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95화 (295/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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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아는 요즘 부쩍 지친듯한 민수의 모습이 마음에 좀 걸렸다.

물론 자신도 영화 2편을 연속적으로 찍는 살인적인 스케줄에 많이 지치긴 했지만 민수는 단순히 지쳤다는 것으로 설명하기 힘든 뭔가가 있었다.

오늘만 해도 지친 민수에게 자신이 손수 안마까지 해 주지 않았던가?

문제는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는 거였다.

게다가 다른 것이라면 몰라도 체력적인 부분에서는 세계의 그 누구와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을 민수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좀 이상하긴 했다.

민수는 와이어 액션이 익숙하지 않아서라고 웃으며 설명했지만 설아의 감은 그런 단순한 이유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원인을 모르니 자신이 도와줄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설아의 예상대로 민수는 요즘 많이 지쳐있었다.

이건 단순히 체력적인 문제만은 아니었다.

솔직히 그냥 영화를 찍는다고 하면 2편이 아니라 3편을 찍어도 지치지 않을 민수였으니까.

물론 익숙하지 않은 와이어 액션과 촬영 환경도 한몫하긴 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촬영이 끝날 시기가 점점 다가오자 여러 가지 잡념들이 민수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투자 규모가 너무 커져 버린 이 영화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이런 영화는 배우의 역량보다 CG의 퀄리티가 영화의 흥행을 좌우한다고 하던데.

진룡의 일은 내 생각대로 흘러줄까?

그런 좋지 않은 마음을 먹고 시작한 것 때문에 혹시라도 우리 영화에 악영향을 끼친다면?

원래 내가 찍고 싶은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왜 일이 이렇게 흘러 버렸을까?

복수라는 것에 홀려 자신의 시야가 너무 좁아졌던 것은 아닐까?

영화의 흥행으로 시작한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지다 결국 복수라는 불순한 목적으로 영화를 촬영하기 시작한 자신에 대한 자괴감으로까지 이어졌으니 점점 우울해지고 피곤해질 수 밖에.

그나마 촬영 초반에는 촬영에만 집중하느라 이런 잡념이 끼어들 여유가 없었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솔직히 간간이 장난을 걸어오는 태준을 응징할 모략을 꾸미는 작은 즐거움마저 없었으면 지금보다 더 피곤하고 지쳤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전투를 촬영하는 날.

아침부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설아가 샌디의 의상을 입고 민수를 찾아왔다.

아직 촬영이 많이 남은 시간이었는데 촬영 의상을 미리 챙겨 입고 다가오는 설아.

기본적으로 서큐버스 혼혈로 나오는 샌디의 의상이나 화장이 평범할 리는 없었고 그 말은 즉, 민수의 가슴 한복판에 스트라이크로 꽂이는 관능적인 스타일로 꾸며진 모습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껏 꾸민 설아가 요염하게 삭삭 다가오더니 배시시 웃으며 민수에게 아양까지 떨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이렇게 살살거리는 설아에게는 무슨 목적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미소가 흘러나오는 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요 앙큼한 아가씨가 지금은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느낌이 좀 싸한데. 오늘은 또 무슨 일인 걸까?”

“헤헤. 제가 언제 꼭 무슨 날이어야 이러던가요?

요즘 오빠가 좀 많이 힘들어 보여서요.

기운 좀 내시라고 아침부터 좀 서둘러 봤어요.

어때요? 이 정도면?

기분이 팡팡 좋아지지 않나요?”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면서 어여쁜 자태를 자랑하는 설아의 모습에 민수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사실 요즘같이 촬영할 때마다 설아의 모습이 너무 취향 저격이라 자신도 깜짝깜짝 놀라곤 했으니까.

그리고 이상한 곳에서 감이 좋은 이 아가씨가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아침부터 한두 시간이 나 걸리는 풀 메이크업을 하고 자신에게 인사하러 오는 수고를 자처하지는 않았겠지.

그렇게 설아의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문득 예전에 이 영화를 촬영하기 전 설아가 자신에게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원래 가장 완벽한 복수는 상대가 무슨 짓을 하든 무시하고 내 갈 길 가면서 행복하게 사는 거라고 했던가.

그 당시에는 잘 이해 가지 않았던 이야기가 지금은 어느 정도 마음에 와닿았다.

어쩌면 자신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 준 것도 자신의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해서 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무시하는 것에만 익숙했던 자신이 무슨 일을 꾸미려고 하니 이렇게 피곤하지 않은가?

“왜요? 오빠.”

설아는 민수가 자신을 물끄러미 보고만 있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찰싹 달라붙었다.

오늘은 민수의 비타민이 되어주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은 건지 행동과 태도가 아주 거침없었다.

설아의 행동에 근심이 조금 가신 민수는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음… 솔직히….

그래. 별로 마음이 편하지 않아.

생각보다 너무 돈이 많이 들어가서 흥행도 걱정이고.

내가 진룡을 신경 쓴다는 사실 자체도 왠지 불편하고.

이래저래 참….”

설아도 민수의 말을 듣고서야 그의 고민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저번에 그렇게 말했던 것인데 확실히 민수에게 그런 생각들은 어울리지 않았다.

“하긴 그건 그래요.

누에가 뽕잎을 먹어야 하는데 갑자기 솔잎을 먹으려고 하니 소화불량에 걸리 수 밖에요.”

“그거… 맞는 말이긴 한데 뭔가 좀 다른 느낌인데.”

“헤헤. 그런가요?

그리고 흥행이라…..

직원들은 정민수가 영화에서 똥을 싸도 손익분기점은 넘을 거라고 농담하긴 하지만요.

확실히 이번 영화가 돈이 너무 많이 들긴 했죠.

CG에 너무 많이 의존하다 보니 배우로서 좀 불안한 감이 있을 수도 있겠어요.”

똥을 싸도 손익분기점을 넘는다는 직원은 참 뭐 하는 녀석인지 황당하기만 했다.

일본과 중국에서의 자신의 입지를 믿고 그런 예상을 하는 걸 테지만 표현이 너무 저렴했으니까.

“하지만 뭐 알아서 잘되지 않겠어요?

원래 될 놈 될 이라고 하잖아요.

저희는 되는 놈이니 어떻게든 되겠죠.

CG는 어쨌든 찬진 삼촌을 믿는 수밖에 없겠고요.”

설아의 말대로 그 부분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이번 영화는 무조건 홍보 활동에도 열을 올릴 생각이었으니 최소한의 퀄리티만 나와줘도 많은 사람이 봐 주긴 할 것이다.

스티븐까지 합류한 영화였으니 사람들의 관심도 엄청나게 쏠릴 테고.

설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왠지 마음이 좀 편해진 기분이었다.

마음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꺼내서 그런 거 같았다.

“그래. 연기 외적인 부분은 전문가에게 맡겨야지.

그나저나 이번 영화 끝나면 홍보 기간 전까지 시간이 좀 많이 남을 테니 이 기회에 어디로 여행이나 한번 다녀올까?

국내는 어려워도 해외는 가능하지 않겠어?”

민수는 자신에게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느꼈다.

앞으로의 일들도 좀 생각해 봐야 했고.

그리고 그 여행에 이왕이면 설아가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 여행이요?

오빠가 어딜 나가자고 한 건 영화관을 제외하고는 처음이네요.

헤헤. 어디가 좋을까요?

이왕에 여름에 나가는 거니 바다가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성인이 되는 해에 아~주 예쁜 수영복을 사 놨는데요.

갑작스럽게 데뷔하는 바람에 아직 한 번도 못 입어 봤거든요.”

설아의 마음속에 같이 가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아예 없는 듯 이런저런 장소를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런 설아의 모습에 민수도 기분이 더 좋아지긴 했지만, 윤 대표가 허락할지는 조금 의문이었다.

만약 자신이었으면 다 큰 딸이 해외로 여행을 떠난다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거 같았으니까.

“후후. 아버지는 걱정하지 마세요.

최고의 우군이 있으니까요.

오빠는 그저 제 요망한 수영복에 한껏 반할 생각만 하시면 돼요.

히힛. 왠지 기대되네요.”

무슨 계획이 있어 보이는 설아의 장담에 민수는 그냥 설아를 믿어 보기로 했다.

정 안되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보면 되었다.

그 뒤로도 대화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민수의 생각보다 설아는 훨씬 더 좋은 청자였다.

별다른 대안을 제시해 주지는 않았지만 민수의 답답한 속마음을 충분히 공감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긴 대화를 나누면서 마음이 좀 편해진 민수는 이제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자 더 이상 여러 가지 근심들이 민수를 괴롭히지 못했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더니 이럴 때 보면 옛말이 틀린 것이 없었다.

“좋아. 가자.”

민수는 설아와 함께 웃으며 촬영장으로 향했다.

촬영장은 촬영 전 준비로 한창 바쁜 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민수는 오늘의 촬영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는 태준과 감독의 모습을 발견하고 곧장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니까 굳이 제가 그걸 하는 것보다 전문가가 하는 게 더 그림이 살지 않겠어요?”

“음… 그건 그렇네요.

허허. 진짜 제가 정신이 없긴 했네요. 그런 단순한 것도 생각하지 못하다니.

이거 강환 선생님한테는 죄송해서 어쩌죠?”

대화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오늘 찍을 공중 전투 씬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안될 소리.

민수는 슥 하고 태준에게 다가가 운을 띄웠다.

마치 악마의 유혹 같은 위험하고 달콤한 꼬드김이었다.

“음…. 윤 배우. 그래도 네가 하는 게 낫지 않겠어?

갑자기 대역으로 바뀌면 분위기가 좀 어수선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

“에이. 초반은 좀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화면 자체는 이게 더 나을 테니 그냥 대역으로 가는 게 맞을 거 같아.”

하지만 태준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민수는 속으로 혀를 차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오늘 설아와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편해진 마음이 그의 두뇌 회전을 훌륭히 보조하고 있었다.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민수는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태준을 응시했다.

“흠. 그런데 말이야.

솔직히 네가 와이어 액션을 해볼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이런 것도 다 좋은 경험이 될 거 같은데.

대표님도 좋은 배우가 되려면 가능하면 많은 경험을 해보는 게 도움이 된다고 하셨지?

그리고 예전에 스턴트 스쿨에서도 나름 연습을 많이 했잖아.

솔직히 연습한 것도 좀 아깝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써먹어 보지도 못하다니.

아, 또 수연 선배도 와이어 액션을 완벽하게 소화한 너의 경험담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윤 배우가 하는 게 여러모로 유익하지 싶어.”

민수의 삼단 콤보에 태준도 흠칫하더니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경험적으론 그렇지.

음….. 아버지가 예전에 그러시기도 했고.

수연이도 그랬고. 음…”

잠시 고민하던 태준은 결연한 표정으로 태원을 바라보았다.

“민수 말이 어느 정도 타당하긴 하네요.

좋아요. 감독님.

강환 삼촌도 했으니 저도 한번 해 볼게요.

어차피 CG로 뒤덮이는 거라 연기는 상관없는 거잖아요?

와이어 한번 타 볼게요.”

“아. 그러실래요?

태준 씨 말대로 연기는 별 상관없어요.

그냥 떠다니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럼 편할 대로 하세요.”

결국 태준을 와이어의 늪으로 끌어들인 민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태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어차피 다 경험이지 뭐.

잘 생각했어. 그럼 이따가 잘 부탁해?”

“응. 이따 보자”

그리고 민수는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촬영 준비를 분장실로 들어갔다.

민수는 오늘 태준이 지옥을 볼 거라고 확신했다.

와이어가 보기에는 만만해 보여도 몇 시간 매달려있으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으니까.

쿤의 힘으로도 쉐도우를 제거하는 것에 실패한 지미 일행은 이제 자신들의 힘으로 최후의 결전을 벌이기로 했다.

전방위로 압박하는 이종족 연합의 공격을 정면 돌파해 쉐도우와 정면 승부를 감행하기로 한 것.

어차피 방패의 힘으로 평범한 이종족 전사들은 자신들의 상대라 아니라고 판단한 거였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에 불과했다.

이종족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고 정면만을 방어할 수 있다는 방패의 약점을 간파한 것이었다.

상대가 짐작하지 못한 곳만 집요하게 공격하는 이종족의 다양한 공격에 결국 지미의 세력은 그 힘을 점점 잃어가고 궁지에 몰린 지미에게 닥터C는 위험한 거래를 제안하게 되었다.

“직접?”

“그래. 직접.

저 더러운 이종족들이 어떤 힘을 쓰는지 체험해 보고 싶지 않나?

저들은 그저 자신의 능력을 쓸 뿐이지.

그건 그냥 타고나는 거니까.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으면 인간이 저 더러운 녀석들에게 밀릴 리가 없지.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이종족의 힘으로 직접 싸운다.

상당히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결국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는 지미는 닥터C의 꼬드김을 거부하지 못했다.

그나마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이성적 판단의 한계였다.

“부작용이라.

당연히 있긴 하지.

너무 흥분하거나 극심한 고통을 받아 스트레스가 한계까지 올라가면 어떻게 될지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 힘은 진짜지.

저 쉐도우도 사실 나한테 유전자를 주입 받아 저런 대단한 쉐도우가 된 거잖나.”

쉐도우라는 성공작이 있었기 때문에 지미도 닥터C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이 건네준 앰풀을 흡입하는 지미를 닥터C가 음흉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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