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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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우리 Boy가 기거하는 회사란 말이지?”
“스티븐. 여기서 꾸물대지 말고 빨리 민수나 만나러 가자고.”
며칠 뒤 스티븐이 조용히 윤 엔터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는 혼자 한국을 방문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동료인 에릭 존스의 액션 스턴트 팀.
그리고 촬영 팀 몇 명을 대동한 채였다.
“오. 스티비.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이거 완전히 몰라보겠는데.
할리우드 스타가 다 되었어.”
“하하. 그래? 그거 반가운 말이네.
거기는 수수하게 다니면 완전히 무시하는 동네라서 말이야.”
민수는 회사로 직접 찾아온 스티븐은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 스티븐과 동행한 동료들 사이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발견하고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잭슨, 테드, 게다가 윌리엄까지.
다 같이 온 거였어?
이거 완전 에릭 존스의 스턴트 배우들이 총출동했네.
다들 반가워. 잘 지냈지?”
“스티비가 영화를 촬영하는데 우리가 빠질 리가 있나.
민수. 이번 영화에서도 잘 부탁해.”
그렇게 인사를 마친 민수는 우선 스티브와 친구들을 휴게실로 안내했다.
스티브는 말로만 듣던 한국의 소속사 형태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따로 연기 연습을 하면서 사는 거였어?
생각보다 시설도 괜찮고 건물도 멋진데?”
“아. 미국에는 소속사의 개념이 좀 다르지?”
“에이전트나 매니지먼트 계약사는 따로 있지만 이런 식의 소속사는 좀 드물지.
특히 배우들은 말이야.”
“하긴. 그건 그렇지.”
이번 방문에 스티븐의 에이전트가 동행해 윤 엔터와의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
그리고 스티븐과 민수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스티븐의 에이전트는 윤 대표와 계약에 대한 요구사항을 조율하고 있었다.
스티븐의 결심이 확고하기 때문에 영화에서 빠질 가능성은 없었지만 가능하면 좋은 조건으로 계약하는 것이 에이전트의 당연한 임무였다.
아마 적당한 조율 끝에 정당한 자신의 몫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것보다 민수가 놀란 것은 스티븐이 자신의 팀과 촬영 팀까지 대동했다는 것이었다.
“원래 쉬는 타이밍이잖아?
저렇게 다들 와도 괜찮은 거야?”
“아. 아무래도 나 혼자 보내기에는 걱정스러우신가 봐.
마지막에는 아예 날 따라오려고 하시더라고.
원, 물가에 내어놓은 아이도 아니고 말이야.
그래서야 내가 감독님 말고 다른 사람들이랑 영화를 찍는 보람이 전혀 없잖아?”
“하긴 감독님이 널 많이 아끼시긴 하지.
그리고 그런 감독님 덕분에 이번에는 내가 덕을 좀 보겠네.”
“하하. 저 선배들이 어디 감독님이 가라고 한다고 얌전히 가는 사람들이야?
아마 다른 사람이랑 찍는 영화였으면 그냥 쉰다고 보이콧했을걸.
너랑 찍는다고 하니까 다들 군말 없이 따라온 거야.
촬영 팀의 루카 씨도 마찬가지고.”
스턴트 팀을 데려온 것은 그렇다 치지만 촬영 팀 일부를 대동한 것은 민수로서도 좀 의외였다.
자신들이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지금 자신들에게 가장 필요한 인력을 알아서 데려온 것이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촬영 팀까지 대동하게 된 거야?”
“아아. 감독님이 한국에서는 그런 부류의 영화를 찍어본 촬영 팀이 거의 없을 거라고 하시더라고.
아 물론 한국의 수준을 무시하는 건 아닌데 그냥 규모가 좀 다르잖아.
그래서 조언자 격으로 몇 분이 동행하신 거야.
경험이 있고 없고는 생각보다 차이가 크니까 말이야.”
“아…. 감독님이….”
“감독님이 많이 아쉬워 하셨어.
저번 영화를 같이 했으면 좋았더라고 말이야.
나도 좀 아쉽긴 했고.
이렇게까지 성공할 줄 알았으면 억지로라도 같이하게 하는 건데 그랬어.”
이미 성공할 걸 알고 있었지만 거절했던 민수는 그냥 슬쩍 웃을 뿐이었다.
“뭐. 이번에 같이 찍어서 잘 되면 되지.
나도 그 후에 나름대로 의미 있는 영화를 찍었으니 상관없어.
계약은 어차피 위에서 알아서 하는 거니 우리는 연기 이야기를 좀 해볼까?
음…. 우선 스턴트 스쿨로 가자.
거기에 이번 영화의 액션을 총괄하실 무술 감독님이 계시니까.
다른 팀원들도 그게 더 마음 편하겠지?”
스턴트 스쿨로 가자는 민수의 말에 스티븐도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티븐은 사실 예전부터 민수가 액션을 배운(?) 스턴트 스쿨이 궁금하던 차였다.
“좋아. 나도 어떤 곳에서 이런 괴물 같은 녀석이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던 차였으니까.
어서 가보자고.
가면 우리랑 같이 호흡 맞출 스턴트맨들도 만날 수 있겠지?”
민수가 스티븐 일행을 투지 체육관으로 안내하고 있을 때쯤.
윤 대표는 스티븐의 에이전트와 계약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었다.
스티븐이 원하는 것은 별로 많지 않았다.
애초에 민수랑 같이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서 한국에 온 것이었으니 굳이 까다롭게 따지지 않는 것이었다.
다만 윤 대표로서도 약간 의외인 부분이 있었다면.
“투자요?
출연료 전체와 따로 2천만 달러 정도를 투자하고 싶다고요?”
“네. 저희 고객은 영화가 최대한 좋은 퀄리티로 제작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 제작비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지원하고 싶다는 게 저희 고객님의 생각입니다.
아, 물론 특별히 다른 조건이 있는 건 아닙니다.
사용처는 영화 제작에 관련된 일이면 어떤 곳이든 상관없고 그저 최대한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고객님의 뜻이니까요.”
윤 대표는 투자 제안을 받자마자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미 민수와 다른 배우들의 투자를 받은 상황이라 스티븐의 투자를 받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고 여유자금이 전혀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무조건 수락해야 하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민수와 영화를 찍어주러 한국까지 친히 방문한 배우가 투자자가 되었다고 영화에 마이너스가 되는 행동을 할 리도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투자자로 스티븐 로우까지 합류하자 윤 대표는 비로소 자금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하. 진짜 이 짓도 못 해 먹겠군.
진짜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차라리 이럴 바에는 영화 제작에 관련된 직원들까지 뽑아 놓는 게 낫겠어.
그건 외부 인원을 받아야 하는 거겠지?”
투자금 확보가 완료되자 조금 마음이 편해진 윤 대표가 민 여사를 바라보며 농담을 건넸다.
“글쎄요. 이런 일이 한두 번만 더 있으면 그냥 우리 직원들이 웬만한 영화제작사 직원들보다 능숙할 거 같은데요.
그냥 관련 부서만 하나 신설하세요.”
“끙. 하긴 벌써 몇 편째니까.
하… 진짜 스티븐이 촬영 감독을 대동해서 정말 다행이었어.
이건 정말 답이 없는 거였는데.”
윤 대표가 안도하며 이야기하자 민 여사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쪽으로는 아무 도움도 못 되는 민 여사는 며칠 동안 윤 대표가 계속 마음고생 하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합류로 윤 대표의 부담이 덜어지는 건 민 여사에게도 참 반가운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민수가 복덩이이긴 하네요.
뭔가 좀 꼬이는 거 같다가도 나중에는 결국 다 잘 된다는 태준이의 말이 틀린 게 아니었어요.”
“그래. 녀석이 운이 참 좋긴 해.
후…. 진짜 잘 돼야 할 텐데.
솔직히 그냥 1~200억 정도 투자할 때는 뭐 안되면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이런 식으로 생각했는데 이번에 총 1400억이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좀 떨리긴 하군.
내가 연기하는 게 아니라 지켜보기만 하는 거라 더 그런 거 같아.
좋은 아이들이지만 아직도 조금씩은 부족한 부분이 보이기도 하니까 말이야.”
은퇴한 지 꽤 되었음에도 아직도 연기자의 마인드를 완전히 벗어 놓지 못한 윤 대표의 모습에 민 여사는 조금 샐쭉하게 쳐다보며 윤 대표를 타박했다.
“왜요? 마음에 안 들면 촬영장에 뛰쳐 들어가시기라도 하시려고요?
다 잘 될 거예요.
그러니 배우들을 믿으세요.
그리고 그깟 돈이야 어차피 또 벌면 되죠.
유동자산 좀 정리했다고 아리 재단 안 무너지거든요.
그리고 소속사에서 투자한 돈이야 어차피 대부분 민수가 찍은 영화에서 수익이 난 거였잖아요.
그 정도야 뭐. 그냥 없는 셈 치면 되는 거고요.”
수백억의 자금을 없는 셈 치겠다는 민 여사의 말에 지금껏 민 여사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윤 대표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실로 대단한 배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돈에 욕심만 내지 않는다면 민 여사의 말이 옳긴 했다.
그리고 돈에 눈이 멀었다면 윤 대표가 이런 식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을 리도 없었다.
“그건 그렇군.
후…. 마음을 비워야지.
어차피 이제 내 손을 떠난 돈이니까.”
“그래요. 그리고 어차피 손해 날 일은 없어요.
그까짓 1400억, 영화만 잘 만들어지면 중국과 일본에서 나올 흥행 수입만으로도 그것보다 많을 테니까요.”
“그래 맞아.
영화만 잘 만들어지면 돼.
그건 우리 애들이 누구보다 잘하는 일이니까 난 그냥 스크린만 확보하면 되겠군.
아니지. 어차피 스티븐 로우와 민수, 거기다가 태준이까지 나오는 영화인데 영화 찍는다는 소식이 퍼지는 순간 배급사에서 알아서 달려오겠군.”
“그러니 우리 윤 대표님은 이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드세요.
할 일 다 하셨으니까요.”
민 여사의 말대로 윤 대표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마쳤다.
이제 영화가 완성될 때쯤 중국과 한국, 일본을 오가며 스크린만 확보하면 되었다.
미국 쪽은 스티븐 로우와 에릭 존스의 에이전트가 알아봐 준다고 했으니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투지 체육관에서는 민수와 스티븐 그리고 다른 배우들과 스턴트맨 들까지 모여 호흡을 맞추는 데 한창이었다.
에릭 존스의 간결한 액션 연기에 익숙해진 스턴트맨들은 민 단장의 화려하고 과감한 액션 스타일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확실히 대단한 실력이네.
솔직히 조금 얕보는 마음도 있었는데 말이야.
오히려 히어로 물에는 저런 액션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어.”
“스타일은 좀 다르지만, 실력이 대단한 건 알겠어.
역시 민수의 스승이야.
저 정도는 돼야지.”
스티븐 팀의 팀원들도 민 단장의 능력을 내심 인정하고 있었다.
민수는 그런 팀원들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해했다.
서로 말은 잘 안 통했지만 민수나 태준, 설아가 옆에서 통역하면 되었고 민 단장의 능력을 인정했으니 아마 촬영장에서도 민 단장의 통제를 잘 따를 것이 분명했다.
처음에는 조금 삐걱대던 투지 팀과 스티븐 팀은 며칠 호흡을 맞추고 몸을 부딪치자 이제는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호흡이 맞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도 가장 의외의 조합이 있었으니.
“오. 정말? 민수녀석 진짜 가끔 보면 정말 제정신이 아니라니까?”
“하하하. 오. 나랑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또 있었다니. 이거 반가운데.
맞아. 저 녀석 진짜 제정신이 아니야.
그때 그냥 벽을 타고 바로 쭉 내려오는 거야.
난 발에 무슨 빨판이라도 박아 넣은 줄 알았어.”
신나서 떠드는 스티븐과 태준을 보며 민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왠지 둘이 죽이 맞아 저러는 게 1+1=2 가 아니라 3이나 4가 되는 기분이었다.
“하. 저 와중에도 태준 선배랑 스티븐 씨는 사이가 좋네요.”
고된 훈련에 지친 은우는 민수 옆에서 거친 연습 중에도 계속 떠들며 좋아하는 태준과 스티븐을 질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게요. 왠지 바보가 둘이 된 거 같아서 마음이 아프긴 한데.
참 뭐라고 하기도 그렇고.
은우 선배도 고생 많으셨네요. 이제 얼추 태가 잡혀간다고 단장님이 그러시던데요.”
“하.. 진짜 말도 마세요.
무슨 에스퍼(초능력자)가 이렇게 빡세게 움직여요?
그냥 뒤에서 초능력만 쓰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이렇게 투덜대고는 있었지만 은우가 맡은 보안관 “릭”은 에스퍼임과 동시에 전투 능력자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격투 능력은 필수적이었다.
“하긴 저보다는 강환 선생님하고 소희 씨가 고생이 많죠.
소희 씨는 촬영 마치자마자 바로 이곳으로 출근하고 있으니까요.”
중국에서는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소희였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그렇게 많이 알려진 배우는 아니었다.
설아의 영화로 조금씩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소희는 지금 주요 조연으로 출연하고 있는 이번 드라마와 같이 촬영할 민수의 영화로 한국에서의 입지도 완전히 굳힐 생각이었다.
아마 밤마다 이곳을 찾아 열정적으로 연습에 임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긴. 소희 씨가 고생이 많죠.
드라마 찍는 것도 힘들 텐데 따로 연습까지 하고 있으니까요.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좋은 기회이기도 하니까요.
어떤 배우가 이런 기회를 놓치겠어요?”
민수도 소희의 마음이 이해가 가긴 했다.
게다가 소희도 진룡을 향한 감정이 아주 좋지 않았다.
예전에 중국에서 사극을 찍고 돌아왔을 때 바로 드라마의 주요 조연으로 데뷔할 기회를 진룡 때문에 놓쳤었기 때문이었다.
RD에서 받은 설움까지 거기에 더해질 테니 어쩌면 민수 다음으로 진룡에게 감정이 안 좋은 배우가 있다면 그건 분명 소희일 것이다.
스턴트맨들과 배우들의 연기 합을 지켜보던 민수는 이제 슬슬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정말 촬영의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정말 다시 만들기 힘들 정도로 대규모의 자본이 투자된 영화.
민수도 점점 커지는 기대감에 조금씩 몸이 떨려올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