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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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개봉 후 2주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동안 생각보다 많은 일이 있었다.
개봉 첫날 무려 180만의 관객을 끌어모은 “Shadow Awaken”은 첫 주에 700만의 관객을 모으는 데 성공했지만 그 폭풍 같은 질주는 조금 주춤해지는 듯 보였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찝찝한 엔딩에 대한 불만을 터트리면서 영화의 이미지가 조금씩 안 좋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시기에 맞춰 전국적으로 “Shadow returnS”의 티져 영상이 공개되자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되었다.
티져 영상에는 화려하게 부활한 쉐도우와 몽환적인 시아의 활약이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1편보다 더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으니 말이다.
시기에 맞춰 티져 영상을 공개하자는 홍보 전략은 멋지게 성공했다.
이 영화가 첫 편에 불과하고 바로 속편이 상영한다는 이야기를 접한 사람들이 다시 극장으로 모여들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두 번째 주에는 첫 주보다 더 많은 900만의 관객 수를 기록하였다.
개봉 후 첫 주가 최고 기록을 그리고 그 뒤로 점점 관객 수가 줄어든다는 당연한 법칙이 완전히 무의미해진 순간이었다.
2주에 1600만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면서 배우들도 덩달아 많이 바빠졌다.
아직 영화에 등장하지 않은 소희만이 꿀 같은 휴식을 취할 뿐이었고 민수와 태준 설아 그리고 은우까지 모든 배우를 찾는 곳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민수도 이번에는 빼지 않고 많은 곳에 얼굴을 내밀었다.
태준과 함께 수연이 진행하는 “헤드샷”에 나가 좋은 케미를 보이는 가 하면 설아와 함께 토크쇼에 출연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물론 은우와 몸 쓰는 “런런런”같은 곳에 나가 자신의 압도적인 피지컬을 자랑하기도 했고 말이다.
예능에 서툴고 기본적으로 예능적 순발력이 떨어지는 민수였지만 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자세와 진솔한 모습이 기부 천사의 좋은 이미지와 합쳐 지면서 많은 사람에게 찬사를 받을 수 있었다.
민수가 연예계에 진출한 후 예능에 다녀온 후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은 솔직히 이번이 처음이었다.
각오를 단단히 했던 민수는 자신에게 아무런 질타도 없자 오히려 의아할 지경이었다.
자신의 댓글을 확인한 민수는 자신의 이미지가 생각보다 더 많이 좋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명 까방권이라고 하던가?
무슨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는 비난하지 말자는 댓글에는 민수도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역시 연예인은 우선 이미지로 먹고 들어가야 하나 보다.
기부 천사 이미지가 이런 경우에 도움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민수는 조금 어이없긴 했지만 그래도 횡재한 기분이었다.
“Shadow Awaken”은 일본과 중국에서도 대단한 흥행을 기록하고 있었다.
애초에 아시아의 터줏대감 같은 흥행 수표인 민수와 할리우드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 스티븐 로우가 출연한 영화를 사람들이 찾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이미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이 영화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같은 등급으로 판단하고 상영관을 배정했으니 스크린 수도 아주 넉넉했다.
심지어 진룡이 “에이전트 K”를 위해 빼놓았던 스크린까지 차지하면서 지금까지 개봉했던 외화 중에 가장 많은 스크린을 차지한 영화가 되기도 했다.
“문제는 미국인데….
미국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여긴 또 집계가 늦어서.
현지 분위기라도 알면 대충 짐작이 될 텐데 스티븐 녀석도 연락이 없네.”
“그러게. 원래 에이전트 쪽에서 연락을 해 주지 않나?
많이 바쁜 건가?
아. 그러고 보니 그 녀석 원래 한국에도 오기로 했었잖아?
대체 왜 감감무소식이야?”
미국의 상황을 궁금해하던 민수와 태준은 스티븐 쪽과 연락이 전혀 되지 않자 결국 박스오피스 집계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무슨 큰일은 아닐 테고 바쁘다고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인터넷으로 여러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티븐의 근황을 찾아볼 순 있었으니 별로 걱정되지는 않았다.
“난 알고 있지. 이 녀석이 왜 한국이나 일본으로 찾아오지 않았는지.”
“오호. 맞아 그래도 마지막까지 연락했던 것이 정 배우였으니 뭔가 아는 게 있겠군.
아시안 걸을 외치면서 필사적으로 오려고 했던 스티븐이 갑자기 미국에 궁둥이를 붙이고 있는 이유를 말이야.”
태준이 호기심에 빛나는 눈으로 민수를 바라보자 민수는 스티븐과의 마지막 대화가 생각나는지 실소를 머금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왠지 스티븐스러운 태도 변화였기 때문에 그 당시에도 한참 웃었으니까.
“그 녀석.
지금 미국에서 아시안 걸을 찾고 말았어.
같은 에이전트에 있는 모델이라는데 조금 까무잡잡한 피부의 건강한 미인이더라고.
스티븐이 그녀한테 완전 꽂혔나 봐.
뭐 여자 때문에 오려고 했던 건데 좋은 여자를 발견했으니 굳이 이 먼 곳까지 오고 싶을 리가 있나.”
민수의 대답에 태준도 알만하다는 듯이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와. 진짜. 스티븐. 완전 행동파네.
그새 여자를 발견했다고?
가만있자. 이 녀석 설마 그 여자랑 잠적이라도 한 거 아니야?”
“에이 에이, 그럴 리가 있나.
인터넷 보니까 여기저기 많이 나오는 거 같은데 잠적이라니.”
민수가 어림없다는 표정으로 건성건성 대꾸하자 태준은 계속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만의 가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음… 잘 들어 정 배우.
내 생각에는 말이야.
이 녀석이 영화 홍보를 마치고 개봉한 후 갑자기 그녀랑 같이 사라진 거야.
그리고 에이전트는 둘을 찾아다니고 있는 거고.
그래서 지금 에이전트까지 연락이 안 되는 거야.
즉 에이전트도 지금 스티븐을 찾기에 바쁜 상황이란 말이지.”
짐짓 진지한 태준을 민수는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소리였으니까.
“그럴 리가. 여기 오늘 올라온 사진도 있는데 잠적이라니.”
“그 사진 나도 좀 보자.
음….. 어! 이거. 이 여자 아냐?”
“…..응?”
민수가 인터넷에서 오늘 올라온 사진을 뒤적이는데 태준이 다가오더니 한 사진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 사진에는 스티븐과 한 여성이 다정스럽게 걷고 있는 모습이 정확하게 찍혀 있었다.
누가 봐도 민수가 아까 말했던 그 여성 같았다.
“맞지? 이 여성분. 스티븐이 전에 말했던 그분인 거 같은데.
자. 내 말대로군.
스티븐 녀석 지금 여자랑 같이 알콩달콩 노느라 연락이 안 되는 거야.
이런 괘씸한…..”
“…..설마. 진짜라고?”
민수는 당황하기도 했지만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태준의 말대로라면 지금 에이전트랑도 연락이 안 되는 걸 테니 말이다.
“아니. 아니지. 이거 큰일이잖아?
안 되겠어. 정 배우. 어서 미국으로 가서 스티븐을 잡아 오자.
만약 잠적설이라도 떠봐. 엄청난 스캔들이라고!
이게 터지면 영화에 얼마나 피해가 오겠어?
이거 진짜 서둘러야겠네. 뭐해? 정 배우. 빨리 준비해야지.”
“뭐? 지금 미국에 찾아가자고?”
점입가경인 태준의 태도에 민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미국으로 가 스티븐을 잡아 오자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어서 서둘러. 정 배우.
한시가 급하잖아?”
요란스럽게 빨리 준비하라고 보채는 태준의 태도는 민수에게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민수가 당황해서 휘말리고 있는 그때 휴게실로 설아가 찾아왔다.
민수는 난감해하던 중 설아가 찾아오자 반가운 마음에 급하게 설아를 불렀다.
그리고 민수가 설아를 바라보느라 발견하지 못했지만 설아의 등장과 함께 태준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고 있었다.
“어. 설아야. 오늘 촬영이라더니 웬일이야?”
“잠시 미뤄져서요. 좀 쉬다 가려고요.
오빠 어디 가요? 밖에서 보니 뭔가 서두르시던데요?”
“아아. 별건 아니고. 스티븐이 연인이랑 잠적한 모양이야.
그래서 태준이랑 같이 미국으로 스티븐을 찾아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어.”
민수의 말에 설아는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태준을 노려봤다.
태준은 슬쩍 설아의 눈길을 피하고 있었고 말이다.
“아. 아깝네. 여기서 설아가 나타날 게 또 뭐람. 에잉.”
태준이 아깝다는 듯 중얼거리자 민수는 일이 뭔가 이상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설아의 설명이 이어지자 내막을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오빠. 스티븐 씨 지금 휴가 갔잖아요.
영화 개봉하면 휴가 갈 거라고 전에 말했는데요.
연락 못 받으셨어요?
그리고 잠적했는데 왜 미국에 따라가요? 가끔 보면 이 오빠도 참 엉뚱하다니까.”
어이없어하던 설아는 민수가 인터넷에 띄워놓은 기사를 살펴보더니 웃으며 설명을 계속했다.
“저 기사 잘 보세요.
스티븐 로우가 연인과 함께 플로리다 해변을 산책하고 있다.
딱 봐도 휴가 간 거네요.
기사 끝까지 안 읽어 보셨군요.”
안 읽어 봤다.
읽으려는 순간 옆에서 태준이 설레발을 치며 정신을 산만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민수는 설아의 말을 듣고서야 사태를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아마 영화 홍보 활동을 끝으로 휴가를 떠나는 스티븐이 윤 엔터 배우들에게도 휴가 사실을 미리 이야기했나 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신에게는 연락이 오지 않았고 태준은 그것을 빌미로 자신을 미국으로 데려가려고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일이 흘러가는 분위기를 봤을 때 태준이 스티븐과 공모하고 자신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자신이 미국에서 스티븐을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며 낄낄거리려는 것이 아닐까?
민수는 허탈함에 한숨부터 나왔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태준의 말이 억지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신이 자신도 모르게 말려들었던 건 태준의 분위기와 태도, 그리고 물 흐르는 듯한 대사가 혼연일체를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태준이 보여준 연기 중에도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혼이 실린 연기였다.
그야말로 놀라운 재능 낭비의 현장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효과는 탁월해서 자칫 잘못했으면 분위기에 휩쓸려 후회할 행동을 할 뻔했으니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윤 배우. 우리 진지한 이야기가 필요한 거 같은데.
대체 무슨 생각이야? 그리고 미국에 가면 나 혼자 가나? 너도 가는 거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럴 리가 있나. 나도 몰랐지.
아 이 녀석 휴가를 가면 나한테도 말해줘야 할 거 아냐?
아주 식겁했네.”
하지만 태준은 뻔뻔했다.
민수는 전혀 모르는 척하는 태준을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야. 다 들었거든. 이제 와서 그러지 말고 남자답게 인정해라.
미국에서 어쩔 셈이었어?
너 설마…. 스티븐하고 모의한 건 아니겠지?”
“하하. 아 이 녀석 눈치도 빨라졌네.
에이. 뭐 이 기회에 미국 공기도 한번 마셔보면 좋지 뭘 그래?
스티븐이 있는 플로리다로 찾아가려고 한 거야.
어차피 이제 당분간은 스케줄이 없잖아. 쉬는 셈 치고 가는 거지.”
태준이 능글맞게 이야기했지만 민수는 전혀 믿지 않았다.
하지만 증거가 없었으니 더는 추궁할 수 없었다.
민수가 대충 넘어가려고 하자 태준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실 태준은 민수를 미국에 데려가서 여기저기 끌고 다닐 생각이었다.
이미 계획도 다 세웠는데 오늘 촬영이 잡혀있던 설아가 난데없이 찾아오는 바람에 산통을 다 깼다.
인형 옷에 대한 복수가 눈앞이었는데 아까운 일이었다.
민수는 그냥 넘어가긴 했지만 태준이 단순히 쉬러 자신을 끌고 가려고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면 태준이 아니었으니까.
무슨 계략을 꾸민 것인가 본데 너무 생각 없이 있다가 은근슬쩍 당할 뻔했다.
스티븐과 그 에이전트까지 한통속이 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아마 스티븐이 재미있겠다고 하면서 에이전트에게 부탁한 것이겠지.
정말 방심하지 못한 녀석들이었다.
“뭐. 그래. 그건 그렇다고 치자.
미국 분위기는 뭐래? 적어도 연락은 하고 있을 거 아냐?”
“응. 좋지. 좋으니까 스티븐이 휴가를 떠날 수 있던 거 아니겠어?
어쩌면 Joe보다 좋을 수도 있겠다고 하던데?
뭐 아직 정확한 통계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뭐? 진짜? 그건 대단한데?
역시 주연 배우를 등에 업으니까 좀 다르네.”
태준의 말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미국 쪽 분위기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동양에서 만들었지만, 할리우드에서 만든 영화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 CG에 스티븐이 주연인 영화였으니 어느 정도 흥행을 기대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더 괜찮은 모양이었다.
“야. 그래도 영화 상황에 대한 설명은 해주고 장난을 걸어야지.
윤 배우. 그래서야 쓰겠어?”
민수가 타박을 주었지만 태준도 할 말은 있었다.
미국에 가면 더 직접적으로 영화의 흥행상황을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차피 미국에 가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걸 뭐 하러 미리 이야기하겠어?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직접 눈으로 보고 분위기를 확인하는 게 진짜 확인하는 거지.
내가 괜히 미국에 가자고 했을까.”
민수는 태준의 대꾸에 말로는 못 당하겠다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오. 이 기사 좀 보세요.”
그러는 사이에 민수 옆에 착 달라붙어 앉은 설아는 인터넷을 뒤지다가 한 기사를 발견하고는 민수를 재촉하고 있었다.
설아가 즐겁게 웃으며 민수와 태준을 부르게 만든 기사.
그것은 바로 “에이전트 K”에 대한 기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