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83화 (283/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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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adow Awaken”과 “Shadow returnS” 통칭 쉐도우 시리즈는 세상에 대격변이 찾아와 인간과 각종 유사 인류가 같은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는 판타지적인 세계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였다.

    대도시 “듀란”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던 주인공 “지우(민수)”

    하지만 지우의 애인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육자의 희생양이 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순수한 인간인 지우는 복수를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복수는커녕 범인이 누군지 조차 알지 못했다.

    경찰 측이 이 사건을 이능력자 혹은 유사 인류의 혼혈이 발생시킨 사건이라고 판단하고 사건 수사를 종결시켰기 때문이었다.

    이능력을 가지고 있는 유사 인류의 범죄를 담당할 수 있는 건 전담 에스퍼 보안관뿐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담당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지우는 에스퍼 보안관을 찾아가 범인을 잡아 달라고 하소연하지만 에스퍼 보안관은 오히려 유사 인류 범죄인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사건 수사를 반려한다.

    결국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한 지우는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 도시의 모든 범죄자와 전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심판자 지우와 도시의 어두운 곳을 지배하는 유사 인류 범죄조직, 그리고 지우를 잡으려는 에스퍼 보안관이 삼파전의 양상으로 대립하는 그런 영화였다.

    지우 측에는 지우와 지우의 하수인 명진(리 얀), 그리고 매드 사이언티스트 닥터C(리온) 마지막으로 서큐버스 혼혈 선견자 샌디(설아)가 있었고 에스퍼 보안관으로는 열혈 보안관 딕(은우)과 부패 보안관 지미(태준), 징벌자 쿤(스티븐)이 출연하게 되었다.

    그밖에 범죄 조직의 중심 인물로는 리자드 마피아 카야(강환), 요호족 혼혈 시아(소희)가 출연하니 어쨌든 이 정도면 각 진영의 균형이 얼추 맞아 들어간다고 볼 수 있었다.

    “이거…. 대도시라고 했는데 이건 거의 고담시 같은 분위기잖아?”

    “뭐. 아무래도 그런 범죄자들이 득실거리는 도시가 서울 시내처럼 활기차지는 않겠지.”

    제작진이 미리 꾸며놓은 세트장을 둘러보며 태준은 자신의 예상보다 어두운 분위기에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민수도 자신의 상상보다 더 잘 준비 해 놓은 모습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돼야 작품 속의 어두운 분위기를 충분히 전달해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매우 만족스러웠다.

    “수연 선배는 아직?”

    “그러네. 이제 올 때가 됐으니 곧 오겠지.

    수연이가 바쁘네.

    오자마자 찍고 바로 돌아가 드라마에 들어가야 하니까 말이야.

    왜 굳이 이걸 찍으러 오겠다는 건지.

    평소에 일할 때도 이런 열정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어?”

    혀를 차며 이야기하는 태준을 바라보며 민수의 입가에도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평소에는 서로 죽고 못 살면서 이렇게 일 적인 문제로 태준이 타박할 때면 왠지 바가지 긁는 마누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말은 저렇게 해도 마음속으로는 수연에 대한 걱정과 우려로 가득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수연이 도착했는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연과 같이 촬영하는 민수는 조연출의 안내에 따라 바로 촬영장으로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본격적으로 영화 촬영을 시작할 시간이 된 것이다.

    수연과 같이 촬영하는 장면은 간단한 장면이었다.

    시체로 변한 애인(수연)의 시신을 확인하고 지우가 울부짖는 장면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수연은 아무런 대사도 없이 그냥 시체처럼 누워있는 것이 오늘 해줄 연기의 전부였다.

    이러니 태준이 대체 수연이 왜 여기까지 왔는지 이해를 못 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민수도 이해가 안 되긴 마찬가지였다.

    촬영은 순식간에 완료되었다.

    너무 간단한 장면이라 도저히 NG가 날 수가 없었으니까.

    그런 간단한 장면을 촬영하고도 수연은 의기양양했다.

    “아니 대체 뭐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야?

    아무리 히어로 물에 로망이 있다지만….”

    “훗. 봉황의 뜻을 어찌 한낱 뱁새들이 이해할 수 있으리오.

    다 큰 뜻이 있는 거란다.”

    태준의 투덜거림에도 수연은 무슨 생각인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민수는 그런 수연을 태도를 봤을 때 무슨 생각이 있어 보이긴 했는데 그게 뭔지는 도통 파악할 수 없었다.

    “정말 바람같이 왔다가 바람같이 가버리네.”

    잠시 왔다가 그렇게 바로 떠나버린 수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보며 민수와 태준은 그저 황망할 뿐이었다.

    하지만 궁금증은 나중에라도 해결할 수 있었고 지금은 촬영에 집중해야 할 시기였다.

    도입부의 여러 장면의 촬영이 계속되고 있었다.

    “하. 시신에 상처조차 없고 누가 죽였는지 본 사람도 없는데.

    이게 이종족 범죄라고?

    여기가 당신 같은 사람이 찾아와서 헛소리나 지껄이는 곳인 줄 알아?”

    “원 별 거지 같은 놈이.

    가뜩이나 바빠 죽겠구만….”

    특히 간절한 마음으로 에스퍼 보안관을 찾아온 지우를 내쫓는 지미(태준)의 모습은 단순한 연기였지만 태준의 왜 한국에서 알아주는 배우인지를 잘 보여 주고 있었다.

    한마디로 정말 보는 사람들이 울분을 느낄 정도로 싸가지 없게 잘 연기했다는 뜻이었다.

    같이 연기하는 민수도 스토리의 흐름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이 장면에서는 울컥하는 마음을 자제하기 힘들 정도였고 자연적으로 민수가 연기하는 지우의 울분 역시 너무나도 잘 표현되었다.

    “와. 우리 윤 배우 인성 진짜.”

    “뭐야? 이런 이런 우리 정 배우가 아직 배역이 연기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시나?

    이거 어쩌면 좋을까?

    우리 정 배우가 많~이 배워야겠어.”

    “하하. 이런… 내가 말을 말아야지.”

    “자자,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정 배우는 빨리 다음 장면 준비나 하시게나.”

    장면의 촬영을 마치고 태준에게 장난을 걸다 본전도 못 찾은 민수는 고개를 저으며 태준의 말대로 바로 다음 장면을 준비했다.

    다음 장면은 지우가 자신에게 복수할 힘을 주겠다고 유혹한 매드 사이언티스트 닥터C를 제 발로 찾아가 그에게 수술을 받는 장면이었다.

    인간이었던 지우가 인간임을 포기하고 이종족의 혼종 쉐도우로 변하는, 초반부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신이…. 닥터 C?”

    이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의 말을 들어 주지 않자 결국 자신의 힘으로 복수하길 마음 먹은 지우는 자신에게 복수할 힘을 주겠다고 속삭이던, 스스로를 닥터 C라고 지칭한 의문의 남자가 가리킨 곳으로 찾아왔다.

    그의 지시대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몰래 찾아온 것이다.

    닥터 C가 지시한 곳은 도시의 외곽, 거친 부랑자들만 사는 그야말로 도시의 가장 어두운 곳이었다.

    허름하고 다 무너져 가는 건물 한쪽에 비밀통로를 타고 들어간 지우는 그곳에서 이상한 옷을 입은 한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남자는 허름한 외투에 외눈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자신을 매드 사이언티스트라고 지칭한 것에 비하면 정말 정상적으로 보이는 훤칠한 남자였다.

    “킥킥. 왔군요. 결국 왔어요. 어쩔 수 없었겠죠?

    하긴, 머저리 같은 보안관들이 당신의 말을 들어 줄 리가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할 수 있겠군요.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이제 당신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요.

    히힉힉. 자. 새로운 세계에 발을 담글 각오가 되었나요?”

    자기 혼자 신나서 떠들던 남자는 광기에 찌든 번뜩이는 눈으로 지우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눈과 마주하자 지우도 왜 저 남자가 자신을 스스로 미쳤다고(Mad) 표현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 그게 무슨 말이죠? 새로운 세계라니요?”

    지우의 목소리가 두려움에 가늘게 떨리자 남자는 고개를 크게 흔들며 지우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런 이런. 제가 너무 성급했군요.

    너무나 적합한 샘플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 보니 너무 흥분해서 그만.

    제 소개부터 해야겠군요.

    전 닥터 C.

    사람들은 저를 카니지(Carnage) 박사라고 부르지요.”

    “대학살(Carnage)….”

    “아. 그렇다고 아무 사람이나 죽이는 그런 한심한 족속은 아니에요.

    꼭 죽여야 할 사람만 죽이는 아주 착한 박사죠. 킥킥.”

    지우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눈앞에 남자가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자자. 이제 우리의 이야기를 나누어보죠.

    구구절절 많은 이야기를 나눌 필요도 없겠죠.

    당신은 복수할 힘을 원하고.

    난 내 실험이 성공할 수 있는지 확인하길 원해요.

    그래서 실험에 성공하면 당신은 위대한 힘을 얻을 수 있고.

    실패하면 비참하게 죽게 되겠죠.

    어때요? 위대한 실험의 대상이 되어주겠어요?”

    실패하면 죽게 된다는 말에 지우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은 힘이 필요했다.

    애인의 원수를 찾고 복수할 수 있는 그런 힘을.

    지우가 잠시 망설이고 있자 닥터 C는 음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런 저런. 아무리 복수에 눈이 멀었다고 해도 목숨은 아까운가요?

    음…. 그래요. 할 수 없죠.

    원래 인간이 그래요.

    무엇보다 자신의 목숨이 소중할 수밖에요.

    그러면 어쩌나…. 어쩔 수 없군요.

    제 마음대로 결정하는 수밖에요.

    당신이 이곳에 찾아온 순간부터 이미 당신의 선택은 무의미했어요.

    행운을 빌어요. 지우.

    나도 내 실험이 성공하기를 바라니까요.”

    “…아.아니….”

    말이 미치자마자 사방에서 하얀 가스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우는 당황하며 발버둥 치다 서서히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자신이 저 미친놈을 찾아온 이상 자신에게는 어떠한 선택권도 남지 않은 것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어둠 속에 매몰되어 있던 지우의 정신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오고.

    감겨있던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왔다.

    그리고 눈을 뜨자 지우는 미지의 힘이 자신의 몸속에 가득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원하던 힘이던가.

    지우는 이제 마음먹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닥터. 도대체….. 이 힘은 뭐지?

    날 어떻게 한 거야?”

    지우에게 힘을 준 그 무엇은 지우의 성격마저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제 예전에 조금 소심하고 작은 일에도 행복해하던 지우는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았다.

    지우가 아닌 전혀 다른 무엇이 있을 뿐이었다.

    “킥킥. 쉐도우. 그건 바로 쉐도우입니다.

    당신은 이제 인간이 아니라 쉐도우와 혼종이 된 것이죠.

    세상에서 가장 은밀하고 강력한 암살자 쉐도우.

    그 힘이 너무 치명적이라 6대 종족이 합심해 멸족시킨 고대 이종족 쉐도우입니다.

    순종의 이종족이 남지 않은 이 세상에서 아마도 당신이 가장 순종에 가까운 이종족일 겁니다.

    그 말은 즉.

    이 세상에서 당신보다 강한 존재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죠.”

    닥터의 말에 지우는 음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손을 들어 자신의 눈앞에서 강하게 말아 쥐었다.

    그러자 지우의 몸이 검게 물들며 흐릿한 검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했다.

    “그래… 쉐도우란 말이지.

    마음에 들어.

    아주 마음에 들어. 으하하하!”

    감독의 컷 사인과 함께 민수는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같이 연기했던 리온은 그런 민수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며 다가왔다.

    “와… 세상에 이거 은근히….”

    “큭큭. 형님 포즈 죽였는데요.

    전대 물에서 악의 무리를 향해 출동하기 직전의 용사 같았어요.”

    “끙….”

    민수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이게 CG가 들어가면 어떤 식으로 연출 될지 알 수 없었지만 당장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연기하자니 아무리 민수라도 어색하고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와. 이거 결국 어색함을 다 참으면서 연기해야 한다는 거잖아.

    이게 제일 어려운 일이겠는걸.”

    이제 이건 시작에 불과했고 나중에는 전투 중에도 쉐도우의 능력을 쓸 때마다 온갖 중2병스러운 동작들을 소화해야 했다.

    민수는 어려운 액션보다 그런 동작들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소화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사전에 연습하긴 했지만 진짜 촬영에 들어가자 자신이 상상한 것보다 더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이 장면을 지켜본 태준과 설아가 나중에 무슨 소리를 할지 걱정될 정도였다.

    “스파이더맨이 거미줄 쏘는 것도 사실 거미줄이 진짜로 나가니까 볼만한 거지.

    동작만 취하면 엄청나게 유치하잖아요.

    다 그런 게 아닐까요?”

    “그건 그렇지.

    하지만 이거 의상도 그렇고….. 후….”

    아무리 받아 들여야 하는 거지만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였다.

    민수는 처음으로 아무런 능력도 갖추지 않는 태준과 리온, 매혹 능력과 예언 능력만을 가진 설아가 부러워졌다.

    “하하. 그래도 그나마 형님이 나은 거 아닌가요?

    스티븐 씨랑 그 동료 스턴트맨들은 완전….”

    “훗. 그건 그렇네.

    그나마 내가 나은 거였지.”

    리온의 말대로 차라리 민수 자신이 더 나았다.

    설정상 라이칸스로우프의 혼혈인 쿤과 그 친위대는 전투 중에 온몸이 털로 뒤덮인 늑대 인간으로 변해야 해서 의상조차 가관이었다.

    “그래. 이런 거로라도 위안으로 삼아야지 어쩌겠냐?”

    민수는 쓴웃음을 지으며 다음 촬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영화의 메이킹 영상을 홍보자료로 사용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정말 연기의 세계는 험난함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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