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87화 (287/325)

#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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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온의 말대로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액션 연기가 시작된다.

이번 주에 이미 쉐도우의 암살 현장을 쿤이 기습하는 장면까지 촬영을 마쳤는데 갑작스러운 기습공격에 상처를 입고 도주하던 쉐도우가 샌디의 충고대로 위기를 모면하고 그곳에서 쉐도우의 충실한 수하가 되어줄 명진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명진의 원수인 지하조직 블랙 리자드와 일전을 벌이는 쉐도우.

어이없게도 블랙 리자드의 은신처 한 곳에서 잡혀있던 샌디를 다시 만나게 된다.

바로 쉐도우와 샌디가 헤어진 지 딱 7일째 되는 날이었고 샌디의 예언이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드디어 일행에 합류한 샌디는 쉐도우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바로 최근에 무분별한 학살을 벌였던 일당들이 블랙 리자드고 블랙 리자드가 쉐도우의 원수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쉐도우는 샌디 그리고 명진과 함께 블랙 리자드를 처단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그 블랙 리자드의 수장이 바로 강환이 연기할 카야였다.

이제 강환이 촬영장에 합류한다는 것은 본격적으로 블랙 리자드와 쉐도우의 전쟁이 벌어진다는 뜻이었다.

쿤이 이끄는 퍼니셔는 쉐도우를 아깝게 놓친 후 재차 쉐도우 수색에 나서고 쉐도우가 블랙 리자드를 기습할 거라는 정보를 습득 한 후 바로 전쟁에 합류한다.

쉐도우, 쿤, 그리고 블랙 리자드의 삼파전.

이게 바로 다음 주에 촬영할 주요 스토리 라인이었다.

“오. 제자들. 잘하고 있었나?

좀 늦었지? 공연하나 하는데 무슨 계약 조건이 그리 빡빡한지.

내가 더러워서라도 돈을 많이 벌어야지.

돈 없는 놈은 공연도 마음대로 못해요.”

남은 단원들의 공연 계약 때문에 약속한 시일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강환은 배우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아뇨. 선생님. 딱 시간 맞춰서 오셨어요.

계약은 잘 마무리되셨나요?”

“아아. 이 정도면 무난하지.

총무가 아직 멀었어. 이런 작은 계약도 수월하게 마무리 짓지 못하다니.

언제까지 내가 뒷정리를 해줘야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내가 언제까지 돌봐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전생에 강환의 극단에서 생활해 본 적 있는 민수는 강환이 말은 저렇게 해도 죽을 때까지 극단의 단원들을 살뜰하게 돌봐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책임감이 강한 강환이었다.

아마 한참이나 어린 배우들에게 일일이 찾아가 사정을 설명한 것도 그런 책임감에서 우러나온 행동일 것이다.

사전에 그렇게 계약한 이상 합류가 늦어졌다고 뭐라고 할 사람이 하나도 없음에도 말이다.

“대장이 이렇게 선봉으로 나와 군자금을 모으고 있으니 졸병들도 전장에서 더 열심히 뛰어다니지 않겠어요?

알아서 잘하겠죠.

삼촌은 이제 서울 일은 잊고 군자금 확보에 더 집중하실 시간이에요.”

“뭐? 하하.

그래. 일정은 잡아 줬으니 알아서들 잘하겠지.

이거이거, 윤태준이. 내가 호랑이를 키웠어.

좋아. 늦은 만큼 연기로 벌충해 주겠어.”

태준이 웃으며 이야기를 꺼내자 강환도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태준의 말 속에 늦은 만큼 더 열심히 해달라는 의미가 숨어있다는 걸 모를 강환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윤 대표와 어울려 지냈던 강환과 윤 대표의 아들 태준은 이런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나눌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다.

쉐도우의 은신처.

쉐도우는 샌디의 느닷없는 이야기에 잔뜩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미친 블랙 리자드가 이상한 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거야?

생체실험? 게다가 인간에게 리자드 인자와 이종족 인자를 투여해 쿼터 리자드로 만든다고?”

샌디는 자신이 느낀 미래를 쉐도우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이미 샌디의 예언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몸소 체험한 쉐도우는 그녀의 말을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왜 자신이 나서서 그걸 막아야 한단 말인가?

“하. 좋아. 그런데 그걸 왜 내가 하냐고.

그건 일 처리하라고 에스퍼 보안관이 있는 거잖아.

애꿎은 나 하나 쫓겠다고 삽질하지 말고 그런 놈들을 잡았어야지.”

쉐도우가 퉁명스럽게 이야기했지만 샌디는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블랙 리자드와 투쟁해 왔던 명진은 블랙 리자드의 사정에 어느 정도 정통해 있었다.

“그쪽 보스 카야가 보안관 쪽 고위인사와 커낵션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보안관들도 블랙 리자드의 악행에 쉬쉬하고 있는 거고요.

아니면 그들이 그렇게 거리를 활보하면서 문제를 일으키지는 못하겠죠.”

명진의 말에 쉐도우는 할 말을 잃고 한탄을 내뱉을 뿐이었다.

자신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했던 에스퍼 보안관을 생각하면 그런 비리가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신만 무작정 추격하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미친 족속들이었다.

“거지 같은 자식들이군.

하…. 그래.

샌디, 당신이 본 미래에서 이 거리가 온통 그 거지 같은 블랙 리자드로 뒤덮인단 말이지?

그래서 엄청난 수의 민간인들이 살육당하고?

그래서 날 보고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군.

내가 무슨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줄 알아?

난 그냥 복수의 화신일 뿐이야.”

쉐도우가 씁쓸한 표정으로 자조 섞인 말을 내뱉자 샌디는 그런 쉐도우에게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한발 물러서 있던 쉐도우도 샌디가 말하는 이야기에는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복수의 화신이라…. 좋네요.

블랙 리자드가 이종족 인자를 수집할 때 무수히 많은 이종족 혼혈의 생체 에너지를 뽑았죠.

생체 에너지를 잃은 이종족 혼혈은 그 자리에서 잠자는 듯이 조용히 사망한다고 해요.

아무런 상처도 없이요.

이거 익숙하지 않나요? 당신의 애인은 정말 순수한 인간 맞나요?”

샌디의 말에 쉐도우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그리고 그녀와 지금껏 같이 지내온 날들을 회상해 봤지만, 그녀가 혼혈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설마….. 아니야. 그럴 리가 분명 인간이라고….”

하지만 샌디의 말대로 그녀는 아무런 상처도 없이 그렇게 잠자듯이 사망했다.

심지어 어떤 약물이나 독극물을 투입한 흔적조차 없었으니 그야말로 의문사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죽음이었다.

확실히 이상했다.

그리고 이 가정이 사실이라면 블랙 리자드야 말로 자신의 진정한 원수가 된다.

“이 정도 명분이면 당신이 움직이기에 충분할 텐데요.

복수의 화신 씨.”

쉐도우는 이를 빠득 갈았다.

샌디에게 끌려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만약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쉐도우는 어쨌든 자신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서 원수를 놓칠 수는 없었으니까.

그녀의 복수가 지금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였기 때문이었다.

“하. 좋아. 당신이 이겼어.

협조하지. 그러니 당장 계획을 세워.”

쉐도우가 생각을 바꾸자 샌디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당신도 원래 정의로운 부류는 아니지 않나?

왜 이렇게 이 일에 집착하지? 길거리에 도마뱀들이 뛰어다닌다고 당신에게 크게 피해가 가진 않을 거 같은데.

당신은 어떤 조직에서라도 보호 1순위잖아.”

쉐도우의 의문에 샌디는 미간에 골이 깊이 파일 정도로 인상을 썼다.

기본적으로 가벼운 그녀가 지을 거라고 생각할 수 없는 그런 분노에 찬 표정이었다.

“그 도마뱀 새끼들이 저희 바에 에이스를 잡아먹었죠.

서큐버스 혼혈은 자신의 종족에 대한 복수를 뒤로 미루지 않는답니다.”

“역시 복수인가….”

쉐도우도 그녀의 말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도 잠시 분위기는 다시 밝게 반전되었다.

인상을 쓰고 있던 그녀가 다시 상큼하게 웃으며 쉐도우에게 다가갔기 때문이었다.

쉐도우에게 다가간 그녀는 다시 그의 귓가에만 작게 속삭였다.

“그리고 그쪽 도마뱀 보스가 늙다리라서 재수가 없거든요.

적어도 날 가지려면 그런 늙다리 말고 우리 쉐도우 씨처럼 싱싱하고 섹시해야죠.”

이 와중에도 틈을 봐 색기를 흘리는 그녀의 모습에 쉐도우도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그렇게 쉐도우 팀의 블랙 리자드 침투가 결정되었다.

블랙 리자드 본거지에서는 이제 거사를 앞두고 자신들의 비밀 기지를 급습한 날파리 같은 쉐도우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하. 그러니까. 웬 시커먼 놈이 갑자기 쳐들어와서 샌디를 데리고 도망쳤다?

거기서 지키던 놈들은 다 나자빠지고 A 구역 보스인 젠카까지 사살됐고?

도대체 딴 놈들은 다 뭐 하고 있었던 거야!?”

카야가 인상을 쓰고 소리 지르자 휘하 리자드들이 일제히 몸을 움츠렸다.

그의 몸에서 강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카야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과 경외감이 살기와 만나 자연스럽게 그들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부하들을 뜨거운 눈으로 노려보던 카야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냉정함을 되찾았다.

이제 완전한 리자드로 진화한 자신은 쉽게 흥분하면 안 되었다.

“좋아. 어차피 이 도시에 버리지 들은 다 나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지.

이제 그날이 머지않았으니까.

다들 최대한 병력을 모으는 것에만 집중해.”

거기까지 말한 카야는 뒤로 돌아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광기와 열망이 가득한 눈으로 작게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큭큭. 이제 이 도시는 곧…큭큭.”

카야의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지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부하들도 회의실을 빠져나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자신의 보스를 화나게 했다간 자신들의 목숨도 보장할 수 없었다.

민수는 설아와 함께 멀리서 강환의 연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역시 삼촌은 삼촌이네요.

아까 실실 웃던 그 사람은 어디 갔나 몰라요.”

사실 윤 엔터의 민수와 태준, 그리고 설아와 은우까지.

다 강환에게 조금씩 연기를 배웠다고 할 수 있었다.

특히 설아와 태준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호흡과 발성을 배웠으니 강환의 제자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렇게 강환을 연기를 직접 눈앞에서 본 경험은 별로 없었다.

확실히 언제나 실실 웃는 사람 좋은 강환이 저렇게 카리스마를 내뿜고 있으니 적응이 안 될 만도 했다.

“그렇죠? 저분이 능력이 없어서 방송이나 영화에 출연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요.”

그렇게 강환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데 촬영장에 태준과 스티븐이 도착했다.

알 수 없는 경로로 쉐도우 일행이 블랙 리자드랑 충돌한다는 정보를 얻어 온 지미가 쿤에게 그 정보를 전달하는 장면이었다.

정보의 출처를 계속 의심하며 무뚝뚝하게 추궁하는 쿤의 모습과 끝까지 말을 돌리면서 출처를 밝히지 않는 지미.

마지막에 한 번만 믿어 달라고 사정하며 이야기하는 지미의 모습은 악역이지만 왠지 처량하기까지 했다.

“저건 또 새로운 모습이네요.

지금까지 우리 바보 오라버니가 저렇게 궁상맞은 배역을 연기할 적이 있었나요?

저건 뭔가 찌질한 듯하면서도 왠지 현실의 모습과 싱크로율이 잘 맞지 않아요?”

설아의 말에 민수는 다시 한번 촬영 장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내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 저거 뭔지 알 거 같네.

수연 선배한테 수작 걸다가 딱 걸렸을 때 저런 식으로 말 돌리지 않나?

수연 선배는 끝까지 추궁해서 결국 항복 받아 내고.

와 저게 또 저런 식으로….”

난처한 상황에서 궁상맞게 말을 돌리는 태준의 모습은 왠지 익숙하긴 했다.

민수도 항상 멋있는 역할만 소화하던 태준이 저런 식으로 생활연기를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사람들이 많이 놀라긴 하겠네.

이거야말로 연기 변신 아닌가?

그래도 후반에 반전도 있으니까 태준이도 손해 보지는 않겠네.”

“헤헤. 그건 그래요.

저도 많이 얻어 가야 할 텐데요. 전 어떤가요?”

설아가 넌지시 이야기하자 민수는 잠시 잊었던 기억이 떠올라 손뼉을 치며 설아를 바라봤다.

민수가 갑자기 뭔가가 떠오른 듯 급한 반응을 보이자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던 설아는 민수의 말이 이어질수록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 처음에 촬영했을 때 느낀 건데.

너 몸놀림이 좀 예사롭지 않더라.

배역에 잘 녹아 드는 건 좋은데 뭔가 이상하단 말이야.

어떻게 23살이 그렇게 움직이지?

우리 윤설아 양. 설명을 좀 해줘야 할 거 같아.”

민수의 말이 끝나자 난처해진 설아는 조금 궁색한 표정으로 민수를 슬슬 피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웃긴 건 그 표정이 마치 아까 쿤에게 추궁받던 지미가 지은 표정하고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민수는 어이가 없어 허탈하게 웃으며 슬쩍 자기를 피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설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저렇게 보면 태준이랑 설아가 남매는 맞네.

자기가 할 말 없으면 저렇게 슬쩍 자리를 피하는 것 봐.

허허. 참….”

그렇게 허탈해하는 민수에게 태준이 촬영을 마치고 다가왔다.

그리고 같이 이야기하다 말고 갑자기 설아가 슬슬 도망치자 무슨 일인가 싶어 민수를 쳐다보았다.

“뭐야? 쟤 왜 저래?”

“아. 내가 첫 주에 매혹적으로 연기한 거 어떻게 한 거냐고 물으니까 저렇게 도망가네.

이게 무슨 일인지.”

“아아. 그거….

풋. 하긴 그럴 만도 하지. 하하하하.”

태준의 반응을 보니 무언가를 알고 있는 거 같았다.

그냥 포기하려고 했던 민수도 갑자기 궁금증이 도져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뭔데? 윤 배우는 뭐 아는 게 있나 본데? 나도 좀 알자.

속 시원히 말 좀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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