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92화 (292/325)

#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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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도시가 혼란에 휩싸여갈 무렵.

혼신의 힘을 다한 그림자 뚫기로 겨우 목숨을 부지한 쉐도우는 생각지도 못한 곤란을 겪고 있었다.

어디론가 날아오긴 했는데 여기가 어딘지도 정확히 알 수 없는 데다가 사방을 둘러 쌓고 있는 그림자의 무리들이 쉐도우에게 엉뚱한 것들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상대가 자신에게 여기가 어떤 곳인지는 설명해 준다는 것이었다.

[그림자의 성전에 방문한 어린 쉐도우를 환영하노라.

이곳은 미숙한 쉐도우가 진정한 그림자로 다시 태어나는 곳이며….]

“당신은 뭐지? 여긴 도대체…..”

[일족의 모든 비기를 깨우치고 당당한 일족의 전사로 거듭나기를 바라노라.]

다만 쉐도우의 질문이나 의사를 완전히 무시한 채 자신이 할만한 하고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결국 쉐도우는 자기 생각과는 상관없이 달려드는 적들에게 그림자 창을 날리며 스스로를 보호할 수밖에 없었다.

[미숙하도다.

그림자 사슬을 한 개 밖에 뽑아내지 못하다니.

세 살짜리 쉐도우도 귀하보다는 더 나을 것이다.

정진하고 또 정진하라.]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더 집중해서 움직일지어다.

그림자를 자신의 몸보다 더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귀하는 이미 세 번의 목숨을 잃었다.

바퀴벌레나 구더기보다도 못한 학습능력이로다.]

[통탄할 지고.

어찌 일족에 저런 덜떨어진 전사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거참. 더럽게 쨍쨍거리네.”

끊임없이 온갖 모욕을 쏟아지는 가운데 쉐도우는 투덜거리면서도 빠르게 움직이는 것에만 온 정신을 집중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계속 움직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지금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거대한 해방감이 온몸을 관통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감각이요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점점 움직임이 부드러워지더니 결국에는 의식하지 않고도 그림자를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자신도 모르게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한 것이었다.

쉐도우는 사방에서 몰려오는 괴물들을 상대로 그림자 창을 던지고 그림자 폭탄을 터트리는 동시에 사방으로 쏘아 올린 사슬을 타고 신출귀몰하게 이동했다.

던지고 터트리고 피하고 심지어 괴물들의 그림자를 타고 이동하며 그림자 칼날로 기습하기까지.

일련의 모든 동작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순간 주변이 밝아 지면서 자신을 공격하던 괴물들이 먼지가 되어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렇게 갑자기 환경이 변해버리자 쉐도우는 지금껏 자신이 상대하던 것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인지 아니면 그저 환상에 불과한지 구별이 되지 않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치열하게 싸운 것이 마치 한바탕 꿈이라도 꾼 듯 아련하기만 했으니 말이다.

[1단계는 통과했도다.

클리어 타임 3일 21시간.

최악의 성적이로다.

역대 최악의 둔재들도 2일이면 이 시험을 통과했었는데 앞날이 정말 깜깜하구나.]

“와…. 진짜 끝까지 그러냐?

도대체 여긴 뭐야? 대답해줄 생각 따위는 없는 거냐?”

[이제 10분 후 2단계가 시작될 터이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거라.]

“하… 그러시겠지.”

쉐도우는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1단계를 통과하면서 자신의 수준은 몰라보게 진일보했다.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도 계속 단계를 거쳐 가면서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몇 단계까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단계를 통과하는 것 외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으니 최대한 빠르게 돌파해 보이겠다고 결심했다.

다 돌파하면 뭐라도 알게 되겠지.

점점 강해지는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든 쉐도우는 다른 일은 잊고 우선 강해지는 것에 온몸을 맡기기로 했다.

계속된 훈련으로 영화 속 쉐도우가 괴로운 것과 마찬가지로 쉐도우를 연기하는 민수도 지금 죽을 지경이었다.

이번 장면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민수도 필연적으로 와이어와 기계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민수라도 몇 군대에 그림자 사슬을 던지고 자유자재로 타고 움직이는 연기를 자력으로 소화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민수는 자신의 운동 능력이나 반사 신경과는 상관없이 와이어 액션에는 별로 능숙하지 못했다.

이건 능력보다 경험에 의존하는 경향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그래도 다양한 액션 연기를 소화해 왔다고 할 수 있지만, 막상 와이어를 타본 경험은 전생에서의 몇 번을 제외하고는 전무했으니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움직이는 와이어 액션이 수월할 리가 없었다.

그나마 탁월한 반사 신경 때문에 균형을 잡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와. 저 친구가 저기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모습이 참…..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민수가 액션 연기에 애를 먹는 건 처음이네.”

“쉽지 않지.

그냥 붕하고 날아가는 게 아니라 날아가면서도 액션 연기를 계속 선보여야 하잖아.

그것도 자연스럽게 말이야.

그러니 웬만한 균형감각으로는 턱도 없지.

그나마 저 친구니까 저 정도라도 하는 거야.”

스티븐에 설명에 태준은 몰랐던 사실을 알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민수의 연기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구경하더니 작게 한숨을 쉬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최후의 결전 때 공중전이 포함되어있기 때문에 태준도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였다.

“그건 그렇네.

그런데 나중에 나도 저렇게 해야 하는 거잖아?

어? 그러고 보니 너랑 소희 씨도 해야 하는데 저거 괜찮겠냐?”

“나랑 소희 씨는 그냥 붕 떠 있기만 하면 되니까 별걱정 없지.

그리고 솔직히 넌 네가 하는 게 아니라 그냥 CG가 하는 거잖아.

무슨 걱정이야?

네가 공중에서 무슨 짓을 해도 사람들은 CG만 볼 텐데 말이야.”

“아아. 그랬지.

앗! 그럼 굳이 내가 안 하고 스턴트맨 중 아무나 다른 사람이 해도 되는 거잖아!

어? 그럼 예전에 강환 삼촌도 그런 짓을 할 필요가 없었단 건데….”

태준은 유레카를 외치는 아르키메데스라도 된 듯 놀라운 발견을 한 사람처럼 기쁨의 탄성을 내질렀다.

도대체 그럼 왜 강환이 그런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뛰어다녔던 것일까?

어쨌든, 그때는 그때고 자신은 공중에서 고생하는 것을 피할 수 있겠다 싶어 태준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그리고 그때 촬영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러 온 민수가 키득거리는 태준이 이상해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다.

“뭐야? 그 웃음은?”

“아아. 나중에 내가 들어가는 전투 씬을 피할 수 있는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민수도 태준의 설명을 듣자 그럴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태준보다는 스턴트를 전문으로 하는 배우가 그 연기를 한다면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테니까.

사실 강환의 경우도 그랬어야 했다.

이런 영화를 찍어본 적이 없던 제작진이 정신이 없어서 그 생각을 못 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민수는 왠지 심통이 나는 기분이었다.

누구는 이렇게 계속 공중에서 고생하는데 누구는 요령 좋게 빠지려고 하다니 이건 안될 소리였다.

민수는 신나 하는 태준에게 건성으로 인사하고는 다시 다음 촬영을 위해 촬영장으로 복귀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태준은 민수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을 공중으로 올릴 생각이라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민수가 고생하는 와중에도 촬영은 계속되었다.

계속되는 압박에 지친 시아가 어쩔 수 없이 샌디를 찾아와 사정을 이야기하고 앞날을 논의하는 장면.

그리고 치안청의 이해할 수 없는 일 처리에 반발하던 쿤과 퍼니셔들이 결국 정직 처리당하고 치안청을 떠나는 장면까지.

특히 한껏 멋을 낸 두 미녀가 서로를 헐뜯으며 벌이는 캣 파이트는 생각보다 많은 볼거리를 제공했다.

그리고 오늘 촬영할 장면은 정의감 넘치는 에스퍼 릭이 치안청의 음모를 눈치챈 후 목숨을 걸고 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장면과 치안청이 본격적으로 움직여 이종족 사냥에 나서는 장면이었는데 며칠 동안 촬영했던 장면 중 가장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릭은 치안청의 움직임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치안청은 모든 국민을 보호하는 보호 기관이며, 당연히 이종족 혼혈도 그 국민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종족 혼혈만 무분별하게 탄압하는 치안청이라니.

릭이 생각하기에 지금의 치안청은 이미 존재 의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혼자 조사하던 릭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우연히 한 건의 문서를 접하게 되었다.

이름하여 “이종족 말살 계획”

이 계획서에는 이종족을 잠재적인 범죄자이자 이 사회를 위해 사라져야 할 존재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계획의 내용은 단순했다.

이종족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인 후 그들의 반발을 유도하고 그들을 멸살시킨다.

도시에서 이종족을 완전히 일소한 뒤에는 증거를 조작해 중앙 정부에 이종족의 난폭한 방법으로 반란을 일으켰고 자신들이 겨우 막을 수 있었다고 보고한다.

그리고 이 일을 이종족의 폭력성을 증명하는 근거로 삼아 이종족 탄압을 국가적인 범위까지 확장하고, 종국에는 세계에 모든 이종족을 제거해 나가겠다는 계획이었다.

게다가 계획서 안에는 이종족 혼혈이 서로 왕래하지 않고 같은 종족끼리만 모여 씨족을 이루는 특성을 고려해 도시 단위로 이종족을 공격해 차근차근 제거하겠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이 방법은 이종족 보호 위원회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는 다른 종족과 소통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종족의 허점을 본격적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즉 상대를 도시 단위로 공격하면 그들을 쉽게 각개 격파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릭도 이종족 혼혈이 벌이는 강력범죄가 적지 않다는 사실은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 계획이 성공적으로 실행되면 이종족 보호 위원회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얼마나 많은 이종족이 죽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거 같았다.

그들 중 대부분은 아마 인간들과 평화롭게 사는 평범한 이종족일 것이다.

“이건 아니야.

이걸 어쩐다.

누구에게 알려야 하지?

치안청에 이런 미친 계획서가 있는 걸 보니 여긴 글렀어.

중앙에?

아니지 어쩌면 본청과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을 수도 있어.

하…..”

혼란스러운 릭은 서둘러 밖으로 나서다가 예상치 못한 인물을 만났다.

그건 바로 자신의 선배 지미였다.

지미는 평소의 흐릿하고 무기력한 눈빛이 아니라 타오를 듯 이글거리는 눈으로 릭을 쏘아보고 있었다.

“우리 후배님은 어딜 그렇게 서둘러 가시나?

뭐 못 볼 거라도 본 얼굴인데?”

“하하. 선배.”

릭은 난처하게 웃으며 주위를 살폈다.

평소에 눈치가 없고 말보다 행동이 먼저인 릭이라도 지금 상황에서는 지미가 이 말도 안 되는 계획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이 계획을 알아 버렸다는 것도 말이다.

릭은 빠르게 판단해 바로 지미에게 화염 구슬을 쏘아댔다.

일반인에 불과한 지미가 크게 다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깜짝 놀라 물러날 만큼의 화력이었다.

하지만 릭이 쏘아낸 구슬이 폭발하지 않고 지미의 발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지미의 팔에서 튀어나온 검붉은 방패에 맞고 구슬이 그 위력을 잃은 것이었다.

“아…아니 어떻게?”

“역시 잘 듣네.

에스퍼의 초능력도 결국 이종족의 능력과 같은 거란 말이군.

역시 네놈들도 다 없어져야 할 놈들이었어.

아. 많이 놀란 거 같은데.

너무 놀라지 마.

우리가 바보도 아니고 이종족들이 한곳에 모여서 한마음으로 싸우면 그 피해가 막심할 거란 사실을 모를 리가 없잖아?

그러니 우리도 뭔가 믿는 게 있으니 이러는 게 아니겠어?”

지미의 팔을 감싸고 있는 저 방패가 이종족의 능력을 무효화시키는 무기인 모양이었다.

위기의 상황에서 릭은 빠르게 판단하고 자신의 발아래로 구슬을 폭발시켰다.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주변이 폭발의 잔해에 뒤덮일 때 몸 빠져나가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자신에게 오는 피해는 감수하고 어떻게든 도주를 감행하겠다는 릭의 판단에 지미도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폭발이 주변을 완전히 휩쓸고 지나간 후.

방패 뒤에 숨어있던 지미는 당연히 무사했다.

하지만 주변이 엉망이었고 릭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미친 애송이가….”

릭이 사라진 곳을 노려보며 이를 가는 지미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C라고 적힌 가면을 쓴 남자는 짜증 내는 지미를 보며 고소를 머금고 있었다.

“놓쳤구만. 보안관 양반.

이제 어쩌려나?

일을 앞당겨야겠는데?”

빈정대는 C의 태도에 지미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진척 상황을 물었다.

지미는 이종족과 정면으로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

“닥쳐, 개자식아.

보스가 명령한 건 어떻게 되었지?

설마 아직도 라고 말하지는 않겠지?”

“아아. 그건 이미 끝난 지 오래야.

이제 슬슬 움직일 생각인가?”

C의 말에 지미는 인상을 잔뜩 구기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지만, 결과는 자신의 계획대로일 거다.

자신이 반드시 그렇게 만들 것이다.

지미의 표정에서 그런 그의 각오를 읽을 수 있었다.

“변수가 생긴 이상 일을 더 지체할 수는 없겠지.

오늘 당장 시작하자고.

금호당만 무너트리면 나머지는 오합지졸에 불과할 테니까.”

지미가 서둘러 자리를 떠나자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C가 작게 중얼거렸다.

“큭큭. 오늘 밤은 길어지겠군그래.

한번 신나게 놀아 보라고.”

불길한 C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드디어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다.

삐뚤어진 아집과 편협함이 불러일으킬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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