뭐. 김빠진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어쨌든 긍정적이지도 않고 특별히 부정적이지도 않은 평가가 좀 이어지더니 이렇게 됐네요.”

“결국 이슈 선점에서 완전 실패한 거지.

솔직히 나도 저 영화에 대한 기사는 별로 본 기억이 없어.

우리 영화는 엔딩 이야기부터 후속편 티져, 그리고 중국 흥행이나 미국 흥행에 대한 전망까지 이런저런 기사들이 계속 나왔잖아?

이럴 때는 무플보다는 차라리 악플이 났다고 해야 하나?

영화는 묘하게 실망스러운 데다가 이슈는 개봉 전에 다 터트려놔서 이제 더 이상 먹을 것도 없고.

그러니 언론에서도 미지근하게 나올 수밖에.

뭐, 가끔 저런 식으로 이상한 망조를 타는 영화가 있긴 하지.

아주 조용히 사람들 관심에서 사라지는 영화가.”

태준의 말을 들어보니 영화에 대한 기사를 접하지 못한 건 자신만은 아니었나 보다.

특별히 언론에서 다룰 만한 이슈가 없다 보니 완전히 묻혀버린 모양이었다.

“아니. 진룡에서 그걸 보고만 있었다고?

그쪽이랑 협력하는 언론사가 있잖아.

걔들은 다 뭐한 거야?”

“에… 이 오빠. 진짜 너무하네요.”

“그래. 민수니까 뭐.

원래 이런 게 이 친구 매력 아니겠어?”

민수는 자신을 이상한 사람 보듯 보는 남매에 눈길에 조금 울컥했다.

자신이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저런 눈빛으로 보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지금 오빠한테 날조 기사 날린 언론사들은 다 몸 사리고 있어요.

직접 비난했던 애들은 소송 중이고요.

돌려서 올린 애들은 사람들의 빗발치는 항의에 눈치만 보는 중이죠.

그런데 그 언론사들이 거의 진룡한테 협력하는 언론사잖아요.

그러니 당장은 진룡이 힘을 쓰기는 어려웠겠죠.”

“아. 그때 그 세금 문제 때문에…..”

이제야 두 남매의 눈빛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자기 일에 너무 무관심했다는 뜻이었겠지.

하지만 좀 억울하긴 했다.

“아. 그랬어? 난 그쪽은 안중에도 없어서 잘 몰랐네.”

“그러시겠지.

어쨌든 첫날은 좀 괜찮게 들어왔는데 그 뒤로 급격히 관객 수가 줄어들었다고 하네.

그러더니 결국 요 모양이라 이거야.”

“최종 관객 수가 얼마나 나오려나요.

지금까지 220만이라던데.

이거 완전 망한 거 아니에요?”

“내가 말했잖아. 망할 거라고.

내가 본 댓글 중에 진짜 어이없던 게 하나 있었는데 약 빨고 만든 영화치고는 너무 싱겁다는 거였어.

딱 그거라니까. 사람들 반응이.

이런 게 자업자득이지.”

“에이전트 K”의 실패 원인 중 하나는 태준의 말대로 너무 높아져 버린 기대치 때문임이 분명해 보였다.

정말 참신하고 놀라운 영화를 기대했다면 관객들이 실망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전생에서는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었는데 자신들의 영화가 너무 치고 올라간 것이 생각보다 큰 영향이 있었던 거 같았다.

“그러고 보니 어차피 미국에 가야 하잖아?

우리 정 배우가 쏘는 하와이 휴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캬~ 언제가 좋으려나.

공짜 여행이라니 이거 왠지 신나는데?”

“그래그래. 이건 네가 이겼다.

나도 이 정도로 실패할 줄은 몰랐네.”

과하게 즐거워하는 태준의 모습에 민수도 자신이 내기에서 졌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했다.

솔직히 자신의 복수(?)가 이렇게 훌륭하게 마무리되었으니 하와이 여행 정도야 기분 좋게 쏠 수 있었다.

“결국 저 영화가 내려가면서 “Shadow returnS”가 좀 더 빨리 올라오게 되었네요.

게다가 두 영화가 동시에 올라가 있는 순간에는 극장가를 저희가 완전히 지배한 거고요.”

“그 지배한다는 말은 좀 멋있는데.

어떤 배우가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겠어?

자신이 찍은 영화가 스크린의 60%를 넘게 장악하다니.

이것도 참 신기한 경험일세.

게다가 이건 처음부터 두 편을 동시에 상영한 거랑은 질적으로 완전 다른 일이니 걱정할 것도 없고 말이야."

태준의 말대로 신기한 경험이긴 했다.

현행법상 한 영화가 60%의 스크린을 넘길 수는 없었으니까.

노력과 우연이 겹쳐 발생한 놀라운 경험.

민수는 이 일을 이렇게밖에 정의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정말 한국 영화계에서 다시 없을 엄청난 사건이기도 했다.

진룡과 협력하고 있는 언론사들이 대중들의 눈치를 보며 침묵하고 있어서 “에이전트 K”에 대한 언론플레이가 주춤했다는 태준과 설아의 예상은 반만 정답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요인은 진룡 내부의 문제였다.

본사에서 한국 지사에 대한 감찰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지난 3년간의 영업 손실이 커서라는 이유를 붙였지만 이건 그런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한국 지부가 영업 이익만을 위해 만들어진 회사는 아니었으니까.

물론 지금까지 한국 지부가 영업 이익 외에 한국의 좋은 인적 자원을 중국으로 인도하는 역할마저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사내 정치와 후계자 문제, 그리고 괘씸죄가 모두 포함된 질책성 감찰의 감찰관은 무려 한국 지부의 전 지사장 진시첸이었다.

예전에 진시첸을 몰아냈던 황꾸웨민은 지금 자신이 자행해 왔던 모든 과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처지에 놓였다.

진시첸이 사소한 것 하나조차 허투루 넘기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니 “에이전트 K”에 신경 쓸 여유가 없는 것이었다.

“영업 손실이 대단하군요.

도대체 무슨 영업을 어떻게 하신 건지?”

“언제부터 인가 한국의 배우들이나 가수들이 진룡을 통하지 않고 직접 삼화나 천루 쪽과 연계하더군요.

원래 이 지부가 세워진 이유가 뭔지는 알고 계시겠죠?”

“직원들로부터 올라온 투서가 한두 개가 아니군요.

지겨운 정치싸움, 파벌, 심지어 성희롱에 폭언. 아. 폭력도 있군요.

도대체 회사를 뭐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진시첸이 하나하나 지적할 때마다 황꾸웨민의 얼굴이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그도 이번 감찰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자신도 여기까지라는 사실을 말이다.

어떻게든 위기를 넘겨 질책성 감찰을 받는 것은 피하고 싶었는데 결국 그놈의 마약이 문제였다.

질책성 감찰에 왕 회장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았을 리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공사다망한 회장이 이 지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바로 그 사건 때문이었고.

이번에는 결국 자신이 물러날 수밖에 없겠지만 이대로 끝은 아니라고 다짐하던 황꾸웨민에게 진시첸의 비웃음 섞인 조롱이 이어졌다.

“아. 표정을 보니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다 알겠군요.

하지만 황 사장님.

본사에 끈이 많이 떨어지셨나 봐요?

아직 소식 못 들으셨나 본데 둘째 형이 완전히 아웃 됐거든요.

이제 회사에 당신의 자리는 남아 있지 않은 거 같은데 이거 어쩌죠?”

“네? 그게….”

“그러니까 당신은 해고라고요.

지금까지 수고했어요.

앞으로는 마주치지 맙시다.”

그렇다. 이 감찰이 단순한 괘씸죄나 영업 수익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

그건 진룡의 후계자 싸움이 첫째의 승리로 완전히 마무리되었다는 의미였다.

그러니 둘째의 수족인 황꾸웨민을 지사의 지부장으로 남겨둘 수는 없었다.

그리고 둘째가 패배한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한국 시장에 대한 관리 소홀이 중국 내 진룡의 입지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었다.

지난 3년간 한국에서 히트한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가 삼화나 천루를 통해 중국에 퍼져나갔다.

“용명” “미스 신데렐라” “로열” “귀의” “Mama” “Lord of Trick” 그리고 이번에 개봉한 “Shadow Awaken”

최근에 중국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성적을 기록한 영화나 드라마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민수와 윤 엔터 배우들이 있었는데 당연히 진룡은 어떠한 작품에도 발을 담그지 못하였다.

그나마 “쓰나미”가 체면치레를 했을 뿐이었으니까.

특히 이번에 갑자기 비어버린 스크린 때문에 천루에 고개를 숙인 것이 가장 치명적이었다.

그야말로 자존심에 상처를 제대로 입은 것.

일이 이렇게 되니 방탕하고 좀 제멋대로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철두철미한 첫째보다는 사람 쓰는 일에는 재능이 있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던 둘째의 지도력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된 것이다.

그 후로는 자연스럽게 후계자의 무게추가 첫째 쪽으로 급격하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황 사장에 감언이설에 한국 시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둘째가 자신의 선택에 대가를 치르게 된 셈이었고 한편으로는 윤 엔터가 던진 작은 눈 뭉치가 거대한 눈덩이가 되어 황 사장을 깔고 지나간 격이었다.

멍하니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사장실을 나서는 황꾸웨민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진시첸은 그의 한심한 작태에 그저 한숨만 나왔다.

“그래서 내가 그때 그랬잖아.

일 처리를 그따위로 하면 오래 못 간다고.

한심한 사람 같으니.”

중국에서 일하는 몇 년 동안 진시첸은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자리였다.

이제 큰형이 차기 회장으로 확정된 이상 중국 내에는 더 이상 자신이 있을 자리가 없었다.

그리고 진룡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회사가 모여있을 날도 이제 길지 않아 보였다.

자신의 아버지인 회장이 별세하게 되면 그 아래에서 고개 숙이고 있던 사장들이 진룡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 분명했으니까.

자신의 큰형은 이런 거대한 그룹을 책임질 역량이 부족했다.

호랑이 같은 이사들이 큰형의 뜻대로 회사가 굴러가게 지켜보지도 않을 것이고.

결국 조각조각 나누어질 진룡이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을 가치가 없었다.

그래서 진시첸은 아예 한국에 뿌리를 내릴 생각이었다.

중국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것보다 한국에서 중국 쪽으로 진출하는 것이 더 수월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이거. 해결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군.

똥을 참 많이도 싸놨어.

하.... 정말 무능해도 적당히 무능해야지.”

여러 가지 서류를 체크하던 진시첸에게 김익수가 또 다른 자료를 들고 들어왔다.

예전에 RD 엔터의 수장 자리를 잠시 맡았다가 진시첸이 중국으로 돌아가면서 자리를 잃은 김익수는 그 뒤로도 계속 진시첸을 보조했다.

그리고 이번에 한국에 들어올 때 동행한 것이었다.

“여기. 각 매니지먼트 회사와의 관계 도표입니다.

관계가 악화된 곳이 생각보다 여러 곳이더군요.

이러니 진룡보다 삼화나 천루를 더 선호할 수밖에요.”

익수가 내미는 자료를 면밀히 살펴보던 진시첸은 우선 각 회사와의 관계부터 다시 조율해야 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가장 윗자리에는 윤 엔터가 위치해 있었다.

유망한 젊은 배우를 무려 6명이나 보유하고 있는 연예기획사.

지금 한국 드라마나 영화는 윤 엔터를 완전히 배제하고는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중요한 건 윤 엔터부터겠지.

흠…. 좋아.

우선 다음에 만들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진소희 씨를 제안해 보세요.

그리고 윤설아 씨의 다음 앨범을 중국에서도 발매할 생각이 없는지 알아보시고요.

아. 저번에 발매한 앨범도 상당히 괜찮았죠?

윤설아는 중국에서도 충분히 먹힐 보이스에요. 외모는 더욱 그렇고요.

음반 시장은 아직 진룡이 강세니까 충분히 먹힐만한 제안일 겁니다.”

“진룡과 윤 엔터의 관계가 영 껄끄러운데 저희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아아. 제가 사장으로 취임했다고 전해 주시고 앞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제안하면 제 뜻을 알아들을 겁니다.

윤 대표가 그렇게 막힌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왜 굳이 진소희 씨인지?

차라리 윤태준이나 정민수를 섭외하는 것이 확실하지 않겠습니까?”

익수의 지적에 진시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회사의 이익을 생각하면 그쪽이 확실하긴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자신들의 입장보다 윤 엔터의 입장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그건 그렇겠죠.

하지만 제가 취임했다고 그쪽에서 바로 마음을 열어줄 이유는 없습니다.

지금 윤 엔터 배우 중에 당장 주연급으로 내밀 수 없는 유일한 카드가 진소희예요.

중국에서는 어느 정도 얼굴을 알리고 있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그 정도가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요지는 아직은 신뢰를 쌓아야 할 시기고 그렇기 때문에 상대에게 유리한 제안을 해줘야 한다는 거죠.

윤설아의 앨범과 진소희의 주연.

이 두 가지는 저희 진룡이 윤 엔터에게 건네주는 선물이 될 겁니다.

지금껏 진상부린 것에 대한 사과라고 생각해 두죠.”

“아….”

익수도 진시첸의 의도를 눈치챌 수 있었다.

천천히 신뢰부터 쌓아 나가겠다는 거였다.

주고받는 것이 확실한 진시첸으로서는 파격적인 대우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정도는 돼야 그쪽도 마음을 열 테니 불가피한 조처이긴 했다.

“아.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개봉할 영화에서 진소희의 인기가 얼마나 올라가냐에 따라 우리가 더 이익인 거래로 바뀔 수도 있으니까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어쨌든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는 겁니다.

진소희의 인기가 올라가든 아니든 말이죠.”

익수는 빛나는 진시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이제 한국 시장이 다시 안정을 찾을 거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진시첸은 황 사장 따위와는 질적으로 다른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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