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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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흥행은 흥행이고 우리에게 중요한 건 당장 홍보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거니까.”
“그렇지. 아마 예능도 몇 군데는 나가줘야겠고.
인터뷰에 팬 사인회에 어쨌든 당분간 바쁘긴 하겠어.”
“예능이라…. 수연이가 출연하는 그 끔찍한 곳에 또 나가야 하는 건 아니겠지?”
예전에 수연이 고정으로 출연하는 “헤드 샷”에 나가서 완전히 털리고 돌아온 태준은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지 희게 질린 얼굴로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진짜 나가고 싶지 않은 가보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이 지금 대세 예능으로 떠오른 상황이니 그곳을 피해 갈 수는 없으리라.
당연히 회사에서도 이미 그곳을 제1순위 출연 프로그램으로 결정해 놓은 지 오래였다.
“여기 스케줄 표에 보면 “헤드 샷”도 잡혀있네.
하긴 요즘 여길 피하는 게 말이 안 되긴 하니까.”
“끙. 진짜…..
수연이가 영화 출연 못 한 한을 여기서 푸는 게 아닌지 몰라.”
“하하하. 하긴 요즘 수연 선배 보면 딱 먹이를 눈앞에 둔 하이에나 같은 눈빛이라 어쩌면 그럴지도?”
영화도 못 들어가고 여행도 같이 못 간 수연은 요즘 특히 전투 모드(?)에 들어간 듯 난폭한 성향을 보였다.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태준이랑 같이 짧게 여행을 다녀왔음에도 저러고 있는 걸 보면 태준이 수연을 달래는 데에는 실패한 모양이었다.
민수는 그것도 한철이라는 생각에 그냥 웃으며 지켜보는 중이었다.
어쩌면 예능에서 회사 배우들을 잔뜩 물어뜯은 후에는 배부른 맹수처럼 다시 예전의 수연으로 돌아오게 되지 않을까?
“일본이라. 일본은 차라리 네가 가는 게 낫지 않겠어?”
“아. 가긴 갈 거야.
이번에는 중국에 먼저 가봐야 할 거 같아서 순서를 조정했어.
그래서 일부러 소희 씨랑 같이 중국으로 보내 달라고 요청해 놓았지.
형우랑 약속한 것도 있고.”
이번 해외 홍보 활동은 태준이 일본을 위주로, 민수와 소희가 중국을 위주로 활동하는 거로 결정됐다.
물론 민수도 일본에 들르긴 하겠지만 말이다.
국내에서는 우선 은우와 설아가 활동하다가 나중에 모든 배우가 합류해 최종적으로 영화 개봉 전까지 홍보하게 될 것이다.
“형우 씨라. 이상한데 이거?
너 형우 씨랑 무슨 이상한 딜을 한 건 아니겠지?
뭔가 안 좋은 촉이….”
“원… 헛소리는….”
민수는 뜨끔한 기분으로 태준의 예리한 직감을 헛소리로 치부하고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역시 태준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런 쪽으로는 야수 이상의 감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태준은 민수가 웃으면서 바람같이 사라지자 의아한 느낌을 받긴 했지만 뭐 자기들끼리 무슨 약속이 있는가 보다 싶어 무던하게 넘어갔다.
앞으로 계속될 폭풍 스케줄에 치를 떨면서 그렇게 말이다.
배우들의 홍보 활동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배우들의 행보는 영화에 대한 관심을 한 단계 올려줬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특히 히어로 물이라고 알려진 이 영화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가 가장 큰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주연 배우와 출연 배우 외에는 아직 알려진 사실이 별로 없었으니까.
그런 시기에 윤 엔터 공식 홈페이지와 윤태준 게시판에 재미있는 영상과 사진이 올라왔다.
바로 태준이 녹색 삼두룡 인형 옷을 입고 뒤뚱거리며 뛰어가는 영상과 사진 그리고 공중에 매달려 허덕이는 영상이었다.
-ㅋㅋㅋ 미치겠다 진짜.
-아니 이게 뭐야?
윤태준 왜 이러고 있어?
이번 영화 무슨 특촬물이야?
-무식한 놈. 저게 CG 처리용 특수 의상이잖아.
그런데 저런 이상한 디자인일 필요는 없을 텐데.
그건 좀 이상하긴 하네.
-무슨 장면인데 저렇게 촬영했는지 궁금하긴 하다.
나중에 꼭 확인해 봐야겠어.
-와 근데 매달려 있는 모습이 왠지 좀 짠하지 않냐?
진짜 고생 많이 했네.
-근데 저거 은근히 귀여운데?
-ㅋㅋ 미친. 취향하고는 대가리가 세 개나 달려있는 인형 옷이 귀엽다고?
눈은 제대로 달려 계시는지?
-ㅅㅂ. 개취 가지고 뭐라고 하기 있냐?
-히어로 물이라니까 하는 말인데 태준이가 무슨 괴물 같은 거로 나오는 게 아닐까?
아니면 저런 이상한 옷을 입고 공중에서 고생할 일은 없어 보이는데.
-궁금하네. 빨리 제대로 된 홍보 영상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는데.
홍보 포스터 정도로는 이해가 잘 안 가서.
올라온 영상은 제법 큰 반향을 일으켰다.
대부분 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 더 증폭된 모양이었으니 효과는 충분히 괜찮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태준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공개되면서 창피함은 태준의 몫이었지만 말이다.
다만 그 우스운 모습조차 태준의 팬들은 열렬하게 반기고 있었다.
특히 태준의 팬클럽에서는 진짜 귀엽다고 난리였으니까.
그리고 이 영상과 사진을 일본에서 확인한 태준은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허…. 이 영상이 어떻게….. 누가 메이킹 필름이라도 제작한 건가?
그런 느낌은 없었는데.
형, 이거 대체 누가 찍은 거야?”
“그거? 형우 씨가 찍었다는데.
핸드폰으로 찍은 영상으로 저 정도 퀄리티를 뽑을 수 있는 건 형우 씨뿐이지 않나?”
태준은 매니저가 형우라고 대답하자 딱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솔직히 민수가 자신을 피하는 것처럼 중국에 들렀다가 자신과 교차해서 일본으로 온다는 게 말이 안 됐다.
당연히 자신이랑 같이 일본에 있다가 중국으로 가는 게 순리에 맞지 않겠는가?
이건 정말 자신을 작정하고 피하는 거였다.
찔리는 게 있으니 피하는 거겠지.
솔직히 형우에게 저런 영상을 찍어 달라고 사주할 사람은 민수뿐이었다.
형우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자신에게 저런 흑역사를 안겨 주겠는가?
“와…. 이건 무슨 강제 흑역사냐?
정민수 진짜 이제 만만하게 볼 수 없겠는데.
이렇게 되면 딱히 뭐라고 하기도 힘들잖아?”
윤 엔터이 메이킹 필름 공개가 저 영상으로 끝일 리가 없고 앞으로도 계속 다른 배우들의 촬영 영상도 올라갈 것이 분명했다.
영화 촬영 끝날 때까지 제작 소식을 전혀 전하지 않았으니 점점 정보를 풀면서 관심을 끄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으니까.
그리고 민수가 한 일이라곤 아마 저 영상을 슬쩍 홍보팀에 찔러 넣은 것뿐일 것이다.
우연히 괜찮은 영상을 건졌는데 혹시 쓸만하면 쓰시라고 하면서 말이다.
홍보팀이 저런 인상적인 영상을 그냥 넘길 리는 없었으니 당연히 올라올 거로 생각하면서 그렇게 민수는 중국으로 도망간 것이다.
그것도 공범자(?) 형우랑 같이.
“와… 미치겠네.
이걸 어떻게 갚아 주지?
그러고 보니 저거 탄 것도 민수가 꼬드긴 거였잖아?
하하. 처음부터 노린 거야?”
“무슨 혼잣말을 그렇게 거창하게 해?
너무 신경 쓰지 마. 사람들 반응도 나쁘지 않아.
넌 요즘 친근한 이미지가 강해서 저 정도는 차라리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지.
그래서 홍보팀에서 일부러 제일 먼저 올린 거잖아.”
그렇다.
매니저의 말대로 이건 결국 태준에게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자신도 딱히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거였고.
당장 옆에 있다며 이단 옆차기(?)라도 한대 먹이겠다만 중국에 있는 민수를 언제 만나겠는가?
그때가 되면 이미 다른 영상 때문에 이 일은 완전히 묻힌 후일 텐데.
태준은 자신의 새로운 흑역사가 되어버린 인형 옷을 입은 사진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리고 전의를 다지며 중얼거렸다.
“좋아. 정 배우. 한번 해보자고. 후후후.”
태준은 자신이 민수에게 카메오를 맡겼던 일이 이것보다 더 혹독한 일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사실 태준이 민수에게 했던 행동도 이번 일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그건 바로 서로가 윈 윈하는 상황에서 한 명만 일방적으로 더 힘들었다는 거였다.
그때는 민수가 이번에는 태준이 말이다.
어쨌든 태준의 복수가 생각대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더 두고 볼 일이었다.
그리고 태준의 생각대로 그 뒤로도 계속 촬영장에서 찍은 영상들이 주기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다른 배우들의 촬영 영상은 생각보다 멋있는 영상이었다는 것뿐이었다.
사람들은 민수와 스티븐의 격투 장면이나 요염하게 차려입은 설아가 노래 부르는 장면.
은우의 화려한 액션 연기.
그리고 차파오를 입은 소희의 모습에 환호하며 점점 더 영화를 기대하게 되었다.
왠지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 튀어나올 거 같은 그런 기대감이었다.
얼마 후, 해외 홍보 일정을 모두 마치고 다시 배우들이 한국에 모였다.
이제 개봉일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아 한국에서의 홍보에 총력을 기울일 시기였다.
일본과 중국에서 여러 가지 스케줄을 소화하며 많이 지쳤지만, 한국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오늘은 드디어 영화의 최종 완성본이 나오는 날이었다.
다른 영화 같았으면 대충 어떤 식으로 나올지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겠지만, 영화가 영화다 보니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윤 대표를 비롯한 모든 배우들까지 한자리에 모인 것이었다.
“와. 정 배우. 다시 봤어.
이 정도의 모략이라니.
내가 진짜 범을 키운 거 같아.”
“에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럴 리가 있나.”
민수는 태준의 말에도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했다.
여기서 인정하는 건 그야말로 하수의 행동이었으니 말이다.
“오. 드디어 나온 건가?
기대되는데. 후후.”
최근 예능에서 은우를 타깃으로 잡고 잔뜩 물어뜯은 수연은 이제 배부른 고양이처럼 마음이 푸근해져 있었다.
태준과 민수가 해외로 도피하면서 은근히 은우를 먼저 수연의 먹이로 던진 것이었다.
물론 이제 곧 민수와 태준도 수연의 예능에 나가긴 하겠지만 첫 타가 아닌 만큼 은우만큼 물어 뜯기지는 않으리라.
이렇게 보면 민수와 태준은 참 장단이 잘 맞는 친구가 아닐 수 없었다.
아직 적응하지 못한 채 당한 은우만 불쌍하게 되었다.
배우들이 모두 모이자 바로 상영이 시작되었다.
세상에 갑작스럽게 괴물들이 나타나 문명이 쇠퇴하고 그런 인류를 이종족이 도와 재건했으며 이종족이 떠나면서 이종족 혼혈이 지구상에 남아 인류의 친구가 되어 살아가고 있었다는 프롤로그부터, 시작 부분은 제법 많은 설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전혀 생소한 배경을 가진 영화이다 보니 배경을 이해시키는 것에도 주의를 기울인 모양이었다.
“와. 저게 저렇게 나오네.
원래 그 웃긴 인형 옷들은 저 장면 때문에 마련한 거였다면서?”
태준이 가리킨 장면은 초반 오프닝 장면이었는데 수많은 괴물들이 쏟아져 나와 인간들, 이종족들과 대규모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었다.
이 압도적인 장면에는 이족 보행 하는 수많은 괴물들이 있었고 그 다양한 괴물들은 스턴트맨들이 인형 옷을 입고 연기한 거였다.
최종 전투 씬과 같은 날 찍은 이 장면을 민수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수많은 인형 옷들이 나오는 걸 보고 민수도 엄청 황당해했었으니까.
“그런데 시작부터 힘 엄청 줬네.
저거 웬만한 전투 씬보다 돈 많이 들어갔겠는데.”
그렇게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배우들은 자신들이 생각한 것보다 더 깔끔하고 화려하게 영화가 나왔다는 사실에 만족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2부가 진행되는 순간.
“어! 아X다!
와… 저게 저기에….”
수연의 감탄을 터트리자 시선이 순간적으로 수연에게 쏠려 들어갔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자 수연도 멋쩍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소희가 연기하는 시아가 자신이 주로 하던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와 비슷하다는 거였다.
그리고 이어서 바로 수연이 인터넷에서 찾아 그 캐릭터를 모두에게 보여줬는데 사람에 따라서는 시아와 비슷하다고 느끼기에 충분해 보였다.
“이거… 구미호가 원래 다 이런 이미지잖아?
그런데 이걸 같다고 하긴 어렵지 않겠어?”
“하지만 느낌이 비슷한 건 사실이야.
작은 문제라도 미리 조심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긴. 만에 하나라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니까.”
영화의 영상과 인터넷상의 이미지를 한참 동안 살펴보던 찬진은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스튜디오에 연락했다.
아마 사실 확인부터 하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잠시 후 돌아온 찬진은 크게 한숨을 쉬며 이야기했다.
그리고 설명을 들어보니 특별히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시아를 구상했던 직원이 은연중에 가지고 있던 구미호의 이미지가 게임상의 캐릭터와 비슷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알게 된 이상 이 일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우선 그쪽 게임사에 연락해 볼 생각이야.
상대의 생각도 들어봐야 하고, 캐릭터 초상권으로 돈이라도 요구한다면 뭐, 줘야지 어쩌겠어?”
찬진의 말에 배우들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작은 영화도 아니고 이 정도 영화에서 그런 문제로 잡음을 낼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만약에 수연이 오늘 그 점을 지적하지 않았으면 더 촉박한 시간에 문제점을 발견했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아예 모르고 넘어갔다가 나중에 이상한 구설에 올랐을 수도 있었고.
차라리 지금 발견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