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76화 (276/325)

#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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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표는 한동안 인상을 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민수로서는 조금 의외의 상황.

윤 대표의 고민이 길어지자 민수는 조금 난처한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고민이 많아 보이시네요.”

민수의 말에 윤 대표는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윤 대표는 확실히 이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보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구나.”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문제라…. 문제라면 문제라고 할 수도 있겠지.

우선 이 영화의 감독이 유학파 출신 김윤성 감독이지?

젊고 능력 있는 감독이라는 말도 있지만, 성격이 별로 좋지 못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야.

평소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네 상황에서 굳이 그런 감독이랑 촬영을 해야 할지….”

“음…”

“그리고 드림 픽처스 김 사장도 사실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서 말이다.

너한테 작품을 넣었지만, 왠지 호락호락하게 작품을 줄 거 같지는 않구나.”

윤 대표는 아무래도 저번 일로 드림 픽처스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긴 어떤 기획사 대표가 자신의 배우를 사석으로 사용한 영화사를 좋게 볼까.

“그런가요?

그래도 지금 액션 영화에서만큼은 저보다 괜찮은 배우를 찾기 힘들 텐데요.

음…. 하지만 대표님의 말씀도 이해가 되긴 해요.

그럼 흥행은 어떨까요?

지금 가장 중요한 건 흥행일 거 같아서요.”

흥행이라는 말이 나오자 윤 대표도 조금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인성에 문제가 있다지만 능력 있다고 평가되는 김윤성 감독과 여러 가지로 간을 보며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김 사장의 드림 픽처스.

특히 김 사장이 이리저리 줄타기를 하고 다님에도 드림 픽처스가 영화제작사로 확고하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김 사장의 작품 보는 눈이 수준급이었기 때문이었다.

배우들이나 소속사가 조금 기분이 나쁘더라도 드림 픽처스에서 작품을 하자고 요청하면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으니까.

능력도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리저리 휘두르려고만 했다면 드림 픽처스란 제작사는 이미 예전에 망해서 없어졌을 것이다.

“그래….. 흥행만 본다면 시나리오도 괜찮고, 확실히 가능성이 있어 보이긴 하는구나.”

민수는 윤 대표가 조금 마뜩잖아 보이자 고개를 끄덕이며 절충안을 제안했다.

“저한테 시나리오를 보냈다는 것 자체만 봐도 우선 저를 쓰고 싶은 마음은 있어 보여요.

하지만 상대가 지나친 요구를 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가 될 테니 우선 영화를 찍을 생각이 있다고 상대에게 이야기해 보는 게 어떨까요?

그럼 상대가 바로 OK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무슨 조건을 달 수도 있을 텐데.

저희는 그 조건을 들어 본 후 생각해 보면 되지 않을까요?”

“음… 맞는 말이긴 한데….

이 김 사장이 단순히 조건 다는 것 외에 엉뚱한 짓을 할 까봐 그런 거다.

어쩌면 서로 조건 조율 중임에도 출연이 확정된 것처럼 언론플레이할 수도 있어.

아니 분명히 그렇게 할 거야.

지금 액션 배우 중에 너보다 좋은 조건의 배우가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우리가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지.

사람들은 서로 조건이 안 맞아 계약이 불발이라고 하면 무조건 배우가 너무 과한 조건을 요구했다고 생각하잖느냐.

지금 사고 때문에 너에 대한 이미지가 뒤숭숭한데 그런 일까지 있었다가는….”

확실히 윤 대표의 염려는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민수는 이 부분을 조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에이. 그럼 지금까지 제가 영화 찍을 때 계약한 조건들을 공개하면 되죠.

그쪽이랑 논의 중인 계약 내용을 공개하는 건 불문율을 어기는 거라지만 제가 지금껏 찍은 영화들은 제작사랑은 상관없는 영화들뿐이잖아요.

기본 노 개런티에 런닝 개런티 %만 있는 계약조건을 보고 배우가 욕심부렸다고 하는 사람은 없겠죠.

그리고 예전에 그런 식으로만 계약한 저랑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으면….

저 못지않게 상대가 더 욕을 먹지 않을까요?”

윤 대표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했다.

민수는 마지막으로 자기 생각을 덧붙였다.

“아 물론 가능하면 별문제 없이 영화에 들어가는 게 제일 좋긴 하죠.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어서 들어가려는 거니까요.

하지만 너무 무리한 조건을 제시하면 끌려다니실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혹시 상대가 조건을 제시하면 저에게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래. 그러도록 하자.

우선 상대의 뜻을 알아보고 그때 다시 이야기하면 되겠구나.”

민수는 윤 대표와 그렇게 하기고 결정하고 대표실을 나섰다.

그리고 잠시 후, 윤 대표는 자신과 티 타임을 가지려고 들어온 민 여사에게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꺼냈다.

“하. 또 그 너구리 같은 작자랑 합의를 봐야 한다니.

내 다시는 상종하지 않으려 했거늘….”

민 여사는 윤 대표의 설명을 듣고 미소만 지을 뿐 별다른 참견을 하지 않았다.

배우들의 작품에 관련된 내용은 무조건 윤 대표가 결정하고 민 여사는 그 외적인 일만 담당하고 있었으니 이 일은 윤 대표의 생각대로 결정 짓는 것이 옳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놈은 날 너무 잘 알아.

배우들이 하고 싶다고 하면 내가 웬만하면 상대의 조건을 거절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하는 놈이기도 하지.”

“어머, 우리 대표님이 벌써 호구라고 소문이 다 났군요.”

“하… 그럴지도 모르겠어. 이거야 원….”

이제 사업적으로 외부 인사들과 교류할 때는 제법 중견 사업가의 모습을 보이는 윤 대표도 소속사 배우들의 배역이나 스케줄에 대해서는 언제나 물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니 드림 픽처스의 김 사장 같은 사람이 파고들 틈이 있는 것이었다.

저번의 일로 조금 관계가 꺼림칙한 윤 엔터에 당당하게 섭외를 넣을 수 있는 것도 시나리오가 정말 괜찮다면 윤 대표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배우 쪽에서 영화에 참여하길 원할 수도 있다는 노림수가 있어서 일 것이다.

그리고 김 사장은 배우가 찍겠다고 하면 윤 대표가 두말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문제는 김 사장의 욕심이 단순히 그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는 거였는데.

“민 여사 지금 회사에 여유 자금이 얼마나 있지?

아무래도 이 자식이 투자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가능성이 가장 커.”

“그래요? 우선 연락부터 해 보세요.

뭐라고 하나 궁금하긴 하네요.”

윤 대표는 씁쓸한 표정으로 드림 픽처스 김 사장에게 연락을 넣었다.

윤 대표는 어쩌면 김 사장과 실랑이를 조금 길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급작스러운 피곤함을 느끼며 한숨부터 내뱉었다.

윤 대표가 민수의 영화 건으로 드림 픽처스와 논의를 이어가는 며칠 동안 민수도 자기 나름대로 여러 가지를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음… 이 시나리오라고?”

오늘 민수는 윤 엔터 유일한 시나리오 전문가, “용의 울음”을 집필했던 준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좀 허황하긴 한데….

어차피 히어로 물이란 게 그런 거 아닐까요?

그래도 생각보다 내용은 괜찮게 나온 거 같은데요.”

준수는 “용의 울음”으로 대박이 난 후 자신의 나름대로 계속 집필 활동에 매진하고 있었다.

낮에는 아리 재단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끊임없는 지필.

그리고 가끔 찬진이 영화를 찍을 때면 찬진을 따라다니며 잡일이나 시나리오 검수를 도우면서 영화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가장 어린 혜민이, 그리고 고령의 할머니 김 여사. 그리고 준수까지.

3명이 모두 일을 하는 덕분에 금전적인 여유는 되찾았지만, 워낙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연애를 하거나 다른 생각을 할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다.

너무 회사에 틀어박혀 일만 하는 준수에게 민수가 조금 걱정스러운 말을 건네긴 했지만, 준수의 태도는 단호했다.

정말 대단한 시나리오 작가가 되어 반드시 어여쁜 여배우랑 맺어지겠다는 것이 준수의 목표였다.

꿈은 가상하지만 민수의 생각에는 그건 정말 어려워 보였다.

요즘에는 그나마 찬진을 따라다니며 영화 촬영에 대한 것도 조금씩 배우고 있어 소속사 건물에만 머물던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다만 찬진을 따라다니는 이유가 영화에 대하여 잘 배워 놓으면 나중에 찬진처럼 여배우를 만날 수도 있겠다는 얄팍한 속셈 때문이라는 건 좀 안타깝긴 했다.

민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좀 황당하기도 하고 솔직한 욕구 표현에 감탄이 나오기도 했다.

아마 소속사에 드나들면서 미인들만 보다 보니 눈이 너무 높아져서 그런 건 아닐지 모르겠다.

“음… 확실히 나쁘진 않네.

그런데 넌 왜 뭐든지 쓰기만 하면 이렇게 스케일이 크냐?

아니 이건 스케일이 크다기보다는…..”

“그렇죠? 돈이 엄청 들 거 같긴 해요.

제가 원하는 대로 CG를 넣을 수나 있을까요?”

“확실히….. 돈도 많이 들고…..

그리고 이거 1편에 완성 시킬 수나 있겠냐?

대충 봐도 러닝 타임이 3시간은 족히 넘어 보이는데?”

민수의 지적에 준수는 허허하고 웃으며 고개를 돌려 민수의 눈을 애써 외면했다.

준수도 자신이 너무 과한 시나리오를 썼다는 것에 대한 자각은 있었다.

“두 편이라…..

만약 이거 두 편으로 쪼개면 만들 순 있어?”

“음… 충분히 가능은 하죠.

원래 2편으로 계획했던 거니까요.

그런데 2편으로 나누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만약 1편을 성공한다고 쳐도 캐릭터보다 배우 쪽에 비중을 두는 시리즈 물은 다음 편에 그 배우 그대로 써야 의미가 있는 건데 영화 제작 과정을 생각해 보면….

특히 우리나라에선 더 그렇잖아요.”

준수의 말에 민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옳은 소리였다.

미국에서 히어로 시리즈 물이 인기를 끌 수 있는 건 배우만큼이나 그 히어로 자체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정말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배우를 바꿀 수도 있는 거고.

그러나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캐릭터에 사람들이 애정을 쏟을 이유는 없을 테고 영화가 인기 있다 해도 캐릭터가 사랑받는다기 보다는 배우가 사랑받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다음 편에도 자연스럽게 그 배우를 쓸 수밖에 없었다.

만약 상황이 여의치 않아 다른 배우를 쓴다면 전혀 다른 느낌에 사람들의 외면을 받을 가능성이 더 컸으니까.

하지만 우리나라 실정상 그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확실히 그건 그렇지.

아무래도 시리즈 연작을 내는 건 좀 무리 일려나….

어쨌든 한번 나누어 두긴 해봐.

어차피 이게 1편에 안 되는 건 나보다 네가 더 잘 알잖아?”

“뭐… 그건 그렇죠.”

“그런데 그런 거 빼고는 상당히 괜찮아 보이긴 해.

너무 머리 쓸 필요 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데다가 스토리랑 액션도 적당히 잘 어우러지는 거 같고.

배우들이 액션 연기만 제대로 해 주고 CG만 좀 잘 넣으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준수는 민수가 호평하자 그제야 웃음과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리고 분량을 2편으로 조절해 보겠다고 말하고는 서둘러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마 바로 작업에 착수할 모양이었다.

“김찬진 감독님을 따라다니더니 이것저것 많이 늘긴 했네.

그런데 느닷없이 웬 히어로 물이래?

아니 차라리 괜찮으려나….

등장인물이 제법 많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이 시기에 해외에서 활동하다 보니 민수의 사고 소식을 뒤늦게 접하고 안부 전화를 넣은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티븐과 중국에서 콘서트 중인 리온이었다.

자신이 먼저 연락을 할 생각이었는데 둘이 연락을 주자 민수도 반가운 마음에 즐겁게 통화할 수 있었다.

이미 자신이 괜찮다는 소식을 접했음에도 자신에게 안부 전화를 넣어준 두 사람에게 민수도 깊은 고마움을 느꼈는데 다만 스티븐의 말에는 부끄러움도 같이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 해외 토픽에 나왔더라고.

그래서 알게 됐지.

드라마 촬영 중에 그 정도 화재라니. 그거 정말 드문 일이잖아?

안 다친 게 기적인 상황 아니야?]

어떻게 알았냐는 민수의 질문에 스티븐은 이렇게 대답했는데 세트장이 터무니없이 부실 시공되었다는 사실까지 해외에 알려졌다니 정말 나라 망신이 아닐 수 없었다.

해외에서 보기에는 아마 삼붕 백화점이 무너진 것이나 한강 다리가 붕괴한 것에 버금갈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었을까?

“하… 진짜 공사는 딴 놈이 했는데 부끄러운 건 왜 내 몫이어야 하는 거냐?”

민수도 이 부분에서는 한탄을 참을 수가 없었다.

확실히 부끄러운 일이긴 했으니 말이다.

스티븐이나 리온과는 앞으로의 계획과 스케줄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올해는 아직 특별한 계획이 없고 에릭 존스 감독도 안식년을 갖는다는 스티븐의 이야기와 콘서트가 끝나면 다시 개인적으로 연기를 해야겠는데 무슨 드라마가 좋겠냐는 리온의 이야기는 민수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드디어 민수가 기다리던 설아의 정규 앨범이 발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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