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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배우 정민수-284화 (284/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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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연기가 조금 어색했던 민수만큼이나 곤란해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이 영화를 총괄 감독하는 김태원 감독이었다.

    태원은 방금 촬영한 장면을 다시 살펴보며 조금 난감한 기분이었다.

    이 장면이 좋은 장면인지 다시 가야 할 정도로 나쁜 장면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태원의 옆에는 촬영 초반에만 현장에 나와 도움을 주기로 한 김찬진 감독과 스티븐과 함께 이 영화에 합류한 에릭 존스 감독의 촬영 보조 루카가 있었다.

    “선배. 이거 괜찮은 겁니까?

    몸 전체를 검은 안개로 뒤덮는 CG가 들어간다는데 이게 어떤 식일지 도통 이해가 안 가네요.”

    “야. 기본적인 기획안은 보내 줬잖아?

    거의 그대로 들어간다고 보면 돼. 너무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끙.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성급하게 생각할 것도 없지.

    이제 곧 러프로 잡은 초안이 날아올 테니까.

    아 왔다.

    잘 봐. 방금 장면이 대충 어떤 식으로 들어갈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거야.”

    태원은 영상을 살펴보며 하소연을 내뱉었다.

    “원래 이 정도로 CG가 들어가면 이런 식으로 야외 세트장이 아니라 아예 CG 스튜디오에서 촬영하지 않나요?”

    태원의 말에 찬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태원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만약 그렇게 하다면 장소의 구애도 받지 않으면서 더 편하게 촬영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할리우드에서는 배경 자체를 다 CG로 박아 버리면서 그런 식으로 촬영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다못해 CG 팀을 다 대려다가 이곳에서 캠프를 차리면 연계하면 서로 빠르게 피드백할 수도 있을 테니 태원이 고생할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그래.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만약 그렇게 하면 진짜 편당 2억 불씩 들어갈 거야.

    CG가 들어가는 부분도 최소한으로 하면서 돈을 아낄 수 있을 만큼 아껴야 해.

    그냥 CG로 발라버리면 되는 배경까지 최대한 비슷하게 조성해 놓은 건 그런 이유야.

    그러니 우리 김 감독도 수고를 좀 해 주시게.”

    태원도 자금적인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사정은 잘 이해했다.

    아마 필요한 부분에만 CG를 넣어도 지금 있는 제작비로 간당간당할 수 있었다.

    특히 후반부에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져 도시 전체가 쑥대밭이 되는 걸 생각하면 더욱더 그러했다.

    “이제 내가 스튜디오로 돌아가면 피드백도 최대한 빠르게 날아올 거야.

    그러니 상상력을 발휘해 봐.”

    태원은 작게 한숨을 쉬며 영상을 확인했다.

    그리고 최초 기획안과 거의 비슷한 구도로 나온 이번 장면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찍은 장면은 구도가 괜찮게 나왔네요.

    음…. 이런 식이란 거군.”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거겠죠?

    저로서도 조금 생소한 방법이긴 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좀 신선하긴 하군요.”

    하긴 촬영 감독 입장에선 항상 2~3천억이 투자되는 현장에서 촬영하다가 찬진의 잔머리로 최대한 제작비를 줄인 이번 영화의 촬영 현장이 좀 신기하긴 할 것이다.

    그야말로 돈을 줄인 만큼 감독이나 스태프, 그리고 배우들의 역량을 쥐어짜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어쨌든 구도는 촬영 감독님이 신경을 좀 더 써주셔야 할 겁니다.

    저 친구가 아직은 감을 못 잡고 있을 테니까요.”

    찬진의 말에 루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이곳에 합류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태원은 아직도 심각하게 자신이 촬영한 화면과 기본적인 CG가 삽입된 화면을 비교하고 있었다.

    찬진은 그런 태원의 어깨를 두드렸다.

    “금방 감 잡을 거야.

    야.

    그리고 내가 기분 좋은 이야기 하나 해 줄게.

    내가 저번에 용의 울음 찍고 나서 60억 받았거든.

    너도 이번에 잘하면 다음에는 네 돈으로 네 영화 찍을 수 있어.

    그러니까 분발하라고.

    돈값은 해야 할 거 아냐?”

    태원도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들었는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영화가 워낙 잘 되었으니 적당히 받았을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이건 자신의 상상보다 월등히 많은 금액이었다.

    “와. 세상에.

    윤 대표님 진짜 통 크시네.”

    “그래 그러니까. 파이팅?”

    태원의 사기를 북돋아 준 찬진은 이제 바로 찰리 스튜디오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자금 사정으로 찰리 스튜디오를 이곳으로 불러오지 못한 이상 자신이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자신이 모아 놓은 CG 전문가들과 준수가 자신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찬진이 떠나자 태원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익숙하지 않은 작업이라도 이번 영화는 어쨌든 자신이 총괄해야 했으니 찬진의 말대로 돈값은 해야 했다.

    그렇게 각오를 다진 태원은 영상을 다 확인한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쪽 한구석에서 리온과 이야기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음 촬영을 준비하는 민수가 보였다.

    태원은 자신이 의아한 만큼 배우들도 불안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민수를 이곳으로 불러들였다.

    자신이 최대한 의연한 모습을 보여줘야 배우들도 안심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면서 말이다.

    “감독님?”

    “아. 민수 씨 이거부터 좀 보세요.

    방금 찍은 게 이런 식으로 들어갈 거에요.”

    조금 불안한 마음이 있던 민수는 태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로 영상부터 확인했다.

    참고용으로 급하게 만든 영상이라 엉성하기 그지없었지만 대충 구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아아. 이런 식으로요?

    민수도 자신이 조금 어색하다고 느꼈던 연기가 조잡한 CG가 추가된 것만으로도 생각보다 볼만해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괜찮네요.

    앞으로도 이렇게 하면 되겠죠?”

    “그래요. 민수 씨.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완벽하게 할리우드의 스타일로 제작한 것도 아니면서 그런 느낌을 물씬 풍기게 제작하는 이번 영화는 지금까지 한국 관객들이 봐 왔던 한국 영화와는 분위기가 확연하게 다를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차이가 관객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가 이 영화의 흥행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뒤로도 몇 장편이 계속 촬영되었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던 민수도 계속 쉐도우의 형태로 범죄자를 소탕하는 연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제법 익숙해져 이제는 자연스럽게 바로 연기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무리 많은 CG가 들어가는 영화라도 민수가 마냥 편한 것은 아니었다.

    쉐도우의 무기는 자신의 그림자를 날카롭게 뽑아낸 클로 형태의 칼날이었고 자신의 그림자를 줄처럼 쏘아서 온갖 곡예를 넘으며 상대에게 접근해 근접전을 벌이거나 상대의 그림자에 숨어 은신하고 있다가 기습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그런데 이 그림자를 줄처럼 쏘고 그 줄을 이용해 곡예를 넘는 장면들은 민수로서도 소화하기 쉽지 않은 장면이었다.

    하지만 민수가 힘들면 힘들수록 감탄할 만한 장면들이 계속 연출되고 있었으니 민수도 힘든 것을 참고 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태준과 스티븐은 민수가 스턴트맨들과 일전을 벌이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스티븐의 스턴트 팀이랑 투지 체육관의 스턴트맨들이 민수랑 엉켜 화려한 액션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는데 이 장면은 쉐도우가 지하 세계의 작은 갱단 하나를 단신으로 처리하는 장면이었다.

    아마 나중에 CG 처리가 완벽하게 들어가면 저 갱단의 신체 일부분이 짐승이나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는 연출이 추가되면서 지금보다 더 화려한 영상으로 변할 것이다.

    스턴트맨들 간의 호흡도 정말 좋았지만, 그 와중에도 민수는 단연 군계일학이었다.

    “저렇게 와이어에 의지하지 않고 줄 하나에 매달려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건 아마 민수 밖에 못 할 걸.

    저 녀석은 진짜 괴물이야.”

    태준이 스티븐의 말을 듣고 민수의 모습을 잘 살펴보니 민수에게 와이어가 달려있긴 하지만 단순히 안전장치일 뿐이었고 움직임 자체는 자신의 힘만으로 제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태준도 저런 게 대단하다는 건 얼핏 알고 있었지만, 세계적인 액션 배우가 된 스티븐이 옆에서 감탄하고 있자 새삼 민수가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래? 하긴. 저게 사람이 할 짓이 아니긴 하지.

    예전부터 대단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태준은 예전에 “용의 울음”을 촬영할 때 화살을 잡는 연기라든지 창대를 밟고 사람을 넘어가는 연기를 보며 워낙 놀라서 그 이후에는 민수의 액션을 봐도 많이 놀라지는 않을 거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저렇게 공중곡예를 벌이는 모습을 보니 또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좋은 친구긴 하지만 나도 질 수는 없지.

    액션은 나의 자존심이니까 말이야.”

    태준은 스티븐의 말을 듣고 자신이 민수의 액션을 보면 그저 감탄만 할 뿐이지만 감정연기를 볼 때면 호승심을 느끼는 것처럼 스티븐도 민수의 액션 연기에 호승심과 승부욕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 우리 새 친구는 세계적인 배우잖아?

    민수한테 본때를 보여 달라고.”

    태준이 너스레를 떨자 스티븐도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스티븐은 이번 촬영에서 얻은 수확 중 하나가 이 유쾌한 남자를 만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격도 솔직했으며 배우로서 본받을 만한 것이 많았으니까.

    특히 어제 보여줬던 표정 연기는 자신이 모르는 한국어로 연기했음에도 그 느낌이 생생했다.

    그것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능력이었다.

    “그렇지. 그래야지.

    이대로 민수한테만 스포트라이트를 다 뺏길 순 없으니까.

    확실히 내가 아직 한참 멀긴 했나 봐.

    감독님이 하는 말은 언제나 틀린 것이 없다니까.

    그러니 새 친구.

    자네도 나한테 많이 가르쳐 달라고.”

    에릭 존스는 스티븐에게 이번 영화에서도 많이 배워 오라고 했었다.

    에릭은 한국 영화들이 스케일이 작은 영화가 많았지만 섬세한 감정 연기가 필요한 영화가 대부분이라 액션 영화에 출연하는 액션 배우라도 감정 연기는 기본으로 먹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으니 민수와 다른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를 많이 보고 많이 느끼라고 했었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할 수만 있으면 자신은 좀 더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을 거라더니 확실히 그 말이 맞았다.

    “확실히 재미있단 말이야.

    이곳에 오길 정말 잘했어. 큭큭.”

    스티븐이 중얼거리는데 저쪽에서 민수가 촬영을 마치고 다가왔다.

    한바탕 크게 움직였음에도 호흡이 별로 거칠어지지도 않은 것이 정말 질릴 지경이었다.

    “에이. 괴물 같은 놈.”

    스티븐이 그렇게 투덜거리며 다음 자신의 촬영을 위해 이동하자 민수는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옆에 태준을 바라보았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아해하는 민수의 모습이 왠지 재미있었던 태준은 키득거리면서 민수의 어깨를 두드리고 스티브을 따라갔다.

    이번 장면이 스티븐이 연기할 “쿤”과 에스퍼 보안관 “지미”와 “릭”이 처음 만나는 장면이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저 싱거운 놈들은.”

    민수도 둘이 촬영을 위해 이동하자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그들의 연기를 지켜보았다.

    쉐도우가 계속 숨어서 범죄자들을 처단하자 도시를 지키는 에스퍼 치안청에서는 결국 본부에 지원을 요청하게 되고 본부에서는 치안청 무력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퍼니셔(Punisher : 징벌자) 쿤과 쿤의 팀원들을 파견하였다.

    그리고 지미와 릭은 그런 쿤이 쉐도우를 잡을 수 있게 지원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지미는 인상을 쓰고 쿤과 그 팀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조금 찝찝한 표정의 릭이 함께였다.

    “하. 선배님 퍼니셔면 본청에서도 가장 강력한 무력단체 아닙니까?”

    “그렇지.

    결국 우리가 그 범죄자 새끼를 못 잡는다는 걸 본청에서 인정하고 말았다는 거야.

    젠장. 빌어먹을. 어디서 그딴 새끼가 튀어나온 거야?”

    얼마 전 자신에게 빌빌대던 그 소심한 청년이 자신을 이렇게 곤란하게 만든 쉐도우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던 지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새로운 범죄자의 등장에 짜증만 내고 있었다.

    만약 지미가 자신 때문에 지우가 쉐도우가 될 결심을 했다는 걸 알게 되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지미가 화를 터트리자 릭은 고개를 저으며 쉐도우를 옹호하는 듯한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선배님.

    그 쉐도우란 녀석이 죽인 대상들이 다 하나같이 죽어 마땅한 극악한 범죄자들이었습니다.

    그런 범죄자들을 자기가 알아서 소탕해 준 건데 차라리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직 민간인 중에 쉐도우에게 피해를 받은 사람은 전혀 없으니까요.”

    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미의 호통이 날아 들어왔다.

    “뭐? 그래서 그놈이 의적이라도 된다는 거야?

    지가 뭔데 범죄자들을 소탕해?

    그놈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욕을 먹고 있는 지나 알아?

    우리가 쉐도우보다도 못하단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진짜.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고생하면서 도시를 지켰는데.”

    지미는 사람들의 반응이 답답한지 인상을 한가득 구기고 침을 뱉었다.

    “에이. 진짜 이종족이고 이능력자고 진작에 다 사라졌어야 하는 놈들인데.

    그 세끼들이 진정한 사회의 악이라니까.”

    지미는 자신의 파트너인 릭이 이능력자임을 알면서도 그렇게 중얼거렸다.

    릭은 자신의 선배가 항상 입에 달고 사는 이야기라 그냥 못 들은 척했다.

    저런 거 하나하나에 일일이 다 반응했으면 이 일을 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중 거대한 헬기가 날아와 지미와 릭 근처에 착륙했다.

    지미는 헬기가 뿜어대는 바람에 애써 몸을 가누고는 헬기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부리부리한 눈썹과 잘생긴 얼굴, 단단한 체구에 화려한 금발을 자랑하는 퍼니셔 쿤과 그 팀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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