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90화 (290/325)

#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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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마 후 드라마 촬영을 완전히 마친 소희가 촬영장에 합류했다.

소희가 출연한 드라마는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소위 대박을 터트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잘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주조연급으로 좋은 연기를 보여준 소희도 많은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선명하게 각인시킬 수 있었다.

소희가 촬영장에 합류하면서 그녀의 매니저인 형우도 당연히 촬영장에 동행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계속 움직여왔던 형우는 민수가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알려주었는데 그 정보 속에는 검찰 측에서 그 화재 사건을 아직도 파고 있다는 소식도 포함되어 있었다.

“와… 그걸 아직도 파고 있다고?

민 여사님은 증거가 없어서 결국 못 잡을 거라고 했었는데.”

“우선 자수한 놈이 있고, 그놈이 사주를 받았다고 자백하긴 했으니 수사할 거리는 있지.

그런데 증거가 없어서 고생하고 하긴 있나 봐.”

“지금 그런 잔챙이 말고도 그 위쪽에서 굵직한 뇌물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시끄러운 거 아니었어?

원래 그런 큰일이 터지면 작은 일은 그냥 자연스럽게 묻혀가는 거였잖아?”

민수는 다른 일로 한창 바쁠 검찰과 경찰이 그런 작은 일을 아직도 수사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물론 화재 사건 자체는 큰 사고였지만 그런 방화보다는 완전히 난리가 난 각종 뇌물 수수 사건이 더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집중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렇겠지만…..

그 있잖아? 조 선생님 부군이 지금 중앙지검 검사장으로 계시거든.

그분이 위에서 계속 쪼이는 모양이야.

무조건 범인 잡아 오라고.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뇌물 사건이지만 이것도 작은 일이 아니니 소홀히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씀하셨다나 봐."

“아? 그분이 검사장이셨어?

아니 무슨 미관말직이 검사장이야?

관직에 계실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그렇게 높은 분인 줄은 몰랐네.

그런데 이거 솔직히 사감이 좀 들어간 수사 아니냐?

왠지 느낌이 좀…”

형우의 말에 민수는 너무 의외라서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하긴 그때 그분의 분위기가 보통이 아니긴 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때 느낀 분위기 때문에 그런 분이 자신의 힘을 묘하게 사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믿을 수가 없었다.

공과 사는 분명히 구분하실 분으로 보였었기 때문이었다.

형우는 민수의 말에 그게 무슨 소리냐며 펄펄 뛰고 있었다.

“형. 그게 어떻게 사감이야?

그런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버젓이 사회를 활보하고 있는 게 더 문제 아냐?

물론 사감이 없다고 할 순 없겠지.

그날 조 여사님이 엄청 충격 받으셨고 그 따님도 울고불고 난리였대.

우리 민수 오빠 죽을지도 모른다고.

뭐 나중에 팬 카페에 괜찮다고 글을 올려서 진정되긴 했지만.”

화재 사건 후 바로 언론이나 다른 곳을 상대하지 않은 부작용이 이렇게 나타났다.

워낙 사건이 급박하게 흘러가고 드라마까지 뒤집어지는 바람에 정신이 없어 윤희에게 바로 연락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리라.

그 당시에는 윤희가 그렇게까지 걱정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는데 생각보다 심각했었나 보다.

그리고 자신을 완전히 오빠처럼 생각하던 그 아이를 생각하니 그런 움직임이 조금 이해가 되긴 했다.

무슨 없는 죄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검사장이 발생한 범죄를 철저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하는 것에 문제가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어쨌든 그렇게 시작한 수사였는데 지금은 루머 때문에 방향을 진룡쪽으로 완전히 틀었다고 하더라고.

혹시 뭐라도 파면 나올까 싶어 뒤지고 있는데 뭐, 결과는 두고 봐야지.”

어떤 이유에서이든 방향이 진룡쪽으로 쏠리기 시작했으니 어쩌면 범인을 잡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런데 넌 어떻게 그런 걸 그렇게 잘 알고 있는 거야?”

“하하. 알잖아. 우리 동기 중에 경찰이나 검찰 쪽에 들어간 애들도 꽤 있는 거.

은근슬쩍 물어보니까 대충 대답해 주더라고.

내 친구 하나가 아예 그 사건을 맡아서 말이야.

내가 은근히 우리가 조사한 것도 찔러 줬어.

도움이 좀 되긴 할걸.”

아예 루머를 퍼트려서 진룡을 곤란하게 만든 민 여사나 친구에게 은근히 자신들이 알아낸 것들을 찔러 넣은 형우나 둘 다 대단하긴 마찬가지였다.

아마 각자가 생각하는 복수의 방향이 달라서 그렇지 타도 진룡에 대한 결의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그래. 수고했다.

알려줘서 고마워.”

“그러니 우리 배우님은 이제 영화에만 집중해 주세요.

장외의 일은 장외에서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요.

그래서 우리 소희도 좀 띄워 주시고요.

정민수가 찍는 영화인데 이번에는 2천만 한번 가야죠?”

형우의 너스레에 민수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와중에도 깨알같이 자신의 배우를 챙기고 있는 형우도 이제는 어엿한 중견 매니저였다.

사실 이번에 소희가 연기할 배역은 나름 괜찮은 배역이었다.

2편에 등장해 설아의 대척점으로 끊임없이 대립하는 캐릭터였으니까.

게다가 구상이 악역이긴 하지만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이유 있는 악역이라 그리 밉지는 않은 캐릭터였다.

마지막에는 주인공을 도와주기도 하고 말이다.

만약 형우의 말대로 영화가 크게 성공하면 소희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긴 할 것이다.

형우와 소희도 그걸 알기 때문에 드라마가 끝나기도 전에 여러 가지 준비를 시작한 것일 테고.

쉐도우 시리즈 2편 “Shadow returnS”은 리온과 태준의 연기로 시작되었다.

물론 둘이 정체를 밝히고 연기하는 건 아니었다.

둘 다 C와 E라고 크게 적힌 가면을 쓰고 대화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관객들은 목소리만 듣고도 둘의 정체를 눈치채긴 할 것이다.

막판에 무슨 큰 반전을 주거나 그럴 생각은 아니라 목소리까지 변조하지는 않았다.

미묘하게 목소리를 바꾸긴 했지만 집중해서 들으면 충분히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다.

“이게 누구야? Exile(추방)이잖아? 시답잖은 보안관 놀이는 이제 싫증 나셨나?

자네가 여기까지 오는 건 드문 일인데…..

무슨 큰일이라도 있는 모양이군 그래.”

C의 빈정거림에 E는 한껏 짜증 난 목소리로 날카롭게 대꾸했다.

“닥쳐, 이 더러운 놈아.

이 도시는 내 구역이라고 했지?

대체 왜 네놈의 그 더러운 실험체들이 이 도시를 들쑤시고 있는 거야?

게다가 그 시커먼 놈은 뭐고?”

“헤이. 진정하라고.

그냥 실험이었어.

조직에서도 이종족을 몰아내려면 그에 걸맞은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했잖아.

그 검은 놈은 우리의 힘이 되어줄 그런 놈이지.

그런 놈으로 이루어진 군대가 있다고 생각해봐.

이종족을 몰살시키는 건 일도 아니지 않겠어?”

E는 뻔뻔하게 유들거리는 C를 바라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설마 무슨 딴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조직은 항상 너를 주시하고 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연구와 실험도 좋지만, 그것도 살아 있어야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C는 자신을 협박하는 E의 말에도 끝까지 태연한 모습을 유지했다.

“그럼. 잘 알고말고.

결국 이번에도 잘 됐잖아.

자네는 이이제이란 말도 모르나?

결국 내 작품이 지하에 처박혀 있던 그 도마뱀들을 완전히 끝장냈지 않나.

아. 그 검은 놈도 내가 적당히 처리했어.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그래. 앞으로도 정신 차려야 할 거야. C.

내가 널 지켜보고 있으니 말이야.”

E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경고를 남기고는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그렇게 떠나는 E의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던 C는 E를 비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하하. 어리석은 놈들.

세상이 어느 세상인데 이종족들을 몰아내겠다고 저러고 있나 몰라.

큭큭. 난 실험이나 하면 장땡이지.

네놈들의 그 헛된 망상은 네놈들이나 알아서 챙기라고.”

하지만 E도 C를 비웃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 네놈의 생각을 내가 모를 거 같아?

어디 네놈의 연구자료만 챙기면 그 뒤에 두고 보자고.

우리의 숭고한 이상을 이해 못 하는 놈은 우리 조직에 몸담을 가치가 없으니까 말이야.

네놈의 자료는 내가 소중히 잘 간수하겠다.

네놈은 저승에서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걸 잘 지켜보라고.”

지금 저 둘은 협력 관계가 분명했지만, 그 관계가 견고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의 관계가 언제 파국에 치닫게 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태준과 리온의 씬이 끝나고 이제 소희가 등장할 차례가 되었다.

이종족 위원회의 일원이자 지하세계에서 이종족을 관리하는 시아(소희)는 이종족 중 유일하게 서큐버스 혼혈과 아름다움을 견줄 만하다는 요호 족의 장로였다.

극 중 배역이 그래서 그런지 한껏 꾸민 소희의 모습은 평소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소속사에 몸담은 순간부터 설아에게 트레이닝을 받아왔던 소희.

틈만 나면 도망치는 수연과 달리 소희는 언제나 성실하고 열성적으로 자신을 가꾸어 왔다.

그리고 그 노력의 성과가 노출이 많고 몸에 밀착되는 의상을 입은 오늘 비로서 드러나게 되었다.

이번 영화에서 소희의 복장은 차파오를 기본으로 조금 야릇한 방향으로 개량한 의상이었다.

중국인 관객을 겨냥하고 중국식 의상을 선택한 것이었다.

설아에게 익숙한 민수마저 조금 놀랄 정도였으니 소희로서는 장족의 발전을 이룬 셈.

소희의 노력은 정말 헛되지 않았다.

“와. 언니. 이제 하산해도 되겠어요.

언제 이 정도까지 발전한 거예요?

아~ 이걸 수연 언니가 봐야 했는데요.

돌아가면 수연 언니는 진짜 특훈에 들어가야겠어요.”

소희의 모습에 설아마저 감탄하고 있었다.

그리고 확정된 수연의 특별훈련.

의문의 1패를 당한 수연의 앞날이 점점 어두워지는 순간이었다.

설아의 칭찬에 소희는 냉정하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민수는 소희의 성격이 변해 이제 다른 사람들을 무덤덤하게 대할 수 있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면 가끔 예전의 소희가 그리워지기도 했다.

그때는 저렇게 대놓고 모든 이야기를 해주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아… 너에 비하면 아직 멀었지.

앞으로 너랑 같은 화면에 계속 잡힐 텐데 너무 비교되면 기분이 좀 그렇잖아?

처음에는 어차피 CG 쓰는 거 편집할 때 좀 고쳐달라고 할까 고민하기도 했는데 사람들이 그건 좀 무리라는 거 있지.

그래서 패드의 힘을 좀 빌렸어.

요즘 패드 진짜 잘 나오더라.

엉덩이에 한 장 가슴에 한 장 넣으니까 너랑 좀 비빌만 하더라고.

이것만 해도 대단하긴 하지만…..”

소희는 이렇게 말한 후 설아의 가슴을 힐끔 쳐다보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씁쓸한 목소리로 말 한마디를 덧붙였다.

“뭐. 원래 세상은 불공평한 거니까.

나 정도면 그래도 준수하지.”

민수는 인사하러 왔다가 그렇게 자조하듯 내뱉은 소희의 자기 위안에 헛기침하며 슬쩍 자리를 피했다.

왠지 더 있다가는 더욱 민망한 소리가 이어질 거 같아서였다.

어느 순간부터 회사에서 촌철살인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소희는 뜬금없이 날카로운 말로 다른 사람을 당황하게 하곤 했으니까.

그리고 이번에도 민수의 예상은 어김없이 맞아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 최근에 사이즈가 좀 더 커진 거 같은데?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지?

설마 민수 선배님이…..”

“에이. 언니도…. 아니에요.

제가 아직 성장기인가 보죠. 그럼요.”

“그 나이에 갑자기 성장기라니….

그것도 거기만?

나도 그런 성장기가 한 번 더 찾아와 줬으면 좋으련만.”

설아가 애써 말을 돌리려고 애쓰는 가운데 민수는 완전히 자리를 떴다.

어떻게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설아를 당황시킨 소희의 전투력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예전에 윤 엔터 배우들에게 완전히 동화되기로 결심한 그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변하기 시작한 소희.

그런 소희가 장착한 무기가 바로 저 솔직함이었다.

다만 솔직한 것도 좋지만 너무 솔직해서 좀 당황스럽긴 했다.

그 솔직함이 설아나 수연에게만 나오는 것이라 큰 문제는 없었지만 말이다.

쉐도우가 폭발에 말려들어 실종된 지 몇 개월.

도시 듀란의 분위기는 빠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 시작을 알린 것은 이종족 혼혈에 대한 간섭과 제한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간섭은 점점 통제로 이어지더니 이제는 박해하는 분위기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이종족에 대한 차별이 시작된 곳은 바로 에스퍼 보안청이었다.

이종족 범죄를 관리하는 에스퍼 보안청은 실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데 집단의 힘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에스퍼 보안청 보안관들 앞에선 이종족 혼혈들도 분기를 억누르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곤란한 입장에 처한 것은 쿤과 퍼니셔였다.

어느 순간부터 보안청 내에서 자신들을 보는 시선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쿤은 본부에 계속 상황을 알렸지만 무슨 일인지 본부에서도 자중하라는 메시지를 보낼 뿐이었다.

쿤의 고민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보안청의 무력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도시 내의 모든 이종족 혼혈들이 반기를 든다면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었다.

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이런 상황이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오늘 소희가 촬영할 장면은 갑작스럽게 변한 도시의 분위기에 이종족 혼혈들도 스스로를 지켜야 할 필요성을 있다고 느낀 시아가 보안청의 실질적인 무력단체 중 하나인 퍼니셔의 수장 쿤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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