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305화 (305/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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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리는 있는데 한번 두고 보자고.

    만약 그 영화가 생각 보다 잘되면 우리 윤 배우가 한번 쏘나?”

    태준의 말을 듣고 한구석에 쌓여있던 미몽을 깨끗이 정리할 수 있었던 민수가 홀가분한 마음에 장난스럽게 이야기하자 태준은 웃으면서 시원스럽게 받아쳤다.

    아무래도 자신의 말에 어느 정도 확신이 있어 보였다.

    “좋아. 만약 그 영화가 500만을 넘으면 내가 크게 쏜다.

    저번에 괌에 갔으니 이번에는 하와이 어때?”

    손익 분기점에 한참 못 미치는 500만을 부르면서 통 크게 하와이를 쏘겠다는 태준의 말에 민수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그 정도로 확신이 있단 말인가?

    “대신 500만 안 되면 우리 정 배우가 쏘는 거로.

    어때? 쫄리시나?

    옛말에 쫄리면 뒈지라는 말이 있지. 후후. 어때?”

    태준이 거만하게 이야기하자 민수도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수는 사나이인 자신이 이 정도에 물러설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진룡의 영화가 그 정도로 망해 손익 분기점도 못 넘긴다면 충분히 쏠 마음이 있었다.

    “Ok, 좋아. 까짓것 하와이 한번 가자.”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내기의 승자가 누구일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수연과 설아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유치한 남자들의 자존심 싸움이 한심해서였다.

    하지만 하와이에서 꿀 같은 휴가를 보내는 건 나쁘지 않아 보였다.

    특히 저번에 괌에 따라가지 못한 수연에게는 더욱더 그러했다.

    그 뒤로도 오랜 시간 대화가 이어졌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고 싶다든지 아니면 연기할 때 애로사항이라든지.

    심지어 이번 작품에서 어떤 걸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모두 배우들이었기에 서로와 통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음. 이 영화는 무조건 잘 될 거예요.

    확인하셨다시피 영상은 저희가 상상한 것보다 더 화려하고 실감 났고요.

    크리스가 총괄한 영화 음악도 정말 뛰어났죠.

    설아의 OST도 물론 좋았고요.

    심지어 사람들의 관심도 전부 저희한테 쏠려 있잖아요?

    아아. 배우들의 연기는 당연히 최고였죠.

    그런데 이 영화가 안 될 리가 있겠어요?

    그러니 안심하고 개봉을 기다리죠.”

    민수의 이 말을 끝으로 배우들은 모두 자신의 보금자리로 해산했다.

    영화의 개봉이 자신들에게 큰 영광으로 다가오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드디어 영화 개봉일이 되었다.

    영화 개봉 일정은 “Shadow Awaken”이 오늘 개봉하고 다음 날 “에이전트 K”가 개봉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있었다.

    그러니 오늘내일 개봉 첫날 관객 수로 희비가 많이 교차하게 될 것이다.

    먼저 가졌던 VIP 시사회에서는 특별한 일이 있지는 않았다.

    있다면 민수에게 기부에 관하여 묻는 수많은 질문들과 “에이전트 K”의 흥행 여부를 묻는 조금 무례한 질문이 있었을 뿐이었다.

    남의 시사회에 찾아와서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보니 당연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원래 그런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 특별한 일이 있었다면 마지막에 있었던 관객 수 공약 정도였을까?

    “저번에는 2000만을 넘어서 비키니를 입고 팬 사인회를 하셔서 화제였는데요.

    이번에는 특별한 공약 없으신가요?”

    배우들은 마지막 질문을 들으며 저번에 있었던 팬 사인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태준이 말을 너무 막 해서 결국 그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으니까.

    특히 국내 관객 2000만을 넘지도 못했는데 비키니를 입은 설아는 자기도 모르게 살짝 이를 갈고 있었다.

    “아. 그런 일이 있었죠.

    음… 만약 이번에 저희 영화가 국내 관객 2000만을 넘으면 저희가 영화에서 보여준 모습으로 분장하고 팬 사인회를 개최하겠습니다.

    아, 물론 스티븐은 미국에 있으니 좀 힘들고요.

    그건 저희 윤 엔터 배우들은 그렇게 하겠습니다.”

    민수가 대표로 대답했다.

    이건 어제 모임에서 이미 약속된 이야기라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일부러 정확하게 국내 관객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으니 별로 억울할 일도 없을 테고.

    “그럼 윤태준 씨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그냥 보안관 차림인 건가요?”

    하지만 기자는 쉽게 만족하지 못했는지 좀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무언가가 떠오른 민수가 태준이 대답하기도 전에 재빠르게 대답했다.

    “아, 그건 안될 말이죠.

    음… 우리 윤태준 씨는 그 혹시 아시나 모르겠는데 저희가 올린 메이킹 필름에 나왔던 인형 옷이 있거든요.

    그걸 입고 나오실 겁니다.

    그게 윤태준 씨 최종 모습이니까요.”

    그 우스꽝스러운 옷을 다시 입고 사인회를 하라는 민수에 말에 태준이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기자가 기분 좋게 웃으며 상황을 정리해 버렸다.

    “오! 그거 좋네요. 알겠습니다.

    “Shadow Awaken”이 좋은 성적을 기록해서 배우님들이 팬 사인회를 하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기자들이 해산해 버리자 태준은 반론의 기회를 완전히 잃고 말았다.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 하고 그 옷을 입어야 할 상황이었다.

    당황한 태준이 민수에게 불평했지만 그게 먹혀들 리가.

    “와. 이게 이렇게 되나?

    정 배우 진짜. 너… 나한테 상의도 없이.”

    “에이. 윤 배우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래.”

    “맞아요. 저번에 비키니를 지른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아직도 그 영상이 박제되어서 돌아다니는 거 아세요?

    하여간 바보 오라버니가 바보 같은 짓은 다 하고 다닌다니까.”

    태준에게 능글맞게 대답한 민수와 예전의 일로 태준에게 불만이 쌓였던 설아의 강한 질타가 이어졌으니 말이다.

    태준은 왠지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이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메이킹 필름에 이어 팬 사인회까지 흑역사가 늘어날 거 같은 불안감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영화가 안되길 기도할 수도 없고 그 인형 옷은 죽어도 입기 싫고.

    이런 아이러니에 태준은 과거 자신이 벌였던 만행을 조금 반성하게 되었다.

    분명 저번에 여배우들의 마음도 이러했을 게 뻔했으니까.

    “에이. 그래도 2000만이 쉽게 올라가겠어?

    호불호가 심한 히어로 영화니까 아마 그건 힘들 거야.

    하여간 진짜 능글맞아졌다니까.

    저 녀석이 대체 왜 저렇게 변했지?”

    민수가 변한 것에 지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태준은 자신의 과거는 생각하지도 않고 한탄만 늘어놓고 있었다.

    태준의 고뇌(?)와는 상관없이 영화에 대한 관심은 아주 뜨거웠다.

    아니 너무 뜨거워 활활 타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우리라.

    -솔직히 진짜 한국 영화 같지가 않았어.

    한국영화 같지 않아서 더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내가 좀 부끄럽긴 하지만.

    -오프닝부터 개압도.

    할리우드 스케일이라고 자랑할 때는 또 설레발친다고 생각했는데 와. 이건 진짜.

    -CG 수준이 탈 한국적이었지.

    그 제작비가 다 CG에 들어간 거 인정한다.

    -와 음악과 음향도 진짜.

    쉐도우가 습격할 때마다 심장이 뜨끔뜨끔하더라.

    CG와 놀랍도록 깔끔한 화면 구성과 음악까지.

    영화의 전반적인 스케일과 디테일에 감탄하는 관객들이 있었는가 하면.

    -윤설아 미쳤다.

    섹시 오진다 진짜. 와 이걸 뭐라고 설명하지? 우선 그냥 가서 한번 봐라.

    벗지 않고 섹시하단 게 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을 거다.

    -스티븐이랑 민수형이랑 조직원들이랑 싸우는데 이건 무쌍?

    진짜 액션 포텐 터졌어.

    -지은우도 액션 잘하네.

    반전 터프가이? 맨날 화사한 모습만 보다가 거친 모습 보니까 확실히 사람이 달라 보여.

    -악. 윤태준. 표정 진짜.

    쟤가 원래 저런 얘였어? 아우. 한대 가서 때려주고 싶다.

    이렇게 좋은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에 대한 찬사도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물론 좋은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배우들은 일정을 마치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다가 한 평론가의 평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형 히어로 영화에 너무 서양색만 짙은 것이 실망스러웠다.

    너무 흥행에만 몰입해 민족적인 주체성을 잃어가는 건 아닌지. ?영화 평론가 최철준-]

    평론의 주요 내용은 한국에서 만든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배경부터 등장인물까지 너무 서양색으로만 물들어 있다는 것이 보기 안 좋았다는 거였다.

    “이건 무슨 신박한 개소리야?

    누가 한국형 히어로 물이랬나?

    그리고 한국형 히어로 물이면 무슨 영웅이 나와야 하는 건데?

    무슨 갓 쓴 홍길동이나 전우치를 기대하고 있던 건 아니겠지?”

    “상업 영화에서 흥행을 신경 쓰는 게 당연한 거지.

    대체 이 사람은 뭘 더 바라는 거야?”

    수연과 태준이 투덜거리고 있자 설아가 슬쩍 다가와 무슨 글을 읽고 있길래 저렇게 반응이 격한가를 살펴보다가 글의 실체를 확인하고는 피식 웃으며 수연을 달랬다.

    “언니. 그런 거 보지 말아요. 눈 버리니까.

    그 사람 원래 시종일관 개소리만 하는 사람이거든요.

    남의 영화 까는 재미에 사는 사람인데 좋은 말을 했을 리가 있나요?

    까도 좀 제대로 알고 깔 것이지. 영화는 봤나 몰라.

    여기 보면 제대로 비판한 사람들도 있으니 이걸 한번 보세요.”

    설아는 아무래도 저 평론가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었나 보다.

    수연은 설아의 말에 두말하지 않고 그녀가 가리킨 평론을 읽어 보았다.

    [영화의 몰입도는 좋았으나 너무 불친절했다.

    게다가 예상치 못하다 못해 충격적인 결말까지. ?영화 평론가 주시영-]

    이 평론의 내용은 영화 자체는 재미있었지만 생소한 배경에 대한 설명이 너무 짧아서 관객들이 이해하기 힘들었을 거라는 이야기와 중간에 뚝 끊은 것 같은 엔딩에 대한 우려가 섞여 있었다.

    “확실히 그건 그렇지.

    우리 영화가 코믹스나 소설로 어느 정도 알려진 이야기도 아니고 전혀 생소한 이야기인데 영화로 만들어 버린 거니까.

    그렇다고 배경만 몇 분씩 설명하기도 어렵고.”

    민수도 이 부분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베이스가 없는 히어로 영화가 성공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확실히 엔딩에 대한 이야기가 많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지.

    그런데 왜 진짜 궁금해해야 할 거 안 궁금해하지?

    아. 여기 있다. 오, 이 사람 좀 루팡인데.”

    수연이 수많은 감상평 가운데 하나를 가리켰다.

    -야. 생각 좀 하고 살아라. 금방 2편 나올 테니까.

    너희들이 지금 뭐에 홀려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영화에 진소희는 눈곱만큼도 안 나왔거든.

    그리고 마지막 자막에도 Coming Soon이 올라왔지.

    그야말로 바로 2편이 나온다는 소리야.

    그리고 그 아래에는 수많은 댓글들이 갑론을박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사실 영화에 대한 악평의 반 이상은 엔딩에 관한 이야기였다.

    갑작스럽게 연구소가 폭발하면서 영화가 끝나버렸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저런 감상평이 올라왔으니 당연히 관심이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바로 2편이 올라온다고 홍보하기 시작하면 혹평도 많이 줄어들겠네.

    그럼 특별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없는 건가?”

    영화가 두 편으로 구성되어 연속적으로 개봉한다는 이야기는 윤 엔터와 상영관 측만 알고 있는 극비의 이야기였다.

    이걸 나중에 터트려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보겠다는 거였는데 기자들에게 알리지 않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좀 했을 것이다.

    시사회 때 영화에 대해 나온 질문들도 이게 가장 많았고.

    배우들도 근질거리는 입을 단속하느라 신경을 많이 썼다.

    하지만 홍보 포스터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는 소희에 대하여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한 건 좀 의외였다.

    심지어 홍보 활동도 같이 했는데 말이다.

    기자들이나 관객들이 아마 영화의 다른 부분에 압도되어 그런 의문을 잠시 잊은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당장이야 그렇지만 며칠만 지나도, 아니 어쩌면 당장 내일부터 소희에 대한 논란이 시작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미 눈치 채고 감상평을 달아 놓은 관객도 있으니 금방일 것이다.

    “그래서 첫날 관객 수는 몇 명이야? 이게 가장 중요하잖아?

    극장에 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니. 기대할 만은 하지 않을까?”

    “억. 와. 대박이다.”

    “몇 명인데 그래?

    180만. 무려 180만 명이야.

    와, 이거 지금까지 기록한 관객 수 중 가장 많은 거 아냐?

    이거 운 좋으면 개봉 첫 주에 천만 관객을 돌파할 수도 있겠는데?”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하는 태준의 말에 배우들도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물론 민수도 안 그런 척 무게 잡고 있었지만, 남몰래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말이다.

    아무리 첫날이 토요일이었다고 해도 180만 명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관객 수였다.

    그리고 2편이 바로 나온다는 홍보가 떠돌기 시작하면 엔딩을 전해 듣고 영화를 안 보겠다고 생각하던 관객들도 극장을 찾게 될 것이다.

    “캬~ 기가 막히네. 진짜 한번 보자고 얼마나 찍을지.”

    “그래. 우리 윤 배우. 내가 제작진들한테 인형 옷 받아 놓을게. 사인회 준비하자.”

    태준은 초를 치는 민수의 말에 바로 인상부터 찌푸렸다.

    물론 다른 배우들은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신나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대로라면 정말 민수의 말대로 사인회를 준비해야 할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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