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98화 (298/325)

# 298

6

“역시 가장 중요한 건 개봉 가능 일이겠지?

음… 지금 추세대로라면 11월 중순에는 충분히 가능할 거야.

시기를 맞추려고 촬영 때부터 바쁘게 움직인 거니까.”

“그건 참 다행이군그래.

급하게 한다고 퀄리티가 떨어지면 안 된다는 건 네가 더 잘 알 테니 말할 필요도 없겠고.

혹시 제작비가 부족하거나 그러진 않나?”

“아니. 아직은 괜찮아.

오히려 애들이 놀라고 있어.

단가 후려치지도 않고 달라는 대로 다 주는 감독은 내가 처음이래.

그래서 지금 한국에 내로라하는 CG 전문가들은 거의 다 우리 쪽에 붙어 있고.

그런데 웃긴 건 사람을 엄청 많이 쓰고 있는데 그래도 미국에서 작업하는 것보다는 싸다는 거야.”

“쩝. 이걸 반가워해야 하는 건지 안타까워해야 하는 건지….”

“뭐 한국에서 이 정도 대규모로 인원을 쓰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니까.

이제 우리나라도 차차 좋아지겠지.

이번에 우리 영화가 성공하면 더 그럴 테고.”

처음 영화에 CG가 도입되고 얼마간은 기술력의 부재나 경험의 미숙으로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런 경험 때문인지 경력이 오래된 감독들은 아직도 CG의 가치에 대하여 부정적인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그 감독들이 영화 특성상 불가피하게 CG를 넣어야 할 때었다.

거의 노동집약적이라고 할 수 있는 CG 작업을 맡기면서 단가를 후려치는 경우가 파다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CG 비용이란 게 인건비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걸 후려치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심지어 이 문제는 특정 감독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빡빡한 제작 환경에서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서 가장 먼저 줄이는 비용이 CG 비용이라고 하니 점점 CG 전문가들이 설 자리가 좁아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진짜 능력 있는 전문가들은 어쩔 수 없이 한국을 떠나 미국이나 요즘은 중국으로까지 진출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요즘은 CG가 들어가는 영화들이 선전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좀 좋아지긴 했다.

그리고 엄청난 자금이 CG에 투입된 이번 영화가 대성공을 거둔다면 영화 관계자들의 인식도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이 분명했다.

“그래.

그래서 넌 이제 아예 그쪽으로 간다는 거지?”

“어. 지금 데리고 있는 애들하고 같이 스튜디오를 차릴 거야.

능력 있는 애들이니까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애들 커서 독립한다고 하면 내보내서 다른 스튜디오 차려주고 같이 협업하면 되고.

새로운 애들은 뭐 또 가르치면 되니까.”

저번 “용의 울음”을 계기로 CG에 매력에 완전히 빠져버린 찬진은 그 후로도 계속 이쪽 방면을 공부했고 결국 이번 작업을 같이한 프리랜서들과 따로 스튜디오를 차리기로 약속했다.

이미 자신의 영화 스태프들도 태원에게 모두 인수인계한 상황이었으니 그 선택이 한순간의 결정은 아니니라.

“그리고 원래 영화 CG를 제대로 만들려면 단순히 그래픽 만지는 애들 말고도 나처럼 전체적으로 구도를 잡아주고 이끌어주는 사람도 필요한 법이야.

그러니 나중에 또 영화 찍을 때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지인 세일도 있으니까 내가 저렴하게 해 줄게.”

“허. 참. 벌써 영업이야?

네 녀석이 잘도 싸게 해주겠다.

더 벗겨 먹으려고 달려든다면 몰라도.”

“어허! 우리가 남이가?!”

윤 대표가 샐쭉한 어투로 핀잔 주었지만 찬진은 뻔뻔함은 그 정도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친분을 과시하며 들이대는 태도에 윤 대표도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뭐, 좋아. 그건 그렇고.

어쨌든 영화는 그렇게 진행해줘.

그럼 우리 쪽에서는 아무래도 상영관을 확정 지어야겠군.”

“장인어른은 무조건 600개 다 가겠다고 하시네.

히어로 영화라 호불호가 갈릴 거라고 내가 그렇게 말씀드렸는데도 들은 척도 안 하셔.”

예전 “용의 울음” 때도 600개를 풀로 채워 넣으셨던 찬진의 장인어른은 이번에도 그렇게 하시려는 모양이었다.

법에서 제안하고 있는 60%를 찬진의 손을 탄 영화로 채워 넣으려는 건 어쩌면 사위인 찬진에 대한 응원과 신뢰의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하하. 그래도 요즘은 처가에서 사람대우 받으며 살 거 아니야?”

윤 대표가 장난스럽게 묻자 찬진은 언제 자신이 무시당하고 살았냐는 듯이 으쓱하며 거만을 떨었다.

“뭐?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는 거야?

이거 참 소식이 늦군그래.

이젠 완전 떵떵거리면서 산다고.”

그렇게 장난스럽게 이야기하던 찬진도 부인이 생각나는지 조금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나야 상관없는데 우리 와이프가 신경 써서 그래.

그렇게 무던한 사람이 나 때문에 신경 쓰는 걸 보면서 내가 얼마나 짜증 나던지.

내가 언제 유산이라도 달라고 했나.

하여간 처남들이…..”

아직 장인어른이 정정하신데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찬진으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산이 걸린 형제의 눈치싸움.

이런 건 확실히 찬진으로서는 신물 날 만한 이야기였다.

“그래.

말이 갑자기 샜는데, 어르신은 그럼 600개 해 주신다고 하고.

문제는 역시 TJ인가.

거기선 이번에 “에이전트 K”를 몇 개나 넣겠대?”

윤 대표도 이번에 진룡에서 투자한 ”에이전트 K”가 아주 잘 나왔다는 소문은 들었다.

확실히 김현성 감독도 듣던 대로 능력이 있는 감독임이 분명했다.

진룡도 이번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감독에게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진룡 측에서도 감독에 대한 신뢰는 확실했나 보다.

아니면 저번 영화를 성공시킨 드림 픽처스를 믿는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드림 픽처스가 투자를 받을 때 아예 간섭하지 못하게 계약서를 작성했을 수도 있었다.

너구리 같은 김 사장이 진룡의 자금을 받으면서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을 리는 없었으니까.

어쨌든 결론은 이번에 개봉할 “Shadow Awaken”과 정면 대결을 벌일 “에이전트 K”가 상당히 잘 나왔다는 거였다.

게다가 그 영화 역시 300억이라는 거금이 들어간 영화였고 이미 크랭크인 시기부터 지속적으로 홍보해 왔기 때문에 인지도와 기대감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글쎄. 거기야 60%를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우리 영화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그 시기 최대어를 “에이전트 K”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젠 상황이 좀 다르지.

그리고 원래 오픈 스크린이야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거고.”

아무리 TJ랑 진룡의 사이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해도 대작이라는 “에이전트 K”를 TJ에서 거절할 리 없으니 아마 찬진의 예상대로일 가능성이 컸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은 무조건 60%를 배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차라리 크랭크인 때부터 홍보를 시작하지 그랬어?

그 시기에 맞불을 놓았으면 그쪽으로 그렇게 시선이 쏠리지는 않았을 거 아냐?”

찬진의 의문에 윤 대표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가 궁금하다는 표정.

질문을 받은 사람이 지을만한 표정은 절대 아니었다.

찬진은 자신의 질문을 받은 윤 대표가 자신보다 더 궁금해하는 보습에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 말이야.

사실 그게 일반적이긴 하지.

그래서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민수가 말리더군.

홍보는 영화가 다 촬영된 후에 해달라고 하면서.”

“민수 씨가?

그건 또 의외네.

그런 일에는 무심한 사람 아니었나?”

찬진도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자 윤 대표는 턱에 손을 괴고 진지한 태도로 이야기했다.

“그러고 보면 말이야.

이상한 게 한둘이 아니었어.

민수의 행동을 보면 무조건 진룡이 그 영화에 올인 하기를 바라는 사람 같았거든.

영화 시작 전에도 그렇고, 홍보를 최대한 늦추는 것도 그렇고.”

찬진은 윤 대표가 영화 촬영 전에 있었던 일들을 마저 설명해주자 더 아리송하다는 얼굴이었다.

“…. 민수 씨가 진룡에 악감정을 가질 만은 하지.

그런데 그것도 그 영화가 망해야 의미가 있을 텐데.

물론 나도 우리 영화가 더 잘될 거라는 자신감은 있는데 그렇다고 상대 영화가 망한다고 보기에는….

그래서 바라던 대로 진룡이 메인 투자자던가?”

“메인 투자자 이상이지.

300억 중에 진룡이 넣은 게 250억이야.

그러고 보면 예전에는 진룡이 그렇게 거대해 보였는데 이번에 우리가 영화 투자한 규모를 생각하면 좀 뭐랄까….

이런 게 격세지감인가?

하여간 기분이 참 이상하더라고.”

“…. 그거야 너희 배우들이 이상할 정도로 잘나가는 데다가 네가 투자한 영화들까지 이상하게 대박을 터트려서 그런 거지.

솔직히 그게 말이나 되는 거냐?

하여간 그래서 민수 씨의 뜻대로 진룡이 올인을 하긴 했네.

영화가 망하면 타격이 좀 있긴 하겠어.

그런데 그런 영화가 망할 수가 있나?”

찬진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윤 대표는 피식 웃으며 한마디를 보탰다.

“우리보다 흥행에서 밀리면 그나마 정신적인 타격은 줄 수 있겠지.

지금까지 진룡이 우리를 한 번도 못 이겼으니까.”

찬진은 윤 대표의 이야기에 어이가 없어서 웃음부터 터트렸다.

진짜 딱 배우가 할 수 있는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가 배우 아니랄까 봐.

그런 걸로 기분 나빠 하는 건 배우나 감독뿐이지.

근데 그놈은 사업가잖아.

너도 알다시피 사업가는 수익이 모든 걸 설명해줘.

금전적으로 수익이 나면 그냥 그걸로 땡인 거야.

뭐 네 말대로 기분이야 좀 나쁠 수 있겠지만 그럼 뭐해?

어차피 다음에 그 돈으로 또 다른 영화 찍어서 이득 보면 되는데.

게다가 이번에 그 영화 진룡쪽 라인을 타고 중국으로도 갈 거 아냐?

한국에서 쪽박을 차도 중국에서는 어느 정도 관객 수를 찍어 줄 텐데 솔직히 맞대결이 무슨 의미가 있냐?”

윤 대표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민수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거였다.

민수가 그걸 모를 정도로 순진하다면 모를까 그런 건 또 전혀 아니었으니까.

“하여간 그래.

그래서 민수 씨 말대로 홍보를 늦췄다?”

“그래. 민수의 영향도 있지만, 전적으로 그런 건 아니야.

내가 민수 말에 동의한 건 이 영화가 홍보가 늦는다고 문제가 될 영화가 아니라는 이유였지.

민 여사도 차라리 늦게 터트리는 게 더 효과가 있을 거라고 했고.”

“하긴. 이 영화가 홍보로 문제 생길 영화는 아니지.

아마 공개하는 순간 기사로 엄청나게 때릴 테니까.

자극적인 요소가 한두 가지여야지.

아. 맞아.

그래서 민수가 그러는데 민 여사님은 뭐래?

민 여사님도 무슨 코맨트가 있었을 거 같은데.”

“민 여사야 웃으면서 재미있을 거 같으니 그냥 두고 보자고 하지 뭘.”

“아… 그래?”

대화를 이어나가던 윤 대표는 자신의 아내가 제수씨에서 갑작스럽게 민 여사님으로 격상한 사실에 어이가 없어서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허허. 언제부터 민 여사님이야?

원래 제수씨였잖아?”

“시끄러워. 원래 투자자가 슈퍼 갑인 거 몰라?

이번에 내가 차리는 스튜디오에 투자해 주시기로 했단 말이야.

미리 알아서 잘 비벼놔야지.”

찬진이 우스꽝스럽게 양 손바닥을 모아 싹싹 비비며 이야기하자 윤 대표는 친구의 자본주의적인 마인드가 기가 막혀 한참이나 허탈하게 웃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자신에게 저렴하게 해 주겠다고 한 것도 투자자 쪽의 의뢰이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윤 대표는 이 친구가 그 스튜디오를 말아먹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좋아.

어쨌든 이제 영화 촬영도 마무리되었으니 본격적으로 홍보에 나서야겠지.

시작은 역시 기사인가?”

“맞아. 민 여사가 이미 세팅 다 해놨어.

내일 자 기사로 세상에 알려질 거야.”

이미 준비가 끝났다는 윤 대표의 말에 찬진도 기대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기대되네. 큭큭.

진룡 쪽 반응도 볼만은 하겠어.”

“뭐 그 치들이야 크게 신경이나 쓰겠어?

아마 신경 쓰는 건 드림 픽처스나 김현성 감독 정도겠지.”

“하긴….. 어쨌든 그럼 나도 빨리 움직여야겠네.

나중에 영화가 완성되면 그때 보자고.”

찬성은 이제 내일부터 홍보가 시작된다니 자신도 빨리 돌아가 작업을 마무리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날짜 안에 끝내려면 하루하루가 급하긴 했으니까 말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