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96화 (296/325)

# 296

6

“드디어 치안청까지 왔군.

지금 저곳만 점령하면 우선 급한 불은 끄는 건가?

본청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분위기로는 직접 나설 생각은 없어 보이니까.”

“그건 그래.

무슨 계획이 있었으면 이미 어떤 제스처가 있었겠지.

아마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게 아닐까 싶다.”

치안청 앞에 수많은 이종족 전사들이 모여들었다.

이종족 혼혈들은 이번 일로 순혈 인간에 대한 적대심이 높아졌지만 그렇다고 민간인을 해치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들을 직접 억압한 치안청의 보안관들을 용서할 생각은 없었다.

피는 피를 부르는 법이니 자신들에게 폭거를 자행한 그들도 분명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그렇게 치안청에 천천히 접근하는데 치안 청의 갑자기 정문이 열리면서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여러 이종족들의 특징을 모은 듯한 모습을 한 괴물들이 방패를 들고 날뛰고 있는 것이었다.

사자의 머리에 뱀의 꼬리, 그리고 라이칸의 다리를 조합했거나 도마뱀의 몸통에 서큐버스의 날개 요호족의 꼬리를 조합한 난잡하고 조잡한 괴물들이었다.

보기에는 꼴사나운 모습이었지만 그들은 생각보다 너무 강했다.

여려 이종족의 장점을 모아 놓은 데다 방패까지 들고 설치고 있었으니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나마 지금까지 싸워오며 상대에게 얻은 방패가 자신들에게도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렇게 난잡하게 각개 전투가 일어나는 중 치안청 옥상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뛰어내렸다.

라이칸의 몸통에 리자드의 머리와 꼬리, 그리고 몸에 그림자를 두르고 있는 괴물이었다.

일행은 상대를 확인하는 순간, 저것이 닥터C가 지금까지 연구했던 성과의 총아라는 사실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미친. 어디서 저딴 괴물이.”

“크크큭. 이종족 놈들은 이런 힘을 느끼면서 사는 거였군.

세상을 다 부숴버릴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야.”

심지어 이상까지 가지고 있는 괴물이었다.

전투의 양상은 간단했다.

치안청에서 미친 듯이 계속 튀어나오는 괴물들과 이종족 전사들 수천의 난전.

그리고 쉐도우 일행과 괴물이 된 지미의 전투.

하지만 그 경과는 간단하지 않아 전투가 지속될수록 주변이 초토화되고 있었다.

“컥!”

그림자 뚫기로 쿤의 뒤를 튀어나온 지미는 쿤의 옆구리에 강력한 펀지를 꽂아 넣고 다시 그림자를 타고 시아의 뒤를 점하였다.

그리고 꼬리로 시아의 목을 졸라 들어가는 찰나.

“어딜!”

“칫!”

쉐도우가 그림자 창으로 지미의 꼬리를 튕겨냈다.

만약 쉐도우가 견제하지 않았으면 시아까지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뻔 했던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쉐도우는 기습 공격에 실패한 후 입맛을 다시는 지미를 노려보며 일행들에게 당부했다.

“저놈 적어도 세 종족의 능력은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모양이야.

저 힘은 라이칸의 것이겠지?

그리고 쉐도우의 그림자 뚫기를 사용한다.

모두 주의해!”

그렇게 한참 동안 팽팽한 전투가 이어졌다.

하지만 전투를 지속할수록 쉐도우는 상대의 움직임이 뭔가 어설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저거 강하긴 한데…. 뭔가 좀.”

“어설프군. 힘 만센 애송이야.”

“능력을 사용하는 기교가 부족해요.

게다가 익숙하지 않은 여러 능력을 사용하느라 딜레이도 있고요.

생각할 여유를 주지 말고 빠르게 몰아치세요!”

처음에는 의외의 공격으로 지미가 어느 정도 우위를 가져갈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미의 허점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금껏 한 번도 이종족의 능력을 직접 경험해 본 적 없는 지미는 능력을 사용하는 요령과 경험, 노하우가 모두 부족했고 결국 힘만 강한 어린아이와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일행이 사방에서 지미의 허점만 공격해 들어가자 막기 급급하던 지미는 결국 여러 곳에 결정타를 얻어맞고 뒤로 튕겨 나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미의 단조로운 공격을 수월하게 커트해 낸 쉐도우는 저렇게 강력한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지미의 모습이 한심해 혀를 차며 빈정거렸다.

“이거. 힘만 센 아이로군.

훈련 전의 나를 보는 거 같아.

세상을 파괴할 힘이 눈앞에서 얼쩡대는 파리를 잡기는 무리인 모양이지?”

“이… 이 자식이…!”

분노한 지미가 다시 쉐도우에게 달려들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같은 힘이라도 쓰는 사람에 따라 효율은 천차만별.

이미 기량의 바닥을 드러낸 지미에게 남은 것은 패배뿐이었다.

“크..크….큭….칵!”

그렇게 분노하는 지미에게 이상징후가 나타났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올라오자 등 뒤로 거대한 날개가 솟아나기 시작하더니 몸 전체가 조각 조각나며 전혀 새로운 무언가로 변해가고 있었다.

“크악!! 악!!”

비명을 지르며 점점 부풀어 가던 지미는 결국 전혀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거대한 도마뱀의 몸체에 늑대와 도마뱀 머리, 그리고 그림자로 이루어진 날개를 가진 끔찍한 괴물이었다.

“하… 입이 방정이지.

그냥 빠르게 때려잡아야 했어.”

쉐도우는 진작에 한번 겪었음에도 전과 같은 우를 범한 자신을 책망하며 다시 전투에 돌입했다.

놀라운 속도로 비행하는 괴물과의 전투는 생각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우선 일행 중에 비행능력을 가진 존재가 시아 뿐이란 것도 문제였다.

그나마 사슬의 능력으로 상대와 견줄 수 있는 쉐도우가 시간을 끌어 줄 수 있다는 점은 다행이었다.

결국 공중전은 지미와 쉐도우 그리고 시아의 2:1 전투로 진행되었다.

공중에서 화려하게 불꽃을 쏘아대며 공격하는 시아와 미친 듯이 쉐도우만 따라다니며 몰아치는 지미, 그리고 지미에게서 요리조리 도망치며 그림자 창과 그림자 칼날을 달리는 쉐도우.

이성을 잃은 지미는 재빠르게 도망 다니는 쉐도우만 끝까지 쫓아다니고 있었다.

그러기를 한참.

쉐도우가 드디어 지미를 목표한 곳까지 유인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쿤이 완전한 라이칸의 형태로 거대한 작살을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쉐도우는 저 작살을 운반할 시간을 벌고 있던 것이었다.

지미가 예상치 못한 작살 공격에 옆구리를 꿰뚫려 주춤하는 사이 시아가 지미의 시선을 끌었다.

사방에서 현란한 불꽃이 몰아치자 지미도 시아에게 신경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의 끝은 쉐도우가 맺게 되어있었다.

지미가 작살에 맞는 순간 이미 지미의 날개에 파고든 쉐도우는 그 자리에 거대한 그림자 말뚝을 소환해 그대로 날개에 박아 넣었다.

“캭!!”

작살에 맞고도 큰 타격이 없던 지미는 쉐도우의 거대한 말뚝에는 버틸 수 없었는지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땅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땅 아래에서는 괴물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수천의 이종족 전사들이 지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헥헥헥.”

촬영이 끝나고 공중에서 신나게 날아다닌 태준은 숨을 헐떡이며 물부터 들이켰다.

민수가 그냥 좀 피곤한 정도로 소화할 수 있었다는 것 때문에 너무 방심했던 탓인지 태준은 생각보다 더 지쳐 보였다.

게다가 지금 입고 있는 복장도 괴물과 미묘하게 싱크로율이 높은 녹색 삼두룡이었으니 그 모습이 자못 우스꽝스러웠다.

“와. 씨. 진짜.

삼촌이 왜 실신했는지 이해가 되네.

이거 생각보다 엄청 무겁잖아?”

이 옷을 건네받을 때부터 뭔가 불안했던 태준은 상황이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긴 했지만, 촬영이 시작되자 이건 아니라는 생각부터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이 많은 강환도 소화한 일을 한창때 젊은 나이인 자신이 못한다고 빼는 건 너무 모양이 빠져서 억지로 견딘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처럼 실신 직전까지 몰리게 된 자신의 모습이었다.

지친 태준에게 다가간 민수는 흐뭇하게 웃으며 태준의 어깨를 두르려 주었다.

“멋졌어! 넌 역시 진정한 배우야.

자랑스럽다. 윤 배우.”

왠지 자신이 민수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은 것 같은 태준은 어이가 없어 피식 웃으면서 땅에 널브러졌다.

어쨌든 무사히 촬영을 마쳤으니 이제 안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민수의 소심한 복수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촬영을 마친 민수는 슬쩍 형우에게 다가갔다.

“어때? 잘했어?”

“응. 그런데 이거 그냥은 안 되겠는데?

저 인형 옷이 이 정도로 위력적일 줄은 몰랐어.

하나 더 쓰는 게 어때?”

“야. 너 이건 말이 틀리잖아?”

민수가 황당하다는 듯 항변했지만 형우는 음충맞게 웃으며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걸 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어때? 이 정도면?”

“음…..”

인형 옷을 입고 뒤뚱뒤뚱 뛰어가는 태준의 사진.

태준의 팬이라면 정말 사족을 못 쓸 정도로 놀라운 퀄리티였다.

역시 도촬 장인(?)이라고 불릴 만한 형우의 솜씨였다.

거기다가 자신이 처음에 요구했던 영상까지 깔끔하게 처리되어 있었으니 덤을 요구하는 형우의 제안이 상도덕에 크게 어긋난 것은 아니었다.

“하~ 그래. 원하는 게 뭐야?”

“하하. 형한테는 별거 아니야.

사실 소희 씨한테 이번에 예능 스케줄이 하나 들어왔는데 그게 정글 탐험이거든.

그래서 형이 같이 가서 소희 씨 좀 챙겨달라고.

생존은 우리 전문이잖아.”

“아아. 정글?”

윤 엔터의 다른 배우들과는 달리 소희는 예능을 피하지 않는다는 주의였다.

특히 많은 사람이 시청하는 예능이라면 더욱 그랬다.

하지만 정글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할 소희가 걱정되는 형우의 생각은 좀 달랐나 보다.

분명 계속 말리다가 소희가 듣지 않자 결국 자신을 생각한 모양이었다.

“야. 내가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내가 따라가면 소희 씨가 들러리 되는 수가 있어.

인지도 때문에 나가는 걸 텐데 그래서야 되겠냐?”

“노노. 그건 좀 다르지.

솔직히 형이야 나가봤자 머슴밖에 더 되겠어?

가면 그냥 일하고 사냥만 할 거잖아?

거기에 소희가 딱 붙어서 케미를!

그러면 분량도 엄청 많이 확보할 수 있을걸.”

형우의 설명을 들은 민수는 생각보다 형우가 많은 생각을 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설아와 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민수에게 그건 안될 말이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소희가 정글에 가는 것 자체도 반대였다.

“다 좋은데 지금 소희 씨가 정글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소희 씨도 지금까지 계속 달린 거잖아?

그리고 이 영화에 회사가 사활을 걸 정도로 신경 쓰고 있는데 분명 홍보 활동도 엄청나게 해야 할 거야.

그런데 2주나 정글로 빠지면 쉴 시간이 나오겠냐?

아무리 회사에서 스케줄에 신경을 안 쓴다지만 이건 막을 거 같은데.

딱 보니까 넌 지금 소희 씨가 정글 가는 거 반대네?

그런데 고집을 피우니까 어쩔 수 없이 차선책을 택한 거고.”

요점을 정확하게 파악한 민수의 말에 형우도 한숨을 내 쉬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 이런 건 대체 누구한테 배워서 고집을 부리나 모르겠어.

굳이 지금 그런 스케줄을 가야 할 이유가 없잖아.

독립 영화 찍다가 바로 설아 씨랑 영화 찍고 이어서 또 드라마에 들어갔어.

그리고 드라마에서 나오기 무섭게 지금 영화 2편 연속으로 찍은 거고.

결국 거의 1년을 풀로 쉬지 않고 활동한 건데.

저러다가 쓰러지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형이라도 같이 보내려고 했던 거야.

형이랑 가면 적어도 먹는 건 잘 먹고 올 테니까.”

“좋아 좋아.

내가 소희 씨 정글 가는 거 막아 줄게.

딜 OK?”

“오! 그게 돼?

OK. 내가 한번 믿어 보겠어.

나중에 안됐다고 헛소리하면 곤란한 거 알지?”

민수가 제시한 새로운 조건에 형우도 귀가 솔깃한 표정이었다.

하긴 지금 상황에서 소희의 고집을 꺾을 수만 있으면 그것보다 좋은 게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할 생각이야?

소희 씨가 생각보다 고집이 세.”

“흠. 두고 봐.

이런 쪽으로 최종병기가 있으니까.”

민수가 믿는 건 바로 설아였다.

소희가 정글에 가면 자신까지 딸려가고, 그러면 결국 같이 여행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설아가 알게 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소희를 막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녀가 어떤 방법을 사용 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소희가 정글에 못 가는 것만은 확실했다.

이런 쪽으로는 설아를 100% 믿는 민수였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더니 어느새 민수도 설아나 태준 남매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이 변화가 좋은 변화인지 안 좋은 변화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영화는 아직 자잘한 장면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난이도 높은 전투 장면은 모두 찍은 후였기 때문에 마무리 일정은 수월하게 소화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더 지난 후.

배우들은 5개월간의 치열한 촬영 일정을 모두 마치고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개봉 예정 일이 석 달 정도 남은 어느 날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